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산업의 현장을 가다 2]
만화방이라는 허름한 공간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만화의 첫 장을 열어보던 순간을 기억한다. 물론 지금의 세대에게는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지.’ 정도의 아재들 꼰대소리로 들릴 수 있을 터지만, 분명 만화방 세대들만이 떠올릴 수 있는 그 공간 특유의 향수가 있다. 시대가 바뀌어 디지털 문화의 편의성이 그런 것들을 대체하고, 소비와 창작의 영역까지 바뀌어 버린 요즘, 사라져버린 문화의 그리움에 대해서 말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것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 있다. 바로, 만화를 보는 이유. 왜? 재미있으니까.
그 시절 친구들과 낄낄대며 페이지를 넘기며 언제고 이런 만화를 그리리라 꿈꾸던 소년은, 만화판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눈물담긴 소주잔을 들이키고서야 깨닫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미생에서 전쟁터로 묘사되는 회사 생활 역시 못지않게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그렇게 우여곡절 시작된 편집기자의 생활은 어느덧 십년 남짓 흘러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나니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는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기획팀장, 웹툰 PD, 담당기자, 편집자, 기획자....
직업에 대한 특정 명칭이 주는 감회는 딱히 없다. 다만 필자는 여전히 만화를 보고 있고, 그걸로 근근이 밥벌이를 하고 있으며, 위처럼 아재 소리를 내며 사라진 것들에 대해 향수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직업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만화가 재미있다는 것이다. 물론 눈물담긴 소주잔은 예나 지금이나 쓰지만.
‘웹툰 PD가 하는 일이 정확이 뭐예요?’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가끔 나 역시도 한 줄로 명확하게 답변하지 못할 때도 있다. 결코 귀찮아서가 아니라, 그 만큼 많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만화를 막 봐... 매일 봐, 보고 또 봐. 지겨울 때까지 봐. 그러다 작가한테 연락이 와. 그럼? 그 만화를 또 봐, 계속 봐. 그러다보면 월급이 들어와, 어때, 좋지?’
그렇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만화를 보는’ 사람들이다. 만화도 보고 돈도 받는다. 세상에 이렇게 꿀빠는 직업이 세상에 또 있단 말인가!.... 라고 나 역시도 믿고 싶다. 실질적으로 만화를 전문적으로 본다는 것은, 그 행위 이면의 많은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동시에 필요로 하는 역량 또한 만만치 않다. 어떠한 기준과 목적을 확고히 하면서 작품을 보는 것과 단순히 여흥의 차원에서 즐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보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작가의 전반적인 작업을 서포트하기 위한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해야 한다. 마감된 작가의 원고를 검토하고, 완성도와 이상 유무를 체크하는 디테일한 1차적 작업부터 시작해서, 때로는 작가가 놓칠 수 있는 작품의 방향성과 같은 큰 그림에 대한 제시를 해야 할 때도 있다. 흔히 작품의 ‘프로독자’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그 만큼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도와 객관적 시야가 수반되어야 하는 직업이다.
위와 같이 플랫폼에 매주 업데이트되는 작품을 루틴하게 관리하는 과정은 신입 PD들이 메인으로 진행하는 업무 영역이다. 어느 정도 짬이 되어 쥐며느리만한 월급이 그나마 쥐꼬리만한월급이 되면, 필연적으로 만화 기획이라는 영역에 발을 담가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기획자들이 진행하는 프로세스의 그대로라고 생각하면 된다. 결과물의 목적과 방향성, 시장의 현황, 타겟층의 설정, 세부적인 일정 수립 등이 그것이다. 자칫 거창해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보다 잘 만든’ 작품을 위해 작가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작업이다.
다만, 그 ‘고민’의 속성에는 최근과 같이 웹툰 시장이 조명되고, 연계되는 2차 사업구조가 활발해진 시점에서는 보다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심화과정이 포함된다. 물론 지금에야 생겨난 개념은 아니고, 팔구십년대 일본 만화 황금기의 데스크의 체계를 따른 국내 출판 편집부의 기획과정은 예전부터 존재했고 명목상 그 기능을 유지해왔다. 지금에도 그 기본 원리를 따르는 기획이 어느 정도 유효하나, 위에 언급한 것처럼 점차 심화되어 가는 시장 구조에 발맞추어 보다 폭넓고 신속한 대응을 필요로 하는 실정이다.
