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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상으로 떠오른 BL] 대중문화 속 BL의 동성애 코드 읽기 - 동성애는 안 되지만, 브로맨스는 괜찮아

만화계에는 오래전부터 ‘동인녀’라고 불리는 독자층이 존재해 왔다. 이들은 스스로를 “뇌가 썩었다”(속칭 부녀자(腐女子): 썩은 여자)고 자조하면서, 남성 동성애물인 BL(Boys love, ボ?イズラブ) 장르를 음밀(陰密)히 즐겨 왔다.

2016-11-16 백은지

만화계에는 오래전부터 ‘동인녀’라고 불리는 독자층이 존재해 왔다. 이들은 스스로를 “뇌가 썩었다”(속칭 부녀자(腐女子): 썩은 여자)고 자조하면서, 남성 동성애물인 BL(Boy’s love, ボ?イズラブ) 장르를 음밀(陰密)히 즐겨 왔다. BL은 남성 동성애자들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현실의 동성애를 소재로 하는 퀴어물(queer)과는 다르다. BL은 여성 독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미형의 남성들 간의 사랑을 다룬 일종의 호모 섹슈얼 판타지로, 동성애라는 ‘금기’와 남성 캐릭터 간의 관계 설정 (일명 공과 수 - 공: 남자 역할 / 수: 여자 역할) 같은 ‘망상 놀이’로 소수의 동인녀들에게 음밀히 향유되어 왔다. 그래서인지 BL만화는 엄연히 존재하면서도, 드러내놓고 즐길 수 있는 장르는 아니었다. 독자 스스로 ‘썩은 여자’라고 자조할 만큼 만화계에서도 마이너 문화였으며, 소수의 여성 독자들만을 위한 만화 장르였다. 

그런데 요즘 이 동성애 코드가 인기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드라마, 영화, 광고 등에서 동성애 코드가 심심찮게 등장하는가 싶더니, 예능에서 ’브로맨스‘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흔하게 쓰이고 있으며, 연말 시상식 베스트 커플상에 남남 커플이 선정되기도 한다. 신문 기사에서 ’브로맨스 폭발‘이라는 기사가 심심찮게 목격될 정도로, 이제 동성애 코드는 대중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 <그림1, 2> ‘KBS 연기대상‘ 베스트커플상에 선정된 김수현, 차태현의 모습 / JTBC 예능 <아는 형님>의 자막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성적 소수자들에게 이토록 관대해졌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왕의 남자>, <쌍화점>, <서양골동양과자점 안티크> 같이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부터, <후회하지 않아>, <친구사이> 같은 퀴어 영화까지 다양하게 제작되고 있지만, 여전히 동성애 소재는 다소 거북한 장르이며 퀴어 영화는 마이너한 장르로 남아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2010년 3월에 방영된 SBS 주말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동성애 커플을 등장시켜 화제가 되었지만, 당시 독자 게시판 반응은 “아이들과 함께 보기 거북하다” 등 항의 글이 다수를 이루었다. 또한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 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라는 동성애 비난 광고가 실릴 정도로, 여전히 우리 사회는 성 소수자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가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 <그림3, 4>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동성 커플 / 모 신문사에 실린 <인생은 아름다워> 동성애 비난 광고
그럼 최근 유행하고 있는 ‘브로맨스’의 인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독자 스스로 뇌가 썩었다고 자조할 정도로 마이너한 장르였던 BL물의 동성애 코드는 어떻게 대중문화에 거부감 없이 스며들 수 있었을까? 여기에서는 대중문화가 BL물 속 동성애 코드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위해 스토리텔링에서 어떤 전략을 취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문제점에 대해 논해 보도록 한다.

