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있는 대부분의 국가엔 우리가 독립만화라고 부르는 시장이 각자의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 다른 형태의 시장들 모두의 공통된 문제의식이 있는데, 그건 바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한국에서 독립만화를 하는 작가들 역시 이런 고민은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그러다 대안 중 하나로 크라우드 펀딩이 제시되었고 그런지도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여러 가지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기도 한 크라우드 펀딩 시스템이지만 과연 이것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대안들과 함께 이 다양성이 시장은 성장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웹툰인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 텀블벅에서 펀딩에 성공한 만화 프로젝트는 총 27건이었다. 합계는 240,068,591원으로 약 2억 4천만 원 정도였고 그 평균은 8,891,429원으로 약 880만 원으로 나타났다. 중간값은 2,636,400원이다. 그리고 2020년 텀블벅에서 진행된 만화 프로젝트는 총 80건으로 합계 675,384,207원, 6억 7천만 원 정도로 크게 상승했다. 하지만 평균은 8,442,303원으로 약 840만 원 정도로 오히려 줄었고 중간값은 3,315,000원으로 약간 상승했다. 겉으로 보기엔 전체 시장 크기가 큰 폭으로 상승했고 펀딩에 참여하는 작가도 후원자도 많아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고민 없이 순항하는 것 같지만 통계를 자세히 보면 평균의 함정, 쏠림현상 그리고 과연 이것이 작가가 제대로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인지 등에 고민해볼 지점들이 있다.
첫 번째로 우선 독립만화 시장에서 작가들이 하나의 작품을 제대로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은 6개월 정도라고 말한다. 이 기간은 기획, 원고 제작, 책 제작, 홍보, 마케팅, 유통, 보관 등 모든 걸 포함한 시기인데 어디까지나 창작자의 사생활이라는 마찰력을 계산하지 않은 산술로는 개인이 1년에 2번 정도 만화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므로 2020년 기준으로 놓고 보면 1명의 작가가 펀딩을 통해 1년에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약 1,700만 원 정도이다. 금액만 놓고 볼 땐 저 정도면 여러 외주와 병행하면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저 금액 안에는 책의 제작비, 배송비, 포장비 및 남은 책 보관 비용 그리고 세금, 플랫폼 이용 수수료 등이 모두 포함된 가격으로 60%~70% 이상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경험상 추측된다. 그렇다면 1년 꼬박 작업해도 기대 수익은 생각보다 낮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두 번째로는 평균의 함정이다. 과거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에서 학과별 졸업생들의 평균 소득을 조사한 일이 있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문화·지리학과의 평균 소득이 경영대나 의대, 법대를 제치고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놀라운 결과에 통계를 자세히 조사해 보니 노스캐롤라이나 문화·지리학과엔 천문학적인 소득을 올리고 있는 NBA의 전설,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 속해 있었고 그의 수익이 문화·지리학과의 전체 평균을 너무 높여버려 나온 결과였다. 우린 이런 현상을 ‘평균의 함정'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2020년 텀블벅을 통한 만화 프로젝트 중 평균의 2배(약 1,700만 원) 이상 후원받은 프로젝트를 제외한 총액과 평균값을 구해봤다. 그 결과 《여명기》와 《곤》 프로젝트를 필두로 총 9개의 프로젝트가 빠진 71개의 프로젝트 후원 총액은 266,718,727원(약 2억 6천만 원)으로 현저히 낮아졌고 평균 또한 3,756,601원(약 375만 원)으로 계산되었다. 이는 같은 방식으로 계산한 2019년 크라우드 펀딩에서 평균의 2배 이상 후원받은 프로젝트를 3개를 제외했을 때 나오는 4,139,045원(약 413만 원)이라는 값보다 낮은 수치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커졌지만, 쏠림현상은 심해졌고 다양한 작품이 얻는 평균 후원금을 더 줄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줄어든 금액 속엔 앞서 설명한 책의 제작비, 배송비, 포장비 및 남은 책 보관 비용 그리고 세금, 플랫폼 이용 수수료 등이 여전히 포함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도 크라우드 펀딩이 순수 제작비를 구하는 일엔 일정한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원고 제작이라는 노동의 평균 대가를 얻지 못하는 작가들의 생계 입장에선 고민해볼 지점들이 분명 존재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반복되는 후원에 지쳐가는 작가들과 독자들이다. 