작품의 소재 선정부터 독자들의 취향과 트렌드를 간과하기 어렵다. 작품의 기획안 단계에서 작가가 전하고자하는 주제와 스토리텔링이 시장에서 어떠한 메리트가 있는지 셀링포인트를 잡아나가는 것이 출발점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기획들이 폐기된다. ‘좋은 작품은 언제고 빛을 보게 되어있다’는 작가 고유의 에티튜드는 안타깝게도 그 고유의 빛을 내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는 좀 더 빠르고 자극적이되, 상업적인 대중성이 담보되어 있지 않으면 그 빛을 발하기도 전해 외면 받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도 책으로 만화를 보던 세대이기 때문에 이러한 흐름의 웹툰 방향이 옳다고 보지만은 않지만, 만화라는 장르가 ‘작품’으로써 완성되고 존중받게 되는 순간이 독자들의 가장 편히 즐길 수 있는 창구로써 기능할 때라고 믿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시행착오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메리트가 담보된 기획안은 편집부의 피드백과 작가의 취사과정을 거쳐 구체화되는데, 기승전결이 정리된 시놉시스와 캐릭터 설정안, 연출의 결을 확인할 수 있는 콘티까지 진행되면 보다 실질적인 작품의 방향성이 결정된다. 이 단계에서 역시 많은 작품이 폐기되는데, 아무리 좋은 소재와 시장에서의 메리트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만화의 본질적인 ‘재미’의 여부가 판가름 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공중파의 수많은 오디션 예능의 본선 심사과정이라고 비유하면 이해가 빠를지도 모르겠다. 평균 이상의 가창력과 퍼포먼스, 비주얼의 참가자라고 하더라도 청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특유의 ‘매력’이나 임팩트가 없으면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경우를 종종 있듯이, 만화 역시도 이러한 작품 고유의 재미나 후킹요소가 없으면 바로 원고로 이어지기 힘들다. 물론 상당히 조약한 비유이긴 하지만, 이런 비유를 드는 이유는 이 지점이 기획자 입장에서는 가장 조심스럽고 리스크가 있는 지점이라서 그러하다.
앞서 말한 웹툰 PD로서의 수반되는 기본 소양 중에, 객관적 시야를 언급했듯이 ‘재미’라는 요소는 각자의 취향적인 부분이 반영되는 것이라, 이 작품이 왜 재미있는지, 재미없는지에 대한 본인만의 합당한 기준과 근거가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피드백의 과정에서 작가와 얼마나 유기적이게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되는지 역시도 중요한 부분이다.
‘작가의 취사과정’, ‘서포트’, ‘방향성 제시’ 등의 워딩을 사용한 이유가 그것인데 기획자가 결코 작가보다 높은 자리에서 컨펌을 내리는 위치가 아니기 때문에, 그 만큼 작품에 접근하는 태도 역시 조심스러워야 한다. 본인의 기준을 가지고 작품에 대한 의견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부터 그 기준이 어떠한 측면에서 세워졌는지, 그것이 작품에 얼마나 유효할 수 있는지 피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작가의 성향에 따라 피드백을 수용하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하게 벌어질 수 있는 시추에이션에 대응하는 유연함도 필요하다.
한 마디로 작품과 작가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도와 확고한 자기 기준은 필수이며, 시장에 대한 폭넓은 시야와 전문적인 지식, 작가를 에두를 수 있는 유연한 커뮤니케이션(영업) 능력.....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 (우리 어머님 영어 성함이 정녕 마사였단 말인가)
농이 지나쳤지만, 상기에 열거한 것은 어디까지나 가장 이상적인 기획PD이므로 이러한 소양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어느 직업이나 먹고 살기는 쉽지 않으니까.
