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미디어가 나올 때마다 제도가 바로 정비되지는 않는다. 대부분 새로운 미디어가 확산되거나 정착된 후에 법적으로 규정되고, 제도가 정비된다. 웹툰도 마찬가지다. 웹툰은 일반적으로 디지털화되어 인터넷에서 감상할 수 있는 만화를 의미하지만 단순히 디지털로 전환되어 인터넷을 통해 유통, 소비되는 만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웹툰은 21세기 들어 창작, 제작, 유통, 소비의 전체 과정에서 ‘웹’과 ‘디지털’의 특성이 개입하여 독특한 생태계의 특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포털을 통해 무료로 서비스된 웹툰은 ‘트래픽’을 기반으로 발전했다. 이를 위해 포털 사용자의 여러 취향에 맞춤해 요일별로 다양한 웹툰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아마추어 연재 게시판을 통한 신인 작가 등단 시스템이나 댓글, 별점 평가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이런 여러 요소들을 통해 웹툰은 독자들과 강력한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을 형성하며 발전했다.
기존 미디어(출판만화)의 경우 독자들이 콘텐츠 제공자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일방향적 커뮤니케이션인 데 비해, 웹툰은 댓글이나 공유를 통해 독자와 독자(User to User), 독자들이 별점이나 댓글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순위를 결정하는 독자와 시스템(User to System), 신인 작가를 독자의 참여를 통해 발굴하고, 댓글을 통해 심지어 콘텐츠의 전개방향이 바뀌는 등 독자와 콘텐츠(User to Contents)의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에 기반한 기존 미디어 출판만화와 전혀 다른 상호작용성을 보여주는 뉴미디어 웹툰은 그에 맞는 제도가 필요하지만, 제도는 뉴미디어의 등장과 정착을 따라오지 못했다.
2009년 11월 28일 아이폰이 한국에 출시된 후 2010년 스마트폰 보급률이 급증하였다. 2011년 스마트폰 이용자 수가 1,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일상적으로 가볍게 소비하는 모바일용 콘텐츠(흔히 스낵컬처라 부르는)로 웹툰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2012년 늘어난 트래픽을 기반으로 네이버와 다음 웹툰은 완결작 유료화, 미리보기 유료화와 같은 새로운 정책을 도입했다. 2013년 4월 네이버 웹툰은 PPS(Page Profit Share) 프로그램을 도입해 웹툰 연재 페이지에 광고를 도입했다. (1) 웹툰 소비자의 확대 (2) 유료화 성공은 독자적인 웹툰 플랫폼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6월 7일 웹툰플랫폼 레진코믹스(www.lezhin.com, (주)레진엔터테인먼트)가 서비스를 시작했다. 레진코믹스는 네이버와 다음의 성과를 이어받았으며 동시에 포털의 웹툰 서비스가 보여주지 못했던 웹툰을 연재하며 성공했다.
레진코믹스는 2014년 6월 17일 서비스 1주년을 기념해 1주년 기념데이터를 공개했는데, 네온비의 <나쁜상사>가 누적매출 2억 8천만 원을 올렸다고 밝혔다. <나쁜상사>는 기존 포털의 웹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성인용 웹툰이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볼 수 없었던 성인용 웹툰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구체적 수치를 통해 확인되었다. <나쁜상사>로 대표되는 초기 레진코믹스의 성공은 (1) 유료웹툰플랫폼의 성공 가능성과 (2) 유료웹툰플랫폼의 비즈니스모델로 성인용 웹툰(만화)의 유효성을 확인시켜주었다. 레진코믹스는 2014년 하반기에 제1회 세계만화공모전을 시행했다. 공모전은 플랫폼이 차후 어느 방향에 집중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제1회 세계만화공모전은 레진코믹스의 사업방향이 해외진출이라는 걸 짐작하게 해 준다. 2015년에는 세계만화공모전과 함께 별도로 ‘어른을 위한 만화 Big4 공모전’을 시행했다. Big4는 남성향, 여성향 성인만화와 BL(Boys Love)과 GL(Girls Love)의 4개 분야로, 제목처럼 성인용 웹툰이다. 2015년 이후 레진코믹스는 수익이 발생하는 성인용 웹툰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반증하는 공모전이었다.
