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을 포함한 불법 콘텐츠 수사에서 가장 큰 장벽은 ‘해외에 서버가 있다’라는 말이었다. 디지털 범죄의 대부분이 ‘서버가 해외에 있어서’ 수사가 어려웠으며 국가에서 피해 규모 산정이 쉽지 않았다. 또한 가시적인 피해가 생기기 어려운 저작권 침해는 심각한 범죄로 보지 않기 때문에 수사 협조가 미온적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디지털 범죄 피해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문화 영향력이 확대됨에 따라, ‘한류’ 콘텐츠 침해에 의한 피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정부에서는 어느 콘텐츠 분야를 막론하고 매출의 10%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경찰청과 문화체육관광부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와 ‘온라인 저작권 침해 대응 국제공조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다. 경찰청은 이번 업무협약에 따라 온라인 불법복제물 유통을 근절하기 위한 공동대응에 나선다고 밝혔으며, 이는 온라인 불법복제물 유통’에 특화된 업무협약이라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2021년 5월부터 2026년 4월까지 5년간 전세계 수사기관과 함께 불법복제물 유통 사이트 공조수사, 각국의 수사기관과 상시공조체계 구축, 국제 공동대응을 위한 제도 개선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또한 인터폴 내에 온라인 저작권 침해 대응 전담팀을 구성, 인터폴이 보유한 국제 범죄정보 분석, 수사기법과 전세계 194개국의 회원국 협력망을 활용해 온라인 저작권 침해 대응을 위한 국제공조 수사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말 그대로 전 지구적인 수사망을 펼칠 수 있게 된 셈이다. 조직화, 지능화되는 디지털 범죄 중 ‘저작권 침해’ 수사를 목적으로 하는 팀이 구성된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고, 우리나라 문체부가 협력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이례적이다.
정부가 이렇게 직접 나선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주도하는 웹사이트 차단이 거의 유일한 대응으로 꼽히는데, 정부 주도의 차단이다 보니 시민을 대상으로 한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와 언제나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적법한 근거를 남겨야 하고, 적법한 근거를 남기려다 보니 절차가 복잡하다. 때문에 일 단위를 넘어 시간 단위로 피해가 발생하는 창작자, 저작권자들에겐 답답할 노릇이었다.
△ 불법웹툰사이트 차단 과정. 다른 콘텐츠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출처 저작권보호원)
차단은 저작권보호원 등의 모니터링을 통해 ‘차단 대상’을 파악하고, 협약을 맺은 권리사 등에 저작권 침해 게시물이 맞는지를 확인한다. 기존 사이트가 번호를 바꾼 경우엔 이 과정이 생략되고 바로 심의 의결로 넘어간다. 이후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 사업자에게 사이트 차단 요청을 하고, 최종적으로 차단된다. 그때문에 시간이 수일에서 열흘 가까이 걸리기도 한다. 심지어 방심위 심의위원 추천이 늦어지면 공백상태로 개점휴업이 되기도 한다. 불법저작물, 불법웹툰사이트는 당연히 차단은 기본이고, 무엇보다 범죄자 검거와 처벌, 범죄수익 환수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이 생긴다.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경찰’이 행정안전부 산하 기관이기 때문이다. 이번 인터폴-문체부 업무협약은 공권력이 동원되어야 하는 범죄자 검거와 처벌의 영역에서 효율을 높이고, 국제 공조를 위한 첫 발걸음이 떼어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보다 빠르게, 보다 강하게 하기위해 절차를 줄이자!
결과적으로 범죄자 검거를 위한 근거, 즉 불법유통을 하고 있는 범죄자들이 운영하는 사이트가 증거가 되도록 만들 수 있는 방법이 확보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저작권자, 또는 저작권자에게 위임받은 유통사가 ‘해당 사이트는 저작권 침해가 맞다’고 확인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창작자들이나 합법적 유통사가 느끼는 피로감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매번 직접 찾고, 신고를 하고, 또 다시 ‘이게 침해가 맞다’는 확인을 해야 하는 피로감이다.
이미 이 절차를 간소화하고, 보다 발빠른 대응을 하기 위한 준비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아카이빙 사업이 완성되면, 정식 서비스되는 플랫폼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아카이브에 등록된 플랫폼을 제외한 곳에서 연재되고 있는 작품은 불법적인 유통이라고 볼 근거가 된다. 이에 따라 보다 빠른 차단, 보다 강한 증거수집과 함께 검거 이후 처벌로 이어질 수 있는 시작점이다.
물론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아카이브, 인터폴과의 수사공조, 저작권보호원 등의 모니터링, 플랫폼사가 모여 있는 저작권해외진흥협회(COA)등의 협조가 모두 유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저작권 침해로 인한 피해 최소화’, ‘저작권 침해 근절’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있는 단체들이 유기적으로 협조할 때 창작자들의 피로감을 최소화하면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해외에 서버가 있어서’ 라는 말은 이제그만!
인터폴과의 업무협약에서 가장 기대되는 지점은 바로 해외에 서버를 두었기 때문에 수사가 어렵다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웹툰 작가나 해외 수출이 활발한 콘텐츠 업계 종사자라면 지겹게 들었을 말이다. 특히 ‘클라우드플레어’ 등의 기업으로 대표되는 업체는 고객 정보 보호를 위해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 가장 대표적인 '해외 서버', 클라우드플레어
특히 이렇게 해외에 서버가 있으면 수사 관할권의 문제 때문에 한국의 공권력이 가지는 수사력이 미치지 못한다. 우리나라 경찰이 미국의 허가 없이 수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의 입장에선 자국 기업을 해외에서 수사하겠다는 말을 순순히 들어줄 이유가 없다.
△ 인터폴의 수배 종류별 분류 (출처=인터폴)
더군다나 앞서 언급한 바 대로, 저작권 침해는 상대적으로 경범죄에 해당한다는 점 때문에 더더욱 수사협조를 얻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인터폴과의 협약을 통해 신원이 특정된 범죄자를 수배할 수 있고, 수사협조를 위한 유포(Diffusion)역시 가능해진다. 때문에 더 이상 ‘서버가 해외에 있어서 수사할 수 없다’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높다.
인터폴과의 업무협약은 우리나라가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국제 수사 공조를 바탕으로 전세계 불법 콘텐츠 유통 수사망을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서는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한편, 아카이브 사업을 통해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든든히 마련해 창작자, 저작권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효과적인 대응을 하기 위한 연구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또한 이른바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이 포함되어 미흡한 형사처벌을 보완할 수 있는 민사적 대응방안 역시 제도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