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타입의 누적 정산액 300억 원 돌파, 웹툰-만화 독립 시장 주목해보기
지난 8월 콘텐츠 업계에 주목할 만한 깜짝 소식이 들려왔다. 창작 콘텐츠 오픈 마켓인 ‘포스타입’이 창작자 누적 정산액 300억 원을 돌파했다는 내용이다. 지난 2015년 콘텐츠 거래와 후원이 가능한 블로그 서비스로 시작한 포스타입은 이제 매달 400만 명 이상이 방문하고 창작자 2만 명 이상이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에는 누적 가입자 수 200만을 기록하고 거래액 61억을 돌파하더니 불과 2년여 만에 배 이상의 괄목할 만한 성적을 보여준 것이다. 포스타입의 성장은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플랫폼만 독식하는 적자생존의 생태계에서, 독자적인 포지션으로 창작자와 팬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통한 것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고 감동적이다. 특히 일부 서브컬쳐 팬층을 제외하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성공이기에 더욱 그렇다. 포스타입은 어떻게 성공했을까? 팬들과 긴밀하게 만나고 싶은 웹툰, 만화 창작자는 주목하시길 바란다.
무수히 많았던 웹툰 오픈 플랫폼, 왜 포스타입만 성공했을까?
“이게 될까?” 약 5년 전, 포스타입을 처음 알게 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특히 그간 수많은 콘텐츠 오픈 플랫폼이 제대로 된 수익 모델이나 운영 노하우 없이 무작정 오픈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케이스를 많이 봤던 터라 더 그랬다. 그들이 가진 거라고는 창작자가 팬을 만나 쉽게 수익을 얻어 더 안정적인 창작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는 좋은 취지밖에 없었다. 특히 당시 웹툰 관련 서비스를 오픈한 곳 중에는 말만 번지르르하고 투자 유치에만 열을 올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포스타입도 그런 류의 서비스가 아닐까하는 의심의 눈을 거두기 어려웠다. 대놓고 서브컬쳐를 지향하면서 메이저가 되려고 하기보다, 아무도 개척하지 않은 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포스타입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포스타입은 방향성을 잘 잡고 창작자의 콘텐츠를 누구나 쉽게 거래할 수 있도록 서비스의 뼈대를 잡았다. 물론 처음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시장의 반응을 토대로 유연한 정책을 펼치며 수요자와 공급자가 거래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하면서 이 낯선 시장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도록 만들었다. 타이밍 좋게 그 시점에 SNS에서 동인 시장을 중심으로 ‘커미션 문화(동인에서 이뤄지는 창작 거래)’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커미션은 개인 간의 거래로 간혹 문제가 생기기도 했는데, 포스타입의 시스템은 이를 보완하는 장치가 되어주었다.
포스타입의 성공이 단순히 운이 좋았기 때문인 것만은 결코 아니다. 포스타입이 독보적인 포지션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존 플랫폼과 반대 방향으로 펼치는 정책이 기존 플랫폼 외의 대안을 찾던 독자들의 반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기존 플랫폼이 작가에게 높은 수수료와 독점권, MG계약 등의 불리한 계약 조건을 제시한다면, 포스타입은 적정 수준의 수수료 외에는 다른 조건을 내밀지 않는다. 무엇보다 기존 플랫폼들은 아마추어 작가와는 거의 계약하지 않고 이름이 알려진 작가나 스튜디오, 에이전시와 주로 계약하는 반면, 포스타입은 아마추어 작가에게도 팬과 소통하고 콘텐츠를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것은 보다 넓어진 독자들의 다양성을 충족시켜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양성으로도 비즈니스가 된다는 것을 보기 좋게 입증한 것이다. 포스타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기존 플랫폼이 작가를 발굴하는 창구로서도 작용한다. 지금도 대형 플랫폼의 편집부에서 포스타입을 살펴보고 있을지 모른다. 웹툰 창작 생태계에서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을 갖게 된 것이다. 이것이 포스타입이 살아남은 이유가 아닐까?
