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두기 : 요즘은 만화보다는 웹툰이라는 명칭이 일반화 되어 있지만 과거에 만화는 출판만화 한 가지뿐이었다. 웹툰이라는 명칭은 웹에 연재되는 만화(카툰)라는 뜻의 조어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장르를 분류하는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겠다. 또한 ‘웹툰’을 포함하는 큰 의미로는 ‘만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2000년대 초, 기존의 출판만화 잡지시장이 쇠퇴하고 본격적으로 웹툰이 출범한 지 20년을 눈앞에 둔 지금, 전체 만화시장은 웹툰을 중심으로 매년 큰 폭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형식과 내용면에 있어서도 웹툰은 다양하게 확대, 재생산 되면서 기존 어린이와 청소년 독자는 물론이고 신규 성인독자도 활발하게 유입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예전부터 꾸준히 웹툰이나 만화를 읽고 있는, 이미 중장년이 되어버린 독자의 비중 또한 과거에 비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현재 만화를 즐기는 독자를 연령대와 장르별로 나누어 보면 어린이를 위한 아동만화와 학습만화, 청소년들을 위한 소년만화와 순정만화, 성인을 위한 드라마·교양·성애만화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이쯤 되면 이제 노년층을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만화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예전에는 만화라고 하면 어린이, 청소년이나 보는 것이라고 인식되었지만 온라인이라는 무한한 바다를 매체로 하는 웹툰이 등장함으로써 만화는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열려 있어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한 인터넷 기반으로 인해 모든 연령대가 언제 어디서든 웹툰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수요와 공급을 빠르게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이는 웹툰 장르의 다양화를 촉진한다. 이제는 어른들도 만화를 보는 시대가 됐으니 가까운 미래에 노년층을 위한 실버만화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을까.
언급했다시피 과거 만화책이라 함은 ‘애들 코 묻은 돈으로 장사하는’ 치졸한 사업, 나아가 ‘청소년 유해매체’라는 인식이 강했다. 성인이 된 과거의 만화 독자들은 과거 자신에게 기쁨과 두근거림, 사랑과 모험을 허락한 만화책을 멀리하고 외면했다. 어른이 되고서도 만화책을 읽는다는 것이 창피한 시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광야와 같은 환경에서도 어른들에게 인기가 있는 만화들은 꿋꿋하게 존재해왔다. 그런 작품의 대부분은 만화적 재미와 더불어 지식과 교양을 전제한다는 특징이 있었는데, <고우영 삼국지>(故고우영, 1986), <먼 나라 이웃나라>(이원복, 1981) 등이 현대 교양만화의 시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중 <고우영 삼국지>(애니북스 출간)는 그야말로 어른들이 열광하는 당대 최고 인기 만화였고, <먼 나라 이웃나라>(김영사 출간)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권장하는 거의 유일한 만화였다. 당시의 연재 매체는 모두 신문이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가장 빠른 전달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무래도 단행본보다는 연재매체였다.
<고우영 삼국지>는 동양의 최고 고전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남자라면 평생 세 번은 읽어봐야 할 필독서로 각인되었던 시절, 나관중의 <삼국지>를 완전히 새로운 형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고우영 삼국지>는 <일간스포츠>에 연재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1980~90년대는 스포츠신문의 황금기였고 만화도 여러 작품이 연재됐었는데 그중에서도 <고우영 삼국지>는 군계일학과 같은 존재였다. 촌철살인의 대사와 더불어 파격적인 연출 방식으로 인해 현재까지 이토록 개성 있는 삼국지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먼 나라 이웃나라>의 저자 이원복은 당시로는 드물게 고학력의 이력을 지닌 만화가였다. 1980년대 중반까지 국내에서 활동하던 이원복은 오로지 만화를 공부하기 위해 독일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소년한국일보>의 의뢰를 받아 <먼 나라 이웃나라>를 연재하기 시작한다. 지금과는 달리 정보력이 미약하고 외국에 나가는 것도 어렵던 시절이라 유럽통으로 불리는 저자가 현장을 직접 체험하면서 그린 세계 각국의 역사와 지리, 사회, 문화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세계사 공부 그 자체였다. 게다가 읽기 편한 만화 형식이다 보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쉽게 학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사실 어린이 학습만화의 원조는 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먼 나라 이웃나라>는 어른들에게도 흥미진진하지만 그 내용이 한창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더 유익했기 때문에 만화가 천대받던 시절, 드물게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권장하는 만화로 자리매김하는 기현상을 낳기도 했다.