2014년 1월 성인용 웹툰 플랫폼 탑툰(http://www.toptoon.com, (주)탑코믹스)이 서비스를 시작한다. 출발부터 성인용 웹툰으로 차별화한 탑툰은 2014년 83억 5천 7백만 원의 매출을 올리고(당기 순이익은 5억 1천 6백만 원 적자), 2015년에는 199억 6천 100만 원의 매출에 2억 3백만 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주)탑코믹스의 김춘곤 대표는 2016년 4월 <주간인물>과의 인터뷰에서 탑툰의 2014년 매출의 90%가 성인용 웹툰에서 나왔고, 2015년에는 70%가 성인용 웹툰에서 나왔다고 밝혔다.1) 탑툰은 2014년 성인용 웹툰의 매출은 75억 2천 1백만 원, 2015년 139억 7천 2백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2) 2014년 대비 2015년 탑툰의 유료 수익 중 성인용 웹툰이 차지하는 비율은 90%에서 70%로 줄어들었지만, 성인용 웹툰이 올린 수익은 75억에서 139억으로 증대했다.
레진코믹스의 행보나 탑툰의 성공은 성인용 웹툰의 창작, 유통의 확대로 이어졌다. 작가 개인은 물론 성인용 웹툰을 창작하는 스튜디오가 등장했고, 일본 성인만화 수입 역시 확대되었다. 레진코믹스의 서비스 개시 이전 찾기 힘들었던 성인용 웹툰이 급속도로 늘어난 것이다. 국내 웹툰이건, 일본 만화이건 성인용 웹툰의 총량이 늘어나며 단기간의 수익을 노린 작품들이 늘어나고, 표현의 수위도 올라갔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웹툰 플랫폼과 플랫폼에 연재되는 웹툰에 대한 법적 규정은 미비했고, 표현의 수위나 유통방식을 규정한 제도도 명확하지 않았다.
출판만화는 오랜 세월 동안 법적 규제를 받아왔다. 법적 규제는 사전규제(ex-ante regulation)와 사후규제(ex-post regulation)로 나뉜다. 만화는 출간하기 전 심의를 받는 사전규제를 받아오다가 현재는 출간된 작품을 대상으로 간행물윤리위원회(이하 간윤)에서 청소년유해성 여부를 판단하는 사후규제가 적용되고 있다.3) 반면 ‘웹툰’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는 법적으로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어, 어느 기관에서 사후규제를 담당해야 하는지 모호하다.
