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몸의 빛나는 부분에 따라 아름다운지 보기 흉한지 평가받아요. 그를 통해 평생의 운명이 결정된 다구요.”마쓰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 ‘반딧불의 도시’ 편에는 태어날 때부터 몸에서 반딧불처럼 광채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나온다. 온몸에서 빛을 뿜어내는 미녀미남들은 사회의 지배층으로 살아가고, 부분 부분 얼룩덜룩 빛을 내는 추녀추남들은 평생 미천한 신분으로 살아간다. 이것은 은하 저 너머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구별, 특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정할 것이다. 누구나 타고난 미모에 따라 천양지차의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단순히 첫인상이 좋다 나쁘다 정도가 아니다. 그로 인해 평생의 신분이 결정된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은 이 나라의 독특한 문화에 놀란다. 지하철 역에는 성형수술을 광고하는 포스터가 즐비하고, 길거리엔 풀 메이크업을 한 여성들이 넘쳐나고, 군대에서 외박 나온 청년들이 단체로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 피부 관리 제품을 사들인다. TV에는 키 작은 아이의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광고가 버젓이 나오고, 아직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가 유튜브에 나오는 화장법 동영상을 따라한다. 자신의 외모를 청결하게 관리하고, 세련된 스타일로 다듬는 일은 멋지다. 그것이 문명이다. 하지만 우리는 외모라는 신을 절대 숭배하는 독특한 문명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외모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겁니다.” 타고난 외모를 바꾸거나 개선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이 개발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같다. 특히 한국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코스메틱 산업의 나라가 되고 있다. 세계인들은 성형 관광, 미용 관광을 위해 이 나라를 찾아와 마스크 차림으로 명동과 강남 거리를 누비고 있다. K-뷰티는 한류 드라마나 K-POP만큼이나 중요한 문화적 트렌드가 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여러 만화들이 이런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패션, 스타일링, 헤어, 뷰티, 성형 등 외모와 관련된 작품들이 꾸준히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네온비&캐러멜의 <다이어터>는 온 국민의 관심인 ‘살 빼기’라는 테마를 귀여운 캐릭터와 깨알 정보로 버무려 큰 인기를 모았다. 박태준의 <외모지상주의>와 기맹기의 <내 ID는 강남미인>은 못생긴 외모로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주인공이 미남미녀로 변신하면서 생기는 삶의 극적인 변화를 그리고 있다. 루나 파크의 <옷걸이 통신>, 천계영의 <드레스코드>, 이연의 <화장 지워주는 남자> 등 패션, 뷰티에 대한 지식을 소개하는 만화들 역시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만화는 젠체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대중들의 욕망을 가장 먼저, 그리고 솔직하게 반영하는 예술이었다. 지금 이 시대의 만화들은 외모 지상주의의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외모를 가장 중요한 스펙이라 여기고, 만나는 모든 이의 외모를 점수로 평가하고, 셀프 카메라를 종교적으로 숭배하는 이 시대의 삶은 만화 속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만화계의 외모, 패션, 스타일에 대한 관심은 가히 선구적이라 할 만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꽃미남 꽃미녀’라는 단어는 숱한 미소년 미소녀들을 흩날리는 꽃잎 속에 등장시켰던 20세기 만화 문화의 산물이다. 만화는 십대, 이십대 등 젊은 층이 선호하는 미디어로, 외모에 민감한 그들 세대의 특성을 반영했고 동시에 그들의 심미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엔 <캔디 캔디>의 테리우스, 안소니 같은 서구형의 주인공, <토마의 심장> <바람과 나무의 시>에 나오는 유럽형 미소년들이 인기를 모았다. 1980년대는 록스타나 반항아 같은 미남자들이 인기를 모았고, 1990년대 <꽃보다 남자> 이후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아이돌 그룹 형의 꽃미남들이 등장했다. 한국 여성작가들의 작품에서도 1980년대까지는 판타지 장르를 중심으로 서구형 꽃미남이 주로 등장했다. 그리고 1990년대 천계영의 <오디션> 등을 통해 아이돌 그룹 형의 주인공들이 선을 보인다. 그러나 원수연의 <풀 하우스> 박희정의 <호텔 아프리카> 등 서구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도 많아, 백인 꽃미남 진영은 매우 막강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스펙트럼이 강한 미남자 그룹에 비해 미녀들의 다양성은 부족했다.

