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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페이지에서 배트맨을 만나다 : 버티컬라이징의 의미

DC 코믹스가 카카오페이지에 등장하게 된 배경과, DC 코믹스가 웹툰화되는 것에 담긴 의미를 살펴본다.

2021-06-29 오혁진


카카오페이지에서 배트맨을 만나다 : 버티컬라이징의 의미


 DC 코믹스의 배트맨, 슈퍼맨, 원더우먼, 저스티스 리그가 카카오페이지에 연재 중이다. 미국의 상징적 만화가 웹툰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 만화산업을 이끄는 DC 코믹스가 어떠한 이유로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협업하게 된 걸까. 관련 기사를 보도한 언론사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이번 협력을 통해 DC코믹스는 출판 만화의 웹툰화 전환 가능성을 타진하고, 카카오엔터는 DC코믹스 팬 확보와 북미 웹툰시장 경쟁력 확보를 노린다.”1) 옳은 분석이지만 만화의 형식, 만화산업의 구조를 논의하기 위해선 이보다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미국 만화산업의 현황부터 이야기해보자. 미국 만화산업은 출판 만화의 점유율이 90% 이상으로 출판 만화가 디지털 만화에 압도적 우위에 있다. 그러나 MZ 세대의 디지털 만화 선호가 증가하고 한국, 일본의 디지털 만화 플랫폼이 본격 진출함에 따라 향후 미국 디지털 만화의 빠른 성장이 예상된다. DC 코믹스의 경우도 온라인 유통 경로를 확대 중이며 최근 디지털 플랫폼 ‘DC Comics Universe Infinite’를 새로이 개편했다. DC 코믹스가 제안한 웹툰화 기획 또한 디지털 전환의 구체적 사례일 텐데, 이를 통해 우리는 디지털 만화의 생산, 유통 및 소비의 변화를 가늠해볼 수 있다.

  게다가 DC 코믹스의 웹툰화는 산업적 관점 외에 '재매개'의 관점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다. 웹툰화는 출판 만화를 재매개하면서 출판만화의 기능을 확장한다. 재매개란 하나의 미디어가 내용과 형식 차원에서 다른 미디어의 표현 양식, 사회적 관습 등을 답습하면서 동시에 개선, 개조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2). 카카오페이지는 이미 일본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를 웹툰화한 바 있다. 하지만 DC 코믹스의 웹툰화가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웹툰과 DC 코믹스 사이의 거리가 웹툰 일본 만화 사의 거리보다 훨씬 멀기 때문이다. DC 코믹스의 칸은 웹툰, 일본 만화의 칸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정보량이 많고 시간의 지속이 길다. 따라서 웹툰의 유동하는 스크롤 속에 밀도 높은 DC 코믹스를 배치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DC 코믹스를 웹툰화한다는 것은 단지 출판 만화에서 디지털 만화로의 전환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것은 지표로서의 출판 만화를 재매개를 통해 고유한 정체성을 구축하는 작업이며, 또한 수직 스크롤을 다시금 검토하는 웹툰의 선명한 자기반영이다.  


만화 유통의 변화, DC 코믹스의 선택

 미국은 글로벌 만화산업 2위 국가로, 일본과 시장점유율 합치면 전 세계 50%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시장이다. 하지만 미국 디지털 만화의 경우 거대한 산업 규모에 비하면 비중이 매우 낮다. 2016년~2019년 디지털 만화의 점유율은 10%에 못 미치며 이마저도 2019년에는 전년 대비 소폭 감소했다. 그럼에도 미국 디지털 만화는 만화 유통 시장의 변화를 포함한 최근 일련의 새로운 흐름들로 이전과 다른 성장이 기대된다. 

 먼저 미국 만화 오프라인 유통 시장의 변화에 관해 살펴보자. 2020년 3월 23일 다이아몬드 코믹스(Diamond Comics Distributors)는 COVID-19로 인해 오프라인 만화 유통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이것은 DC 코믹스를 포함한 많은 출판사에 매우 심각한 문제였는데, 왜냐하면 북미 만화책의 유통을 다이아몬드 코믹스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DC 코믹스는 2020년 6월 다이아몬드 코믹스와의 계약을 급작스레 종료한다. 표면적 이유는 계약 만료와 대금 미지급이었으나 실제로는 2000년대 이후 진행된 만화산업의 구조적 변화가 근본적인 이유였다. 소매점 독점 유통을 통한 판매 방식이 과거에 비해 중요도가 크게 떨어졌으며, 또한 다이아몬드 코믹스가 유통하는 페이퍼백 대신 일반 서점에서 판매되는 그래픽노블이 만화의 지배적 형식이 됐다3)

