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불법복제에 적극적인 대응과 여론 환기를!
지난 9월경 모처에서의 심사 일정 때문에 서울역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그때 가장 첫머리에 걸린 대형 광고판을 보고 잠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웹툰 원작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서 주연으로 출연했던 가수 겸 배우 김세정이 “당신은 어떤 독자?”가 쓰인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고, 옆의 말풍선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웹툰’을 지키는 ‘독자’적인 방법 – 진정한 독자라면 정식 사이트에서 깔끔하게 결제하고 당당하게 보자!”
△ "웹툰을 지키는 독자적인 방법!" 캠페인은 2021년 8월 말부터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했다.
김세정이 출연한 영상이 배포되었고, 선물 이벤트 등도 진행되었다.
유료 웹툰의 시대 개막, 제 버릇 남 못 준 도둑들은 여전
“진정한 독자라면”이라니, 거의 스무 해가 다 되어가는 도서대여점 논란 당시 “만화 독자라면 책을 사서 보자”라며 목 터져라 외치던 소리가 겹쳐지는 풍경이다. 도서대여점은 비단 그 자체만이 문제는 아니었으되, 만화 소비 행태와 가치를 망가뜨리며 직후 등장 시작한 불법스캔만화(불법스캔본, 대패질 만화)의 원천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그 창궐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채 사실상 사멸해 간 한 시대의 유물이다. 심지어 도서대여점 가운데 상당수는 숱하게 빌려준 ‘판매용 만화책’을 고스란히 총판에 반품함으로써 사실상 작가가 만화 단행본 판매로 수익 내는 길을 적극적으로 막아섰더랬다.
당시 ‘만화를 제 돈 주고 사서 보자’는 목소리를 내는 쪽은 주로 만화 독자들이었다. 당시 ‘만화 독자’들은 만화를 기를 쓰고 빌려 보고 파일을 무단 공유하는 이들과 제 시간을 들여 싸워댔다. 반 도서대여점 운동은 한국 만화사에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기록으로 남을 자발적 소비자 운동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데 저 시기와 지금이 다르다면 “진정한 독자라면” 결제해 보라는 광고를 내건 곳이 놀랍게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 즉 정부 부처와 기관이라는 점이다. 이제는 나라 차원에서 만화로 불법 저지르지 말자는 이야기를 해준다고 한다. 작가들도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정부 기관 차원의 광고는 무게가 또 다르다.
작가 1인 유료 웹진을 표방했던 김준범의 《엑스타투》(2002)나 윤태호의 <이끼> 등으로 웹툰 유료화를 꾀했던 《만끽》(2007)의 사례도 있지만, 큰 업체 차원에서 본격적인 웹툰 유료화의 시동을 건 사례로 꼽을 만한 시기는 《다음 웹툰》(현 《카카오 웹툰》)이 웹툰 유료화를 꾀하기 시작한 2011년이다. 다소 유보적인 태세를 보이던 《네이버 웹툰》도 2013년 작가 수익 다각화 차원에서 도입한 부가수익 창출 모델인 PPS가 첫 달 6억에 가까운 수익 효과를 내고, 주호민이 《네이버 북스》에 건 <신과 함께> 유료화로 두 달간 3770만원이란 수익을 올렸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게 만들었다. 같은 해 유료 웹툰 웹진으로 등장한 레진코믹스의 초반 상승세는 이러한 분위기를 한층 더 달구었다. 이후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웹툰은 ‘무료인데 책을 살 수도 있는’ 대상에서 ‘무료도 있지만 그 자체로 돈을 쓰는 게 기본이어야 하는’ 매체까지 올라왔고, 이제는 콘텐츠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에 올라서고 있다.