웹툰은 만화이며, 구체적으로는 디지털 만화다.(「만화진흥에관한법률」)4) 만화는 간행물로 종이나 전자적 매체인 전자책이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5) 간행물에 속하는 웹툰은 발행 이후 간윤이 청소년유해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출판문화산업진흥법」, 「청소년보호법」)6) 그러나 웹툰을 처음 규제한 것은 간윤이 아니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였다. 2012년 2월 7일 방심위는 23개 웹툰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하는데 따른 의견서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네이버, 다음, 야후에 보냈다. 당시 23개 웹툰 중 15개 작품이 19세 이상 성인들이 볼 수 있도록 제공된 작품들이었다. 당시 제도적 쟁점 중 하나는 심의권한의 문제였다. 만화계는 웹툰은 만화이므로 간윤이 유해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고, 방심위는 웹툰도 “전기통신회선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7) 이기 때문에 인터넷 ‘정보’인 웹툰을 심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터넷에 제공되는 여러 ‘정보’ 중 ‘매체’에 해당하는 영화, 비디오, 게임, 간행물 등은 독립된 ‘매체’로 별도의 심의기관이 심의를 담당한다.8)
다행히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2년 4월 9일 (사)한국만화가협회(이하 만화가협회)를 대표기관으로 방심위와 ‘자율규제협력에 대한 업무협약’(이하 자율규제업무협약)이 체결되었다. (1)웹툰의 자율규제 체계 마련을 위한 상호 협력 (2)민원 등 불만이 제기된 사항에 대해 정보 공유 및 자율조치 등을 위한 협의 (3)웹툰을 활용한 어린이, 청소년의 올바른 인터넷 이용 환경 조성 홍보 등 사업 협력 (4)기타 양 기관 간 협력을 위해 필요한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9) 만화가협회와 방심위가 자율규제업무협약을 맺은 후 방심위에 접수된 민원은 만화가협회로 보내고, 만화가협회는 만화문화연구소를 통해 관련 전문가에게 감수를 받으며 플랫폼의 의견을 청취해 개별 사안에 대한 대응을 방심위에 통보한다. 자율규제 체계를 체계화하기 위해 관련 연구10)와 업계 간담회도 시행되었으며, 정부와 법제화 논의도 진행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율규제는 행위 주체나 진행 방법 등이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디지털만화 심의제도 개선방안 연구보고서>(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자율규제사례로 애플 앱 스토어 등급분류 시스템, 범유럽게임정보(Pan European Game Information, 이하 PEGI)등급시스템을 소개했다. 애플 앱스토어는 콘텐츠의 내용을 10개 항목으로 구분한 후 각 항목에 대한 정도 차이를 표시하여 제공하면 이 둘의 조합에 따라 콘텐츠의 연령등급이 결정되는 시스템이다. PEGI는 유럽 게임산업체의 자율규제기구다. PEGI 등급 시스템은 사업자가 직접 ‘유럽 자발적 연령등급평가 양식’을 온라인에서 작성해 제출하면 게임의 등급이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시스템이다. PEGI 등급시스템은 연령 등급과 내용을 설명하는 기술어가 표기된다. 애플 앱스토어의 경우 유통되는 모든 앱에 대해서 국가기관이 아닌 플랫폼 사업자가 주체가 되어 제작사들과 함께 유통을 규율한다. 게임의 경우 등급부여를 위한 기구가 운영되고, 출시 전 시스템을 통해 등급을 산출하고, 이를 검증받는 시스템으로 되어있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자율규제는 크게 (1) 콘텐츠 제공자에 의한 자율규제(애플 앱스토어의 방식) (2) 콘텐츠 제공자의 자율규제를 기반으로 이를 전문기구가 검토하는 형식의 자율규제(PEGI 등급 시스템의 방식)로 나눌 수 있다. 인터넷 환경에서 법적 규제, 즉 강제적 접근 금지가 효율적이지 않다는 건 보편적 합의다. 우리나라에서도 2002년 헌법재판소는 결정(헌법재판소 2002.6.27. 99헌마480, 전기통신사업법 53조 등 위헌확인)으로 인터넷과 방송과의 매체적 차이를 인정했다. 인터넷은 공적 책임과 공익성이 강조는 공중파와 달리 “표현의 쌍방향성이 보장되며, 그 이용에 적극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특성”이 있어 “질서 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표현매체에 관한 기술의 발달은 표현의 자유의 장을 넓히고 질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으므로 계속 변화하는 이 분야에서 규제의 수단 또한 헌법의 틀 내에서 다채롭고 새롭게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11)