 이와 같이 DC 코믹스는 새 유통 경로를 적극 모색하는데 이 과정에서 MZ 세대의 독자를 유입하기 위해 디지털 온라인 유통 판매를 강화하기 시작한다. DC 코믹스 CCO 짐 리는 이후의 디지털 만화 전망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출판 만화는 반드시 지속해야 할 사업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디지털 만화는 크게 성장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더 많은 글로벌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특히 팬데믹 시기인 지금 온라인으로 손쉽게 만화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2021년 개편한 디지털 만화 플랫폼 DC 유니버스 인피니트(DC Universe Infinite)는 이 같은 DC 코믹스의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기획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주목할 지점이 있다. 웹툰과는 확연하게 다른 디지털 플랫폼으로서 DC 유니버스 인피니트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DC 유니버스 인피니트는 웹툰의 무료 모델이 아닌 넷플릭스와 같은 구독 모델을 제공한다. 그리고 네이버와 카카오와 같이 IP를 공격적으로 확보하지는 않지만 80년간 축적된 풍부한 IP의 활용하기 위해 출판 만화의 디지털 전환에 집중하는 상황이다. 현재 DC 유니버스 인피니트는 버티고의 작품군을 추가하여 24,000여 개의 만화를 공급 중이며 신간 출판 만화는 매장 출시 6개월 후, 디지털 퍼스트 출판 만화는 3개월 후에 업로드를 한다.


수직적 형식의 세계

 웹툰은 수평에 대한 수직의 우위를 제도화한 만화 형식이다. 가로는 물리적 조건에 제약된 반면 세로는 무한히 연장된다. 그리고 웹툰의 운동과 시공간은 이렇게 성립된 수직의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DC 코믹스의 웹툰화를 총괄한 시공사 역시 이런 웹툰의 특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시공사 관계자는 “가로 방향으로 읽는 코믹스를 세로로 표현함에 있어 이질감을 줄이고 디테일이 살아있는 작화를 보여 줄 수 있도록 공들였고, 두 페이지를 활용한 컷의 경우 세로 비율로 무리하게 가공하지 않고 90도로 돌려 스크롤 화면에 녹였다. 또한 정보량이 많은 미국 만화의 글과 그림이 가진 장점을 손실 없이 웹툰으로 구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DC 코믹스를 웹툰화하면서 생긴 변화 중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은 수직 공간에서 파생된 스크롤 연출이다. <배트맨>에서 마천루에 뛰어내린 배트맨의 모습을 보자. 이 극적인 순간은 출판만화에서 3개의 직사각형 칸들이 평행하게 나열되어 표현된다. 그런데 출판만화와 달리 웹툰에서는 직사각형 칸이 평행하게 나열되지 않는다. 각 칸이 순차적으로 하강하면서 마치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처럼 구성된다. 



왜 3개의 칸은 대각선 구도를 그리며 배치된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웹툰의 디스플레이는 3개의 연속된 칸을 한 화면에 담아내기엔 너무나 좁다. 디스플레이를 컴퓨터 모니터로 택한다면 이보다 낫겠지만, 그럼에도 독자들은 여전히 출판 만화에서 허용된 다층적 칸을 웹툰에선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로 웹툰의 연속 칸들은 좁은 수평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려 수직의 공간으로 연장한다. 즉, 각 칸을 시차를 두고 제시함으로써 그러니까 한 화면에 칸의 중복을 가능한 지연시킴으로써 웹툰의 가독성을 높인 것이다.

 더욱이 수평도 수직도 아닌 사선을 그리는 계단의 궤적은 흥미롭게도, 앞선 인터뷰에서 언급된, 90도로 회전된 이미지를 이해할 단서를 함께 제공한다. 수평의 이미지를 90도로 회전 시켜 수직으로 배치하는 작업에서 대각선은 중요하다. 사실 수평으로 확산되는 이미지를 공간이 허용된다는 이유로 웹툰의 수직적 공간에 배치한다는 건 상당히 불만족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수평과 수직의 긴장 속에서 사선의 구도가 도입될 때 그리고 여기에 더해 주인공의 심리, 사건의 상황 등 개연성이 덧붙여질 때, 수직 스크롤 형식의 잠재성은 활성화된다. 가령 슈퍼히어로를 수평 구도로 배치한 <슈퍼맨>의 한 장면을 보자. 수평 구도의 장면이 90도로 회전되어 웹툰으로 옮겨질 때 우린 칸 가장자리에 매달린 그들의 기이한 모습에 당혹스럽다. 하지만 가파른 사선 구도의 <배트맨> 추격 장면은 그렇지 않다. 배트맨의 오토바이 역시 90도로 회전하지만 출판만화보다 방향을 더욱 틀어 수직의 운동을 가속화하는 순간 그것은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감각을 선사한다.