1990년대 후반, 2천 년대 초반에 얼굴 위주의 외모가 아니라 패션 스타일 전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동시에 여주인공들도 다양한 스타일의 미녀로 분신한다. 야자와 아이, 안노 모요코 등이 대표적 작가들인데, 마치 패션 잡지에서 튀어 나온 듯 한 스타일리시 한 주인공들을 대거 등장시켰다. 전시대에도 만화가들이 주인공들의 화장, 악세서리, 패션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소 비현실적이고 이국적인 공주 패션을 보여주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이들 여성 만화가들의 캐릭터들은 패션의 교과서로 사용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정교하면서도 현실적인 스타일을 선보였다. 주인공들의 직업도 패션모델, 디자이너, 헤어 디자이너 등이 다수 등장했다.
더불어 성인 여성을 겨냥한 만화들에서 외모 콤플렉스로 고통 받는 주인공들이 다수 등장한다. 안노 모요코의 <지방이라는 이름의 옷을 입고>는 비만형의 여성이 사회적 차별을 받는 현실, 그럼에도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을 매우 사실감 있게 표현했다. 스즈키 유미코가 그린 <미녀는 괴로워>의 주인공 칸나는 못생긴 외모 때문에 오랜 좌절의 삶을 살다가 전신 성형수술을 받는다. 극적인 대성공으로 누구나 쳐다보면 탄성을 터뜨릴 정도의 초미녀로 변신하지만 과거 추녀로 살 때의 소극적인 마음은 버리지 못한 상태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김아중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주인공은 자신처럼 외모로 고통 받는 여성을 이해해주고 적극적으로 돌봐주고,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여러 메시지를 전한다.

최근 국내 웹툰계에 이런 외모 테마를 이어받으면서 변화하는 현실의 양태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기맹기의 <내 ID는 강남미인>은 성형 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외모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는 젊은이들의 삶을 꼼꼼히 그리고 있다. 최근 JTBC에서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보다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들이고 있다. 박태준의 <외모지상주의>는 추한 외모 때문에 놀림당하고 비천한 삶을 살아가던 남고생이 갑자기 정반대의 매력적인 외모를 얻으면서 생기는 삶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르게 또 다른 방식으로 외모지상주의를 퍼뜨린다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어떤 만화들은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체중 감량’이라는 테마는 스튜디오 뮤의 카툰 <샤를 빼야 되지>나 여러 생활 웹툰에서 간헐적으로 다루어져 왔다. 네온비&캐러멜 작가의 웹툰 <다이어터>는 이를 본격적인 테마로 삼았다. 건강과 외모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지식을 ‘몸 속 나라 이야기’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풀어내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빠르고 쉬운 다이어트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실용성과 재미를 함께 잡아낸 케이스다.
루나 파크의 <옷걸이 통신>은 “의식주 중에 가장 앞에 있는 게 옷”이라고 외치며 옷과 패션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지식들을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남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패션만이 아니라, ‘쫄깃쫄깃 레깅스’ ‘뒹굴 때는 요게 딱’ 같은 제목으로 일상 속의 옷 이야기를 전한다. 천계영의 <드레스 코드>는 트레이닝 복에 안경을 고집하며 패션과 담을 쌓았던 만화가가 자신의 몸과 스타일에 대해 고민하며 새로운 도전으로 패션 감각을 갖추어가는 과정을 고백하고 있다. 기안 84의 <패션왕>은 보잘 것 없는 외모도 빼어난 패션 센스로 자신을 어필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패션 디자이너, 모델, 홈쇼핑 등 십대들이 선호하는 패션 관련 직업들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알려줄게. 메이크업.” <대새녀의 메이크업 이야기>는 새내기 대학생이 화장법을 배워나가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흠모하는 남자 선배의 “화장이 좀 이상하던대”라는 말에 충격을 받고 메이크업 숍을 찾았다가 신비한 인형을 만난다. 그리고 그 인형이 살아 움직이며 메이크업을 가르쳐준다. 이연의 <화장 지워주는 남자>는 평범한 외모에 꾸밀 줄 모르는 여대생이 화장을 통해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 여성들 사이에 퍼지는 탈코르셋 논쟁에 적절한 소재를 던져주기도 한다. 그외에도 화장법에 관련된 만화들이 메이저 웹툰 시장에서 꾸준히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 분야가 매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독자들이 외모를 테마로 한 만화들을 통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만화가들은 어떤 사탕을 주면서, 어떤 약을 숨겨야 할까? 그 방향은 크게 셋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외모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는 독자들에게, 상상력 가득한 판타지를 주면서 작품 속에서나마 대리 만족을 전하는 방식이다. 평범한 외모의 여고생이 꽃미남 F4의 사랑을 받으며 누구를 선택할까 고민한다. 꾸밀 줄 몰라서 못나 보였던 주인공이 귀인을 만나 멋진 외모로 변신하고 꿈에 그리던 상대와 사랑을 이룬다. 최근의 경향은 성형, 다이어트, 혹은 초자연적인 힘으로 극적인 초미남 초미녀로 변신하는 스토리가 많다. 그리고 구차한 과거의 삶을 보상받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박해했던 사람들에게 복수를 가하기도 한다. <외모지상주의>가 대표적이다.
