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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상반기 웹툰의 미디어믹스

올해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이슈 중 하나는 넷플릭스였다. 미국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코미디 쇼,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인터넷 망을 통해 서비스하는 이 기업은 전 세계 190개국, 1억명의 가입자를 가졌다. 분기당 매출만 6억달러 이상이다. 그리고 콘텐츠 확보를 위해 1년에 60억 달러 이상을 쓴다. 이 비용에는 기존 콘텐츠를 사는 것도 포함 되지만, 넷플릭스에서만 공개되는 독점 콘텐츠 제작에도 엄청난 돈을 쓴다.

2017-09-29 강명석

올해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이슈 중 하나는 넷플릭스였다. 미국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코미디 쇼,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인터넷 망을 통해 서비스하는 이 기업은 전 세계 190개국, 1억명의 가입자를 가졌다. 분기당 매출만 6억달러 이상이다. 그리고 콘텐츠 확보를 위해 1년에 60억 달러 이상을 쓴다. 이 비용에는 기존 콘텐츠를 사는 것도 포함 되지만, 넷플릭스에서만 공개되는 독점 콘텐츠 제작에도 엄청난 돈을 쓴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다큐멘터리를 독점 제작하기도 했다. 물론 한국에서 넷플릭스가 가장 이슈가 된 것은 봉준호 감독의 ‘옥자’ 개봉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넷플릭스는 ‘옥자’를 극장과 넷플릭스에 동시 공개 하기를 원했고, 이는 멀티 플렉스 체인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넷플릭스의 힘이 한국 대중문화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넷플릭스는 현재 천계영 작가의 ‘좋아하면 울리는’을 드라마화 할 예정이다.




지난 몇 년 사이 만화, 특히 웹툰은 여러 대중문화 산업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왔다. 사회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tvN ‘미생’ 역시 윤태호 작가의 동명의 작품을 드라마화한 것이었고, 실사화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조석 작가의 개그만화 ‘마음의 소리’역시 웹드라마로 제작 후 KBS에 방영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와 내년의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마치 웹툰이 없으면 굴러가지 못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좋아하면 울리는’ 뿐만 아니라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가 영화화 될 예정이고, 한 여중생이 겪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다뤘던 ‘여중생 A’는 인기 아이돌 그룹 엑소의 수호까지 캐스팅, 영화화 작업 중이다. 또한 tvN ‘부암동 복수자 클럽’, OCN ‘구해줘’ 등 케이블 채널에서는 끊임없이 웹툰 원작의 드라마들을 제작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가 ‘좋아하면 울리는’에 투자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우선 넷플릭스가 그만큼 ‘좋아하면 울리는’, 더 나아가 한국 웹툰의 가능성을 눈여겨 본 것은 분명하다. 또한 넷플릭스가 ‘옥자’, ‘좋아하면 울리는’ 등으로 한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다가설 의사를 보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웹툰 작가들이 세계로 나갈 창구를 찾게 됐다는 점이다. 넷플릭스의 콘텐츠는 당연히 한국뿐만 아니라 넷플릭스의 서비스 국가에 서비스될 수 있다. 해당 국가의 언어로 번역 서비스가 이뤄지는 것도 물론이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웹툰의 매력이 전달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다. 그리고 시장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원작 웹툰의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정확히 밝히지는 않지만, 넷플릭스는 각국의 콘텐츠 창작자에게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적으로 일본의 애니메이션 작가들은 상당수 넷플릭스와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일본 애니메이션 종사자들은 그 완성도나 수익에 비해 많은 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전 세계 유통을 염두에 두고 애니메이션 종사자들을 끌어들이면서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기 시작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종사자들에 대한 대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열렸다.