남장 여자 : 사랑의 장애물, 그것은 동성 간의 사랑
대중이 거부감 없이 동성애 코드를 받아드리기 가장 쉬운 방식은 ‘남장 여자’ 이다. 2007년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을 시작으로, 2008년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 2009년 SBS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2010년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최근 인기리에 종용된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까지, 남장 여자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꾸준히 인기를 끌어 왔다.
△ <그림5, 6>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남장 여자 드라마의 기본 스토리 구조를 살펴보면, 여자 주인공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남장을 하게 되고, 이를 모르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 남자 주인공이 자신이 동성을 사랑하게 된 상황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여자 주인공의 정체가 여성임이 드러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남장 여자 드라마에서 동성애는 금지된 사랑이면서 동시에 남녀 주인공의 이성애를 가로막는 사랑의 장애물로 등장한다. 남장 여자 드라마에서 동성애는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접근되기보다, 이성 간의 사랑을 가로막는 일시적인 장애물이자 해프닝이며, 극의 재미를 주는 요소로 역할 할 뿐이다. 여자주인공의 남장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독자는 우월적 지위에서 이를 모르고 동성과 사랑에 빠진 남자 주인공을 보며 극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스토리의 중요한 분기점은 남장을 한 여자 주인공이 여성임이 드러나는 순간이며, 독자는 동성애가 아닌 이성애의 완성을 해피엔딩으로 인식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가 획득하는 감정은 남자 주인공의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다. 남장 여자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은 대개 동성애에 빠져든 상황에 괴로워하다가, 결국은 생물학적 성(性)을 초월한 순수한 사랑을 선택한다. 남자 주인공의 순수한 사랑이 검증되면, 그 후에 실은 동성인 줄 알았던 상대방이 이성이었다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완벽한 사랑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 <그림7, 8>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 작중 키스신. 한결이 은찬이 남장한 줄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을 고백해 화제가 된 장면

브로맨스 : 숨은 남남 커플 찾기
요즘 유행처럼 대중매체에서 ‘브로맨스’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그럼 브로맨스는 무슨 뜻일까? 브로맨스란 브라더(brother)와 로맨스(romance)를 조합한 신조어로, 남성들 간의 사랑에 가까운 진한 우정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고, 우정에 가까운 사랑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사랑에 가까운 우정이든 우정에 가까운 사랑이든, 브로맨스는 동성애는 아니지만, 동성애가 의심될 정도로 진한 남성들 간의 우정, 또는 애틋한 감정, 관계 정도로 규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브로맨스의 특징 중 하나는 겉으로 드러난 스토리에서 동성애적 요소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동성애로 의심될 정도의 남성들 간의 진한 우정, 혹은 애틋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독자의 상상력이다.(대게 여성 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독자들의 망상력(?)에서 중요한 것은 ‘동성애는 아니지만, 동성애로 의심될 정도의 남성들 간의 진한 우정’이라는 미묘한 경계이다. 브로맨스를 즐기는 여성 독자들은 남성들 간의 진한 우정에서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읽어내며, BL물에서의 그것과 같이 남남 커플 맺기 놀이를 즐긴다. 사랑으로 의심될 정도의 진하고 애틋한 우정의 감정이어야 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동성애와는 거리가 먼, 남성들 간의 진한 우정과 의리가 묻어나는 내용일수록 브로맨스의 대상이 된다. 주군에 대한 신하의 충의가 사랑으로 둔갑하며, 사제지간의 진한 정(情), 남성들 간의 우정과 의리가 애절한 사랑의 언어로 해석된다.
△ <그림9, 10> 미국 드라마 <수퍼내추럴>과 영국 드라마 <셜록>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브로맨스는 본래 <수퍼내추럴>이나 <셜록> 같은 외국 드라마에서 시작되어, 한국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미국드라마 <수퍼내추럴>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일종의 퇴마물로, 웬체스터 가문의 형제인 딘과 샘이 어머니와 여자 친구를 죽인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악마를 퇴치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국 드라마 <셜록>은 <셜록 홈즈>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셜록 홈즈와 왓슨의 추리 드라마이다. <수퍼내추럴>과 <셜록>은 동성애와는 거리가 먼 내용을 담고 있지만, 여성독자들은 <수퍼내추럴>의 진한 형제애에서 사랑을, <셜록>의 셜록과 왓슨의 동료애와 우정에서 사랑의 감정을 읽어 낸다.