둘째. 외모를 개선하는 실용적인 기술들을 전달해주길 바란다. <다이어터>가 성공한 이유는 귀여운 캐릭터와 만화적 스토리를 통해 현실적인 체형 개선의 방법을 적절히 전해주었다는 데 있다. 최근 메이크업 관련 만화들이 많아진 이유도 그쪽에 관련된 노하우가 큰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 쪽도 과거에는 전체적으로 스타일을 완성형으로 보여주며 롤모델이 될 만한 캐릭터를 선보였다면, 최근에는 평범한 외모의 사람들이 따라할 수 있는 개별적인 아이템과 지식을 조각조각 전해준다.
셋째.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외모 지상주의의 견고한 틀을 흔들어주길 바란다. 주인공 혼자 미남미녀로 변신한다고 세상이 살만해지는 것이 아니다. <내 ID는 강남미인>처럼 자연 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오히려 뒷말을 듣고 편견에 시달리기도 한다. 여성들이 외모 치장에 지나치게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일에 반기를 든 탈코르셋 운동에 대한 문제제기와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최근의 여러 작품들이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외모 지상주의로 인해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 역시 고통을 함께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모 지상주의는 인간의 매력을 결정하는 수많은 요소 중에 가장 즉각적인 것을 선호하게 한다. 이는 서로를 표피적인 대상으로 인식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진정한 교감과 교류를 불가능하게 한다.

외모를 통해 상대를 판단하는 것은 생물체의 본능일 수 있다. 공작새는 깃털을 한껏 부풀려 뽐내고, 숫사자는 갈기를 흔들며 허세를 떤다. 모두 외모라는 간판을 통해 상대의 호감을 얻으려는 전략이다. 인류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문화 역시 외모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 ‘선녀의 날개옷’ 등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도 외모에 대한 편견을 전제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인류는 20세기 이후 인종 차별에 도전하며 피부색으로 사람을 구별하는 것을 터부시해왔다. 다양한 외모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발견하고, 서로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애써왔다. 그런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최근 들어 외모 숭배가 다른 방식으로 강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 ID는 강남미인>는 이러한 지점을 잘 파헤치고 있다. 이 만화의 설정은 얼핏 <미녀는 괴로워>를 떠올리게 한다. 추녀에서 미녀로 변신해 새 삶을 얻게 된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만화. 하지만 강미래가 얻은 새로운 외모의 삶은 또 다른 시선에 괴로움을 당한다. 그녀에게는 곧바로 성형 미인, 강남 미인, 심하게는 ‘성괴(성형괴물)’라는 명찰이 붙는다. 사람들은 그녀의 눈앞에서는 예쁘다 어쩌다 말을 하지만, 뒤에서는 성형으로 외모를 바꾸었다는 것을 질타한다. 미래는 이런 주변의 시선으로 고통 받지만, 사실은 자신 역시 주변의 여자들을 똑같은 시선으로 재단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자기도 모르게 눈, 코, 피부, 얼굴형 등을 분석하고 점수를 매기고 있는 것이다.
