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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플러스에서 강풀의 초능력 유니버스를 만나게 될까?

곧 국내 런칭 예정인 디즈니플러스에서 강풀 작가의 <무빙> 드라마를 만나볼 수 있게 된다. <무빙>을 시작으로 '강풀 유니버스'를 기대해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021-06-23 문아름


디즈니에서 강풀의 초능력 유니버스를 만나게 될까?


1. 연재 그다음을 생각하는 IP



지난 5월, 강풀의 <무빙>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스튜디오앤뉴가 앞으로 5년간 오리지널 시리즈 및 콘텐츠를 디즈니플러스에서 선보일 것이라고 알렸다. 마블 콘텐츠를 모아볼 수 있는 디즈니플러스에 <무빙>이라니. 정말 기대되는 그림 아닌가. 

최근 웹툰이 슈퍼 IP로 불리우며 다양한 미디어에 나타나는 흥행 콘텐츠의 원천 서사로 자리 잡고 있다. <스위트 홈>, <내 ID는 강남미인>, <치즈 인 더 트랩>, <이태원 클라스>. 앞서 열거한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영상화에 성공을 거둔 웹툰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만화의 영상화가 어디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던가. 이미 1926년 조선일보에 연재되던 <멍텅구리 헛물켜기>가 영화로 개봉한 것을 시작으로 <공포의 외인구단>, <타짜>, <각시탈> 등 만화의 영상화는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와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은 것처럼 호들갑을 떨게 되는 이유는 콘텐츠 산업의 지형도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IP만 확보되어 있다면 작품을 연재한 후 판권을 파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재 그다음을 생각하고 직접 영상화에 투자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가 가능해진 것이다. 웹툰 IP를 보유한 에이전시나 플랫폼은 이제 ‘만화’ 기업, ‘웹툰’ 기업이 아닌 ‘콘텐츠’ 기업이라고 표기한다. 이는 이전 CJ ENM이 자사를 방송사가 아니라 ‘콘텐츠 기업’이라 칭하며 전략을 달리한 것과 같다. 이제 IP를 확보한 웹툰 플랫폼, 에이전시는 연재만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이 아닌 ‘그다음’을 노리며 투자할 정도로 산업은 전문화되고 있다. 


2. 각색, 또 각색... ‘다시 쓰기’의 시대



△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영화 포스터. 웹툰 캐릭터와 실제 배우의 싱크로율을 강조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웹툰이 원작인 작품을 시청하고 감상하며, 재밌으면 원작도 찾아본다. 원작과 각색된 작품을 번갈아 가며 달라진 점을 찾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하지만 IP가 원래 이런 것이던가? 원작이 각색되는 것에 그친다면 <공포의 외인구단>이 영상화되던 그 시점과 다른 것은 작가보다 IP를 보유한 콘텐츠 기업이 좀 더 적극적이라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콘텐츠 산업 환경이 아닌 일단 콘텐츠의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접근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이야 웹툰 원작이면 흥행 보증 수표처럼 보이지만 이전에 ‘웹툰 원작은 안돼’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던 때가 있었다. <아파트>, <바보>, <순정만화>, <26년> 등 강풀 작가의 웹툰은 모두 연재 당시 인기를 끌고 판권이 팔리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영상화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비슷한 시기 KBS에서 일본 만화 원작 <장난스런 키스>가 애국가 시청률이 나왔다면서 만화와 영상은 마치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한 번에 바꾼 것이 2013년 HUN 작가의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관객 700만에 가깝게 몰리면서였다. 결과론적인 분석이긴 하지만 만약 차이가 있다면 이전의 ‘얼마나 다시 쓰느냐’에 대한 문제였다. 웹툰 <아파트>는 변두리 낡은 아파트에 사는 한 청년이 화자라면, 영화 <아파트>는 세련된 고층 아파트로 환경이 바뀌며 아예 작품을 가로지르는 정서가 바뀌었다. 그에 비해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캐릭터의 의상까지 원작과 비슷하게 나오며 이제까지의 영상화된 작품들에 비해 ‘다시 쓴’ 부분이 비교적 덜했다. 배우 김수현의 인기가 아니면 흥행하지 못했을 거란 의견도 일리가 있으나, 스토리로만 접근한다면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흥행 성공은 원작의 의도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다시 쓴 미학에 있다. 웹툰 원작과 설정만 비슷한 <쌍갑포차>나 <여중생A> 역시 이식되는 미디어의 법칙에 신경 쓰며 원작의 의도를 상실하는 바람에 ‘다시 쓰기’에 실패하지 않았는가. 이제 각색은 이식되는 미디어의 공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원작에 얼마나 충실하게 다시 썼는가가 되었다. 실제로 성공을 거두는 웹툰 원작 영상 콘텐츠는 최대한 원작과 비슷하게 진행된다. 이 지점은 중요한 것을 시사하는데 바로 웹툰 콘텐츠의 스토리는 드라마, 영화의 공식을 넘어서 대중들에게 검증되었다는 점이다.


