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 노동 취약 계층을 향한 흰둥이의 메시지 다음 웹툰 <흰둥이> - 윤 철 작가
신보라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이 빼앗은 것은 목숨만이 아니다. 살아있는 이들에게서 생기와 즐거움을 앗아가고 우울을 가져다주었다. 세상은 마치 망가진 자전거처럼 비일상적으로 돌아가는 체인과 앞으로 나가지 않는 바퀴와 같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덧씌워진 덮개를 벗겼다. 마주한 우리 사회의 민낯은 약자들을 향한 혐오의 표정을 짓고 있다. 매체의 지면 곳곳을 온통 불평등과 관련한 단어들이 장식하고 있다. 노동의 취약지대가 드러났고, 권리의 사각지대를 조성하는 약한 고리가 어디인지 나타났다.
윤필 작가의 만화 <흰둥이>의 주인공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노동자의 모습을 대변한다. 흰둥이는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다. 성대 수술이 되어 있어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기쁨이나 슬픔, 아픔마저도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모습에서 사회에서 제 감정, 제 목소리 낼 수 없이 묵묵히 참아야 하는 약자들의 얼굴이 스친다. 우리처럼 그들처럼 흰둥이는 묵묵히 일하며 하루하루 버틴다. 흰둥이에게는 마음으로 가족이 된 할머니와 어린 손녀가 있다. 할머니가 고물과 폐지를 줍다가 다치게 되면서 흰둥이는 돈을 더 벌기 위해 직업소개서를 통해 일용직을 전전하다 사랍대학교 청소노동자가 된다. 이렇게 윤필 작가는 흰둥이가 거쳐 가는 일터와 그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이들의 면면을 그려낸다. 폐지를 주어야만 겨우 하루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
특히, 사회에서 더 노동을 팔 수 있는 매력을 갖추지 못한 존재로 판정되어 '정상 노동'에서 배제된 고령 노동자. 추운 겨울 새벽같이 나가 일하다 위험한 노동환경에서 산재를 당해 죽음을 맞이한 건설노동자. 일하다 다치거나 아파도 다음날 일자리를 구할 수 없을까 봐 병원에도 가지 않고 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일용직 노동자. 학교 건물 곳곳에 아무 생각 없이 버려놓은 쓰레기들을 묵묵히 치우고 혹여나 학생들 눈에 띄면 불편할까 봐 건물 후미진 구석에서 휴식을 취하고 끼니를 해결하는 청소노동자. 흰둥이의 눈을 쫓아감으로써 보이는, 우리 사회에 감춰진 노동의 모습들이다.
우리가 애써 숨겨왔던 이러한 노동의 불평등함이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외부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나니, 집에서 많은 것들을 해결하면서 집을 매개로 전보다 더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경비원, 택배 배달원들이 그렇다. 아파트 주민들의 갑질로 인한 경비원의 자살 사건으로 한 여름에 에어컨 없이, 한파에 온풍기 하나 없이 몸 하나 뉘일 곳 없는 좁은 경비실에서 오랜 시간을 버티는 그들의 열악한 환경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주민들의 갑질은 열악한 환경에서조차 그들을 밀어내고, 결국 스스로 삶을 포기하게 했다. 택배 물량은 코로나19 이후 살인적으로 늘어났다. 급격히 증가한 물량에 택배 노동자은 더욱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어졌다. 잠도 못 자고 배달을 하다 돌아가신 택배 노동자의 이야기는 듣는 사람을 숨 막히게 한다.
밤늦은 시간, ‘무조건 빠르게’를 추구하는 배달 시장에서 배달 노동자들은 생계를 끌어안고 달려야 한다. 자동차 운전자의 음주운전으로 목숨을 잃은 배달 노동자들의 사망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에도 재택근무 없이 외부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는 노동자들이 이뿐인가.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청결을 늘 유지해야 하는 청소노동자들은 매일 출근해야만 했다. 돌봄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처럼 살 수 없었고, 콜센터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취약한 환경에서도 위험을 감수하며 일을 했다.
이런 사회적 현상들을 보며 너나 할 것 없이 노동의 약한 고리가 드러났고, 그래서 우리가 고쳐나가야 할 것이 무엇이고 바꿔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 목소리 안에서 언뜻 내가 그 주인공은 아닐 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건 왜일까. 이 모든 모습이 나의 모습이 아니던가. 흰둥이를 보면서 가슴 한구석이 아릿하게 저렸던 것은 사실 나의 노동에 대한 연민과 아픔 때문이 아니었는지.
예민함을 넘어 울분이 가득 찬 오늘날.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에 목을 매며 공정이라는 거짓 이름으로 경쟁의 우위를 탐하는 지금. 서로가 서로를 몰아내고 밀어내는 이때. 흰둥이가 건네는 메시지는 소박하지만 묵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