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 웹툰 <녹색전상>의 캐릭터 굿즈 흥행, BL팬덤을 살펴보다
지난 8월, 리디북스에서 연재되고 있는 BL 웹툰 <녹색전상>의 굿즈 아크릴 액자 3종 세트가 오픈 2시간 만에 완판되었다. 해당 웹툰은 당시 22화까지 연재되었으며 전체 플롯을 예상했을 때 작품의 초반부만이 오픈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왜 <녹색전상>의 굿즈는 완판될 수 있었을까?
캐릭터 굿즈에 주목하라
최근 콘텐츠 IP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웹툰의 콘텐츠 IP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보통 영상화 예시를 많이 드는데, 사실 IP 라이선싱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쓰이는 산업은 바로 캐릭터 산업 분야이다. 콘텐츠 IP는 콘텐츠의 구성요소가 지적재산권이 될 수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전체적인 작품의 각색이나 유니버스를 공유한 다른 콘텐츠가 제작되는 것이 아닌 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캐릭터의 라이선싱을 활용해 다양한 상품을 제작하는 것이다. 실제로 캐릭터 굿즈 사업이 활성화되어 있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경우, TV 시청에 대한 판권료를 받는 것만으로는 제작비를 충당하기 어렵다. 굿즈 사업이 동반되어야 해당 프로젝트의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활성화된 것이다.
웹툰의 캐릭터 굿즈 시대
△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좌)과 네이버 웹툰프렌즈스토어 (우). 현재 텀블벅에서 진행되고 있는 굿즈 및 단행본 모두 작가 개인이 아닌 사업권을 가진 플랫폼이 진행 중이다.
캐릭터 굿즈는 주로 원작이 있는 콘텐츠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를 활용하거나 브랜드의 특정 캐릭터를 활용하는 양상으로 나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이모티콘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카카오프렌즈, 라인프렌즈의 캐릭터들이 캐릭터 상품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나 소품을 활용한 완구 역시도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 굿즈이다. 그런데 이제 웹툰이 대중에게 친숙한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웹툰 콘텐츠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활용하는 굿즈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웹툰 캐릭터 굿즈는 굿즈 전문샵이나 작가 개인이 진행하는 텀블벅과 같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이용해 제작되다가 최근에는 콘텐츠 IP의 다각화에 주목해 플랫폼이나 에이전시가 직접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공식스토어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대표적인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의 웹툰 카테고리에 등록된 프로젝트 개수는 총 285개. 그중 펀딩 성공 및 현재 진행 중인 193개의 프로젝트(스케치업, 클립스튜디오, 광고 펀딩 제외)의 유형을 살펴보면 작품후원에 해당하는 프로젝트는 132건, 오디오 드라마 제작 프로젝트는 11건, 굿즈 제작 프로젝트는 32건, 웹툰의 단행본 작업 프로젝트는 10건, 원저작물 단행본 프로젝트는 8건이다. 작품후원에 해당하는 132개의 프로젝트 중 웹툰 시리즈를 화별로 분할해 개별 프로젝트로 진행한 것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32건의 굿즈 제작 프로젝트는 그다지 높은 비중은 아니다. 그러나 네이버 웹툰프렌즈 스토어가 현재 판매하는 굿즈가 229개인 점을 보더라도 이제 웹툰 캐릭터 굿즈는 사업화 권리를 보유한 플랫폼이나 에이전시가 주목하는 사업이 된 것이다.
디자인적 데포르메가 강한 캐릭터는 일상용품으로, 그렇다면 BL은?
