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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투자자로서 바라보는 만화 IP 투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89억, 115억, 130억, 550억, 1,390억... 웹툰 관련 기업들이 최근 몇 년간 투자회사들로부터 투자받은 금액이다. 이 투자 가운데는 인터넷 기반의 대형 플랫폼 기업에 대한 투자도 포함되나 확실한 것은 웹툰으로 대표되는 만화 관련 투자가 벤처캐피탈과 같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란 점이다.

2018-10-17 허수영


나는 어떻게 만화 IP 투자를 하게 되었나

89억, 115억, 130억, 550억, 1,390억... 웹툰 관련 기업들이 최근 몇 년간 투자회사들로부터 투자받은 금액이다. 이 투자 가운데는 인터넷 기반의 대형 플랫폼 기업에 대한 투자도 포함되나 확실한 것은 웹툰으로 대표되는 만화 관련 투자가 벤처캐피탈과 같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란 점이다. 오히려 최근 IP(Intellectual Property)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관련 투자는 더욱 투자자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콘텐츠 초기기업이나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콘텐츠 투자심사역으로서 웹툰을 포함한 만화를 투자 대상으로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09년경이었다. 당시 인기 있던 학습용 출판 만화 프로젝트 투자를 계기로 만화 관련 투자를 콘텐츠 투자의 한 분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전통적인 출판만화 시장은 당시에도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었으나 학습만화, 아이돌 캐릭터를 활용한 팬 타깃의 만화 등 니치 마켓을 노리는 만화 기획이 활발하였고, 이런 기획을 통해 투자를 유치하고자 하는 제작자 분들이 간혹 투자회사의 문을 두드렸었다. 그러던 와중에 연재 완료된 웹툰을 출판 만화로 출간하기 위한 제작비 투자를 요청하는 제작사를 만나면서 웹툰 시장의 성장성과 웹툰 기업의 수익 구조, 그리고 가능성에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되었다. 그 비슷한 시기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처음으로 만화 및 웹툰 투자 활성화를 위하여 펀드에 출자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관련 프로젝트 및 기업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투자심사역 입장에서 그 당시 느낀 것이 있다면 만화 시장이 급속하게 웹툰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스마트폰의 보급은 웹툰 시장의 급성장을 이끌며, 지면 중심의 만화 시장을 완전히 대체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이러한 흐름을 지켜보면서 잠시 혼란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전까지 나 역시 독자의 한명으로서 네이버나 다음에서 가끔 웹툰을 보곤 했으나, 투자 대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무료로 서비스되는 웹툰이 대세인 상황에서 수익 모델이 없는 웹툰은 투자를 하려야 할 수 없는 분야였던 것이다. 과연 어디에,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하나 고민하며 2010년, 2011년을 보내야 했다. 앞서 말했던 웹툰을 출판 만화로 출간하는 것 역시 처음에는 출판을 통해서 발생하는 판매 수익을 배분받는 방식이었다.


그 투자를 시작으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을 통한 소개와 주변 네트워크를 통해 조금씩 관련 업계 종사자분들을 만나면서 웹툰 시장의 가능성에 대해서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투자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미 출판 만화 시절부터 만화를 원작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고, OSMU의 원천으로써 만화 IP가 가진 가능성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 였다. 웹툰으로 형식이 바뀐 후에도 만화 IP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많은 새로운 인력들이 유입되고, 독자의 반응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영화, 드라마 등 분야에서 원천 IP로써 웹툰에 대한 관심도는 높아져만 갔다. 또한 만화는 그 자체로도 아주 오랫동안 일반 대중들이 많이 즐기고 소비하는 문화콘텐츠이다. 그러나 고전적인 출판 시장이 쇠퇴하면서 만화 IP는 가능성은 있으나 사업적으로 성장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투자자로서의 고민은 만화 IP의 사업적 가능성을 어떻게 수익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지, 그 과정에 투자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였다.

