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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믹스와 만화의 영상화] 한국 만화의 영상화 현황 - 영화 및 드라마를 중심으로 /만화 미디어믹스에 대한 총론

‘미디어믹스’라는 말은 마치 ‘황금알을 낳는 오리’와도 같다. 하나의 콘텐츠가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제2, 제3의 또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이 특별한 장치는 특히 문화산업이 주목받고 있는 최근에 이르러 많은 이들로부터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2016-08-23 김성훈

‘미디어믹스’라는 말은 마치 ‘황금알을 낳는 오리’와도 같다. 하나의 콘텐츠가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제2, 제3의 또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이 특별한 장치는 특히 문화산업이 주목받고 있는 최근에 이르러 많은 이들로부터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지난날 하위문화로 천대받던 만화가 최근 문화적 그리고 산업적으로 주요한 위치에 자리 잡게 되고 있는 모습 또한 이러한 흐름에 힘입은 바가 큰 것임을 부정할 수 없으리라. 이에 이 글에서는 원천콘텐츠로서 만화가 지닌 가능성을 가늠해보기 위해 지금까지 진행된 한국만화의 영상화 현황을 영화 및 드라마 분야를 중심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영화化 현황
한국만화에 대해 일정한 관심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제는 누구나 알만한 몇 가지 특별한 역사가 있다. 가령, 한국 만화의 출발점이 1909년 6월 2일 <대한민보>의 창간호에 실린 이도영의 ‘揷畵(삽화)’라는 사실이나 혹은 한국 시사만화의 최장기연재 캐릭터는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이라는 사실과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노수현(필명 노심선)의 <멍텅구리 헛물켜기>가 우리나라 최초로 영화로 옮겨진 만화라는 사실 역시 주요한 한국만화 역사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 <멍텅구리 헛물켜기>, 노수현(필명 노심선), 1924년.
<멍텅구리 헛물켜기>는 <조선일보>를 통해 1924년 10월 13일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후 <멍텅구리 련애생활>, <멍텅구리 가뎡생활> 등 마치 오늘날 ‘시즌제’처럼 새로운 에피소드를 연재할 만큼 많은 인기를 모았고, 급기야 영화로 옮겨져 1926년에 개봉되었다. 한국만화의 출발점이 1909년이었고, 그로부터 채 20년이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영화로 옮겨지는 작품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원작콘텐츠로서의 우리 만화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확인시켜주었다는 점에서 시사 하는 바가 크다. (가령, <슈퍼맨>이 처음 등장한 <액션 코믹스> 1호가 1938년에 발간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최초의 실사영화 <슈퍼맨>(주연: 커크 앨린, 감독: 스펜서 고든 베넷 & 토머스 카)가 등장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원작산업으로서 우리나라 만화는 꽤 유서 깊다고 할 수 있으리라.)
△ <멍텅구리>, 이필우, 1926년.
분단과 한국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을 1950년대에도 만화원작을 활용한 영화가 등장했으니, 김성환의 ‘고바우’를 모티브로 한 영화 <고바우>가 1959년에 스크린으로 옮겨진 것이다. 영화의 개봉과 흥행에 김성환은 <고바우와 함께 산 半生>(열화당, 1978)에서 “당시의 유일한 국산 영화 개봉관이었던 명보극장에서 상영” 되었고, “그런대로 몇 주일간 상영이 되어 영화사가 손해는 보지 않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한편, 1963년에는 정운경의 <왈순 아지매>가 동명의 영화로 옮겨졌다. <왈순 아지매>는 원래 신문이 아닌 대중잡지 <여원>에서 1950년대 후반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작품으로서 “식모살이를 하러 서울로 올라온 시골여인”이라는 점이 주인공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해 제작되었다.
△ 좌측부터 <고바우>, 조정호, 1959년, <왈순아지매>, 이성구, 1963년.
이어 1977년에는 김성환의 또 다른 작품 <꺼꾸리군 장다리군>이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만화원작 영화가 보기 드문 가운데 특히 김성환의 작품은 <고바우>에 이어 두 번째 영화화 되었으니, 이는 그가 당대 최고의 인기작가임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게다가 원작이 학생잡지였던 <학원>에 처음 등장했던 시점이 1950년대 초였으니, 20년이 넘는 원작과 영화의 시간적인 간격은 그만큼 원작이 수작(秀作)이었음을 반증하는 셈이다. 다시 1년 뒤인 1978년에는 허영만의 <각시탈>이 <각시탈 철면객>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옮겨졌다. 197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이 만화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당시에 영화로 옮겨진 작품의 경우 대중적인 파급효과가 얼마나 큰 것이었을지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 좌측부터 <고교 꺼꾸리군 장다리군>, 석래명, 1977년, <각시탈 철면객>, 김선경, 1978년
만화에 대한 영화의 적극적인 구애가 가속화되는 것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다. 즉,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스크린으로 옮겨 1986년에 개봉한 <이장호의 외인구단>은 2년 후에 속편이 제작될 만큼 큰 인기를 모았고, 이후 <서울 손자병법>, <신의 아들>, <지옥의 링>, <가루지기>, <카멜레온의 시>,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발바리의 추억> 등이 줄지어 영화화 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1990년대에도 이어져 <영심이>, <가진 것 없소이다>, <러브러브>, <변금련>, <돈아돈아돈아> 등이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특히, 1997년에 허영만의 <비트>가 동명의 영화로 옮겨져 히트를 치면서 다시 한 번 원작으로 만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된다.
△ 좌측부터 <이장호의 외인구단>, 이장호, 1986년, <영심이>, 이미례, 1990년, <비트>, 김성수, 1997년.
2000년대 들어와서는 <바람의 파이터>, <두 사람이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제 7구단> 등과 같이 오래전에 발표된 원작들을 스크린으로 불러들이는가 하면, 2006년에 강풀의 <아파트>가 영화화 된 것을 출발로 <다세포소녀>, <바보>, <순정만화>, <이끼>, <전설의 주먹>, <은밀하게 위대하게>, <더 파이브>, <패션왕> 등 웹툰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등장한 원작들이 영화로 옮겨졌다.
△ 좌측부터 <바람의 파이터>, 양윤호, 2004년, <아파트>, 안병기, 2006년, <은밀하게 위대하게>, 장철수, 2013년.