△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 단행본 표지
유료 웹툰 시장의 정착은 참으로 바라고 바라던 풍경이다. 웹툰의 시작 단계부터 미끼 상품 수준으로 취급받으며 시작하는 바람에 ‘시장’으로서의 기본 요건 자체를 충족 못 했다는 점과 업계 전체가 오로지 포털에만 목을 매야 했던 상황 때문에 겹겹으로 쌓아야 했던 걱정거리는 많이 내려놓을 수 있게 된 셈이다. 문제는 막상 웹툰 유료 시장이 열리자 반발심에 어쩔 줄 모르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례로 네이버에서 첫 총대를 메다시피 한 주호민은 그야말로 융단폭격에 가까운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미 원고료를 받아놓고 왜 따로 수익을 얻으려 드느냐” 정도는 점잖은 편이었고 "이미 그려놓은 그림으로 계속 먹고살겠다는 이야기는 내 배 불리자고 독자들 돈 받아먹겠다는 소리밖에 안 된다", "유료화되면 솔직히 보지 못할 것 같다" “돈과 함께” 따위 비아냥거림이 잇따랐다. 이 당시 내가 봤던 가장 끔찍한 주장은 “작품으로 맘대로 이윤 내는 게 정당하다면 대기업이 자본으로 시장 독점해 이윤 내는 것도 정당하냐, (주호민은) 경제 논리에 대해 무지하다”였다.
물론 그럼에도 볼 사람은 보았고, 첫 두 달 3770만 원이란 기록이라는 결과를 내며 웹툰 유료화라는 대세에 불이 붙었다. <신과 함께> 이래 8년이 흐른 2021년 11월 웹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웹툰 <내가 키운 S급들>은 원작의 유명세에 웹툰 각색과 만화 제작에 나선 seri·비완 두 작가의 팬층까지 더해 공개 첫날 1억 원이라는 큰 수익을 올리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처럼 광고나 영상화 따위 2차적 저작물 작성권 판매가 아닌 웹툰 그 자체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널리 형성되자, 이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이들도 그만큼 늘어났다.
유료로 전환된 웹툰을 적극적으로 불법복제해 공유하며 광고 수익을 챙기는 사이트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웹툰은 질보다 양적 팽창에 매몰되어 작가에게 과도한 노동량을 요구하고 있다는 비판에 더해 작가의 수익을 편취하는 이들까지 창궐하면서 도서대여점이 늘어나던 시기의 상황을 고스란히 답습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업체가 포털에 내어놓는 수익 평균치가 작가 모두의 수익 현황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이와 같은 상황은 최상위에 해당하지 않는 대부분의 작가군에게 더욱더 괴로운 상황을 만들게 마련이다. 국가 기관 단위에서 ‘진정한 독자라면 결제해서 보라’고 캠페인까지 벌이게 된 건 단순히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만 쉬 이야기하기엔 상황이 적당선을 훌쩍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불법 만화·웹툰 신고의 급증과 사태의 글로벌성
2021년 9월 28일 국민의힘 국회의원인 김승수(대구 북구 을)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넘겨받은 ‘연도별 만화·웹툰 신고 및 불법 웹툰 차단조치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에 접수된 만화·웹툰 불법복제 관련 신고는 3844건으로 2019년 2256건보다 70.4% 늘었다. 2017년 474건, 2018년 1108건이었던 점을 보자면 그야말로 증가세가 급하게 우상향 중이다. 2021년엔 상반기 기준으로만 이미 2127건이니 2019년 전체 수치를 벌써 따라잡은 판이다.