기본적으로 벤처캐피탈은 기술력과 장래성은 있으나 자본과 경영기반이 약한 기업에 초기 단계에 자본 참여를 통하여 기업과 위험을 공동 부담하고, 경영, 기술 등에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높은 이득을 추구하는 금융 활동이다. 만화 IP의 장래성에 대한 믿음은 있었으나 자본 참여의 방식과 성장 모델을 찾을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웹툰 제작을 하기 위해 소요되는 자금에 프로젝트 투자를 하는 방식을 시작했다. 초기에 자본을 지급하고 이후 원고료, 원작 판매 등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을 배분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실제로 웹툰에서 수익이 발생할 수 있는지, 원작 IP로써 가치가 시장에서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금은 플랫폼뿐만 아니라 만화 프로덕션 기업들도 많이 생기고, 그 규모도 매우 커지고 있다. 그러나 처음 웹툰 작가 분들이나 기업을 만날 때는 많은 경우 개인 작가로 활동하거나, 개인사업자 형태로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만화를 창작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기본적으로 투자회사는 법인에 대해 투자를 집행하여야하기에 벤처캐피탈이 무엇인지, 어떻게 투자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하여야 했다. 또한 투자를 받아서 투자사와 수익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이해도도 많지 않았다. 회사 내부에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당연히 결과도 좋지 않았다. 좋은 투자 대상을 찾기도, 수익을 내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시각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 2013년, 2014년 즈음이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드라마 <미생>이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면서 일반 대중들에서 이미 인정받은 만화 IP를 확보하려는 업계의 경쟁이 심화되었고, 특히 <미생>은 드라마의 히트가 다시 <미생> 웹툰 조회 수뿐만 아니라 만화 출판물 판매율에도 큰 영향을 미치며 히트 IP가 어떻게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사례를 제시하게 되었다.


또한 2013년 서비스를 시작한 레진코믹스가 유료화 모델 도입에 성공하면서 웹툰 자체로도 돈이 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유료화 모델을 도입한 웹툰 플랫폼들이 속속 새로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들 회사에 투자금이 몰리기 시작했다. 개별 작가 중심으로 움직이던 창작 분야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기업 형태의 프로덕션 컴퍼니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자체적으로 기획을 하고 작가를 매칭하여 작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구축되었고, 더 나아가 만화 IP를 보유하고, 이를 활용하여 더 큰 사업적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콘텐츠 업계 역시 만화 IP의 단순 판권 구매에서 IP를 통한 더 큰 부가가치 창출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만화 분야가 콘텐츠산업에서 주요한 투자 대상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만화 IP 투자의 현재 : 위기와 그리고 새로운 기회

최근 4~5년간 만화 산업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 회사의 첫 만화 프로젝트 투자금은 7천만원이었다. 지금은 몇 억원 단위의 투자들을 검토하고 있다. 더 큰 금액을 만화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회사들도 많다. 가능성 있는 기업을 발굴하기 위해 나와 같은 투자심사역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8년 콘텐츠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한국 만화 산업 매출액은 총 1조원으로 1년 전보다 6.3% 증가했다. 올해도 만화 산업 매출액은 2017년 대비 약 6%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 2018년 만화산업 매출, 수출 전망(출처 : 2018년 콘텐츠산업 전망(한국콘텐츠진흥원 발간))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3년 1,500억원 규모였던 국내 웹툰 시장은 2016년에 4,200억원, 2017년에 5,820억원에 이어 2020년에는 1조의 시장 커질 것으로 예상되며, 연평균 성장률(CARG)이 31.1%로 급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시장이 성장하면 투자자들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기업을 발굴하고 거기에 돈을 쏟게 된다. 레진코믹스의 성공 이후 실제로 많은 웹툰 플랫폼들이 생겨났고, 투자를 받았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장밋빛 미래만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웹툰 플랫폼들은 과당 경쟁과 불법 사이트 문제로 심한 문제를 겪고 있고, 투자를 받았던 플랫폼들조차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다. 최대한 많은 작품, 최대한 자극적인 작품을 시장에 유통시키면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또다시 만화 관련 투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대두되었다.