웹툰은 디지털 파일 형태로 인터넷을 통해 유통된다. ‘디지털’과 ‘인터넷’이라는 웹툰의 핵심적인 특징은 전통적 규제를 무력화시킨다.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작품 전체를 전부 규제하기에도 불가능하고, 역설적으로 불법콘텐츠가 아니라 합법콘텐츠만 규제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가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 또는 시장의 투명성과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 행하는 자정노력”12)인 자율규제가 법적 규제의 비효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험성을 막는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012년 4월 자율규제업무협약 이후 웹툰은 자율규제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것처럼 법제화는 진행되지 않았고, 구체적인 자율규제 체계도 정비되지 않았으며, 성인용 웹툰의 기준도 플랫폼에 따라 다르며, 공개되지도 않고 있다. 자율규제라는 원칙 아래서 사회적 합의를 지켜가고 있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한 토태고, 불안한 토대는 언제라도 흔들릴 수 있다. 2015년 3월 24일 방심위는 ‘음란정보’를 유통했다는 이유로 레진코믹스 전체를 차단했다. 자율규제업무협약에 의해 자율규제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지만, 개별 정보(일본 만화)가 문제가 된다고, 개별 정보의 집합(레진코믹스) 전체를 차단한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할 수 있는 행위였다.13) 방심위는 3시간 만에 차단 보류 조치를 내렸고, 26일 제23차 통신심의소위원회를 통해 레진코믹스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웹툰은 문제가 없고, 일본만화의 경우 음란물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시정요구철회’를 의결했다. 방심위 관계자는 2015년 3월 31일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성인인증제도를 실시하는 레진코믹스를 차단시킨 이유에 대해 두 가지 문제를 원인으로 꼽았다.
“문제가 두 가지 있습니다. 성인인증은 기술적인 측면이고 저희는 법적인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일단 성인 콘텐츠(청년물)의 경우 ‘만 19세 미만 이용불가’ 표시, 흔히 말하는 19세 딱지가 방통심의위의 고시에 따라 하얀 바탕의 화면 전체에 걸쳐 표시돼 청소년 접근을 차단해야 합니다. 레진코믹스의 성인 웹툰을 보면 그런 표시가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음란물입니다. 음란물의 경우, 수위가 높아 성인도 이용할 수 없는 콘텐츠인데 이것이 유통되고 있었습니다.”14)
첫 번째, 제기한 성인인증표시는 인터넷 성인 사이트에 강제되는 방식으로 사이트에 접속하면 19금 마크가 보이고 성인인증을 거쳐야만 전체화면을 볼 수 있게 된다. 현재 존재하는 인터넷 규제에 대한 법적인 기준을 적용하면 전체 관람가 웹툰과 성인용 웹툰이 동시에 서비스되는 웹툰 플랫폼은 운영이 불가능해 진다. 성인용 웹툰이 있으면 청소년 독자들은 웹툰 플랫폼에 접급이 원천적으로 차단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인용 콘텐츠에 대한 법적 규정 문제가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19세 미만 이용불가’는 성인들을 위한 콘텐츠로 생각한다. 하지만 청소년보호법에 의하면 ‘19세 미만 이용불가’는 ‘청소년유해매체’다.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된 1997년 당시 한국에는 성인용 만화잡지 6개15)가 발행되고 있었다. 성인용 만화잡지는 청소년에게 유해한 만화들을 수록한 잡지가 아니라 어른들이 감상하기에 적합한 만화를 수록한 잡지다. 하지만 청소년보호법 이후 성인만화잡지는 청소년유해매체가 되었다. ‘19세미만구독불가’라는 경고가 붙고, 비닐로 포장한 다음 격리된 장소에서 팔아야 했다. 서점주인들은 성인만화판매를 거부했고, 판로가 사라진 성인만화잡지는 모두 폐간되었다. 당시 성인만화 잡지에는 이현세, 이두호, 허영만, 김동화, 황미나, 김혜린, 신일숙, 박흥용, 윤태호, 양영순 같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연재되고 있었다.
