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지적 재산권) 전쟁은 이제 비단 웹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의 OTT 서비스는 물론 게임, 아이돌 등의 엔터산업은 물론, 전통적으로는 IP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던 식품 물류나 유통의 분야에서도 ‘IP’ 싸움이 치열하다.
△ NC가 자사 브랜딩을 위해 만든 캐릭터, 도구리(좌), 카카오의 니니즈 캐릭터 중 죠르디(우) (출처=NC, KAKAO)
이렇게 IP가 각광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자들에게 자사의 브랜드를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IP와 연계해 서비스 사용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수십년이 지나서까지 패러디로 활용되는 광고 카피의 역할을, 이제는 캐릭터와 IP가 해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게임 업체나 IT업체들이 캐릭터를 출시하는 건, 캐릭터 자체가 돈이 되기도 하지만 캐릭터의 친근함이 유저들의 삶 깊숙이 파고들기 좋기 때문이다. 집에 카카오의 라이언 인형이 있고, 아이들이 그 인형을 가지고 놀고(어른은 베고 잔다), 어른들은 라이언 이모티콘을 쓰고, 아이들은 죠르디 무선충전기와 니니즈 이모티콘을 쓴다.
△ 라인프렌즈에서 내놓은 BTS의 캐릭터, BT21(출처=라인프렌즈)
BTS 역시 라인프렌즈와 함께 일찌감치 ‘BT21’ 캐릭터를 내놓았다. BTS 멤버들의 특징을 잡아 캐릭터로 만든 BT21은 해외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보여주고 있다. BT21은 BTS의 인기와 함께 라인프렌즈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됐다. 캐릭터 IP를 활용한 비즈니스가 삶 깊이 침투할수록, 사용자가 친숙하게 느낄수록 비즈니스, 그러니까 주로 플랫폼에 체류하면서 소비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마련이다.
자, 여기까지는 비즈니스 측면에서 ‘IP’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아봤다. 비즈니스 단계에서는 시너지를 통한 체류시간 증가, 친숙도 증가를 원한다. 단순히 광고로 끝나는 시대가 아니라, 캐릭터로 삶 깊이 파고드는 시대가 열렸다. 그렇다면, 이제는 IP가 비즈니스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알아볼 차례다.
△ MCU의 첫 10년을 담은 책 <마블 스튜디오: 첫 10년>(출처=아마존)
모두 예상했다시피 여기서 나올 주제는 MCU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즉 MCU는 기존의 인기 IP를 활용해 실사 영화로 훌륭하게 바꿔냈다. <아이언 맨>(2008)을 시작으로 13년간 우리는 ‘마블의 시대’에 살게 되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기존에 성공한 IP의 팬덤을 확장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매체의 전환’을 이뤄냈고, 이에 맞춰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MCU의 수장으로 알려진 케빈 파이기는 MCU를 만들기 위해 일종의 제작위원회를 꾸렸다. 마블코믹스의 세계관에 정통한 소위 ‘덕후’들로 이루어진 이 제작위원회는 열띈 토론을 통해 영화를 재밌게 만들기 위한 정수들을 모았고, 그 설정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한다. 원작을 잘 몰라도 영화 자체에 빠져들 수 있어야 하고, 코믹스를 알면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요소들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존의 팬덤에게는 ‘새로운 재미’를, 원작을 잘 모르는 팬들에게는 ‘빠져드는 재미’를 주는 작품으로 이야기를 확장하고, 캐릭터 IP와 큰 설정은 유지하되 새로운 세계관, 즉 MCU 안에서 보여주는 영화로 재탄생한다.
재개봉과 복각: 카카오페이지의 ‘프린세스’ 복각
흔히 ‘레트로’라고 부르는 복고풍은 젊은 시절에 향유했던 문화적 요소들을 그 사람들이 구매력을 갖췄을 때 대중문화의 단면으로 부활하는 것을 부르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IP에도 똑같이 적용되는데, 최근 불고 있는 텀블벅에서의 ‘복간’ 시리즈나 영화관(코로나19의 영향이 아주 크지만)에서의 재개봉이 그렇다. 물론 이 둘을 동시에 같은 층위에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개봉과 복각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IP를 되살리기 위한 움직임이다.
△ <프린세스> 재연재 공지(출처=카카오페이지)
최근, 카카오페이지에서는 한승원 작가의 <프린세스>를 컬러로 제작해 재연재한다고 알렸다. 2014년 네이버웹툰에서 연재했다가 2016년 장기휴재에 들어간 이후 카카오페이지와 손잡고 스튜디오 체제에서 컬러 재판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 <프린세스>의 같은 장면 컬러-흑백 비교 (출처=카카오페이지)
이런 재연재, 복간은 IP의 수명을 연장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작품을 읽었던 팬들을 돌아오게 만들기는 어렵지만, 새로 팬덤을 형성하고 충성 독자를 모으는 것 보다는 쉽다. 앞서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삶의 깊숙이 침투하면 플랫폼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아예 새로운 매체로 전환하며 ‘새로운 세계관’을 만드는 것 보다, 기존의 팬덤을 가진 작품을 ‘새로운 방식’에 맞게 재편집해 공개하는 것이 더 수월하다는 장점도 있다. 결과적으로 작가와 플랫폼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만화를 ‘문화’로 만드는데에 일조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기도 하다. 소비하고 사라지는 것은 일회용이지만, 두고두고 찾아보는 것은 고전이 된다. 이 말을 ‘비즈니스적’ 언어로 풀어내면 ‘IP의 생명연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MCU와 같이 다른 방식, 즉 IP확장의 방식으로 생명연장을 시도했다는 점이 기록할 만하다. 그냥 생색만 내는 것이 아니라, 웹툰으로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상업성을 가미했다는 점 역시 특기할 만하다.
IP의 생명연장은 모든 창작자의 염원과도 같은 일이다. 동시에, 플랫폼은 이렇게 확장한 IP로 플랫폼의 수명도 연장하길 바라고 있다. <프린세스>의 복각은 웹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지금에서야 가능했던, ‘만화 IP의 생명연장’을 만나볼 수 있는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