푸념 : 화성에서 온 담당자, 금성에서 온 작가 절대적으로 작가라는 속성은 센서티브하다. 독자들의 반응을 기대하면서도, 때론 지나친 반응과 관심을 부담스러워 한다. PD하고의 줄다리기도 마찬가지인데 작품에 대한 지나친 간섭을 경계하면서도, 무조건적인 신뢰와 예스맨 역시 무관심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가끔 작가들을 상대하는 것이 고양이와 친해지려는 집사의 심정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혹자는 이성과 연애하는 것에 비유를 하기도 하는데, 나로서는 그게 뭔지 당최 모르겠다)
마감을 하다 보면, 난데없이 낄낄거리거나 낮은 탄성을 내뱉는 PD들이 있다. 두 번째 단락에서 그렇게 강조했던 직업적 소양과 본분을 잊게끔 만드는 원고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잦은 원고 펑크와 마감 지연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순간에도 씩씩거리며 원고를 검토하다가 감화되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상황도 종종 벌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행여 ‘이번 원고 어땠나요?’라 묻는 작가들의 대답에 ‘재밌습니다’라고 답변을 들어본 작가들은 안심해도 좋다. 필자 기준으로 ‘재밌다’는 피드백은 PD로써 할 수 있는 최상의 답변이다. 생각보다 PD들은 작품을 두고 재밌다는 말을 쉬이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좋은데요’, 정도인데, 이 역시 ‘전반적으로는 좋지만....’ 이란 늬앙스가 깔려있는 경우가 많다. 자꾸 반복하게 되는데 그 만큼 여러 측면에서 원고를 뜯어보다 보니, 온전히 작품에 몰입해서 그대로를 ‘느낄’ 여유가 없는 입장이기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간혹 일부는 ‘재밌다’는 피드백에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걸 다 덮어두고 재밌다는 평은 그 어떤 수식어와 극찬이 필요 없는 답변이라 생각한다. (물론 재밌다는 평을 남발하는 PD가 있다면 경계하자), 그럼에도 센서티브한 작가진을 한 번에 만족시킬만한 피드백은 없기에 꾸준히 노력해야 하겠다.
마무리하며, 흔히 애증관계로 묘사되는 작가와 담당PD의 대표적 에피소드인 원고 마감의 과정을, 죽음을 받아들이는 5가지의 단계인 쿼블로 로스 사망단계에 비유해 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단계 "거부(부정)"
오늘도 야근 당첨이라는 현실에 대한 부정과 작가가 오늘 만큼은 제 때 마감을 할 것이라 어리석은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 단계다. 그냥 포기해라, 그럼 편하다. 필자는 이제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근데 왜 우냐고? 설마... 기분 탓이겠지.
두 번째 단계 "분노"
작가를 향한 순수하고 오롯한 성질의 분노 단계다. 안심해라, 정상이니까.
흔히 작가가 일방적인 잠수를 타는 단계이기도 하다.
가끔은 그 분노의 방향성이 애꿎은 곳에 표출되기도 한다. (미안해... 김대리)
마치 짝사랑의 대상에게 오지도 않을 연락을 기다리며 애처로운 눈빛을 담아 몇 번이고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하는 장면을 그리면 된다.
세 번째 단계 "타협"
잠수를 타던 작가와 우여곡절 끝에 연락이 되었다!
싸늘하다. 작가의 구구절절한 사정이 가슴에 날아와 꽂힌다. 손보다 눈보다 빠르게 작가와 얼터당토 않는 쇼부(흥정)를 시전 한다. 탈이 좋은 작가는 너무나 쉽게 동의한다.
하지만 늘 그러하듯이 이 패가 구라인 걸 알면서도 속아준다.
필수적으로 자기 최면 스킬이 요구된다.
네 번째 단계 "의기소침(포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른 일거리를 찾기 시작하는 단계.
이쯤 되면 해탈의 반열에 올라왔다고 보아도 좋다. 열심히 일한다고 흐뭇해하는 상사의 푸근한 미소는 덤이다. 야근수당? 그런 건 여자(남자)친구와 같은 개념이다.
(환상 속의 존재)
마지막 단계 "수용"
드디어 마감이다! (신이시어) 마감이 되고 나서야 찐한 현자타임과 함께 수용의 단계에 이를 수 있다. 간혹 원고에 따라 두 번째 단계로 거슬러 오르는 경우도 있는데, 작가와의 적절한 관계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외부의 물질적인 도움을 요청하라 (니코틴 or 알코올).
만약 마감이 되지 않으면? 애석하지만 림보의 영역이다. 첫 번째 단계로 돌아가 팽이를 돌려보아라. 행운을 빈다.
바야흐로 웹툰의 시대다.
많은 젊은이들의 웹툰 데뷔를 위해 저마다의 꿈을 그리고 있다. 그 시절, 만화방에서 부푼 가슴으로 꿈꾸던 소년 역시 그러했으리라. 지금은 비록 그 작가들의 곁에서 그 꿈을 훔쳐보는 자리에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만화방에서의 낡은 페이지 사이의 삭은 내가 주던 낭만은 희석되었고,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변해가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만화는 재미있기에, 다른 종류의 낭만을 찾아 즐기는 세대의 독자들이 있는 한 이 분야를 지키는 사람들은 계속되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늘 좋은 작품을 위해 힘써 주시는 작가님들께, 존경과 진심을 담아 전합니다.
마감 좀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