△ 네이버웹툰 프렌즈 스토어에서 판매하고 있는 <유미의 세포들> 파우치(좌), 디앤씨웹툰스토어에서 판매하고 있는 <녹색전상> 아크릴 액자(우)
그렇다면 주로 어떤 캐릭터가 굿즈로 만들어질까? <유미의 세포들>, <모죠의 일지>, <좀비딸> 등 이 작품의 공통점은 바로 디자인적 데포르메가 강한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캐릭터는 주로 그립톡이나 파우치와 같은 일상용품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굿즈를 구매하는 독자들은 주로 ‘이 캐릭터가 귀여워서’와 같이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표현한다. 하지만 BL 웹툰에서 위와 같은 디자인적 데포르메가 강한 캐릭터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주로 극화체로 제작된다. 이러한 극화체의 캐릭터를 사용한 굿즈는 일상용품이 아니라 일종의 기념용품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온 오어 오프>의 컬렉팅 카드, 강대형 캐릭터의 8인치 피규어, <녹색전상>의 아크릴 액자 세트는 웹툰의 캐릭터를 실물로 제작해 보관할 수 있다.
일상용품으로 만들어지는 굿즈 구매의 목적은 ‘소비’이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며 자신의 취향을 표현하는 것이 이 ‘소비’의 목적이라면 기념용품으로 만들어지는 구매의 목적은 ‘후원’이다. ‘후원’은 마치 아이돌 팬덤이나 스포츠 팬덤처럼 해당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즉 BL 팬덤의 캐릭터 굿즈는 캐릭터 디자인이 아닌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서사성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BL 웹툰 중에서 <녹색전상>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녹색전상>이 특별한 이유 – 첫 번째, 느와르
△ 좌측부터 <녹색전상>(JAXX)(2021~),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하기오 모토)(1992~2000), <마도조사>(묵향동후)(2015~2016)
<녹색전상>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조직폭력배로 시작해 현재는 신해건설 사장인 진청우는 우연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미대생 매튜와 만나 끌리게 된다. 매튜의 모델이 되어달라는 제안에 진은 매튜에게 성적인 관계를 요구하게 되고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진다. 사실상 두 사람의 이야기만 압축해보면 로맨스물이지만 진청우가 처해있는 상황이나 진청우의 세계 등의 분위기를 봤을 때 이 작품의 또 다른 장르는 느와르다. 진청우가 속해있는 신해건설의 천자화 대표는 미술관 부지를 노리고 있으며 진청우는 그 이유는 모른 채 점차 사건에 휘말리기 시작한다.
BL 웹툰을 이야기할 때 가장 큰 오해는 ‘BL은 무조건 19금이다’와 같이 성애적인 지점만 강조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반쪽짜리 이해에 불과하다. BL 장르는 HL 장르와 동일하게 서브플롯이 두 주인공의 관계와 맥을 같이하고, HL 장르와 다르게 짙은 ‘페이소스’를 중시한다. 물론 HL 장르에서도 두 주인공간의 피폐한 관계가 존재하지만 BL 장르에서의 비율이 훨씬 높다. 이는 BL의 ‘장애물’이 곧 ‘사랑에 빠진 두 사람 모두 남성이라서’를 선택하지 않고 두 사람의 사랑에 집중하게끔 하는 장치가 된다. 하기오 모토의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1992~2000)는 트라우마를 가진 캐릭터들의 깊은 절망과 심리학적 접근과 치유를 다룬 작품이다. 해당 작품은 BL의 고전이라고도 여겨지고, 혹은 BL만으로 보기에는 가정 내 성폭력과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절망하는 제르미와 사실을 알고 난 후 혼란스러워하다가 결국 제르미에게 손을 내미는 이안의 심리묘사가 위주라는 의견도 있다. 이 작품이 BL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BL이라는 장르가 성애적인 지점 외에 두 사람이 성별의 문제가 초라해질 정도로 거대한 장애물을 극복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언제나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드라마 <진정령>으로 유명해진 <마도조사> 역시 무협이 서브 장르이며, 두 사람 역시 남성이라는 것을 떠나 서로 사랑할 수 없는 세력 간의 싸움, 사랑한 이후 극복하기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존재한다. 이 점에서 봤을 때 <녹색전상>의 느와르적 사건–진청우가 속해있는 신해건설과 미술관 부지와 얽힌 음모는 두 캐릭터의 사랑의 장애물이 될 것이며 이는 독자들에게 페이소스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 <녹색전상>의 진청우 (좌), 매튜 (우)