출판만화잡지 시장의 붕괴는 웹툰 시대를 앞당기는 한편, 지금껏 만화를 출판해본 적 없는 일반 출판사가 출판만화를 시도하는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그 당시 웹툰은 아직 스타트 업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일반 출판사들은 검증되지 않은 웹툰 연재작을 출간하기 보다는 과거 국내 히트작들을 복간하거나 문학 작품의 만화화, 기획 만화, 그리고 해외 교양만화의 번역출간 등 보다 안정적인 형태로 만화시장에 진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삼국지>, <십팔사략>, <일지매>(이상 애니북스 출간), <초한지>, <열국지>, <수호지>(이상 자음과 모음 출간) 등 고우영의 과거 작품들이 무삭제 보정판으로 연이어 출간돼 큰 인기를 누렸고, 이두호의 <객주>(김주영 원작, 바다출판사 출간)와 故오세영의 <토지>(故박경리 원작, 마로니에북스 출간)처럼 소설을 만화화하는 작업이 시도되기도 했다.
한편 드물었지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휴머니스트 출간)처럼 연재 매체 없이 출판사와 작가의 기획만으로 곧바로 단행본으로 출간된 교양만화도 있었다. 특히 장편만화 기획의 경우 제작비 부담이 크게 증가해 출판사로서는 상당한 부담을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교적 투자금을 회수하기 쉬운 어린이 학습만화를 제외하고 이런 대형기획을 시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000년 집필을 시작해 2013년 20권으로 완간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교양만화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작품성과 흥행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역사만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이 작품은 저자 박시백이 직접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상고해 글과 그림을 집필했으며, 학계의 최신 연구 성과들을 차용하고 저자 스스로도 해석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기존의 역사만화와 달리 역사적 사건 중심의 전개보다는 정치사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이 특징인데, 이로 인해 인물간의 이해관계나 사건의 인과관계가 현재의 시점처럼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로 인해 해당 인물의 성격마저 유추할 수 있으며 저자의 역사에 대한 의식과 이를 풀어내는 역량을 여실히 보여주는 걸작이기도 하다.
비슷한 시기, 일반 출판사에서 출간한 해외 만화 중에서는 다니구치 지로의 <열네 살>(샘터 출간)이라는 작품이 눈에 띄었는데 일본 만화치고는 담백한 그림체와 스토리, 일본 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만화가라는 특이점, 유명 번역가의 번역, 게다가 7천 원이라는 일반 만화책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가격 등으로 화제가 됐었다. 당시 일반 코믹스 가격이 삼사천 원 정도여서 판매가 용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제법 잘 팔렸는데, 내용 자체가 청소년층을 겨냥하는 작품이 아닌데다 스토리가 세련되고 삶에 대한 고찰이 스며있는 성숙한 면면이 부각되어 높은 가격 자체가 문제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오히려 소설류도 비슷한 가격대였기 때문에 만화 독자보다는 일반 독자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제법 많은 부수가 판매되어 시장에 안착하게 된다. 이에 다른 일반 출판사에서도 앞 다투어 일반 성인 독자들도 충분히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만화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다니구치 지로를 필두로 마츠모토 타이요, 모로호시 다이지로, 호시노 유키노부, 오노 나츠메 등 일본 내에서 주류는 아니지만 고유한 세계관과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어 작지만 확고한 독자층을 형성하게 된다.

일반 출판사들에 의해 예상보다 빠르게 교양만화라는 새로운 시장이 개척되자 대형 만화출판사도 뒤늦게 자체 브랜드를 창설해 일반 코믹스와 차별점을 강조한 해외 교양만화들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만화전문 출판사 대원의 브랜드 미우와 학산의 시리얼은 그런 상황 속에서 세워졌는데, 미우는 첫 출간작으로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을 크게 히트시켰고 시리얼도 우미노 치카의 <3월의 라이온>을 성공적으로 런칭해 대형 만화출판사의 저력을 과시했다.
이후로도 각 출판사들은 마스다 미리, 요시다 아키미, 타카기 나오코, 네코마키 등 성인 여성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을 대거 소개해 성인이 즐길 만한 만화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웹툰, 다양한 연령의 독자를 사로잡는 데 성공하다
한편 초창기 웹툰 시대의 최전선에는 강풀이 있었다. 당시 포털사이트에서는 스캔본 위주의 만화 서비스와 더불어 일상툰이나 단편 위주의 웹툰 연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강풀은 그런 상황에서 과감하게 스토리 형식의 작품인 <순정만화>를 Daum에 연재하여 만화사에 역사적 한 획을 긋게 된다.