대형 웹툰 불법복제 사이트로 악명을 떨치던 《마루마루》와 《밤토끼》가 2018년 폐쇄 조치되고 입건과 검거 소식을 알리며 불법 이용자들에게 경고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오래지 않아 무위로 돌아갔다. 《마루마루 2》라는 아류가 곧바로 나왔고, 이름을 다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사이트들은 여전히 성행할뿐더러 오히려 그 수를 늘려가고 있다. 실제로는 저 둘의 이름이 가장 유명했을 뿐 기실 출판만화의 불법 스캔본을 실어 나르던 웹하드, P2P, 와레즈 등의 ‘해 오던 가닥’(?)들이 고스란히 웹툰에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둘의 차이가 있다면 출판만화 시기의 불법 스캔본이 국내 유명 상업 만화들도 있지만 대부분 수많은 일본 상업 만화들의 정식 한국어판과 아마추어들의 속칭 ‘대패질’(해적 번역-편집) 결과물들인데 비해 웹툰의 불법복제는 한국 작품들이 역으로 외국어로 ‘대패질’을 당해 해적 유출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과거 한국인들이 일본 작품으로 하던 그 풍경을 한국 작품을 통해 보게 된 셈이다. 그 피해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작가들 사이에서는 “웹툰 불법 공유를 차단하면 매출액의 단위가 달라진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으며, 대응을 위해 직접 작가가 해외의 불법 공유자들을 찾아다니는 촌극마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작품을 위해 전력투구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작가가 사정사정하다시피 공유자를 찾아가 요구와 설득을 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오죽하면 일부 작가는 “이 작품의 경우 공식 외국어 번역판이 없습니다. 혹 번역판을 보셨다면 불법입니다. 보지 말아주십시오”와 같은 공지를 SNS 등지에 내어놓기도 한다.
물론 선선히 내리는 경우는 많지 않고, 앞서 주호민이 겪었던 사례와 마찬가지로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도 왕왕 있다. 최근 웹툰 작가들의 트위터 계정에는 종종 “네가 유료를 강요하면 나처럼 가난한 사람은 볼 방법이 없어진다, 폭력을 멈춰라(외국어)” “나는 어떻게 해서든 네 작품을 해적판으로 볼 수밖에 없으며 네가 나에게 강제할 권리는 없다(외국어)” 따위 기괴한 논리를 분노와 함께 들이대는 경우를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웹툰의 해적 수출(?)이 늘어났다고 한국인들의 해외 작품 대패질이 줄어들었는가 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짤방’ 정도 가벼운 이미지를 퍼트리는 건 애교라지만 여전히 여러 게시판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일본어 좀 깨나 한다는 이들의 손으로 대패질한 일본 쪽 해적 만화가 상업과 아마추어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으며, 이들 공간에 유포된 이미지가 핀터레스트와 같은 글로벌 이미지 서비스를 통해 퍼져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한국이나 일본이나 그 외 나라나 해적판으로 온통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무려 인쇄소에서 데이터가 유출돼 공유 사이트에 오르는 피해를 입었던 의 작가 아카마츠 켄은 2017년 5월 5일 《마루마루》 로고가 붙은 스크린샷을 올리며 “잡지발매 4일 전인데 벌써 해외 연재 해적판이 떴다. 게다가 중국어 → 영어 → 한국어 번역과정을 거쳤다” “정규번역판은 발매일 전에 공개 불가능이라 해적판을 절대 이길 수 없다”라고 한탄했다. 그 한탄의 증거로 《마루마루》가 나온 시점에서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법 데이터의 흐름이 그야말로 글로벌함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무료로 볼 수 있다면 중역의 중역을 거친 저품질 번역본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사태에 분노한 아카마츠 켄은 급기야 아예 본인이 대표인 《망가도서관Z》의 만화를 유튜브에 영상으로 제작해 올리는 시스템을 구축해 자막 자동 번역으로 외국인들에게 노출하며 광고수익을 얻는 구상을 실행에 옮기기도 했는데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라는 위기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 일본 만화가 아카마츠 켄(赤松建) 2017년 5월 5일 자 트윗 (https://twitter.com/KenAkamatsu/status/860275532075630592)
도서대여점과 불법 스캔본이 창궐하던 시기 “외국은 저작권 의식이 나은 편이어서 함부로 해적질을 안 하는데 한국은 대체 왜 이럴까”라며 한탄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졸지에 지금은 “우리만 그런 건 아니었네”로 바뀌었을 뿐이다. 실제로 한국 작가들이 무단 공유 단속과 설득 과정에서 받는 항의성 SNS 멘션 대부분은 영어거나 번역기를 돌린 한국어고 역시 그 국적을 가리지도 않는다. 《마루마루》류 사이트는 현재 우리나라는 그 많은 해악과 민폐의 글로벌 허브 역할을 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 숱한 해적판 출판사들을 보고도 문화적 약소국이니까, 정도로 어물쩍 넘어가 왔던 우리나라가 웹툰 시대에 이르러 드디어 업보를 정산하고 있다. 문제는 피해를 고스란히 작가와 업계, 특히 작가 개인 단위들이 오롯이 떠안고 있다는 점이다.