우선 2019년 27건의 펀딩을 진행한 사람 중 2020년에 다시 자신의 이름을 대표해 프로젝트를 진행한 작가는 4명뿐이다. 개인 작가가 아닌 프로젝트로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기록을 보더라도 크라우드 펀딩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조금이라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기대는 한 번의 펀딩을 진행할 때마다 원고 및 책 제작 말고도 혼자 책임져야 하는 지점들(속포장, 겉 포장, 배송, 수수료, 세금, 책 제작에 예상치 못하게 더 들어가는 비용 등) 많다는 걸 인지한 작가들이 수익 결과를 웃도는 노동 강도와 양에 망설임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또한 독자도 반복되는 행위에 재미를 잃고 지쳐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엔 내가 좋아하거나 관심 있지만, 주변에서 잘 알지 못하는 작가를 후원한다는 마음으로 후원과 응원을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과거 자신이 관심 있고 좋아하는 네이버 베스트도전 작가를 정식 연재작품으로 올려보내기 위해 노력하던 독자들의 심리와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2, 3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속해서 후원하는 과정은 처음 느꼈던 감흥이 상쇄되고 경제적 부담 또한 맞물려 지속적인 후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2019년부터 꾸준히 텀블벅을 통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해온 작가의 프로젝트를 놓고 고민해볼 수 있다.
한국의 독립만화를 대표하는 A작가를 사례로 들어보자. 시스템과 장르라는 모든 측면에서 메이저 시장과 독립해 활동한 지 벌써 5년이 되었고 그사이 인스타그램 및 메일링을 통한 유료 만화 연재를 진행하였다. 그사이 작품의 질은 더욱 좋아졌고 고유의 매력을 지키면서도 만화의 다양한 요소를 활용하려는 노력이 있다는 점에서 결코 작가가 나태했거나 작품이 재미없어졌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그런 A작가는 2019년부터 현재까지 총 5번의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고 모두 성공했으며 크라우드 펀딩 시스템을 활용해 그나마 가장 활발하고 꾸준히 활동해온 작가이다. 그 프로젝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A작가가 2019년 4월에 진행한 ‘A1’ 프로젝트는 총 펀딩 금액 18,721,945원으로 1,054명의 후원을 받아 성공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에 진행된 ‘A2’ 프로젝트는 14,793,125원으로 총 712명의 후원을 받았다. 이어서 2020년 3월에 진행된 ‘A3’ 프로젝트는 12,411,400원으로 575명, 2020년 5월의 ‘A4’ 프로젝트는 9,046,345원, 2020년 8월의 ‘A5’는 6,024,342원을 후원받았다. 매 프로젝트가 성공하긴 했지만,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마다 후원자 수 혹은 최종 후원 금액이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일정한 수익 창출을 통한 일정한 작품 활동을 해나가는 데 분명 어려움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참여하는 모든 작가가 이런 곡선을 그린다고 볼 순 없지만 가장 꾸준히 진행 중인 작가의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가 보여주는 모습이 앞서 설명한 두 가지와 결합하여 제시되면 크라우드 펀딩만으로 작품 활동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에 관한 고민이 작가의 관점에서 있을 수밖에 없다. 독서 역시 마찬가지.
결론적으로 쏠림 현상에 의한 크라우드 펀딩 시장 전체는 커지고 있지만 그렇게 소위 대박이 난 프로젝트들의 대부분이 개인 작가가 아닌 다수의 멤버가 참여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작품을 만들어 크라우드 펀딩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란 현재까진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이제는 크라우드 펀딩은 물질적인 무언가(책, 굿즈 등)를 만들기 위한 옵션 역할로 ‘계륵'처럼 여기는 경우도 종종 보이고 한 개인이 감당하며 매번 지속하기엔 한계점을 보인다. 그럼 지금 한국에서 활동하는 독립만화 작가들은 모두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 또한 분명한 지속성의 해답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딜리헙, 포스타입 같은 물질적인 서적, 굿즈를 만들고 보관할 필요가 없는 대안 플랫폼에서의 작품 활동이다.
