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김금숙 작가, 만화계 아카데미상 ‘하비상’ 수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이야기, 세계 주요 만화상 휩쓸어
세계 모든 곳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소감 밝혀
김병수(목원대 웹툰·애니메이션과 교수)
△ 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김금숙 작가의 <풀>이 하비상 ‘최고의 국제 도서 부문 수상작’에 선정됐다. 지난 10월 9일 온라인으로 개최된 만화축제 ‘뉴욕 코믹콘’에서 수상작 발표가 있었다.
하비상은 미국 만화가 이자 편집자인 하비 커츠먼(Harvey Kurtsman)의 이름을 딴 상으로 ‘만화계 아카데미’로 불릴 정도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권위 있는 상이다. 김금숙 작가의 <풀>은 2017년 처음 출간된 이래 국내외에서 각종 만화상을 휩쓰는 등 국가대표급 만화로 상찬 받아왔다.
2016년 대한민국 창작만화 공모전 최우수상을 시작으로 2018년 프랑스 일간지 뤼마니테(휴머니티)가 수여하는 뤼마니테 만화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고, 2019년에는 뉴욕타임스 최고의 만화, 영국 가디언지 최고의 그래픽 노블에도 연거푸 선정돼 국내보다는 해외에 더 잘 알려진 작품이 됐다.
2020년에는 미국 청소년도서관 협회(YALSA)의 ‘2020 10대를 위한 그래픽 노블’ 논픽션 부문에 올랐고, 미 카투니스트 스튜디오 선정 ‘올해의 만화책’, 빅아더북 어워즈 최고의 그래픽 노블, 크라우제 에세이상으로도 선정됐다. 이탈리아 트레비소 코믹북 페스티벌에서 최고의 해외 책 후보작에도 선정된 바 있다.
<풀>은 단편만화 공모전인 대한민국 창작만화 공모전에 출품하여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을 밑거름 삼아 2017년 8월 14일, 세계 ‘위안부’의 날을 기려 보리출판사에서 발행했다. 평화의 발자국 시리즈 19번째 작품이다. 작가가 직접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를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부제를 "살아있는 역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증언“이라고 달았다.
김금숙 작가의 꼼꼼한 취재를 기반으로 한 현장감 있는 이야기 구성은 양장본 477쪽의 방대한 분량임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뚜벅뚜벅 ‘팩트’를 향해 나아간다. 오마이뉴스 배주연기자는 “1996년 중국 용정에서 이옥선 할머니가 고향으로 가게 되는 상황의 경우, 1997년 1월 4일 SBS 방송의 "추적! 사건과 사람들: 중국에 남아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향 찾기"로 할머니가 55년 만인 1996년에 한국에 왔음을 알린다. 그리고 작품 중간중간에 작가로 묘사된 여성(작가의 유명 캐릭터인 '꼬깽이'가 성인인 된 모습일 듯한)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경기도 나눔의 집에서 주인공을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 등장한다1)”며 치열한 작가정신을 전하고 있다.
김금숙 작가는 2014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개최된 일본군 위안부 한국만화 기획전에 <비밀>이라는 짧은 단편을 출품한 것을 계기로 <풀>의 작업에 나서게 되었다고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비밀>의 분량이 워낙 짧았기 때문에 완성하고 나서 잠을 설칠 정도로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여성의 관점, 약자의 관점을 이야기하지 못했고 피해 할머니의 마음을 더 헤아리지 못했다는 자책이 <풀>을 만들게 된 동기라고 밝혔다.
△ 김은숙 작가님
김금숙 작가는 “<풀>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 세계 모든 곳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옥선 할머니를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숨기고 싶은 내면의 아픔을 용기 있게 증언한 것에 경의를 표했다. 나아가 더 늦기 전에 일본이 국가 범죄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촉구하는 한편 세계인들에게 위안부 문제는 민족과 국가를 떠나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풀>은 영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일본어·아랍어·포르투갈어 등 세계 12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2019년,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그래픽 노블 전문출판사인 캐나다 드론 앤드 쿼털리를 통해 영어로 출간하여 국내 만화의 해외 진출에 있어서 번역 출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본보기가 되기도 했다.
전남 고흥이 고향인 김금숙 작가는 세종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고등 장식미술학교에서 유학하면서 만화계에서는 몇 안 되는 프랑스 통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동안 주로 굵직한 역사적 주제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왔다.
제주 4.3 항쟁의 비극을 그린 『지슬』, 박완서 원작을 만화로 재구성한 『나목』, 발달장애 뮤지션 이야기를 담은 『준이 오빠』, 조선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의 삶을 기록한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자전적 만화 『아버지의 노래』와 어린이 만화 『꼬깽이』(전3권)를 쓰고 그렸다.
9월 말 한국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고통을 다룬 ‘기다림’이란 작품을 펴냈고 2021년 프랑스어판과 영어판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소설가 백건우는 김금숙 작가의 “이 작품이 일본제국주의의 폭력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알리고, 전쟁범죄의 잔혹함을 증명하여, 역사의 진실을 기록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서 더욱 뜻깊다. 한국의 만화가들 가운데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2)고 평했다.
1) 배주연. <일본군 ‘위안부’ 삶 다룬 만화, 제목이 왜 <풀>일까?>. 오마이뉴스. 2017.8.12.
2) 백건우. <풀-김금숙>. 브런치. 2019.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