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는 만화로 완전합니다만 실사화는 알 수 없습니다.
김민태(만화평론가/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만화는 만화로서 완전하다. 지금은 영상의 시대이다. 만화는 만화로서 완성된 콘텐츠지만 세상은 만화의 영상화 사례가 수반되어야 좋은 작품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실사화 흥행이 인기 만화원작을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만화 덕분에’ 논리도 무의미하고 실패 여부가 만화가 원작이어서라는‘만화 때문에’원인론도 무용하다. 실사화는 만화와 관계된 2차 저작물일 뿐 독립된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사화를 수행하는 거대자본은 만화를 여러 가지 시선으로 바라본다.
첫 번째 만화를 잠재성 높은 학생으로 보는 시각이다. 마블 스튜디오를 비롯한 할리우드 영화시장이 대표사례이다. 우수한 학생이 아이비리그와 실리콘밸리를 거쳐 유니콘 기업의 CEO가 되는 과정처럼 할리우드는 기술과 자금을 쏟아부어 만화를 글로벌 콘텐츠의 가능성을 지닌 우등생으로 인식한다. 할리우드는 매우 유능하고 전 세계의 인재들이 모인 곳으로서 수많은 콘텐츠를 성공시켰지만, 자만심도 가지고 있어 <드래곤 볼>, <공각기동대>처럼 흑역사를 남기기도 한다.
두 번째는 만화를 매뉴얼에 천착하는 학자로 보는 눈길이다. 일본의 실사화 방식이 대표적이다. 즉 만화적 설정과 스토리의 고리들을 최대한 다르지 않게 좇는데 열중하는 모습이다. 2019년 일본 박스오피스 순위 탑 10에 만화 원작 영화는 <킹덤>, <날아라 사이타마> 2편 랭크됐다. 자국 흥행에 성공했으나 과연 글로벌 영화 팬이 공감할지는 의문인 작품들이다. 일본의 실사화는 만화 캐릭터의 생김새와 동작, 대사와 플롯의 구성을 실사로 표현하는데 몰두한다. 이유는 만화원작의 연재기간이 장기간에 걸치면서 마니아들의 숫자도 방대해진다. 자연스럽게 마니아들이 타깃 관객이 되고 원작의 느낌과 질감의 시각화 정도가 이들의 영화 판단 기준이 된다. 2019년 통계를 한 번 더 가져와 살피면 10 작품 중 5편이 실사영화, 5편은 애니메이션이다. 그중 원작이 없는 실사영화는 1 작품뿐이었다. 일본 영화 제작시스템상에서 제작위원회의 수익분배 몫이 큰 반면 창작집단의 분배 비율이 낮은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즉 제작위원회는 안전한 수익을 위해 원작이 있는 작품의 실사화를 추구하고, 거기에 안전한 흥행을 위해 마니아들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콘텐츠 제작 순환구조인 셈이다.
세 번째는 만화를 20대 청춘남녀로 보는 경향이다. 한국 영화가 만화를 다루는 스타일이다. 젊음 자체로 아름답지만, 메이크업하거나 성형으로 더 멋진 모습을 만드는 세태처럼 영화계는 만화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수정하는 방식의 변주로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해내려 한다. 관객 수의 정량적 한계를 극복하고 할리우드 작품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만화원작의 장점과 영화계의 노하우를 총동원하여 절체절명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압박이 작용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만화원작은 소재로서 또는 설정으로 쓰이거나, 영화제작 투자를 위한 기반 콘텐츠로 활용하기도 한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연도별 박스오피스 50위를 살펴보면 2018년에는 <신과 함께-인과 연>, <신과 함께-죄와 벌>, 2019년에는 <시동>, <타짜>, <롱리브더킹>, 2020년에는 <강철비2>, <해치지않아> 가 만화원작 영화였다.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원작의 냄새만 맡을 수 있는 수준의 터치가 들어간 영화도 있다.
열거한 세 가지 방향을 통해 각국의 만화원작 실사화 경향을 살펴봤다. 만화 원작 실사화는 자국이 가진 영화시장과 관객의 성향이 반영되므로 방법별 우열이 있을 수 없지만, 영상물의 중요한 씨앗이 되고 있음은 세계적으로 주지의 사실이다. 더불어 만화 역시 만화를 모르는데, 만화원작의 실사화는 더욱 예측할 수 없다. 만화는 만화 독자에게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