처벌이 약한 이상 단속에도 한계
《밤토끼》 운영자를 검거해 만화가들에게서 감사 인사를 받기도 했던 부산 경찰의 사례는 웹툰, 나아가 만화 불법복제를 실제로 공권력을 통해 단속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불법 웹툰 사이트들은 포르노 사이트 이상으로 집요해서 사이트를 차단해 봐야 곧바로 도메인을 바꾸는 식으로 기민하게 대응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운영자를 잡고 사이트 자체를 폐쇄하지 않으면 언 발에 오줌 누는 꼴밖에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하 점조직화해 있는 불법 웹툰 사이트들을 일일이 잡으러 다니기는 쉽지 않다. 《밤토끼》 검거도 형제 경찰관이 넉 달간 부산과 인천을 오가며 잠복수사를 벌인 끝에 일궈낸 성과로, 휴가까지 반납한 열의를 보여준 결과지만 이들처럼 열의와 이해를 갖춘 수사관이 많은 건 아니다. 기껏 저렇게 온 힘을 다해 검거한 《밤토끼》 운영자가 받은 형량은 ‘고작’ 2년 6개월이고 2018년 12월 7일 《네이버 웹툰》과 《레진코믹스》가 건 손배소송에서 승리했을 때 배상금으로 책정된 금액은 ‘고작’ 20억이다. 그나마도 20억이라는 숫자는 민사로 건 손배소송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나, 《밤토끼》가 입힌 피해액은 2017년 기준 2400억 원이니 참으로 사소한 비용이다. 게다가 형량도 마찬가지어서 저작권법(제17588호, 2020. 12. 8., 일부개정) 제136조(벌칙)에서 규정한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의 절반 수준이었다.
△ <우리집에 왜 왔니> 작가 이윤희가 업로드한 이미지. 만화가들은 《밤토끼》 검거에 힘쓴 부산 경찰 측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밤토끼》는 물론 《마루마루》와 《마루마루2》와 《어른아이닷컴》 등이 폐쇄되고 운영자가 입건되기도 했지만 2021년 시즌2로 돌아온 《밤토끼》가 보여주듯 법적 처벌이나 구속 가능성 따위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양새다. 이유가 뭘까? 구축된 브랜드만 있으면 받아낼 수 있는 광고 수익이 법적 처벌이라는 위험요소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웰컴투비디오》가 보여주었듯 가상증표로 빼돌려놓기라도 한다면 환수조차 거의 불가능해진다.
결국 처벌이 약한 이상 불법 사이트 단속에는 한계가 있고 법정에 세워도 형량이 약하기 이를 데 없으며, 해외의 불법복제자들까지 나서고 있으니 국내법만으로는 한계가 크다.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은 오래전부터 해적판을 비롯해 광범위하게 만화를 불법복제해 온 나라고 지금도 온라인 공개되는 웹 코믹과 상업 만화를 막론하고 대패질하는 이들이 상존 중이다. 《마루마루》는 웹툰 시대에서도 글로벌한 불법복제 네트워크의 온상과도 같은 역할을 한 바 있다. 결국 이 문제는 한국 내 문제만도 아니고, 대응 또한 글로벌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2021년 10월 15일 국내 웹툰 관련 업체 7개(네이버, 카카오, 리디북스, 투믹스, 탑툰, 키다리 스튜디오 & 레진코믹스)가 웹툰불법유통대응협의체를 구성해 불법유통 문제에 공동대응하겠다고 나서며 내건 조치들은 몹시 늦되었지만 명목상으로나마 주목해 볼 만하다. 이들은 ▶ 유포자에 대한 민·형사상 공동대응 ▶ 정책적, 법·제도적 개선방안 마련 및 건의 ▶ 불법유통 관련 지속적인 정보 수집 및 정보공유를 내걸었다. 부수적으로는 사단법인 저작권해외진흥협회(COA)를 통한 24시간 모니터링 및 사이트 차단, 한국저작권보호원 해외 현지사무소를 통한 법적 대응 등이 업체 단위로 펼친다.
