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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중심에 놓고 바라본 최근의 웹툰과 IP 확장의 특징들

'스위트홈', '승리호', '간 떨어지는 동거' 등 만화를 중심으로 확장되고 있는 IP들의 특징을 살펴보았습니다

2021-05-27 서찬휘



‘만화’를 중심에 놓고 바라본 최근의 웹툰과 IP 확장의 특징들


MZ세대 - 이젠 너무 많이 나와서 한편으로 질리기까지 한 이 표현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모호함과 이해 불가능 그 자체를 정체성으로 부여받았던 앞 세대 ‘X’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 서 있는 이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회자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X세대의 바로 다음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 또는 Y세대, 1980~1990년대 중반 출생자)와 Z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를 묶어 부르는 말이다. 물론, 넓은 세대 구분이기 때문에 모호함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다.



MZ세대, 그리고 디지털 네이티브


MZ세대들의 소비적 특징은 고스란히 만화 감상에도 이어진다. MZ, 특히나 Z세대의 특징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다. 이들은 PC도 아닌 스마트폰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한 감상 습관을 지니고 있다. ‘만화 하면 역시 책이 낫지’, 내지는 ‘화면 너비가 좀 넓어야 볼 만하지~’라는 감상에 아직까지도 익숙해 있는 바로 앞 세대와는 받아들이는 감도 자체도 완전히 다르다. 


이를테면 X세대쯤 되는 이들의 만화 감상은 그 앞 세대와 더불어 책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어떻게 칸을 배치하고 연출 하느냐에 많은 부분이 매여 있고, PC 화면을 통해 만화가 웹툰으로 전이되어 온 과정에서도 이를 어떻게 ‘변환’하는가로 만화가의 실력을 따지는 면이 있다.

세로 스크롤의 특성을 반영한 만화 컷의 분할과 컷 세로 너비의 유동적인 조절은 엄밀히 말하면 세로로 무한정 늘어날 수 있는 웹브라우저 환경 속에서 어떻게 기존의 만화 문법이 적응해 낼 것인가의 싸움에 가까웠고, 본인 세대의 인기 작가들이 웹툰으로 와서도 이를 적절하게 구현해 내기를 기대했다. X에서 Y쯤 되는 세대에 걸친 독자들이 추구하고 또 보아온 것은 어쩌면 ‘하이브리드’에 가까운 형태였다고 볼 만하다.


한데 최근 Z세대들을 대상으로 한다 할 법한 만화들의 특징에 컷의 분할을 비롯한 공간 연출과 스크롤에 따른 연출 안배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지 보면, 놀랍게도 어느 사이엔가 그런 부분들이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엄밀히 말하자면 Z세대들은 화면에 떠 있는 것이 ‘만화’인지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웹툰의 특질로 여겨졌던 것 가운데 끝없는 세로 스크롤–스콧 맥클라우드의 무한 캔버스(Infinity Canvas)와는 다소 다른-이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통한 만화 뷰잉이 이러한 무한성을 어느 정도나 더더욱 더 계승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오히려 마치 피쳐폰 시절로 돌아간 듯한 상황이 되고 있음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MZ세대는, 특히 콕 집어 Z세대는 앞 세대가 경험했던 이른바 ‘과거의 영광’을 모른다. 누가 종이책 시대에 어느정도 유명했나 같은 건 전혀 알지 못하고 알 이유도 없으며, 웹툰의 한 시기에 왕년의 필력을 세로로 늘어놓기 위한 내러티브 연출에 사람들이 얼마나 주목했는가도 그다지 주목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 술 더 떠 이들에게 콘텐츠란 책보다는 유튜브요 넷플릭스다. 어려서부터 영상으로 교육을 받았고 영상으로 콘텐트를 접했으며 철이 들 즈음에는 손에 이미 ‘폰’이 쥐어져 있었다.

X세대는 어땠나 하면, 스무살 조금 넘어서야 피쳐폰을 개통한 게 고작이었던 세대고 이들이 폰으로 볼 수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저해상도와 속도를 감내해야 가까스로 접할 수 있었던 무언가였다. 한데 Z세대쯤 되면 아예 그런 시기 자체가 기억에 없다. 문제점이 많았던 소비 체계였지만, 심지어 도서대여점을 통해서라도 책으로 만화를 접할 겨를도 그다지 없던 세대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만화란 무엇인가?