 이제 끝으로 DC 코믹스의 대사와 독백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살펴보자. 대사와 독백은 칸 밖을 나와 칸과 칸 사이 커다란 빈 공간에 배치된다. 이러한 변화는 대사와 독백 즉 말풍선의 이동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말풍선의 이동은 그림과 대사의 속성까지 함께 변화시킨다. DC 코믹스의 대사와 독백은 긴 분량으로 마치 산문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긴 대사와 독백이 웹툰에서 2~3개의 말풍선으로 분리되어 칸 밖에 길게 놓일 때 그 속성은 변화한다. 분리된 대사와 독백이 수직 스크롤을 따라 차례로 떠오르면서 음성으로 발화되는 것이다. 게다가 시간과 말풍선의 상관성을 고려한다면, 웹툰과 DC 코믹스의 동일한 이미지는 이제 각기 다른 시간대를 점유한다. DC 코믹스의 이미지는 축적된 대사로 지속의 시간을 가지고 이와 다르게 웹툰의 이미지는 칸에서 대사를 배제하면서 사진처럼 순간적 시간을 가진다. 



 이렇듯 웹툰에서 돌출된 텅 빈 공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텅 빈 공간은 무엇일까. 칸 사이 간격이라면 홈통이 될 것이고 칸이 배치될 용기라면 페이지가 될 것이고 심지어 글과 그림이 그려지는 캔버스라면 또 하나의 커다란 칸이 될 것이다. 요컨대 웹툰의 텅 빈 공간은 홈통이며 페이지며 혹은 칸이다. 웹툰 매체의 주요 속성으로 수직의 무한 캔버스를 꼽곤 하는데, 이것은 이미지의 끝없는 수직적 확장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홈통, 페이지, 칸이 종합된 무언가가 무한히 확장된다는 사실이다. 명칭이 마땅치 않다면 윌 아이스너가 주창한 슈퍼 칸이라 불러도 좋다. 비록 윌 아이스너는 웹툰을 예언하지 않았고 웹툰 작가들도 아이스너의 유산을 의식하진 않았지만, 두 형식 모두 만화 고유의 칸 관계망을 약화시킨다. <배트맨>에서 일련의 칸들이 수평의 압력에 수직으로 뻗어 나간 것도, 특유의 긴 대사와 독백이 재현 공간인 칸 너머로 이동한 것도 다름 아닌 이 같은 공간의 무한 확장 때문이다. 그래서 비트로 구성된 배트맨은 더 이상 칸의 기하학적 세계에 예속되지 않는다. 대신 칸과 칸, 칸과 페이지를 유동하며 초월적 수직 세계 속으로 낙하한다.


디지털 만화의 미래는

 한국의 웹툰은 미국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며 디지털 만화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보다 더디기는 하지만 미국만화 역시 유통시장의 변화와 맞물려 디지털 만화 시장을 확대 중이다. DC 코믹스의 웹툰화는 이러한 글로벌 만화시장의 변화 즉 디지털 만화의 전환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오해해선 안 된다. 디지털 만화가 미래 만화의 중심이 될 것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디지털 만화의 지배적인 형식이 웹툰이 될 거라 섣불리 판단해선 안 된다. 출판만화의 전통적 칸 구성은 와해되겠지만 그 이후의 디지털 만화가 반드시 웹툰의 형식일 수는 없다. 실제로 DC 유니버스의 플랫폼은 출판만화의 경로 의존성을 따라 웹툰에 없는 패널뷰와 회전, 확대 기능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디지털 만화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질문에 정확히 답하기란 어렵지만, DC 코믹스의 웹툰화와 같이 앞으로 시도될 다양한 만화적 실험에서 만화의 미래를 추정해 볼 수는 있다. <배트맨>에서 가장 인상적인 미로 장면으로 되돌아 가보자. 가능하다면 웹툰과 출판만화 모두로. 출판만화에서는 칸으로 연쇄된 미로의 조감도를 펼쳐내며 웹툰에서는 수직의 터널비전(tunnel vision)을 부여해 미로의 내부로 진입시킨다. 그러다 출판만화의 웹툰화를 예감하듯, 웹툰과 출판만화 모두 90도 회전을 거듭하며 칸과 페이지를 해체한다. 우리는 어쩌면 이 만화경적 미로 어딘가에서 만화의 미래를 발견할지 모른다.



1) 정원엽, "카카오에 “배트맨 웹툰 좀...” 부탁한 DC 코믹스의 계산", 중앙일보, 21.04.23, https://news.joins.com/article/24042281 (접속 일자 : 21.06.29)

2)  고민정, 「디지털 기술과 웹툰의 재매개」, 『문화콘텐츠연구』 제7호,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2016

3) 한국콘텐츠진흥원, 2020 만화 산업백서 (한국콘텐츠진흥원, 2020), 15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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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혁진

만화평론가
「만화 형식의 역사 - 윌리엄 호가스에서 장 자크 상페까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