드라마化 현황
대개 영화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불특정다수가 동일한 장소에 모여 함께 즐기는 특징이 있는 반면, 드라마는 텔레비전을 통해 시청자 개개인이 개별적으로 즐기게 된다. (물론, 최근에는 케이블 채널이나 VOD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텔레비전으로 관람하거나 드라마도 열린 공간에서 보는 게 가능해졌다. 다만, 통상적인 유통-소비 채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드라마는 텔레비전의 보급이 대중화된 이후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며, 따라서 만화원작을 활용한 드라마 또한 영화보다 그 출발이 늦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만화원작사에서도 영화의 경우는 이미 해방 이전인 1920년대에 시작되었던 반면, 만화원작 드라마는 그보다 한참 뒤인 1960년대부터 출발한다.

즉, 정운경의 <왈순 아지매>를 모티브로 한 동명의 드라마가 1967년에 방영되는 것에서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애초에 만화 <왈순 아지매>는 1950년대 후반에 신문만화가 아닌 잡지만화로서 연재되면서 인기를 모았고, 1967년에는 드라마로 만들어져 당시 동양방송(TBC)를 통해 안방극장을 찾았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왈순 아지매>를 원작으로 하는 TV시리즈물이 얼마 뒤 또 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1971년에는 MBC에서 제작해 방영되었다. <경향신문> 1971년 3월 2일자에서 이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어서 당시 <왈순 아지매> 인기를 새삼 확인시켜준다.

“<왈순 아지매>(MBC TV 밤 10시 20분) 프로개편과 함께 새로 등장한 코믹풍자물. 경향신문의 연재만화 정운경 원작의 <왈순 아지매>를 TV용으로 각색한 시추에이션드라마.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기지와 재치를 서민적인 감각으로 다룰 이 <왈순 아지매>의 타이틀 역엔 이재정 양이 피컵되었는데 오늘의 주제는 ‘한복’이다.
이 <왈순 아지매>는 3년 전 강부자가 타이틀롤을 맡아 TBC TV에서 극화된 일이 있어 이번으로 두 번째 기획이 되며 MBC TV 측으로선 조선일보 연재만화 <두꺼비>에 이은 두 번째 시사풍자물이다.”