두 번째, 음란물의 범주에 대한 문제다. 음란물은 성인용으로도 유통될 수 없는 콘텐츠를 뜻한다. 음란의 개념에 대해서 대법원은 ‘대법원 2008.3.13. 선고2006도3558 판결’을 통해 “사회 통념상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으로서, 표현물을 전체적으로 관찰·평가해 볼 때 단순히 저속하다거나 문란한 느낌을 준다는 정도를 넘어서서 존중·보호되어야 할 인격을 갖춘 존재인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방법에 의하여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한 것으로서, 사회 통념에 비추어 전적으로 또는 지배적으로 성적 흥미에만 호소하고 하등의 문학적·예술적·사상적·과학적·의학적·교육적 가치를 지니지 아니하는 것을 뜻한다”는 정의와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이후 ‘대법원 2008.4.11. 선고 2008도254판결’을 통해 “만화에서 남녀가 서로 애무하거나 성교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더라도 남녀의 성기나 음모의 직접적인 노출이 전혀 없는 경우 노골적인 묘사라고 볼 수 없으므로 음란물이 아니다”고 밝혔다. 느리지만 조금씩 표현의 폭이 넓어지고 있고, 음란물에 대한 판정을 신중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방심위가 운영하는 세이프넷의 기준은 조금 더 엄격하다. 세이프넷은 노출, 성행위, 폭력, 언어의 4개 항목은 0-4등급까지 5개 구간으로 운영되고, ‘마약사용조장/무기사용조장/도박’과 ‘음주조장, 흡연조장’은 ‘있음’과 ‘없음’ 2개 구간으로 운영된다.16)

세이프넷 등급기준에 의하면, 성기가 노출되면 등급을 못받고 음란물이 된다. 성행위 기준도 ‘노골적인 / 노골적이지 않은’으로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 노골적인 성행위를 표현하면, 성기가 노출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음란물이다. ‘노골적인 성행위’의 의미와 ‘노골적이지 않은 성행위’의 의미는 무엇일까?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하는 행위일 텐데 현재 제시된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이럴 경우 현재 제도에 의해 사후 청소년 유해성을 판단하는 사람들에 따라 다른 평가가 나올 것이다.17)
폭력은 4등급까지 19세 이상 볼 수 있는데, 4등급의 기준은 ‘잔인한 살해’다. 사실적인 작품에서 잔인한 살해는 19세 등급이 타당하지만, 예를 들어 <드래곤볼>의 경우는 어떨까? 세이프넷 등급기준에 따르면 폭력항목에서 4등급을 받고 19금 만화가 된다. 하지만 <드래곤볼>이 지닌 판타지한 세계관과 팬시한 격투물은 현실적인 액션만화와 전혀 다른 폭력성을 보여준다.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드래곤볼>은 전연령이 관람 가능한 만화였다. 학부모의 공개적 청원과 고발로 문제가 되었던 <후레자식>(김칸비 글, 황영찬 그림)도 마찬가지다. 고소인은 <후레자식>을 “목적없이 살인을 하는 살인자가 아버지인데, 자식에게 살인을 가르치고 함께”하는 작품으로 요약했다. 전체 92화 중 도입부 14화까지 내용 중 몇 장면을 캡처해 잔혹성, 여성비하, 노인멸시, 장기밀매, 원조교제에 대한 증거로 첨부했다.<후레자식>은 사이코패스 살인자 아버지가 자식에게 살인을 가르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아버지의 악행에 동참하던 주인공 선우진이 17세가 되어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게 되고, 아버지에게서 도망치는 이야기다. 절대악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17세 청소년의 이야기다. 장르의 특징상 긴장감 넘치는 전개가 인상적이지만, 노골적인 살해장면묘사는 일부러 피하고 있다. ‘살해’가 나오지만, ‘살해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이처럼 음란성이나 폭력성의 판단 기준은 상대적이고, 때론 자의적이다. 더군다나 사후심의기관의 판단 기준도 기관마다 다르다. 레진코믹스 차단사건 당시 문제가 되었던 8 작품 중 레진코믹스는 <진짜로 있었던 H한 체험담>, <신 진짜로 있었던 H한 체험담>, <페티시즘의 구멍> 세 작품의 서비스를 중단했다. 중단했던 <페티시즘의 구멍>(야마구치 마사카즈)은 당시도, 그리고 2016년 11월 현재도 e북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e북으로 서비스된다는 사실은 간윤의 사후심의에서는 문제가 없었다는 말이다. 방심위와 간윤이 각각 다른 기준으로 음란성을 판단한 셈이다. 이런 혼란스러움은 작가나 플랫폼의 입장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일이다.