<외모 윤리>의 주인공 역시 극심한 외모 콤플렉스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러다 사랑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을 얻고, 점차 예쁜 외모로 자신을 바꾸어간다. 전신성형이나 초자연적인 변신이 없는 상태에서 주인공의 외모가 급속히 바뀌어가는 모습에 대해 독자가 어느 정도 납득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작품이 우리에게 ‘외모와 윤리가 얽히는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남들이 보는 난, 자기 관리 하나 못해서 이런 몸을 가진 생각 없는 아이일 뿐이야.” 사람들은 추한 외모를 가진 상대를 좋지 않게 대하는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상대에게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는 듯이 말한다. 이미 주눅 들어 있는 상대방 역시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큰 결함이 있는 존재로 여기고 우울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외모지상주의>는 이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박형석은 못 생기고 뚱뚱한 외모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넘어 학대까지 당한다. 결국 전학을 가면서 자취 생활을 시작하는데, 외로움에 지쳐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자신의 몸이 뒤바뀌어 있다. 그가 가히 완벽하다고 할 만한 ‘개존잘’로 변신하자 급우들은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여학생들은 첫날부터 애교 공세다. 심지어 학교 일진들이 어슥한 곳으로 부르더니, 담배를 나눠주며 “여자 많지? 소개 좀 시켜 주고.”라며 알랑댄다. 그러나 이 만화는 이율배반적이다. 결국 한두 명을 제외하곤 잘생긴 캐릭터들이 스타일 있고 싸움도 잘하고 정의롭다. 반면에 악역은 못생긴데가 덩치만 커서 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부류다. 또한 노출이 심하고 예쁘장한 여학생 캐릭터들을 끊임없이 눈요기거리로 제공한다. 어쩐지 이 만화는 ‘주먹 센 남자가 최고’라는 학원 액션 장르를 ‘잘생긴 남자가 최고’라는 학원 외모 만화로 치환한 것으로 보인다.
“외모도 스펙이다.” 취업 혹은 더 나은 커리어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 스펙을 관리하고 개선하고 싶어한다. 당연히 그와 관련된 전문 기술직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빌표한 직업유망성 점수에 따르면, 외모와 건강에 관련된 직업의 선호도가 상위권을 점령하고 있다. 지난 2014년에는 마취통증과의사(87.6점), 피부과의사(87.2점) 성형외과의사(84.4점)가 1,2,3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유튜버나 크리에이터 영역에서도 뷰티, 패션, 스타일 등을 테마로 한 스타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TV 예능에도 <겟 잇 뷰티>, <팔로우 미 8>, <뷰티풀 라이프>, <마이 매드 뷰티 다이어리> 등 외모 개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이 대거 등장했다. 만화 역시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며, 현실적인 변신의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대학 가면 다 예뻐져. 지금은 공부만 해.” <화장 지워주는 남자>의 김예슬은 그런 말을 들으며 외모 관리와 담을 쌓은 채 대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다. “나만 빼놓고 다 예뻐졌네.”그녀는 메이크업 숍에 들어가 ‘학교 여신’인 주희원의 사진을 주면 똑같이 해달라고 했다가 대실패를 맛본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직원들이 하는 험담을 엿듣는다. “이런 건 솔직히 노력의 문제 아님. 맞지, 요새 화장은 예의인데.” 이렇게 좌절에 빠져 있을 때, 그녀는 천재 메이크업 아티스트 천유성을 만나 놀라운 제안을 받는다. 새로 런칭하는 코스메틱 브랜드의 서바이벌 메이크업 쇼의 모델이 되어 달라고. 바로 예슬처럼 밋밋하고 평범해서 어떻게 화장하느냐에 따라서 확실히 바뀔 수 있는 얼굴을 찾고 있었다고.

이야기는 평범한 김예슬과 모든 것이 완벽한 주희원의 라이벌 구도로 이어진다. 그리고 메이크업의 초보에게 색조 화장의 기본기를 알려주고, 바세린처럼 흔히 구하는 약품을 활용하는 팁, 컨투어링으로 얼굴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어쩌면 뻔하디 뻔한 이야기 전개일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미에 대한 관념들을 흔들기 위한 시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처음 도전하게 되는 것은 ‘내가 강해질 수 있는 메이크업’이다. 그러니까 화장을 통해 단순히 예뻐지는 게 아니라, 소극적이고 피해의식에 젖어 있던 자신을 바꿀 수도 있다. “변한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그리고 강하고 섹시한 여전사를 원한다는 말에 이렇게 대꾸한다. “강하고 섹시한 여전사? 전사라면 엄청 강한 느낌이잖아요. 굳이 섹시할 필요까지 있나요. 사냥감을 유혹할 것도 아니고.”