애니메이션과 웹툰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한국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가 ‘좋아하면 울리는’ 한 편만을 드라마화하고 사업을 접을 리는 없다. 또한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한국 웹툰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을 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열려 있다. 지금 한국 대중문화 산업은 새로운 경쟁 상대를 만난 것이다. 한국 대중문화 산업에서 지난 몇 년 간 웹툰은 작품의 흥행을 보장하는 가장 안전한 장치 중 하나였다. 동명의 웹툰을 드라마화 한 tvN ‘치즈 인 더 트랩’은 작품이 발표되기 전부터 큰 화제가 됐다. 출연하는 배우들이 웹툰 속 캐릭터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부터, 작품에 대한 온갖 이야기가 나왔다. 인기 웹툰은 그것을 실사화 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고, 어지간한 오리지널 시나리오 작품에 비해 당연히 홍보 효과가 크다. 대중에게 이미 검증된 매력을 가진 것은 물론이다. 이런 웹툰들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끊임없이 공개되고, 영화와 드라마 제작사들은 이 작품들 중 인기작이거나 그들이 구상하는 방향에 어울리는 작품을 찾아서 제작하고 있다.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가 끊임없이 만들어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일본의 예에서 잘 볼 수 있듯, 만화는 대중문화 산업이 일정한 규모 이상을 가진 국가에서 언제나 상상력의 원천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역시 2010년대 영화 산업을 이끄는 한 축은 마블과 DC 코믹스 원작의 슈퍼 히어로물들이다.



그러나 넷플릭스와 같은 새로운 경쟁상대의 등장은 국내 제작사들에게 새롭게 생각할 꺼리를 던진다. 만약 넷플릭스와 웹툰의 판권 구매를 두고 경쟁하게 된다면 어떻게 그것을 가져올 수 있는가. 가격적인 면으로는 상대가 될 수 없다. 그렇다고 국내 제작사들이 지금까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판권을 구입했다고 할 수만은 없다. 국내 시장을 중심으로 했을 때 판권 구입료로 쓸 수 있는 한계는 분명히 있다. 모든 작품이 해외 진출까지 고려할 수는 없다. 적어도 돈만으로 넷플릭스와 같은 회사를 이길 방법은 없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콘텐츠 제작사들은 지금까지 웹툰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앞서 언급한 일본이나 미국의 예처럼, 웹툰은 대중문화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상상력의 원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몇몇 작품들이 드라마와 영화화 돼서만은 아니다. 현재 포털 사이트와 여러 유료 웹툰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되는 웹툰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 많은 작품들이 1주일에 한 번씩 연재되면서, 웹툰은 수많은 영역들을 다루게 된다.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산업에서 슈퍼 히어로물은 여전히 접근하기 어려운 장르다. 하지만 웹툰에서는 미국 코믹스의 영향을 받은 슈퍼 히어로물부터 지극히 한국적인 배경에서 탄생한 슈퍼히어로물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있다. 이미 해외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노블레스’처럼 판타지 역시 웹툰의 인기 장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한편으로는 드라마화 되기도 했던 최규석 작가의 ‘송곳’처럼 사회적 이슈를 깊게 다루는 작품들도 많다. ‘미생’은 드라마화 되기 몇 년 전부터 직장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특히 ‘여중생 A’처럼 지금 10대의 삶을 깊고 빠르게 다룰 수 있는 것은 웹툰 뿐이다. 성별, 연령, 취향으로 나눠 작품이 소개되는 웹툰 플랫폼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엔터테인먼트이자 신문이며 동시에 자신과 비슷한 취향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됐다. 이것이 대중문화 산업에 얼마나 중요한 자산인지는 제작사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 요즘 어떤 취향을 갖고 있는지 알려줄 뿐만 아니라, 대중이 어떤 사회 이슈를 다룰 때 큰 반응을 일으키는지도 알 수 있다. 작품에 대한 논란과 별개로 박태준 작가의 ‘외모지상주의’같은 작품은 지금 10대가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 보여주는 지점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여중생 A’처럼 청소년 문제를 한국의 서브컬처 문화와 함께 다루는 작품도 있다. 웹툰이 없었다면 한국 대중문화 산업에서 미처 잡아내지 못했을지도 모를 영역들이다.