2014~2016년 다양한 웹툰 플랫폼이 등장했다. 레진과 탑툰의 사례에서 보듯 성인용 웹툰은 웹툰 플랫폼의 주요한 수익창출 창구다. 그런데 법적 기준에 의하면 성인용은 청소년유해매체가 되고, 음란성과 폭력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자의적이며, 기준이 동일하지도 않다. 새롭게 확산되는 웹툰 산업의 안정화를 위해, 또 청소년 보호라는 사회적 대의를 지키기 위해서도 개선방안이 필요하다.
첫 번째, 자율규제의 법제화가 필요하다. 법제화의 방안은 크게 두 가지로 진행될 것이다. 먼저 자율규제의 법적 명문화가 필요하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만화진흥법’에 자율규제대상을 구체적으로 명문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만화와 웹툰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규명해야 한다. 현재 법적 규정을 기반으로 출판만화와 e북(전자책, 전자출판물)은 지금처럼 간윤이 사후 청소년 유해성 여부를 판단하면 된다. 웹툰은 e북의 형태가 아닌 디지털파일 형태로 가공·처리하고 이를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이용자에게 제공(연재)되는 만화(웹툰)로 규정하여 별도로 자율규제의 대상으로 하면 된다. 또한 자율규제 사후관리기관 지정도 필요하다. 자율규제에 대한 명문화만 진행할 경우 청소년보호위원회의 규제 권한이 여전히 중복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사후관리기관을 통해 규제를 최종화 시켜야 한다. 더불어 사후관리기관은 만화가, 사업자, 독자,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자율규제기준을 협의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야 한다. 자율규제실시 후 이를 확인하는 내용을 하며 이의신청민원이 있을 경우 이를 판단해야 한다.
자율규제의 법제화에 대해 만화계 내부에서는 이견도 많다. 특히 오래도록 심의에 고통당한 원로, 중견 작가들은 심의 혹은 규제의 완전철폐를 주장한다. 만화가와 사업자가 스스로 행하는 행위에 왜 제도가 뒤따르고, 사후관리기관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황승흠의 의견처럼18) 자율규제는 제도와 무관할 수 없다. 제도와 무관하게 자율규제가 시행되면 언제라도 제도에 의해 자율규제의 틀이 깨질 수 있다. 때문에 자율규제는 타율적 규제에서 벗어나 당사자들이 해결의 주체가 되는 방식이다. 자율규제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공격(<후레자식>고발과 같은)에 방어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법제화나 사후관리기관의 지정이 진행되어야 한다. 자율규제의 법제화는 창작자와 사업자의 자율규제 역량을 강화하고, 기반을 조성하며, 안정화시키는 목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두 번째, 웹툰 자율규제 기준을 철저하고 정교하게 연구해야 한다. 자율규제 기준은 만화 표현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설계되어야 한다. 같은 표현이라도 작화나 연출 스타일에 따라 표현의 등급이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위해 기존 플랫폼의 표현수위 혹은 등급에 대한 연구와 만화 표현의 특수성을 반영해 등급 기준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만화의 등급은 성인용과 전체연령관람가의 2단계였다. 웹툰시장이 확대되며 좀 더 다양하고 세분화된 연령별 등급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성인용 웹툰이 청소년유해물이 되는 법적용의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웹툰의 연령별 등급을 영화처럼 19세에서 18세로 조정할 필요도 있다.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이 실질적으로는 성인관람가 등급으로 활용되지만, 청소년보호법 상 19세 조항을 벗어나기 때문에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되는 일은 없게 된다.