과거에 독립 만화의 정의엔 왠지 모르게 반드시 출판물이어야 할 것 같은 뉘앙스와 암묵적 동의가 있었지만,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를 통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만화를 그리는 작가들이 다수 존재하고 그들 또한 메이저 시장으로부터 독립해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인식이 작가, 독자 모두에게 생겨났다. 그 결과 출판과 웹툰은 만화의 다른 형태일 뿐 어떤 형태를 활용하더라도 독립만화라고 불릴 수 있다는 인지 또한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오픈하고 성장하기 시작한 대안 플랫폼이 딜리헙과 포스타입이었다. 이들은 모두 작가가 직접 회차별 분량과 퀄리티, 내용을 포함한 회차별 금액까지 작가들이 직접 정할 수 있다. 또한, 2page 방식, 1page 방식, 스크롤 방식 등 작가가 연출의 방식 또한 설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자유도가 높은 플랫폼들이다. 덕분에 기존의 ‘장르 만화’의 문법과 전혀 다른 작품이나 비활성 장르의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고 그 결과 꽤 괜찮은 호응과 함께 독자들을 확보해가고 있다. 그 결과로 딜리헙의 경우 2020년 9월 16억 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 포스타입의 경우 2020년 2월 정기 구독 거래액이 1억 원을 돌파했으며 같은 해 7월 26억 원 투자 유치에 성공하는 등 여러 대안 성격의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중에 메가 히트작으로 꼽히고 딜리헙에서 연재된 고사리 박사의 《극락왕생》의 경우, 2019년 매출이 2억 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며 작가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연재된 작품임에도 메이저 출판사인 문학동네에서 책으로 출간되는 등 독립만화 시장에서 ‘장르 만화'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기점이 될 수 있는 사례를 남기고 있다.
△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는 드라마로 제작되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우리가 독립 만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다양성이다. 이 다양한 작품들이 지속하기 위해선 작가들의 생계가 유지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한 여러 장치가(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지원사업, 미디어, 독립서점, 전시, 페어 등) 이 각 작품의 연재 및 제작 형태에 맞춰 고르게 세팅되어 있어야 한다. 만화로 곧바로 책을 만들어 페이지 미학을 다루고 싶은 작가들을 위한 만화영상진흥원의 ‘다양성 만화 지원사업(120p / 200p)’이 존재하고 2021년부터 분리된 ‘독립만화 출판 지원사업'을 통한 지원이 매년 진행되며 좀 더 시장의 디테일에 맞춘 사업으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다양성만화 제작 지원' 사업 설명문
△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 독립 출판 지원' 사업 공식 설명문
또한, 적극적으로 미디어에 참여하고 싶은 작가들을 위한 소통 창구도 필요하다. 요즘은 유튜브가 너무 대세라 그쪽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지만, 얼굴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작가들이나 말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영상 촬영을 통한 인터뷰, 라디오(및 팟캐스트) 인터뷰, 서면 인터뷰 등 다양하게 창구를 만들어 작가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독립 만화 시장의 웹툰의 경우 딜리헙과 포스 타입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는 중이지만 물질적으로 제작되는 출판만화의 경우 6개월에 한 번 정도 제대로 판매를 할 수 있는 페어가 조성되어 하나의 사이클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나마 흥하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경우 여러 형태의 예술 작품들을 모두 품기 위해 일정한 제한을 두고 참여자를 선정하는 것 같아 늘어가는 독립만화 시장 전체를 담기엔 버거움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존재하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기점으로 6개월 전, 후로 진행되는 독립만화 페어가 그리 크지 않게라도 준비되어, 작가들이 신작을 판매하고 서로 소통하는데 좋은 창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거창할 필요도 없이 조촐하게라도 준비되어 작가들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 선택적으로 작업하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이클을 만들어 주며 함께 성장해야 하는데 그 과정까지 가는 데 있어 작가들의 노력과 독자들의 너그러움, 관의 지원 및 민간의 서포터 역할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