3. OTT 서비스, 또 다른 스토리텔링의 방식

웹툰의 스토리가 독자들로 인해 검증된 콘텐츠로서의 기대를 부여받았다면 이제 또 다른 축인 영상 스토리텔링의 변화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혹시 <하우스 오브 카드>를 기억하시는지. 넷플릭스가 2013년 제작하고 독점으로 공개한 이 드라마는 여러모로 센세이셔널했다. “넷플릭스가 제작도 한다고?” 이전까지 넷플릭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이전까지 있던 콘텐츠를 모아볼 수 있는 동영상 구독 서비스였다. 일종의 콘텐츠 포털이었던 넷플릭스는 여러모로 이점이 있었으나, 자사가 가진 IP가 없는 상태에서의 무리한 확장은 한계가 명확했다. 넷플릭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를 직접 제작해 IP를 확보하였고 또한 기존의 방송국 드라마와 달리 ‘한꺼번에 보기’ 전략을 선택했다.

넷플릭스의 최고 콘텐츠 책임자인 테드 사란도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를 한꺼번에 모든 에피소드를 공개하는 것으로 하자 네트워크 간부들이 모두 전화를 걸어 ‘시청자들이 매주 TV로 돌아오게 만들라’라는 요구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다음 주에 다시 시청자들을 돌아오게끔 만드는 기존의 전통적인 스토리 설계에서 벗어나 열세시간짜리 영화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스토리 구조를 만들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성공 이후 넷플릭스는 보란 듯이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고 흥행에 성공했다. 여성 교도소의 경험을 다룬 원작을 토대로 한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소설,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 수없이 각색되었으나 새로운 관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한 <빨간머리 앤>, '셜록 홈즈에게 여자 형제가 있다면 어땠을까'라는 흥미로운 질문에서 시작한 <에놀라 홈즈>.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이미 너무나 많다.



 <스타트랙> 드라마 시리즈의 작가이자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교수인 패멀라 더글러스는 넷플릭스 시대 글쓰기와 기존의 드라마 글쓰기의 차이점을 에피소드식 캐릭터 변화, 연속 방송을 위한 ‘긴 내러티브’, 그리고 협업을 꼽았다. 넷플릭스란 OTT 서비스가 생기면서 ‘캐릭터 아크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긴 호흡’이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러한 영상에서의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은 이미 만화에서는 오랫동안 자리 잡은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우리는 이미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정신적으로 유아에 머무르는 동안 베지터가 성장하고, 베지터가 멈춰있는 동안 다양한 캐릭터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지 않았는가. <신의 탑>에서 주인공 밤이 끝없이 전투를 치르며 탑을 올라가는 동안, 그의 러닝 메이트 쿤 또한 성장했고 시즌을 달리하며 또 다른 캐릭터 자왕난에게 초점이 맞춰졌을 때도 그의 성장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다음 화를 궁금하게 만드는 연재 회차의 분할은 기존 드라마의 분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나, 전체적인 긴 호흡의 스토리 구조를 만들고 캐릭터 아크별로 다른 시즌이 전개될 수 있는 것은 넷플릭스와 웹툰의 스토리텔링 방식의 공통점이다. 넷플릭스에서 웹툰 <스위트 홈>, <좋아하면 울리는>을 원작으로 한 동명 콘텐츠를 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4. ‘다시 쓰기’가 아닌 ‘덧붙여 쓰기’,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유니버스

웹툰의 스토리텔링 방식까지 OTT 서비스에 맞는다니, 그렇다면 IP 사업은 지금 이대로 하면 되는 것일까. 앞서 계속해서 나왔지만 우리가 높이고 있던 ‘누군가’를 이제 이 논의에 초대해보자. IP 사업을 이끌어가는 플랫폼이나 에이전시, 웹툰 영상화의 또다른 영역 OTT 서비스보다 더 먼저 이 웹툰을 알아본 누군가가 있다. 당연하게도 ‘대중’, 명확히는 ‘독자인 대중’이다. 뉴미디어 연구는 콘텐츠 독자, 시청자를 ‘사용자’로 명명한다. 그 이유는 독자나 시청자는 일방향적인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입장이지만 ‘사용자’는 주어진 콘텐츠를 탐색하고 경험하며 스토리를 상상하는 능동적인 태도로 콘텐츠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분명 웹툰은 그저 웹에서 만화를 연재하는 것을 떠나서 기존의 매체보다 독자들을 더 능동적으로 만들고 있다. 작품마다 댓글을 달 수 있는 란이 있고, 기본적으로 연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에피소드의 분할 지점에서 독자들은 빈 기간 함께 스토리의 여백을 상상하고 궁금해한다. 물론 연재형 드라마도 독자들이 모여 그다음을 궁금해하기는 하지만 웹툰은 드라마보다 빠르게 거의 읽는 것과 동시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네이버웹툰은 2015년 모바일 전용 컷툰을 만들어 컷마다 독자들이 댓글을 달 수 있게 만들었다. 기존의 웹툰은 에피소드별로 분할되어 독자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면 컷툰은 그보다 더 짧은 단위로 독자들이 감상을 나누고 그다음 컷에서의 긴장감을 공유한다. 이는 일종의 공공독서다. 