<녹색전상>이 특별한 이유 – 두 번째, ‘알파수’를 아시나요
미조구치 아키코의 에 따르면 ‘수’는 다른 장르에서 볼 수 없는 문제적 캐릭터다. 남성이되 기존의 남성과 다른 젠더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는 ‘공’과 대비된 미소년으로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수’의 젠더 수행성에 반기를 든 것이 바로 ‘알파수’이다. 이 명칭을 설명하기 위해 잠시 BL 장르의 ‘오메가버스’ 세계관을 들여다보자. ‘오메가버스’란 인간에게 성별 이외의 섹스가 가능한 속성으로 ‘알파’와 ‘오메가’가 존재하는 세계관을 말한다. 주로 ‘알파’는 ‘공’의 역할을 하며, 사회적 지위도 높은 경우가 많고, ‘오메가’는 ‘수’의 역할을 하며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경우가 많다. 주로 오메가버스를 다루는 BL 작품은 일종의 신파물처럼 단순한 섹스 이외에도 수가 ‘오메가’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계급적 갈등도 함께 그려진다. 오메가버스의 ‘오메가수’야 말로 남성의 반대되는 젠더 역할을 수행하는 ‘수’이다. 그런데 ‘알파수’는 다르다. 오메가버스의 세계관을 같이 하지는 않지만 ‘알파수’는 ‘알파남’, 즉 부와 명예, 높은 사회적 지위, 남성성을 가지고 ‘수’의 역할을 하는 캐릭터를 칭한다. 이 경우 오메가버스와는 달리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가지고 남성들 간의 계급에서도 우위를 점한다.
<녹색전상>의 경우, 진청우와 매튜는 캐릭터 디자인에서도 쉽게 ‘공’과 ‘수’를 구분할 수 없다. 캐릭터 설정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조직폭력배이자 매튜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진청우가 남성성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처럼 보인다. 초반 회차에서는 진청우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할 때 ‘수’가 아닌 ‘공’의 역할을 하고 있어 진청우의 섹스할 때의 역할이 곧 젠더 수행성과 맥을 같이 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알파수’가 최근 BL 팬덤에서 각광받는 이유는 BL에서 ‘여성’의 ‘젠더 수행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BL에서 ‘수’가 가지는 계급적 위치, 사랑이나 연애에 있어 소극적인 행동이 ‘여성’이라는 ‘젠더’를 수행하고 있어 문제적이었다면, 장르 바깥에서부터 더 이상 계급적 위치, 소극적인 행동이 여성만이 가져야 하는 수행성이 아니게 되면서 더 이상 ‘수’가 ‘오메가’여야만 하는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 실제로 <녹색전상>의 진청우가 모시고 있는 신해건설의 천자화 회장도 여성 캐릭터로 기존에 사회가 요구하던 여성의 젠더수행성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이다. 이러한 ‘알파수’가 등장하면서 더 이상 ‘수’는 문제적 캐릭터가 아니다. 그저 알파남성일 뿐이다. 그리고 <녹색전상>의 독자들은 그런 알파남성의 남성성이 전복될 때 희열을 느낀다.
BL 팬덤은 더 이상 공의 매력에만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BL 웹툰은 대부분 수의 시점으로 진행되었다. 수의 시점으로 공을 바라보고, 수의 시점으로 공에게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BL 웹툰은 ‘공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수가 얼마나 이입이 가능한가’가 작품의 흥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녹색전상>의 흥행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BL 독자가 이입할 수 있는 ‘수’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오히려 해당 웹툰의 댓글창에서 볼 수 있듯이 독자들은 섹스씬에서 ‘공’에게 이입해 ‘수’의 매력에 환호한다. 이러한 캐릭터의 서사성이 <녹색전상>의 굿즈 완판까지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상업적 성공을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 BL 팬덤이 바뀌는 것은 여성이 바뀌고 있는 것이며, 남성성의 전복을 바라고 있는 것이라고. 독자들이 <녹색전상>의 굿즈를 구매한 것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