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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만화와 결혼 : (1)그들이 결혼 할때까지
혼인은 두 사람이 만드는 드라마다. 그것은 피와 뼈가 튀는 전쟁을 눈치와 신경으로 치러내는 예쁜 동시에 환장하는 인생의 이벤트이며 프로리그의 본격 개막을 알리는 신호다. 만화에서조차 ‘그건 환상’이라고 일갈하는 결혼. 여자의 경우...
2008-06-03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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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Comic & Culture 14 ] 만화와 결혼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벌거벗었던 나무들이 초록색 옷을 입는 이 계절. 수 많은 선남 선녀들이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예식장으로 손을 맞잡고 들어갑니다. 누군가 연애는 환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라고 했던가요? 그래서 그런지 많은 매체들에서 결혼생활의 허실을 다양하게 지적하고 있는데, 과연 만화는 어떨까요? 순정만화로 대표되는 남성에 대한 환상, 그리고 현실속에서 전혀 있을 수 없는 글래머 여성들이 나오는 여성에 대한 환상으로 어우러진 만화. 그 속에서 그려지는 결혼은 어떨지 이번 호에서 살펴보았습니다. (편집부)
혼인은 두 사람이 만드는 드라마다. 그것은 피와 뼈가 튀는 전쟁을 눈치와 신경으로 치러내는 예쁜 동시에 환장하는 인생의 이벤트이며 프로리그의 본격 개막을 알리는 신호다.
만화에서조차 ‘그건 환상’이라고 일갈하는 결혼. 여자의 경우 펼쳐진 잔디밭 위에 날씬한 몸매의 신부가 원피스를 입고 똥 배 없는 신랑의 품에 안겨있고 테이블 위에 커피 잔이 나란히 있는 장면이고, 남자의 경우 앳되고도 섹시한 신부가 앞치마만을 두르고 퇴근한 남편을 흥분시켜 그대로 침대로 가는 장면이다. 그런 장면이 종종 발견되기는 하지만 만화도 현실과 비현실은 안다.
<내가 결혼 할 때 까지>, 노란구미, 팝툰 연재
사실 부부가 되어 겪는 가치관 갈등은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신혼 집 벽지를 흰 색으로 할 지 분홍색으로 할 지 싸우거나, 한 쪽 안 나와 필요할 새 가스렌지 대신 모니터 큼직한 컴퓨터와 게임기를 사자고 갈등하는 것이다. (내가 결혼 할 때 까지, 노란구미, 팝툰 연재)
경험을 살뜰하게 이야기로 풀어내는 노란구미는 결혼 날짜를 잡는 문제부터, 식장 예약, 신혼집 마련, 결혼식 한복, (전통)결혼식 후 닭을 신부 친구에게 던지는 이벤트를 두고도 귀여운 전쟁을 벌이는 결혼준비 이야기를 그려 공감을 얻는다. 젊은 두 사람이라는 점 외에 여자가 일본 교포 3세라는 점, 웹툰 연재로 바쁜 만화가라는 점이 보통 한국 젊은이와는 다르다지만 두 사람의 결혼 다툼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아니 다른 점은 오히려 너무 소박하다는 데 있다. 예복 장만에 큰 맘을 먹고 인터넷 혼수 쇼핑에 열을 올리지만 무던한 남자친구와 결혼 얘기를 할 때 서운해 하는 아빠를 떠올리는 이 만화는 소소한 일상들을 세심하고 유쾌하게 매만지면서 공감을 얻어간다. 동글동글한 인물과 밝은 색감으로 그린 한복드레스 디자인처럼 눈의 즐거움도 한껏 배가시키면서.
<내가 결혼 할 때 까지>의 주인공들인 ‘서른 즈음’인 이들은 결혼이란 그저 아름답기만 한 동화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20대 이후 사람들은 결코 (결혼식이)달콤한 행사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인사하느라 정신없는 신랑과 신부를 보여준다.
이처럼 결혼식이라는 지인들의 행사서 보이는 다양한 해프닝도 만화의 단골 소재다. 이를테면 결혼식을 위해 새 옷을 장만하고 가식 웃음을 띠면서 “축하한다 얘, 7년 열부 차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향해 가는 심정이 어떠니” 하면 역시 어색하게 웃으며 “운명적인 만남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니.” 하며 둘러대는, 친구가 아닌 ‘경쟁자’들의 얄미운 문답 같은 거 말이다. (체리체리 고고, 김진태) 하지만 그것은 또 무척 현실적이기도 하다.
<채널 어니언>, 신훈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꽃처럼 아름답지만, 그 몇 겹의 의상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운지 입어 본 사람만이, 또 한혜연의 만화 <금지된 사랑> 이 알고 있다. 참지 못하고 웨딩드레스 차림에 몰래 담배를 문 신부란 얼마나 특별하고 현실적인지. 드레스라는 겹으로 싸인 관습의 결혼은 여자에겐 그처럼 무겁고 고된 거라고 이 만화는 말한다.
그런데 자신의 일이 아니라 옆에서 바라본 결혼의 의미는 어떠할까? 인생의 또 다른 출발을 의미하는 ‘결혼’의 또 다른 뜻은 연애와 개인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공정한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한 ‘프로 인생’에 접어드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었다. <채널 어니언>(신훈, 태동출판사)의 “ Death & Rebirth는 연인으로서의 인생은 죽고 새 인생의 부활의 의미가 있다고 결혼을 평가한다. 사색적인 에세이툰이 보여준 이 해석은 재미있지만 다소 피상에 가깝다.