하지만 이러한 공공독서의 경험은 여전히 뉴미디어에서 이야기하는 ‘탐색’과 ‘경험’과는 거리가 있다. 클릭할 때마다 이야기가 달라지는 상호작용적 서사를 표방하는 게임과 달리, 웹툰은 한 작품 안에서 시작과 끝이 동일하며 독자가 선택한다고 해서 이야기가 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과연 지금의 웹툰 안에서 독자들이 이야기를 탐색하고 경험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답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에 대한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 문화연구가 마샤 킨더가 1991년 한 작품의 캐릭터가 여러 플랫폼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을 서술하기 위해 트랜스미디어 상호텍스트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최초로 등장했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요건에 대해서 말한 학자들 중 안드레아 필립스의 정의를 사용하자면 다매체, 단일하고 통일된 스토리와 사용자경험, 매체 간 불필요한 반복 방지가 해당 요건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금까지 나타난 ‘각색’은 원작을 미디어에 따라 다르게 ‘다시 쓰기’에 해당한다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덧붙여 쓰기’에 해당한다. 대표적으로는 ‘마블 유니버스’를 들 수 있는데,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마블 영웅들을 생각해보자. <스파이더맨>을 보지 않았다고 해서 <토르>를 이해할 수 없을까? 각각의 콘텐츠는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어 전부를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대중은 전부를 보고자 한다.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파편화된 콘텐츠 안에서 그들은 그 연속성을 찾으며 재미를 느낀다. 대중을 탐색하고 경험하게 만드는 스토리 유니버스, 그것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 가질 수 있는 핵심이다. 


5. 한국 웹툰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시작, 강풀의 초능력 유니버스



한국 웹툰에도 역시 세계관을 공유하는 콘텐츠가 등장한다. 강풀의 초능력 유니버스는 2004년 <아파트>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허름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 바로 강풀의 초능력 유니버스의 시작인 형사 양성식이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양성식은 김상훈이라는 인물을 구해주며 저승사자 능력을 넘겨받게 된다. 이후 양성식은 초능력 유니버스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데 공포물에 해당하는 작품은 <아파트>와 <조명가게>(2011)다. 이후 이 세계관 <타이밍>(2004)과 <무빙>(2015)으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각각 시간능력자와 신체능력자들의 이야기다. <타이밍>은 타임스토퍼인 김영탁을 필두로 시간능력자들이 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이며, 이 후속으로 <어게인>(2009)을 통해 생명을 연장하려는 어게인과 시간능력자들의 대결을 다루었다. <무빙>은 신체능력자들의 이야기로, 귀신, 초월적 존재를 다룬 타이밍에 비해 맞서야 하는 적대 세력이 국가권력이며 신체능력자들은 부모의 능력을 이어받는다. 각각의 작품에서 등장한 능력자들이 만나는 작품이 바로 <브릿지>(2017)다. 이후 이들이 힘을 합쳐 함께 활동하는 <히든>이 차후 연재될 예정이다. 



△ <브릿지> 후기에 달린 댓글들

이러한 강풀의 초능력 유니버스는 독자들로 하여금 더 이상 수동적인 상태로 콘텐츠를 소비하게 두지는 않는다. 앞서 언급한 <아파트>와 <조명가게>는 해당 유니버스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브릿지>(2017)에서 작가 후기를 통해 <조명가게>가 이 세계관에 포함되었다는 작가의 글이 올라오자 댓글 창에서 <조명가게>를 다시 보며 누가 어디서 등장했는지 찾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이 독자들은 백기형이 나오는 한 컷을 찾기 위해 다시 읽고, 사람들과 의견을 나눈다. 로버트 프래튼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에서 사용자의 참여는 발견, 경험, 탐험이라는 세 영역으로 나뉜다고 제시한 바 있다. 이미 강풀의 초능력 유니버스는 독자들로 하여금 콘텐츠를 넘나들고 단서를 찾는 플레이어로 만들고 있다. 이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즐기는 독자들이 마치 게임을 하듯 영화를 따라가고 스토리의 조각을 찾아 나서는 모습과 흡사하다. 이 기세라면 영상화를 하든 게임화를 하든 독자들은 계속해서 스토리 월드를 확장해나가기 위해 콘텐츠를 찾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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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아름

웹소설 및 웹툰 스토리 작가, 연구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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