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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경제 (1)만화속 경제속으로 들어가보자.

경제를 다룬 만화. 이름만으로 찾자면 홍수처럼 쏟아질 터이다. <학습만화>라는 타이틀로 이뤄진 초등학생용 경제만화가 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에. 그러한 만화들은 돈과 시장, 생산과 소비를 가르쳐준다지만 이를 어떻게 생활에 적용시켜야 할지는...

2008-10-07 이영미

                                                                          [연중기획 Comic & Culture 18 ] 만화와 경제
하루 하루 경제 뉴스를 보기가 겁이 납니다. 미국발 경제 위기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대공항의 위협을 끊임없이 주고 있고, 현재 한국도 눈을 뜨면 고 환율에 주가는 끝을 모르고 떨어집니다. “경제”라는 거창한 문제가 소시민들에게 별다른 영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날이 오르는 물가를 지켜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만화에서도 “경제”라는 문제를 비켜갈 리가 없었겠죠? 암울한 현실경제의 상황을 뒤로하고 만화속 경제 속으로 들어가봅시다. 그 안에서는 어쩌면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편집부)
 

경제를 다룬 만화. 이름만으로 찾자면 홍수처럼 쏟아질 터이다. <학습만화>라는 타이틀로 이뤄진 초등학생용 경제만화가 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에. 그러한 만화들은 돈과 시장, 생산과 소비를 가르쳐준다지만 이를 어떻게 생활에 적용시켜야 할지는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시마이사 표지이미지
<시마이사> 표지이미지

엄마아빠가 열심히 벌어온 돈은, 환율과 물가 상승으로 2조 원어치가 허공에 날아갔고, 빚은 가정 당 천 이 백 만 원 정도로 늘어난 한국의 현재 경제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만화 속에서 경제를 읽자니 떠오르는 만화 <시마과장>(히로카네 켄지, 서울문화사)이 있다. 주인공 시마가 하츠시바사에 입사한 1971년부터 사장에 취임한 2008년 최근까지 일본의 경제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만화다. 시마가 입사했던 1971년은 일본경제 성장이 최고조에 있던 때였다. 시마를 포함해 신입사원을 8백 명이나 뽑혔던 1970년대. 당시 일본의 고도 성장기를 회상하는 시마의 직장상사는 집집마다 갖고 있었던 냉장고와 텔레비전을 시골길 논과 밭고랑에 던져버렸던 모습을 심심찮게 봤다고 고백한다. 컬러텔레비전과 자동차와 대형 냉장고 같은 ‘선진국 형’ 가전제품을 집집마다 소유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대기업 주도형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자리 잡기 시작한 모습을 한 컷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마이사, 시마상무 속 내용중 발췌
<시마이사>, <시마상무>속 내용중 발췌

시마가 지나온 시간은 1980년대 일본 경제 성장기-후퇴기의 한복판이며 이야기 자체가 일본 경제의 모습을 그림자처럼 보여준다. 그 시대는 골프접대와 술집 접대가 활발하던 때였다. 뒤처지지도 앞서가지도 않았던 시마가 고속 승진을 했던 이유는 회사의 부품처럼 살되, 굽히지 않을 때는 강건하게, 때로는 솜처럼 물렁하게 했던 시마의 처세술이 일본 사회가 가치로 내걸던 ‘적당주의’가 경제발전의 일본사회에 물처럼 잘 스며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부장, 이사로 고속 성장한 시마는 후속 작 <시마이사>에서 그런 베이비붐 세대가 정리해고와 조기퇴직으로 고통을 겪는 에피소드를 통해 거품경기가 붕괴된 일본경제의 현실을 여실히 말해준다. 시마이사의 시선은 사회를 탓하기보다 자살한 본인이 바보였다며 은근슬쩍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상무를 거쳐 사장에 취임한 시마는 중국시장, 동남아 시장까지 들어가 사회주의식 경제체제의 한계를 비판하며 기업경제를 낱낱이 그려 보이고 있지만, 시마의 성공 80가 여자와 ‘운’에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일본식 전통사고를 옹호하며 ‘승자의 경제’를 포장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돈이 울고 있다. 표지이미지
<돈이 울고 있다.> 표지이미지