<순정만화> 연재 전만 해도 컴퓨터 모니터로 만화를 본다는 것이 아직 생경한 시절이었고 포털사이트가 갈 곳 잃은 연재 매체에 대한 대안이라는 확신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스토리 위주의 장편 만화를 온라인에 연재한다는 것은 작가와 포털사이트 모두에게 그야말로 큰 모험이었다.
결과적으로 <순정만화>는 탄탄한 스토리 하나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이는 곧 현재 주류로 자리 잡은 스토리 위주의 웹툰이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네이버, 엠파스, 야후 등 다른 포털에서도 웹툰 서비스를 시작하는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다.
초창기 웹툰은 일본 만화에 비해 전반적으로 작화력은 떨어졌지만 독특한 스토리의 작품이 많았고 실험적인 작품도 많았다. 이런 점은 오늘날 웹툰의 최대 강점이 되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출판만화 시절에는 연재 지면이 한정적이어서 만화가로 데뷔하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웹툰 시대가 급격히 도래하면서 무한대의 지면을 통해 대중과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해졌다. 작화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이야기만 재미있다면 대중의 인기를 얻어 단번에 데뷔하는 작가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만화는 그림과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림이 제아무리 훌륭해도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만화가로서 성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반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웹툰은 보여주었다. 이야기는 곧 콘텐츠이고 콘텐츠는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하다.
강풀의 가장 큰 강점이 바로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는 점이며 그의 대부분의 작품이 영상화 계약이 된 점이 그 사실을 입증해준다. 그는 다양한 장르와 폭넓은 세대를 오가며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슬픔으로 감정을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이른바 전천후 작가라 할 수 있다. 비록 그림을 잘 그리는 작가는 아니지만 자신의 그런 단점을 잘 알기에 작화보다는 스토리에 중점을 두어 작품을 구성한다. 스토리가 강점인 그의 작품에서 작화가 단순하다는 점은 오히려 읽는 이의 시각적 부담을 줄여 스토리에 집중하게끔 하는 부수적인 장점으로 작용했다.
<순정만화> 이후로도 고갈되지 않는 창작력을 발휘한 강풀은 <아파트>, <바보>, <타이밍>, <26년>, <그대를 사랑합니다>, <당신의 모든 순간>, <브릿지>(이상 재미주의 출간) 등을 연이어 발표하는 괴력을 발휘한다. 특히 노년에 접어든 남녀의 순애보를 그린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5·18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복수극을 그린 <26년>은 소재면에서나 내용면에서나 웹툰의 다양성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국내 웹툰 작가 중에서는 일반적인 재미에 치중한 작품과는 다른,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개인적 관심사 등을 작품으로 표현하려는 작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변곡점에 윤태호와 최규석이 있었다.
우선 현재 <오리진>이라는 작품으로 우리나라 교양만화의 중심에 서 있는 윤태호를 말하면서 <미생>(Daum 연재작, 위즈덤하우스 출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영상화는 물론 단행본 판매만 해도 누적 200만부를 넘었다. 가히 신드롬이라 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윤태호의 <미생>은 장르상 전통적인 교양만화로 보기는 어렵다. 사실 서사 위주의 일반 극화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교양만화로서 언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일반 성인 독자를 웹툰에 끌어들이는 데 혁혁한 공이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중에서 원래 바둑 기사가 꿈이었던 주인공 장그래는 꿈을 접고 후원자가 오너로 있는 종합상사에 낙하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지금껏 바둑만 둬서 일반 직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미생(바둑 용어로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이라 표현한다. 또한 연재 초반 종종 인생을 바둑판에 비유하는 장면이 등장해 자못 철학적이고 비현실적인, <시마 과장>과 같은 판타지 직장만화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독자들이 많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바둑은 오히려 부수적인 요소일 뿐 대단히 현실적인 직장만화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한때 직장만화의 대명사격인 <시마 과장>처럼 일은 일대로 완벽하게 처리하고 직장 내에서도 고속 승진하며 출장지에서는 아리따운 여성과의 밀회가 기다리는 이 작품은 직장인들을 위한 판타지에 불과할 뿐 일상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시마 과장> 전후에도 직장을 소재로 한 만화가 없지는 않았지만 주인공이 승승장구해나가는 일반적인 전개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미생>처럼 말단 인턴 사원의 처지와 고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작품은 없었다. 직장생활을 단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만화가가 그린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배경지식이 탄탄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으며,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도 허황되지 않은 점 등이 기존 만화의 문법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특히 직장에서 성공하려는 욕망, 직장인으로서 느껴지는 애환과 동질감이 자연스레 장그래에게 투영하게 되어 사회 초년생을 비롯한 많은 직장인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유독 경쟁이 치열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매우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일상, 그리고 그것의 무게를 온몸으로 힘겹게 받아내는 인물들 속에서 독자들은 자신의 모습을 찾아낸 것이다. 아직 살이 있는 못한 자, ‘미생’은 바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였던 셈이다.