한국 드라마에서도 브로맨스는 독자에 의해 ‘발견’된다. 2016년 상반기 화제작인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군인인 유시진 대위와 의사인 강모연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유시진 대위와 서대영 상사 간의 진한 전우애가 브로맨스로 사랑을 받았다. 브로맨스는 입시와 왕따로 얼룩진 학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입시와 왕따, 학교 폭력을 주제로 하여 방영 당시 화제를 되었던 KBS 드라마 <학교 2013>에서는 주인공 고남순과 그의 친구 박흥수의 진한 우정이 브로맨스로 사랑받았다.
브로맨스는 창작자에 의해 만들어지기보다는, 대부분 독자들에 의해 발견되고 전개된다. 브로맨스는 BL에서의 남남 커플 찾기 망상 놀이가 대중문화에 전해진 것으로, 여성 독자들은 드라마 속에서 숨은그림찾기 하듯, 숨겨진 관계성을 찾는 데 열중한다.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 대위와 서대영 상사가 우연히 같은 티셔츠를 입은 것을 보고 열광하며, 전투에서 동료를 구하고 서로 위하는 모습을 서로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과 믿음으로 해석된다. 브로맨스를 발견하는 순간 기존의 텍스트는 사라지고, 새로운 로맨스가 시작되는 것이다.
△ <그림11>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 유시진, 서대영 남남 커플 - 브로맨스로 유명한 커플티 장면
△ <그림12, 13>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속 구용하과 문재신 남남 커플 /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속 왕세자 이영과 별감 김병연의 브로맨스
이러한 브로맨스 코드는 남장여장 소재와 함께 쓰이기도 한다. 2010년에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는 남장 여자를 소재로 성균관 유생 이선준과 남장여장을 하고 성균관에 들어온 김윤희와의 로맨스로 인기를 끌었지만, 이에 못지않게 조연 캐릭터였던 성균관 유생 구용하와 문재신 남남 커플도 브로맨스로 인기를 모았다. 최근 인기리에 종용된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도 남장 여자와 브로맨스가 함께 보여주며 인기를 끈 사례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조선시대 왕세자가 남장 여자 내시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로, 왕세자 이영과 남장 여자 홍라온의 로맨스가 큰 축을 이룬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그의 친구이자 별감인 김병언과 왕세자 이영의 브로맨스가 큰 사랑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남장 여자+브로맨스가 결합되는 경우, 대게 여자 주인공이 남성 중심의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혹은 피치 못할 상황으로) 남장을 하기 때문에, 남성들, 그것도 미형의 남성들로 가득한 공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남자 할렘 속에서 여자 주인공은 미형의 남성들과 다양한 삼각관계를 이루게 된다. 사실 다양한 취향의 여러 명의 남성에게 동시에 사랑을 받는다는 이 구조는 알다시피 여성의 판타지를 채워주는 전형적인 로맨스 구조이다. 그러나 브로맨스를 즐기는 여성독자들은 그 안에서 이성 간의 로맨스가 아닌 남성들 간의 브로맨스를 읽어내는 것이다. 이때 여자 주인공은 남남 커플의 브로맨스를 방해하는 사랑의 장애물이거나 들러리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처럼 브로맨스는 여성독자들에 의해 발견되고 향유되는 수용 미학의 범주에 들어간다. 창작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독자에 의해 발견되고 해석되며, 그들만의 유희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유희는 팬덤 문화를 더욱 곤고하게 하며, 높은 시청률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인지 과거에는 브로맨스 찾기 놀이가 소수의 여성 독자에 의해 음밀히 행해졌다면, 최근에는 창작자에 의해 매우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브로맨스 요소가 첨가되는 경향을 보인다. 표면상으로는 이성 간의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동시에 소위 브로맨스 ‘떡밥’을 한 켜 아래 숨겨 놓는 것이다.(브로맨스 요소 넣기는 브로맨스로 유명한 외국 드라마를 보고 자라, 그에 익숙한 작가군에 의해 의도적으로 창작된다고 추측된다.) 이는 이성 간의 로맨스로 일반 대중을 어필하고, 브로맨스 요소로 드라마 팬덤을 공고히 함으로써 시청률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나 브로맨스에도 안전망은 존재한다. ‘동성애는 아니지만, 동성애가 의심되는 진한 감정이나 우정’이라는 미묘한 지점과, 소수의 여성 독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망상 놀이’라는 안정망이 브로맨스를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동성애는 안 되지만, ‘브로맨스’는 괜찮다?
△ <그림14> 영화 <아가씨>