한국어로 외모지상주의로 번역되는 ‘루키즘(Lookism)’은 2000년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새파이어(William Safire)를 통해 주요한 화두가 되었다. 그는 인종·성별·종교·이념 등에 이어 외모가 사람들을 차별하는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2004년 논픽션 작가 토드 모리슨(Todd Morrison)은 ‘바디 파시즘(Body Fascism)’이라는 말까지 한다. 이는 특정의 신체 기준을 정한 뒤에 거기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어떤 오점으로 판단하는 태도다. 키가 작아서, 살이 쪄서, 허리가 길어서, 얼굴이 커서… 이런 이유로 기준선을 벗어난 사람은 육체적으로 매력이 없고, 성적인 호감을 줄 수 없고, 나아가 인간으로서 가치를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 관습이 이런 ‘인간 차별’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성형, 뷰티, 패션 등은 모두 누군가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일이다. SNS의 발달은 이러한 욕망을 극도로 증폭한다. 인터넷 얼짱, 페북 스타, 인스타 셀레브리티가 아니더라도, 매일 자신의 셀카를 SNS에 올리고 라이크, 하트, 칭찬을 듣는 일로 자존감을 얻는다. 뛰어난 화장법, 얼짱 각도, 사진 잘 나오는 장소, 완벽한 구도와 조명을 결합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포토숍까지 거치지 않아도 외모를 꾸미는 데 특화된 어플리케이션으로 자신을 치장할 수 있다. 필터를 사용해 피부 톤을 바꾸고, 코의 높이를 조정하고, 비뚤어진 턱을 좌우대칭으로 만든다. 그래서 요즘은 성형수술을 받으러 갈 때 연예인의 사진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잘 나온 자신의 셀카 사진을 가져간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분명히 외모에 대한 패티시에 빠져 있다. 그리고 필터를 통과한 환상 속의 자신과 현실의 자신 사이에 생겨난 갭이 또 다른 문제가 되고 있다. 만화는 그곳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굳이 외모를 소재로 하지 않는 만화에서도 다양한 외모와 체형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키가 작아 놀림 당하고, 뚱뚱하다고 타박 받고, 험상궂다고 배제 당한다. 우리는 이미 외모 자체로 주연, 조연, 악역을 구별하는 관성에 빠져 있기도 하다. 그리고 혼혈이나 몸에 콤플렉스가 있는 캐릭터가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과정을 그리면서도, 알게 모르게 그들을 타자화 시키기도 한다. 홀쭉이와 뚱뚱이, 꼬마와 거인, 순수한 얼굴의 미녀와 짙은 화장의 악녀… 짧은 시간에 독자들에게 캐릭터를 심어주어야 하는 만화가에게 외모만큼 좋은 수단은 없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관성으로부터 벗어나는 움직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만화에 못생긴 주인공을 등장시키고, 그들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만들라는 것은 아니다. ‘잘생겼다’, ‘못생겼다’의 이분법이 아니라, 다양한 잘생김, 다양한 못생김, 분명 미인이라 할 수 없지만 매력적인 얼굴을 그려달라는 것이다. 현실의 배우들로 그런 작업을 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평범한 얼굴’인 척 연기하는 미녀들에게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만화는 그런 캐릭터를 좀 더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도미니끄 드 생 마르스와 세르쥬 블로슈의 만화 시리즈 ‘막스와 릴리 - 우리들이 사는 세상’중에 <릴리는 자기 외모에 불만이에요>라는 작품이 있다. 릴리의 가족을 찾아온 삼촌 내외가 릴리에게 “예쁘게 컸다”고 칭찬한다. 그러자 부모님이 “뭐가 예쁘냐?”며 말한다. 어쩌면 아이에게 겸손을 가르치려는 의도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릴리는 거울을 보고 자신이 못생겼다는 불만에 빠져든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신이 예쁜지 아니면 못생겼는지 대답하라고 한다. 릴리는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외모 때문에 마음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한 친구가 뚱뚱하다고 놀림 당하자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형편없다”며 맞서 싸운다. 그리고 외모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들을 모아, 멋진 무대를 만들어낸다. 중요한 해답의 열쇠는 다양성이다. 작가는 결국 이 만화에 나오는 모든 외모의 캐릭터가 사랑스럽다는 걸 깨닫게 한다. 만화 캐릭터를 한번이라도 그려본 사람은 더 잘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