그런데, 한국의 콘텐츠 제작사들은 지금 웹툰의 상상력, 또는 웹툰이 바라보는 한국 사회에 대한 관점 등에 대해 어떤 보상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유의미한 움직임을 보였다고 할 수는 없다. 인기 웹툰이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는 상황에서도 웹툰 작가들에 대한 플랫폼의 처우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 산업이 이런 문제에 대해 발언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보다 많은 자본이 들어가는 이 산업들이 웹툰으로부터 다양한 상상력과 경향을 흡수하면서도, 웹툰 산업이 그들과 공생관계에 있다는 시각으로 접근했는가 하는 문제다. 단지 몇 편의 인기 웹툰을 계약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 있는 작품에 대해 미리 움직일 수도 있고, 웹툰에 대한 직간접적인 지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DC코믹스를 소유한 워너브라더스처럼 출판과 영화 제작사를 동시에 가지면서 시너지를 낼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저변 확보를 위해서라도 더 모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 워너브라더스가 DC코믹스를 비롯한 다양한 코믹스 출판사들을 통해 내는 작품들은 사실상 이 회사의 시나리오 창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물론 한국과 미국의 상황은 다르고, 한 회사가 만화와 영상 제작사를 동시에 가지는 것이 긍정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다만 한국은 만화의 상상력, 또는 만화가 갖는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 이런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대기업들은 독과점 논란에도 불구하고 영화 제작사와 대규모 멀티플렉스를 함께 보유하며 수익을 극대화 하려 한다. 투자, 제작, 유통을 모두 가지면서 다른 기업에 비해 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수익을 내려고 하는 것이다. 반면 이런 기업들이 가능성 있는 만화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려 노력했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들은 웹툰 중 어느 작품이 반응을 얻기를 기다릴 뿐, 그런 작품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는 듯하다.

영화와 드라마 제작사, 더 나아가 그들을 가진 대기업이 이럴 의무는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올해 드라마와 영화화 된 웹툰의 리스트에서 볼 수 있듯, 이제 웹툰을 실사화 하는 것은 단지 몇 개의 메가히트작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생’, ‘치즈 인 더 트랩’, ‘신과 함께’ 등 매스 미디어에서도 여러 차례 다룬 인기작들뿐만 아니라 ‘부암동 복수자 클럽’이나 ‘구해줘’처럼 케이블 TV 드라마에도 웹툰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영화와 드라마 제작사가 웹툰을 그저 원작을 제공하는 장르일 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당장 넷플릭스 같은 업체가 많은 웹툰과 판권 계약을 한다면, 아예 웹툰 플랫폼을 만들거나 출판사를 만들어서 작가와 작품들을 관리한다면 그 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1년 전에 넷플릭스가 ‘좋아하면 울리는’의 판권 계약을 해서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얼마나 있는가. 웹툰이 등장하고, 포털 사이트가 웹툰을 서비스하면서 만화 산업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해외에서는 넷플릭스처럼 전세계 VOD 시장을 지배하겠다고 나선 회사가 등장했다. 산업의 흐름은 계속 바뀌고, 그에 따라 과거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난다. 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근본적인 뿌리를 탄탄하게 하는 것뿐이다. 플랫폼이 어떻게 변하든 결국 콘텐츠를 대중에게 전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2017년 웹툰의 실사화, 또는 다양한 미디어믹스는 다른 차원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웹툰이 드라마와 영화화 되면서 인기를 모으고, 웹툰 작가들이 인기를 얻는 것은 웹툰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 인식되곤 했다. 이는 아직 모든 대중이 본다고는 할 수 없는 장르가 더 대중화 됐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웹툰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대중문화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웹툰 산업에 필요한 것은 단지 잘하고 있다는 칭찬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역할과 그 위상에 대해 합당한 가치를 평가 받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