지금의 동성애 유행을 있게 한 BL물로 다시 돌아가 보자. 한국 BL물은 90년대 후반 일본 BL물(또는 야오이)이 코믹월드 같은 아마추어 동인계에 알려지면서 퍼져 나갔다. BL물의 독자들은 단순히 독자에만 머물지 않고, 창작 BL물, 기존 창작물 BL 패러디 외에도 아이돌 가수들을 소재로 한 동성애 팬픽, 팬아트 등 2차 창작물을 만들어가며 확장해 갔다. 이처럼 BL이란 장르는 단순히 소비되기만 하는 장르가 아니라, 강력하고 충성스러우며 능동적인 독자들에 의해 구축된 팬덤 문화 중 하나이다. 뇌가 썩었다는 자조와 달리, 이들 팬덤 문화는 단순한 망상 놀이를 넘어, 남성의 신체를 시각화하고 기존 성 권력 담론을 뒤엎는 전복의 힘을 내포해 왔다. 최근 화제가 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서 동성애는 기존 성 권력에 대한 비판과 전복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BL물의 동성애 소재와 팬덤 문화가 남장 여자, 브로맨스라는 이름으로 대중문화 속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보여주는 동성애적 요소가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낮추고, 기존 성 권력 담론에 도전하고 있는가?
앞에서 언급했듯, 남장 여자 드라마에서 동성애는 이성애를 방해하는 일시적인 장애물이며, 여자에 대한 남자의 순수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쓰인다. 그러기에 남자 주인공의 동성애에 대한 괴로움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되며, 동성애는 극적 재미를 주기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 결국 남장 여자라는 동성애적 요소는 기존 이성애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활용될 뿐인 것이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브로맨스도 붐도 비슷하다. ‘동성애는 아니지만, 동성애에 가까운’이라는 아슬아슬한 경계가 독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성 간의 로맨스 속에 살짝 브로맨스를 숨겨 놓음으로써, 소수의 시청자들에게 숨은 그림을 찾을 때와 같은 즐거움과 쾌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브로맨스를 즐기는 독자들은 표면상의 텍스트 외에 숨겨진 텍스트를 재해석하며, 자신들만의 유희를 즐기게 된다. 드라마 속 남남 커플이 브로맨스여도 괜찮은 이유는 그들이 ‘동성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성애를 만든 것은 독자들의 상상 속일 뿐, 그들은 여전히 드라마 속에서 진한 동료애와 우정을 나눈다. 그러기에 실제 동성애는 안 되지만, 브로맨스는 괜찮은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 아닌 망상 속에서만 존재하니까. 최근 예능에서 유행어처럼 쓰이는 브로맨스 또한 같은 맥락상에 있다. 출연자들이 동성애자들이 아니기에 웃고 즐길 수 있다.
만약 브로맨스 남남 커플이 극 중에서 실제 키스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망상은 깨지고 현실이 남을 것이다. 망상이 깨지는 순간, <인생은 아름다워>의 동성 커플처럼 동성애가 주는 위화감과 불편함, 혐오가 자리한다. 예능 프로그램에 실제 동성애자 연예인이 출연해 이성애자 남성에게 동성애적 제스처를 취했을 때,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거나 상대방이 정색하는 것을 우리는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결국 남장 여자 소재 드라마나 브로맨스 같은 동성애 요소가 대중문화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이성애라는 안전한 테두리 안에 있어서이다.
결국 최근 유행하는 대중문화 속 동성애 코드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성적 소수자들의 삶은 외면한 체, 이성애라는 보수적 가치를 확장시키고, 동성애를 왜곡시키며 가벼운 농담거리로 만든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성 소수자들에 대한 담론이 아니라, 높은 시청률뿐인 것이다.

건강한 사회는 다양한 문화 예술과 사람들이 서로 배려하며 공존하는 사회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소외 받아 오던 성 소수자들의 문화가 대중문화 수면 위로 떠올라 담론을 형성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대중문화 속 동성애 코드가 과연 성 소수자들의 문화를 대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겉으로는 동성애를 표방하는 척 하면서 성 소수자를 희화화하고 동성애를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지, 역으로 그것이 기존의 보수적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또 시청률을 위한 상업적 수단으로 동성애가 이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멈춰 서서 질문을 던져볼 때이다.
필진이미지

백은지

서원대학교 웹툰콘텐츠학과 교수
만화 비평가
만화 스토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