반면에 원천콘텐츠를 직접 생산하는 프로덕션이나 창작자들을 관리하는 에이전시 등은 상대적으로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만화 IP의 확장에 의한 수익화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국내 콘텐츠 산업 환경 하에서 많은 초기 기업들이 원고료 수익과 일부 IP 2차 판권 판매 로열티에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콘텐츠의 종류, 수가 많아지고 이를 유통하는 플랫폼이 늘어날수록 타 장르로의 확장성이 높은 만화 IP의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러한 원천 IP를 활용한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IP를 가진 기업의 가치는 계속 성장하게 된다. 최근 만화 IP의 보유와 이를 활용하기 위한 시장의 움직임이 매우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카카오페이지는 자사 플랫폼의 히트작 중 하나인 <김비서가 왜 이럴까>를 드라마화 시키는데 성공하며 주도적인 IP 확장 전략을 보여줬고, 최근에는 유력 만화 IP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에 거액의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또한 네이버웹툰은 자사 유통 IP를 활용한 영화 제작을 위해 별도의 영화 제작사를 설립하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웹툰 기업 중 하나인 와이랩은 유력 제작사와 손잡고 자사 작가들의 웹툰을 활용한 세계관을 선보이고, 이를 영상화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에 따라 투자 부분에서도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만화 IP 보유 기업 및 이를 활용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플랫폼인가, 프로덕션인가를 떠나 얼마나 훌륭한 IP를 가지고 있고, 훌륭한 IP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가 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 우리 회사의 심사역들은 투자를 검토할 때 그 회사가 자체 IP를 가지고 있는지, 이를 활용한 사업 전략이 있는지를 주요하게 보고 있다. 진정 만화 IP 투자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만화 IP 투자의 미래 : 한국의 Super IP를 꿈꾸며

일개 심사역으로 만화 IP 투자의 미래를 논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시장은 항상 변동하고, 전혀 생각지 못한 혁신성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이다. 매우 뜨거웠던 시장이 한순간에 주저앉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장의 성장성이 가장 큰 투자의 근거 중 하나지만, 결국 그 시장을 만들어 가는 것은 시장 내 기업들과 소비자이다. 투자자의 역할은 시장 내에서 더 가능성 있는 기업이나 프로젝트를 찾고, 이들이 성공하기 위한 필요 자금을 조달하고, 성공을 지원하는 것이다.
만화 IP 관련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면, 명확한 비전과 전략을 가지고 회사의 성장을 고민해야할 시기이다. 콘텐츠 산업은 점점 더 한 개의 히트 작품이 수십 개, 수백 개의 일반 작품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시장이 되고 있다. 이러한 막대한 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 히트 작품, 즉 Super IP를 만들어 내기 위해 어떤 내부 시스템과 경쟁력을 가졌는지를 면밀히 분석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글로벌 콘텐츠 산업은 소수의 Super IP가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만화 IP 자체뿐만 아니라 이를 비즈니스적으로 더욱 확대하여 다양한 파생 콘텐츠를 유기적으로 생산하고 소비시킬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요한 것은 만화 IP 보유 기업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IP 소유자로서 로열티를 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IP를 활용한 2차 저작물 기획, 개발, 생산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성공의 결과를 같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작에 대한 일회성 소비를 넘어서 다양한 2차 콘텐츠를 통해 지속적인 생명력을 확보하고, 판권 판매를 통한 단기적인 수익보다 질 높은 파생 콘텐츠의 지속적인 출시를 통해 장기적으로 IP 가치를 상승시킴으로써 IP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하는 2차 콘텐츠 개발 회사들도 성장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IP를 생산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정교한 IP 확장 전략과 막대한 개발 비용,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투자자들의 자금은 가능성 있는 기업들이 이러한 IP 확장 전략을 추진할 때 긴요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덧붙여, 원천 IP 제작과 후속 기획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가능한 시스템, 유망 IP 보유 기업과 개발능력을 가진 콘텐츠 제작사, 유력한 유통 플랫폼의 유기적 협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환경 조성, 정부의 지속적 관심과 지원이 같이 이루어진다면, 만화 IP는 미래 콘텐츠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투자자로서 분명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만화 IP 사업은 이제 본격화 단계라는 점이다. <마블시리즈>나 <신과 함께>는 만화를 시작으로 큰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Super IP이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Super IP와 Super IP를 탄생시키는 기업들이 만화 산업 내에서 계속 나올 수 있음을 기대하는 이유이다. 투자심사역으로서 이러한 Super IP의 탄생에 투자자로서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