포스타입의 성공이 웹툰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
웹툰, 만화 업계에서 작가의 이른바 ‘무료 노동’은 늘 문제로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문제 제기 후 현실에서 변화를 찾는 것은 요원하다. 지난해 연말 모 언론사 신문에 대형 플랫폼의 아마추어 작가 연재권 관련 문제를 제기하는 기획 연재 기사가 실려 화제가 되었는데, 해당 문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있어왔고 매년 기획 기사가 보도됐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기사의 발행 연도 뿐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올해나 내년, 10년 뒤라고 해도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이렇게 말하면 작가들의 처우가 절망적이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포스타입이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연재권을 위해 플랫폼이나 에이전시 측에 무료 노동을 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작가의 작품 유통 창구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만들어도 플랫폼에서 연재되지 않으면 수익을 낼 수 없다. 작가 개인이 거대한 웹툰 사이트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출판을 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작품을 유통하려면 플랫폼이나 에이전시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그렇기에 작가보다 플랫폼 측에 힘이 쏠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포스타입의 등장은 게임을 완전히 바꿔 놨다. 작가들은 이제 연재권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포스타입에서 독자와 직접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자유롭게 웹툰을 연재해 독자에게 직접 작품을 유통하고, 독자는 대리 결제를 통해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다. 포스타입을 통하면 연재권한을 갖고 있는 플랫폼과의 계약으로 수익을 얻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본질적인 것은 작가 개인의 완전한 창작을 보장받을 수 있다. 포스타입은 연재처의 편집 방향성에 끼워 맞추지 않고 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창작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엔 이상적인 상황이 가정되어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접한 독자를 팬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려면 작품 활동은 물론 마케팅부터 독자 대응(CS, Customer Service)까지 모두 소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마케팅 전략과 운영 전략이 필요한데, 오롯이 작가 혼자 하기에는 벅찬 일이다.
늘어나는 웹툰 파생 시장, 어떤 서비스가 나올까?
포스타입은 기존 시장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공략했다는 점에서 파생 서비스라고도 할 수 있다. 아마추어 웹툰 작가도 팬을 만들어 수익을 낼 수 있는 환경을 파생시켰기 때문이다. 웹툰 시장이 성장하면서 이런 파생 서비스도 하나씩 생겨나고 있다. 주로 작가 후원 관련 서비스가 많은데, 아무래도 엔터테인먼트의 범주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비슷한 양상을 띄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서비스는 모두 작가에게 경제적 안정을 통해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팬들이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중요한 취지가 있다.
이러한 서비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단연 ‘텀블벅’이다. 텀블벅에서는 웹툰 작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이 펀딩을 통해 창작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텀블벅의 후원 시스템은 창작물이 완성되기 전, 안정적인 환경을 갖고 시작할 수 있도록 선후원을 받는 것이 주된 골자이다. 또한 삼천원’도 주목할 만하다. ‘천 명이 한 번 감상하는 작품만큼이나 한 명이 천 번 감상하는 작품도 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라는 카피처럼, ‘삼천원’은 소수를 겨냥한 크리에이터, 아티스트도 지속가능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후원 시스템을 제공한다. 다양성 시대에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 취향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창작자를 발굴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 아티스트를 위한 오픈 플랫폼 삼천원
해외에서는 이미 개인 창작자를 위한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단연 ‘패트리온(Patreon)’일 것이다. 북미에서 주로 서비스되는 패트리온은, 지난 4월 무려 1억5,500만 달러(약 1,72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현재 기업 가치는 약 12억 달러(약 1조3,300억 원)에 달한다. 동인 시장이 가장 활발한 일본의 경우 ‘픽시브(Pixiv)’나 ‘판시아(Fantia)’ 등의 후원 플랫폼이 활발하게 서비스 중이다. 이들 서비스는 국내 서브컬처 팬덤 사이에서도 많이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좌) 픽시브 (우) 판시아
상상력을 펼쳐보자. 미래에 또 어떤 파생 서비스가 생길 수 있을까? 앞으로 웹툰의 성장세는 글로벌화되며 더욱 커질 것이다. 그와 발맞춰 개인 창작자 시장도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앞서 서술했듯이 개인 창작자가 안정적으로 팬들과 거래하려면 다양한 부가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단서로 추론하자면 개인 창작자의 마케팅이나 CS를 돕는 서비스가 생길 수 있겠다. 이런 파생 시장이 커지면 자연히 웹툰 시장 자체의 크기도 커지고 글로벌 시장에서 표준 서비스로 자리매김하는 유니콘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