△ 지난 11월 3일 만화의 날 행사장에서 진행된 자율규제위원회 설립을 위한 협약식
자율규제는 원칙적으로 창작자와 사업자가 담당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기준을 연구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기구의 설립도 필요하다. 2016년 11월 3일 만화의 날에 만화가협회는 네이버(네이버웹툰), 포도트리 CIC 다음웹툰컴퍼니(다음웹툰), KT(케이툰), NHN엔터테인먼트(코미코)와 자율규제위원회 설립에 대한 업무협약이 체결되었다. 업무협약을 통해 만화가협회와 대형 웹툰 서비스 업체는 (1) 교육, 청소년, 법, 만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율규제위원회를 구성하며, (2) 자율규제의 구체적 방법과 기준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며 (3) 자율규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주요 플랫폼과 업무협약을 맺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협약을 통해 민간에서 먼저 큰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자율규제는 민간에서 전담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의 자율규제에 대해 김유승은 ‘삼발이 모델’을 제시했다.19)정부는 불법 정보에 대해서는 법적 규제를 책임지고, 자율규제에 대해서는 법제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 정부와 업무협약을 통해 참여하는 민간(만화가와 사업자)은 자율규제의 근거를 통해 자율규제를 시행한다. 마지막으로 이용자 그룹은 정부와 민간을 모니터링하고 자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와 같은 삼각형을 통해 결론적으로 웹툰 이용자의 자율성과 권한이 강화되어야 한다. 또한 자율규제의 과정에서 불법적인 콘텐츠와 연령별로 유해한 콘텐츠는 구분이 되어야 한다. 불법 콘텐츠는 웹툰 플랫폼이 아니라 소셜미디어나 게시판 등에 불법적으로 제공되는 콘텐츠들이다. 표현의 문제에서 저작권 문제까지 다양한 범위에서 불법 콘텐츠는 정부에서 책임을 지고 규제해야 한다. 반면, 연령별로 유해한 콘텐츠는 사용자와 소비자의 선택의 문제다. 이를 위해 적절한 가이드가 제공되어야 한다.
법과 제도가 존재하는 한 규제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지금처럼 광범위한 인터넷 환경에서 담당기관도 불분명한 독점적 규제는 과정상, 기준상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규제의 혼란은 생태계의 가장 큰 불안 요소이다. 따라서 정부, 민간, 이용자그룹이 각자 역할을 담당하는 협력적 자율규제가 시급히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주석
1. “(주)탑코믹스가 서비스를 처음 시작한 2014년, 90%의 매출은 성인 웹툰에서 창출되었습니다. 하지만 작년(2015년)에는 이 비율이 70%까지 떨어졌으며 나머지는 비성인용 웹툰에서 매출을 올리고 있고 이 차이는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http://www.weeklypeople.co.kr/detail.php?number=2246)
2. 잡코리아 (http://www.jobkorea.co.kr/Recruit/Co_Read/C/topcomics1)
3. 1996년 10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상영전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만 한다는 ‘영화법 제12조 등에 대한 위헌제청’을 헌법(憲法) 제21조 제1항이 금지한 사전검열제도를 채택한 것이므로 위헌이라 결정했다. 이후 영화뿐만 아니라 만화의 사전심의도 폐지되었다.