일찍이 웹툰을 접했지만, 넓고 멀리 보자면 이들에겐 웹툰의 세로 스크롤이라는 특징조차도 ‘책과 차이가 있는’ 무언가로서 부각되는 무언가가 아니다. 오히려 스마트폰에서 볼거리 즐길 거리라는 측면에서는 유튜브, 넷플릭스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무언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을 규정하는 디지털 네이티브란, 손에 쥐어져 있는 나만의 디지털 기기를 통해 볼 수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러한 콘텐트 감상의 헤게모니 측면에서 만화와 영상 가운데 어느 쪽이 우위를 점하고 있느냐 하면 단연 영상이다.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감상환경의 최우선 조건인 이 세대들에게 끝없는 세로 스크롤은 장점이 아니라 예외적인 것이다. 이들에게 익숙한 감상 환경은 오히려 가로 세로의 너비가 명확히 정해져 있는 ‘스크린’으로서의 폰 화면이고, 이는 영상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사진 기반 SNS인 인스타그램을 보자. 너비가 다소 다른 사진도 취급하게 되긴 했다지만 여전히 1:1 비율이 대세이며, 인스타툰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기 시작한 인스타그램 기반 만화들은 자연스레 이 비율에 맞춰 일정한 칸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MZ세대들에게 인기를 끄는 근래의 작품들을 보면 세로 스크롤의 의미가 크지 않다. 2차적 저작물 작성권 판매에 특화해 영상화를 꾀한 작품은 아예 대놓고 화면 크기로 잘라 붙여놓고 있으며 위아래가 아니라 페이지로 넘겨보라고 내어놓고 있다. 일례로 <삼국지톡>이나 <유미의 세포들>과 같이 네이버가 ‘컷툰’이라고 이름 붙인 작품들이야 원래가 컷 단위로 넘겨 읽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들이라고 칸 크기에 드라마틱한 변동을 주진 않는다. 팬시한 그림체를 지니고 있을수록 더욱 그러하고, 중간 중간 세로 너비가 길다고 해 봐야 스마트폰의 포트레이트(Portrait) 모드 – 즉 폰을 세워 보는 너비 안에는 한 씬을 욱여넣을 수 있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질 않는다.




△ <간 떨어지는 동거>의 프롤로그 중 일부(좌), <모범택시>의 프롤로그 중 일부(우) (출처: 네이버웹툰)


멀리 볼 것 없이 근래 영상화 계약을 맺어 제작된 작품들을 눈여겨 보자. <유미의 세포들>이야 아예 컷툰이고, <간 떨어지는 동거>나 <모범택시> 같은 경우도 칸이 세워 보는 화면에서 벗어나질 않는 수준으로 비교적 균일하게 담긴다. 초반에 등장했을 시 출판만화 연출 형태를 우선했던 <이미테이션>은 카카오페이지에서 그야말로 세운 폰 안에 꽉 채운 형태로 재편집되어 공개 중이다. <스위트홈> 역시 가로 너비를 거의 내내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칸새(칸과 칸 사이)를 어둡게 칠해놓음으로써 영화관 효과를 내고 있다.


<승리호>가 연재하기 직전 발표했던 다음 웹툰 앱 전용으로 발표한 ‘ALIVE’ 기술을 적용한 프로모션격 예고편(?)을 기억해 보자. 호랑 작가의 <옥수역 귀신>이 선보였던 강제 스크롤을 통한 애니메이팅을 넘어 손가락을 이용한 위아래 스크롤 단위에서 움직임과 음향 싱크를 맞추어 비교적 독자의 조작에 포커싱을 맞춘 ‘만화적 애니메이팅’을 구현했지만 문자 그대로 만화적 애니메이팅이지 만화는 아니다. <승리호> 만화는 어떨까. 역시 비교적 균일한 칸과 화면 안에 꽉 찬 칸의 반복이다. 근래 영상화한 작품 가운데에서 꽤나 정통파라 할 만한 만화 연출을 보여주는 사례는 <나빌레라> 정도인데, 이 작품은 담고 있는 소재와 감성부터 Z세대에 최적화한 편은 아니다.


칸의 너비가 감정의 크기, 칸새의 길이가 곧 시간의 흐름을 나타낸다는 만화 이론은 압도적인 이용자 경험성(UX, User Experience) 차이 앞에서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다니지만 MZ, 그 가운데 Z세대들에게 콘텐츠 감상을 위한 스크린부터가 스마트폰이다. 앞 세대가 작품 정도 볼라 치면 PC 모니터라는 여분의 공간이 어느 정도 있는 노출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들은 그래픽적인 우위, 만화 연출로서의 짜임새가 앞뒤로 연결된 면을 안배하기보다 고정된 스크린 안에 어떻게 확실하게 노출할 것인가를 더 우선할 수밖에 없으며 스크린 자체가 작은 이상 작화 밀도를 높이는 것이 그리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실제로 덧글에서 “와 이 작가 그림이 쩔어줘요!” 같은 반응이 나오는 선이 앞 세대의 감상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왕왕 느낄 때가 있지만, ‘쩔어주는’의 범주 자체가 달라졌음을 인정한다면 납득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현 시점에서 만화는 이러한 이용자 환경에 최적화하는 형태로 나아가며 영상화 대상으로서, 좀 더 정확하게는 영상화를 위한 적당한 밀도의 콘티를 제공하는 형태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웹툰이 처음 나왔을 때의 반발심을 생각해보자. 그 때도 만화가 다 망한 양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만화로 보고 싶은 이야기와 화면이 있었고 작가들도 그건 마찬가지였으며,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방법을 개발해 왔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또 다른 형태를 띠는 사례들이 나올 것이니 그 변화를 또 기다려 볼 수 있지 않을까.


필진이미지

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 《키워드 오덕학》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덕립선언서》 등 저술.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와 백석문화대학교 출강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