특히, 이 기사에서는 1967년에 선보인 <왈순 아지매>가 정극이었던 반면, 1971년에 제작된 것은 코믹함이 가미된 ‘시사풍자’이라는 점을 주요한 특징으로 꼽고 있다. 한편, 이 기사를 통해 <두꺼비> 또한 TV 드라마로 제작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니, 원작콘텐츠로서 만화에 대한 당시의 관심 또한 짐작할 수 있다.
△ <경향신문> 1971년 3월 2일자 내용 발췌
하지만, <왈순 아지매> 이후 근 10여 년 동안 만화원작 드라마를 우리 안방극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러한 공백기가 찾아온 것에 대해 특히 당시 ‘성인만화’를 위한 토대가 빈약했었다는 사실에서 일정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가령, 1960, 70년대를 지나며 신문에 실리는 만화를 제외하면, ‘어른들을 위한 만화’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즉, 연재만화의 주요한 공간이 되는 성인대중지의 경우 1968년대에 창간된 <선데이 서울>을 제외하고는 그 모습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 그 시절의 분위기였고, 그것은 곧 성인만화를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게다가 만화 자체를 천시하는 사회적 인식이 더해져,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제작은 1960, 70년대에 있어 애초에 무리였을 법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만화원작 드라마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 즉 <왈순 아지매>와 <두꺼비>가 브라운관에 등장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두 작품 모두 통속적인 대중만화가 아닌 신문에 연재되는 시사만화(<왈순 아지매> 1964년부터, <두꺼비>는 1955년부터 각각 <대한일보>와 <경향신문>에 시사만화로 연재되기 시작했다.)라는 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한편, <왈순 아지매> 이후 10여 년 만에 등장한 만화원작 드라마가 성인만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1960, 70년대 공백기가 ‘성인만화 원작의 부재’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시각에 근거를 보탠다. 즉, 1986년에 발표된 허영만의 <퇴역전선>이 이듬해에 동명의 드라마로 옮겨졌는데, 고도 성장기 기업들의 경쟁을 담아내면서 어른들의 세계를 묘사했다. 8부작으로 제작된 이 드라마는 특히 <모래시계>로 널리 알려진 김종학(연출)과 송지나(극본) 콤비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후 많이 회자가 됐다.
△ 드라마 <퇴역전선>의 한 장면
이후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본격적인 만화의 브라운관 진출이 이루어졌다. <아스팔트 위의 사나이>(허영만 원작, 1995년 SBS 방영), <일곱 개의 숟가락>(김수정 원작, 1996년 MBC 방영), <미스터 Q>(허영만 원작, 1998년 SBS 방영),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황미나 원작, 1999년 KBS2 방영) 등 줄지어 만화가 드라마로 옮겨졌는데, 이에 앞서 1994년에 방영된 <폴리스>(이현세 원작, KBS2 방영)의 인기몰이가 이러한 흐름의 주요한 기폭제가 되었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한편으로 가족과 기업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드라마로 옮겨졌다는 점 또한 확인된다.
△ 좌측부터, <아스팔트 사나이>, 1995년, <미스터 Q>, 1998년, <폴리스> 1994년.
2000년대에 들어와 방영된 만화원작 드라마들은 특히 시청률 고공행진을 보여준 작품들이 상당수다. 이것은 곧 딱히 만화원작 드라마여서가 아니라 그저 ‘드라마’라는 이름만으로도 대중들에게 각인될 수 있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2003년에 수많은 ‘폐인’을 양산했던 <다모>(방학기 원작, MBC 방영)를 비롯해, <풀 하우스>(원수연 원작, 2004년 KBS 방영), <불량주부>(강희우 원작, 2005년 SBS 방영), <궁>(박소희 원작, 2006년 MBC 방영), <쩐의 전쟁>(박인권 원작, 2007년 SBS 방영) 등 해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만화원작 드라마가 등장했다. 이 외에도 <바람의 나라>(김진 원작, 2008년 KBS2 방영), <일지매>(고우영 원작, 2009년 MBC 방영),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박봉성 원작, 2010년 MBC 방영), <대물>(박인권 원작, 2010년 SBS 방영) 등 이른바 ‘대작’들도 연이어 브라운관으로 옮겨진 바 있다.
△ 좌측부터 <다모>, 2003년, <풀 하우스> 2004년, <대물>, 2010년.