<비빔툰> 홍승우
“신혼 집 새 물건 사러 다니는 게 왜 힘들어요?”
혼인 준비하던 내게 후배가 물었던 질문이었다. 연령층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결혼에 대한 환상은 큰 게 보통이다. 그 반비례 좌표의 경계선 점 정도를 차지할 내 후배가 상상하는 결혼은 ”아침햇살을 받으며 눈을 뜨면 남편이 사알짝 키스를 해 주고, 갓 구운 토스트와 모카향 커피로 아침을 함께 아침을 먹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실은 ”남편 방귀소리에 깨어나면 위장 속까지 보이는 하품을 하면서 입 냄새가 키스를 해주고, 코 후빈 손으로 밥 집어먹는 큰 애와 밥 먹다 으끙하는 둘째 챙긴 후...“가 훨씬 사실에 가까운데. (비빔툰4, 홍승우, 문학과 지성)
그런 결혼에 이르는 과정과 결혼 후의 살림은 한국과 일본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케다 사토미의 <결혼 적령기>(서울문화사)의 키사라기는 은행에 다니던 직장인이었는데 25세가 된 자신을 타산, 타협, 타성의 3T인생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좋아하던 동창이 속도위반결혼을 해버린 것을 알고 서둘러 선을 본다. 공부만 하던 샌님인 코이치는 연애패턴이나 매너도 전혀 모르는 쑥맥이면서 정해진 규칙과 틀대로 사는 사람이다. 결혼하고 나서도 잔재미가 있을 리 만무하다. 더우기 지나치게 부지런한 시어머니에게 필요 이상으로 잘하려고 애 쓰는 고된 결혼생활을 해 나간다.
<결혼 적령기>이케다 사토미
초반에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야기를 비교적 현실적으로 다룬다 싶던 만화는, 곧 시집살이의 갈등도 섬세하지 못한 남편과의 건조한 결혼생활도 따뜻한 남편의 말과 배려로 한 순간 화사한 천국으로 변하듯 착하게 흘러가버린다. 멋대로 동료들을 잔뜩 불러 집들이를 하고 산더미 같은 음식 쓰레기와 그릇 앞에서 호통 치는 아내 키사라기를 침대에서 달래는 게 사실이라면 코이치는 실로 진정한 강쇠요, 테크니션일테지만 순간 나는 작가에게 ‘이게 아니잖아!’라고 말하고 싶었다.
<신인부부>김수정
사실 부부가 둘만 살아도 크고 작은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20년 전 김수정이 <신인부부>를 통해 이야기 했고, 생활에 좀 더 디지털 기계가 많아진 최근은 김인호, 남지은 부부만화가가 <신혼 다이어리>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20년 전에 비해서도 서민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질 게 없는 지금, 주방과 안방에 많은 디지털 기기가 가사 일을 도와줘도 아내들은 고단한 게 사실이다. 부부 만화가인 두 사람의 입장은 좀 더 그렇다. 아기자기하고 차분하게 갈등과 해소의 과정을 고백형식으로 그려내고 공감에도 성공한다.
부부싸움이란 실로 무겁고 심오한 걸로 시작되지만은 않는다. 남편이 화장실 변기 뚜껑을 안 내려놔서, 양말을 벗어 동그랗게 말아 침대 밑에 놔서, 빨래를 시원찮게 해서, 샤워를 할 때 겨드랑이를 제대로 씻지 않아서, 다른 취향의 옷을 입어서 부부들은 싸운다.
필요이상 술값을 많이 쓰거나 카드 값이 많이 나와도 싸운다. 그런데 여기에는 좀 더 복잡한 무언가가 있다. 시댁에서 이틀 자고, 친정에서 하루 잤는데 카드 값도 많이 나오고 이빨에 혀를 대고 ‘치~ 치’ 같은 이상한 소리를 버릇처럼 낼 때 싸움이 촉발한다. 그 일상의 파편을 더 섬세하게 잡은 만화는 아무래도 <비빔툰>쪽이다. 심하게 싸운 딸이 짐을 싸고 친정에 달려왔을 때 대번에 쫓아내고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는 친정어머니의 심정, 그리고 부부싸움 후 시어머니와의 전화통화에 “예, 그럼요, 저희는 잘 지내고 있어요.” 라고 웃음지어야 하는 며느리의 심정을 만화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이벤트는 이렇듯 만화의 좋은 소재다. 작가의 실상이 배어나오면서 달고 쓴 맛이 생생하게 전해올 때 독자는 작은 감동과 기쁨을 맛본다. ‘내가 결혼할 때 까지’ 연애는 끝이겠지만 제 2막의 시작이어서 차원이 다른 맛을 전해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김수정의<신인 부부>에서는 “그들은 돌아와 대판 싸웠다. 사네 못 사네...... 다 그렇게 사는 거야.”라고 하지 않았던가. 결혼이라는 생의 비빔밥을 떠올리자 일찍이 독고탁 아버지가 했던 명언이 떠오른다. “사람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단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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