△ 국내 7개 웹툰사가 모여 구성한 웹툰불법유통대응협의체
업계 대응과 소비자 의식 고취가 관건
차단은 분명 직접적인 효과를 낸다. 업체들이 나서기 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복제자들의 SNS 계정을 찾아다니며 설득·항의해 만화를 내리고 신고를 통해 차단을 끌어낸 만화가들은 수익이 상승하는 효과를 보았음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차단은 지극히 단기적이고 비효율적인 방안이기도 하다. 불법복제 사이트들이 주소를 바꾸는 식으로 대응하는 데다 ISP를 통한 접속 차단을 결정해야 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제5기 위원회에서 보여주었듯 특정 정치결사의 방해로 심의위원회 구성을 못하는 경우 곧바로 마비 상태에 빠진다. 장기 전략으로 보았을 때엔 다음의 두 가지를 업체만이 아닌 업계 전체가 일심동체로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
하나. 하나 마나 해 보이지만 사실은 장기적으로 강력한 효과를 내는 캠페인을 질릴 정도로 계속해서 밀고 나간다. 정부 기관 차원에서 “진정한 독자라면”을 내세운 캠페인이 나온 건 그 자체로 좋지만, 단발에 그치거나 SNS 등지에서만 도는 수준으로는 그리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불법복제를 하는 건 담배와 마찬가지로 안 좋은 걸 몰라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화 불법복제를 하는 이들은 만화가 너무너무 좋아서가 아니라 무료로 볼 수 있는 게 거기에 있기 때문에 보고, 가치가 책정된 대상을 가치가 없게 만드는 그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기 때문에 굳이 보며, 칭찬과 인정을 갈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무료 봉사요원으로서 대패질에 참여한다.
도서대여점 창궐 당시 한 만화 웹진 이용자 가운데 하나가 굳이 가치를 언급하는 작가의 이름을 콕 집어 거론하며 남긴 “난 제 돈 주고 사 보자고 외치는 누구누구 걸 빌려보며 희열을 느껴!”라는 말은 이들이 방점을 찍고 있는 대목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가장 난감한 대목이 이 부분이다. 이들은 대상이 만화라서 보지도 않고, 무료라면 얼마든지 옆으로 옮겨갈 수도 있는 이들이며, 이미 웹소설이 추가적인 피해 대상으로 올라서고 있다.
내가 오랜 충돌을 통해 깨달은 바는 “만화를 사랑하자, 창작자를 존중하자”라는 구호가 이 부류들에게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는 본인들이 언젠가 소도둑이 될 바늘 도둑임을 계속해서 각인시키며 주위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표현이 다소 미묘하긴 하나 비교적 캐주얼하고 감각적인 광고 시리즈로 호평을 받고 있는 보건복지부의 담배 반대 캠페인인 ‘노담 캠페인’을 참고할 만하다. 불법을 이용하는 게 얼마나 ‘힙’하지 않고 구린 일인지를 부각해 수를 줄여나가는 과정을 좀 더 많이 보여주어야 한다. 웹툰과 더불어 IP 산업의 한 축으로 각광 받고 있는 웹소설 업계도 같이한다면 효과가 더 좋겠다.