...그리고 몇 가지
1) 천만관객 동원 만화가
2003년에 개봉한 <실미도>가 한국영화 최초로 1천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후, ‘천만 관객’ 돌파는 이른바 ‘대박’ 영화의 기준이 되고 있다. 만화원작 영화로 살펴보면, 단 한 편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사례는 아직 없다. 다만, ‘원작자’로 따져 보면, 천만 관객을 동원한 만화가는 이미 등장했다. 즉, 자신의 만화를 여러 편 스크린으로 옮겨 누적된 관객 수가 1천만을 돌파한 만화가를 말하는데, 여기에는 허영만, 윤태호 그리고 강풀 등을 얘기할 수 있겠다.

우선, 허영만의 경우 <타짜>(2006년 개봉, 누적관객 6,847,777명), <타짜-신의 손>(2014년 개봉, 누적관객 4,015,361명) 만으로도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 외 <식객>(2007년 개봉, 3,037,690명) <식객-김치전쟁>(2010년 개봉, 462,714명), <미스터 고>(2013년 개봉, 1,328,888 명) 등 2000년 이후에 스크린으로 옮겨진 작품들의 관객동원만 합치더라도 1천 5백만 명을 가뿐히 넘긴다.
△ 좌측부터 <타짜>, 2006년, <식객>, 2007년, <미스터 고>, 2013년.
윤태호 역시 <이끼>(2010년 개봉, 3,408,144명)와 <내부자들>(2015년 개봉, 7,055,332명) 단 두 편만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그만큼 두 작품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두 작품 각각 개봉연도의 전체 한국영화 가운데 ‘TOP5’ 안에 드는 관객동원 기록이다. 더욱이 <내부자들>의 경우 2015년 말에 새롭게 개봉한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이 <내부자들>과는 별도로 1,923,827명의 관객을 동원했기 때문에 <내부자들> 타이틀로만 거의 9백만 명에 육박한다. 이는 2013년에 개봉한 만화원작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6,959,126명을 동원하여 한국 만화원작 영화 관객동원 1위에 올랐던 기록을 새롭게 갈아치운 것이기도 하다.
△ 좌측부터 <이끼>, 2010년, <내부자들>, 2015년.
한편, 강풀의 경우는 발표되는 작품마다 영상화가 진행됨으로써 국민작가로서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아파트>(2006년 개봉, 644,893명), <바보>(2008년 개봉, 974,554명), <순정만화>(2008년 개봉, 730,343명),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년 개봉, 1,645,126명), <이웃사람>(2012년 개봉, 2,434,099명), <26년>(2012년 개봉, 2,940,475명) 등으로 현재까지 개봉작 기준으로 누적관객 합산에서 930만 명을 넘어섰다. <조명가게>나 <당신의 모든 순간> 등에 대해서도 영화화 계약이 이뤄진 상태이니 1천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 좌측부터 <그대를 사랑합니다>, 2011년, <이웃사람>, 2012년, <26년>, 2012년.
명불허전이랄까. 영화만 들여다보아도 현재 한국만화를 대표하는 세 명의 이름도 고스란히 확인되는 셈이다.

2) 단막극으로 만나는 만화
흔히 드라마라고 하면 최소 16부작 미니시리즈를 생각하기 싶다. 6개월 이상 방영되는 주말연속극이나 일일연속극은 그보다 더한 분량을 선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단 1회 혹은 4회 이하로 제작되는 단막극 형태의 드라마도 있으니, 만화 역시 이러한 단막극 형태로 제작되어 방영된 바 있다.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례를 찾아보자면, 1980년대 <내일뉴스>(강철수 원작)나 1990년대 초 <바람소리>(이두호 원작) 등을 꼽을 수 있다. 가깝게는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제피가루 원작, 2010년 방영), <습지생태보고서>(최규석 원작, 2012년 방영), <사춘기 메들리>, <아빠는 변태 중>(이상 곽인근 원작, 2013년 방영)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 좌측부터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 2010년, <습지생태보고서>, 2012년, <아빠는 변태 중>, 2013년.
한편, 최근에는 웹드라마로 제작되었다가 공중파로 편성되는 경우도 있다. 웹드라마의 경우 편당 10분 내외로 구성되지만, 공중파로 옮겨지면서 편당 런닝타임이 1시간 내외로 재편집된다. 즉, 웹에서는 여러 편으로 나눠져 있던 내용이 공중파를 통해서는 단막극 형태로 방영이 되는 것이다. 가령, 2015년 6월에 10부작의 웹드라마로 공개된 <프린스의 왕자>(의 경우, 얼마 뒤 공중파에서 방영될 때는 2부작으로 재구성된 바 있다.
△ <프린스의 왕자>, 2015년.