<미생>의 어마어마한 성공 이후, 윤태호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본인이 시도한 적 없는 교양만화의 기획이었다. 이 기획은 <오리진>이라는 단행본을 통해 구현되고 있는데, <오리진>은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콘셉트로 저자가 직접 기획한 교양만화이다. 사실 구성면에서는 학습만화에 가까운데, 책의 절반은 스토리 위주의 만화이고 나머지 절반은 각 분야의 전문가가 쓴 칼럼으로 나뉘어 있어 정통적인 학습만화의 틀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다. 오히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이 즐길 수 있는 교양만화로 기획한 것으로 생각된다. 총 100권의 장대한 기획이라고 하니 시간이 걸리겠지만 완간을 기다려본다.
최규석은 2003년 서울문화사의 격주간 만화잡지 「영점프」에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라는 단편을 발표해 일약 화제가 된 작가다. 이 작품에서 최규석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귀엽고 천진난만한 둘리를 현실 세계로 소환해 나이 먹고 삶의 무게에 찌든 가장들의 자화상에 대치하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모험을 감행했다. 이 작품은 길찾기에서 또 다른 최규석의 단편들과 엮여 동명의 제목으로 2009년에 출판되었다.
이후 최규석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슈를 정면으로 다룬 <100℃>, 우리나라의 냉혹한 노동현장의 현실을 그린 <송곳>(이상 Naver 연재, 창비 출간) 등을 통해 평생을 관통하는 관심사인 노동자의 삶과 사회 부조리에 대해 심도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의식과 날카로운 관찰력은 실제 노동시장에서 고용주에게 노동을 제공하는 수많은 노동자와 서민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윤태호의 <미생>과 최규석의 <송곳>, 이러한 만화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느끼게 하는가? 어린이나 청소년이 공감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작품들이다. 사춘기를 지나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부조리한 사회구조에 좌절도 해보고, 단맛 쓴맛도 보아야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런 종류의 만화가 등장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만화의 시작은 재미에서 비롯되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다양하게 파생되어 그중 한 갈래가 여러 사상과 현상을 담아 ‘표현하는 도구’로써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흔히 만화를 제9의 예술이라 칭한다. 만화가 정통적 의미로서 예술의 범주에 속하는 아닌지 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예술과 같은 다양한 표현수단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작품들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작가와 독자의 의식 수준이 동시에 성장해야 가능하다. 과거에는 선구적인 만화가는 있었어도 이를 따라줄 독자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다 큰 어른이 만화책을 읽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기에 만화를 외면했고 그에 따른 상호작용으로 만화작품은 ‘표현하는 도구’로써 명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웹툰을 즐기고 있다. 그만큼 만화에 대한 인식과 위상은 달라졌고 이것은 웹툰의 양적,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양만화란 단순히 지식의 습득을 넘어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제공해주는 만화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해박한 지식을 쌓아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은 인간으로서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하지만 지식만으로 인간은 인간다워지지 않는다. 지식과 더불어 인간을 인간답게 성장시키는 것은 바로 감정이다. 만화는 정지된 그림과 대사를 통해 전해지기 때문에 감정이입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매체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주어진 속도에 쫓길 필요도 없다. 뭔가 격식이 있고 지식을 전달해야만 교양만화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교양만화만 유익하고 흥미 본위의 만화는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다양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발전은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그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개인의 몫이고 대중의 몫이다. 어떤 만화라도 그 이야기에 공감하고 감동을 받는다면, 눈물 흘리고 한바탕 크게 웃어 위안을 얻는다면, 그래서 인간으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면 개인에게는 훌륭한 교양만화이지 않을까.
인간은 언뜻 지혜로워 보이지만 사실 한없이 불완전한 존재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는 존재다. 어른이라고 해서 성장하기를 멈춰버린다면 우리 사회는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 앞으로도 우리를 풍요롭게 해줄 훌륭한 작품이 만화계에서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