둘. 적극적인 고소·고발전과 광고주 압박을 위한 폭넓은 법 활용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저작권 침해 시의 벌칙을 규정한 저작권법 제136조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각호에 해당하는 항목에 따라 병과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업체들이 나선다고는 하고 있으나 밤토끼가 받은 2년 6개월에서 보듯 법률은 결코 저작권자들에게 유리하지 않고 판사들의 인식이나 법률안의 내용이 최근 상황을 그다지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법률 자체를 바꾸기 위한 법제화 활동을 업체 단위들에서 국회의원을 상대로 펼칠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다. 법 제정 또는 개정은 겉에서 보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다. 아무나 쉬 비웃는 대상인 입법부 구성원들도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본회의까지 가기 위해서라도 숫자를 확보하려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여론을 위해 공청회도 개최한다. 만화 업계는 과연 이를 감당할 의지가 있을까? 걱정은 되지만 적어도 항목을 다듬고 위반 시의 형량을 높이는 과정을 밟아나가고 있음을 드러낼 필요는 있다. 당연히 어렵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끊임없이 범죄 행위에 해당하는 이들을 적발하고 고소·고발로 괴롭히는 일은 일단 선제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해야만 한다. 누구라도 경찰서 가는 일은 피곤하기 때문이고 법정에까지 가면 들여야 하는 시간 및 금전 비용이 늘어난다. 정해진 형량이 적고 그나마도 깎일 양이면 반복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국가 기관도 계속해서 메시지를 내야겠으나, 작가들의 작품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업체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 법은 제정과 개정에 매우 큰 공을 들여야 한다. 그나마 개정이 쉽다는 개정조차 본회의까지 올라가기 위해 숱한 토론회와 충돌과 조정을 겪고 무산되기도 일쑤다.
하지만 냉소보다는 반드시 필요한 활동들이다. 사진은 의원을 바꿔 세 차례나 개정 시도를 했으나 결국 제대로 된 개정은 무산된 아동·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 관련 토론회의 발제 자료들.
한데 여기에 더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불법 웹툰 사이트들의 수익 자체를 줄이고 관계된 모두를 괴롭히는 일이다. 즉, 업체는 물론 광고주까지 같이 때리고 차단해야 한다. 각종 캠페인은 이용자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1차적인 효과를 꾀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용자들의 자각에만 기대해서는 어렵고, 해당 업체들에 광고를 실은 업체까지 압박해야 한다.
불법 웹툰을 찾는 이들이 실제로는 웹툰을 포함한 ‘만화’를 보려고 하는 게 아니듯, 불법 웹툰 업체들은 방문자들을 사실상 불법 온라인 도박과 성매매 알선으로 연결 짓기 위한 거대한 포주 노릇을 위해 웹툰을 미끼로 삼는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불법 만화는 운영하는 쪽과 보러 가는 쪽 어느 쪽도 만화와는 상관이 없으며 실제로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잠정적 사행 조장과 성매매 유괴를 큰 목적으로 삼는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업체들은 불법 웹툰 사이트들이 ‘저작권법’ 위반만이 아니라 해당 광고를 미필적 고의로서 채택해 배치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여기에 광고를 실음으로써 의도하는 바를 성취하려 한다는 점까지를 염두에 두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불법을 저지르는 이들의 본 목적을 파악하려 들면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캠페인이 향하는 방향의 재정립을 위해서도 중요하겠거니와, 실제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민사는 물론 처벌을 위한 형사에 이르기까지 좀 더 다양한 법률을 근거로 들 여지를 만든다는 점에서 치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 불법 웹툰 사이트들은 독버섯 같고도 바퀴벌레 같아 차단해도 새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들의 주목적은 엄밀히 말해 만화도 아니고 포르노와 도박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포주 노릇이다.
아무쪼록 이젠 “도둑질은 나빠요”만으로는 어느 쪽에도 씨알이 안 먹히는 단계다. 좀 더 다양한 방향으로 대응함으로써 나쁜 자들을 실질적인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기를 바란다.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해적판 만화의 제작과 유포에서 일정 역할을 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는 우리나라가 만화 불법복제의 글로벌 허브까지 자임하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속죄(?) 차원에서라도 적어도 한국인들이 만화(웹툰) 불법복제에는 ‘진심을 다해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적어도 건드리면 진짜로 귀찮겠다는 인상은 심어줘야 할 것 아닌가? K-콘텐츠 시대의 주도권을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