3) 영화와 드라마로 모두 만들어진 작품들
만화에 대한 영화와 드라마의 관심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때를 1980년대부터라고 보는 것은 1960, 70년대 비해 수적으로 영상화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미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축적된 만큼 여러 데이터가 쌓이고 있는 셈인데, 그러다 보니 한 편의 만화가 드라마와 영화로 모두 옮겨진 사례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우선, 1967년과 1971년에 두 차례나 브라운관을 찾았던 <왈순 아지매>의 경우, 1963년에 이미 영화로 옮겨져 개봉되었으니 이는 기념비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한편, <공포의 외인구단>은 1986년에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만화원작 영화의 흥행몰이를 견인한 이후, 2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2009 외인구단>이라는 제목으로 안방극장을 찾았다. 원작이 발표된 시점과 드라마로 제작된 시점의 간격으로 치자면 <각시탈>의 사례는 더욱 놀랍다. 원작 <각시탈>이 1974년에 등장했고, 영화는 1978년에 개봉했던 반면, 드라마 <각시탈>은 2012년에 방영되면서 원작과 드라마의 시간적인 격차는 무려 40년 가까이 이른다. 강철수의 <발바리의 추억> 역시 강산이 변하는 시간을 뛰어넘어 영화와 드라마로 옮겨지는 사례가 되었다. 원작 <발바리의 추억>은 1988년에 발표되었고, 영화는 1989년에 개봉된 반면, 드라마는 <헬로 발바리>라는 제목으로 2003년에 방영된 바 있다. 이처럼 세대를 뛰어넘어 새롭게 미디어믹스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원작으로서 만화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일이다.
△ 좌측부터 영화 <발바리의 추억>, 1989년, 드라마 <헬로 발바리> 2003년.
한편, 발표되자마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B급 달궁의 <다세포소녀>는 영화가 2006년에 개봉됐으며, 케이블드라마로도 만들어져 2006년에 방영되었다.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역시 영화와 케이블드라마로 만들어졌는데, 영화는 2011년에 개봉했고 드라마는 2012년에 방영되었다. <다모>의 경우 드라마는 2003년에 방영되었고, 영화는 2005년에 <형사 Duelist>라는 제목으로 옮겨졌다. 그 외 <식객>, <타짜>, <비천무> 등이 영화와 드라마로 각각 제작되면서 관객과 시청자들을 찾아간 바 있다. 얼마 전 드라마로 만들어져 케이블채널을 통해 방영되면서 높은 인기를 모았던 <치즈인더트랩> 또한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하니, 또 하나의 미디어믹스 사례가 늘어날 예정이다.
△ 좌측부터 각각 영화 <다세포 소녀>, 2006년,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2016년.

4) 외국만화원작 한국드라마 & 한국영화
최근 들어 한국만화가 아닌 외국만화가 한국영화 혹은 한국드라마로 제작되는 경우도 종종 등장하고 있다. 가령, 해외만화가 한국영화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경우는 <올드보이>(2003년 개봉), <미녀는 괴로워>(2006년 개봉), <설국열차>(2013년 개봉) 등을 꼽을 수 있겠다.
△ 좌측부터 영화 <올드보이>, 2006년, <설국열차>, 2013년.
해외만화가 한국드라마로 옮겨진 경우는 영화의 사례보다 더욱 많다. 대표적으로 <아이엠샘>(2007년 방영), <꽃보다 남자>(2009년 방영), <공부의 신>, <장난스런 키스>(이상 2010년 방영), <시티헌터>, <여제>(이상 2011년 방영), <닥터 진>(2012년 방영), <심야식당>(2015년 방영)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 가운데는 방영 당시 큰 인기를 모았던 작품도 눈에 띈다. 특히 일본만화 원작이 우리나라 드라마로 옮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원작 자체가 국내에서 두터운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작품에 대해서는 드라마 방영 전 이미 상당한 홍보효과를 누리고 있었음을 예상할 수 있다
△ 좌측부터 드라마 <꽃보다 남자>, 2009년, <공부의 신>, 2010년, <심야식당>, 2015년.
필진이미지

김성훈

만화 칼럼니스트
《만화 속 백수이야기》, 《한국 만화비평의 선구자들》 저자
http://blog.naver.com/c_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