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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박물지 : 만화책이 문화재라고?

지난 2012년 12월 20일, 몇몇 매체에 “’고바우 영감’ 등 근대 만화 3건 문화재 된다”는 기사가 게재됐다. 우리나라 만화사료로 가치가 큰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 원화, 김용환의 <토끼와 원숭이>, 김종래의 <엄마 찾아 삼만리> 원화 등 근대만화 작품 3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다.

2013-08-30 임지희
지난 2012년 12월 20일, 몇몇 매체에 “’고바우 영감’ 등 근대 만화 3건 문화재 된다”는 기사가 게재됐다. 우리나라 만화사료로 가치가 큰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 원화, 김용환의 <토끼와 원숭이>, 김종래의 <엄마 찾아 삼만리> 원화 등 근대만화 작품 3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13년 2월 21일 세 작품 모두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만화가 문화재로 등록된 것은 단군이 한반도에 터를 잡은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미지_01] 등록문화재 537호 <토끼와 원숭이>(1946)
 
먼저 등록문화재 537호에 등재된 김용환 작가의 <토끼와 원숭이>를 살펴보자. 1946년 5월 1일에 조선아동문화협회를 통해 간행된 근대 최초의 만화 단행본이다. 이전까지 최초 수식어를 쥐고 있던 만화는 김용환 작가가 1946년 9월에 쓴 <흥부와 놀부>였다. <토끼와 원숭이>는 그보다 4개월 앞서 출간되었을 뿐 아니라 <주간 소학생> 연재분을 묶은 형태인 <흥부와 놀부>와 달리 순수한 만화책 단행본이란 차이가 있다. 동물 캐릭터를 의인화 해 자주독립 국가에 대한 염원을 해방 전후의 어지러운 정치상황에 대한 비유와 상징으로 풀어냈으며, 일제의 부당한 침략행위와 식민통치를 통렬하게 고발한 작품으로 한국 근현대사와 만화사에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큰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책을 발견한 개인 소장자가 이를 경매에 올리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낙찰, 소장하고 있다.
 

 
 
 
 
 
 
 
 
 
 
 
 
 
[이미지_02] 등록문화재 538-1, 538-2호 <고바우 영감>(1955-2000)
 
등록문화재 538-1, 538-2호로 등록된 <고바우 영감>은 김성환 작품으로 1950년부터 <사병만화> <만화신보> <월간희망> 등을 거쳐 이후 1955년 2월 1일부터 <동아일보>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의 일간지를 거치며 모두 2000년 9월 29일까지 총 14,139회에 걸쳐 연재한 우리나라의 최장수 시사 네컷 만화다. 고바우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되기도 했으니,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들 대다수는 고바우 영감과 평생을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김성환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6,496매와 동아일보사가 소장 중인 4,247매 등 총 1만 743매가 문화재로 등록됐다. 최고급 양지에 묵으로 그린 원화는 선장線裝, 낱장, 병풍 등의 형태로 보관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최장수 연재 시사만화로 작품과 캐릭터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현대사를 연구함에 중요한 학술적,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미지_03] 등록문화재 539호 <엄마 찾아 삼만리>(1958)
 
마지막으로 등록문화재 539호 <엄마 찾아 삼만리>는 김종래 작가가 1958년에 발표한 고전 사극 만화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소년 금준이가 노비로 팔려간 엄마를 찾아 팔도를 유랑하는 사모곡. 한국전쟁 전후의 피폐한 사회상과 부패상을 조선시대에 빗댄 작품으로 1964년까지 무려 10쇄가 출간된 한국만화 최초의 베스트셀러다. 원래 상권 220매와 하권 224매 등 모두 444매로 구성되었으나 하권 1매의 원화가 유실되어 모두 443매를 문화재로 등록했다. 2010년 김종래 작가의 유족이 기증하여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1960, 70년대 군사독재시절에는 국가에서 나서서 만화가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이라고 했다. 만화책을 한데 모아 불태우고 작품 활동을 탄압하던 시절이었다. 그로 인해 6,70년대와 그 이전에 출간된 만화책은 현재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이 세 작품이 화마에 휩싸이지 않고 살아남아 법으로 보호받는 존재가 되었다. 이 사건이 특별히 만화의 위상을 드높이거나, 드디어 좌시할 수 없는 예술장르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한국만화도 사료로서의 가치를 논할 수 있을 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극소수의 연구자와 수집가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던 논의가 만화를 소비하는 대중으로의 확대로 이어질 기회를 얻었다는 것, 고바우 영감님 등이 남겨준 유산이다.
 
[본 기사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만화전문 매거진 에이코믹스의 협력을 통해 제작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