4. 제2조 제1호에서 “만화란 하나 또는 둘 이상의 구획된 공간에 실물 또는 상상의 세계를 가공하여 그림 또는 그림 및 문자를 통하여 표현한 저작물로서 종이 등 유형물에 그려지거나 디스크 등 디지털매체에 담긴 것”이라 한다. 웹툰은 만화를 ‘디지털 매체’인 ‘인터넷’을 통해 유통, 소비하는 것이니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이 정의한 만화에 해당한다. 또한 제2조 제5호에서 추가적으로 디지털 만화에 대해 “만화를 디지털파일 형태로 가공?처리하고 이를 디스크 등의 디지털매체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이용자에게 제공되는 만화”라 정의한다
5.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2조 제3호는 간행물에 대한 규정이 있다. “종이나 전자적 매체에 실어 읽거나 보거나 들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제4호에서는 전자출판물에 대해 “법에 따라 신고한 출판사가 저작물 등이 내용을 전자적 매체에 실어 이용자가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를 이용하여 그 내용을 읽거나 보거나 들을 수 있게 발행한 전자책 등의 간행물”이라 정의한다.
6. 간행물인 만화는 간윤이 청소년유해매체여부를 출간 후에 판단한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18조 제1호에서 간윤의 기능 중 하나로 “소설, 만화, 사진집 및 화보집과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간행물의 유해성 심의”를 규정했다.
7.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4호
8. “‘정보’는 지나치게 일반적인 개념이므로 ‘정보’ 중에서 ‘매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영화, 비디오물, 게임물, 간행물 등은 별도의 심의기관이 심의할 대상이라고 해야 한다. 이는 마치 온라인게임이나 디지털영화의 경우와 같이 그것이 비록 정보의 형태를 갖는다 하더라도 별도의 심의기관의 관할이 명확하여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 권한을 갖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김창남 외 <웹툰이 청소년 태도에 미치는 영향 및 규제에 대한 연구>, 2012, 한국콘텐츠진흥원, p.202.)
9. <2015 만화산업백서>, 한국콘텐츠진흥원, 2016, p.120.
10. 한국만화가협회, <디지털만화 심의제도 개선방안 연구보고서>, 한국콘텐츠진흥원, 2014.
11. 인터넷은 공중파방송과 달리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이다. 공중파방송은 전파자원의 희소성, 방송의 침투성, 정보수용자측의 통제능력의 결여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공적 책임과 공익성이 강조되어, 인쇄매체에서는 볼 수 없는 강한 규제조치가 정당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은 위와 같은 방송의 특성이 없으며, 오히려 진입장벽이 낮고, 표현의 쌍방향성이 보장되며, 그 이용에 적극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특성을 지닌다.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 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표현매체에 관한 기술의 발달은 표현의 자유의 장을 넓히고 질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으므로 계속 변화하는 이 분야에서 규제의 수단 또한 헌법의 틀 내에서 다채롭고 새롭게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헌법재판소 2002.6.27. 99헌마480, 전기통신사업법 53조 등 위헌확인)
12. 이민영, 「인터넷 자율규제의 법적 의의」, 『저스티스』, 2014.4, 한국법학원, p.138.
13. 황성기, <레진코믹스 접속차단 사태와 국내 음란물 규제의 법적 쟁점>, 『KISO저널』, 2015년 Vol. 19. p.8.
14. http://www.nocutnews.co.kr/news/4390501
15. 『미스터블루』, 『트웬티세븐』, 『빅점프』 3개의 성인 격주간지와 『화이트』, 『마인』, 『나인』의 3개 성인 순정월간지가 있었다.
16. http://www.safenet.ne.kr/dstandard.do
17. 방통심의위는 관행적으로 ‘성행위 묘사’ 혹은 ‘성기 노출’이 있는 경우에는 음란성 정보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성행위를 묘사했다거나, 성기노출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음란물로 분류하는 것은 위 판례상의 음란 기준에 따르지 않고 더 넓게 음란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심의기준에 따른다면 우리가 TV에서 볼 수 있는 영화의 장면들도 인터넷에서는 아예 차단되어야 하는 것이다.(오픈넷 「레진코믹스 차단 사건으로 드러난 방통심의위 통신심의 문제의 모든 것」, http://opennet.or.kr/8724)
18. 황승흠, <인터넷 자율규제와 법>,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19. 김유승, 「인터넷 공간의 자유와 규제」,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보 20호』, 2006, pp.105-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