일본 서민경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만화 <돈이 울고 있다.>(구니모토 야스유키)는 등록 대부회사 <해피 서포트> 산본바시 지점장이 된 마코토의 회사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이자율은 높지만, 무담보, 무보증으로 가능해서 은행보다는 문턱이 낮고, 정식 등록된 대부업이기 때문에 목돈마련이 꼭 필요한 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업체들이다. 대부분 월급 생활자들이며, 실업, 사별, 이혼 등 급박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이곳 문을 두드린다. 마코토는 급박할 때 돈을 빌려놓고 갚을 날짜가 되면 ‘돈만 아는 사회 악’취급을 하는 고객에게 수모를 당하면서도 대부업의 필요성에 자부심을 갖고 성실하게 일을 한다. 터무니없이 이자를 불리거나, 갚을 날짜에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해 연체율을 높여 놓는 사채업은 필수적으로 조직폭력을 끼고 하는 불법악덕업체지만 정식 등록 대부업은 다르다. 다만 그 이면에는 일본 서민경제의 피폐한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거품경제가 꺼지며 ‘예금금리 0’시대가 시작되자 서민들은 고물가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를 연명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목돈 마련을 위해서는 높은 이자를 감당하면서까지 대부업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 대부업은 전체 신용대출액의 4분의1정도를 차지한다고 만화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철저한 조사와 고증을 마친 듯 보이는 이 만화 속에서, “정보는 경기가 회복세에 들어서고 있다고 판단 한다”는 뉴스를 본 마코토가 “회복세는 얼어 죽을 회복세!”라고 푸념하는 장면은 일본거품경제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베이비붐 세대인 마코토 역시 회사의 정리해고로 거대 은행에서 작은 대부업 지점장으로 오게 된 신세였기 때문이다. 이 만화는 마코토의 성장이나 개인승리가 아닌, 마코토의 눈을 통해 본 일본 서민들의 대부업 이용의 실태를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동전 하나까지 이자로 모아 내 던지고 내일이면 문 닫을 작은 점포에서 마주앉아 통곡하는 노부부의 모습이나 돌려막기로 명품쇼핑에 열 올리다 개인파산을 한 뒤 조폭의 사채에 눈을 돌리는 허영심 많은 된장녀 까지 피폐해진 서민경제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보다 더 현실적인 일본경제의 현실은 다른 데서 보인다.

알바 고양이 유키뽕 이미지
<알바 고양이 유키뽕>의 이미지 중 발췌

사람들은 일본서 최근 늘어난 ‘프리타족’ 같은 젊은이의 문화를 두고 민족성 자체가 간섭을 싫어하고 구속된 생활을 싫어한다고도 보지만, 그들은 사실 일본경제현실의 그늘 속에서 태어난 일본식 ‘88만원 세대’들이다. 일 잘하는 애완 고양이의 해프닝을 유쾌하게 그린 <알바고양이 유키뽕>(아즈마 카즈히로)에는 일하기 싫어하고 술을 좋아하는 문제적 주인이 내뱉는 푸념이 있다.
일자리는 줄어들어서 뽑아주지도 않으면서 젊은 사람만 탓한다는 주인의 술주정은 불황기를 살아가는 청년 실업자의 고단한 하루살이의 아픔이 읽힌다.

서민경제의 피폐함을 손재주와 아이디어로 메워가는 <빈민의 식탁>(마키 요츠보)은 하루 1백 엔으로 풍성한 밥상을 차리는 싱글대디의 용한 모습을 엿본다. 우리 돈으로 1천원이지만, 물가대비 가치로 따지면 5백 원 정도 수준이라는 1백 엔으로 밥상을 보는 이 만화의 ‘아빠’는 하릴없는 백수. 그래도 아이들 잘 먹이자는 욕심에 생활고를 이겨가지만 뼈 빠지게 벌어봐야 해고로 밀려날 바에야 놀고먹겠다는 아빠의 포기상태가 말해주는 일본 경제의 현실이 읽힌다. 또 하나, 만화 속에 나오는 1백 엔 밥상을 실제로 만들어보는 만화 제작팀과, 이를 즐겨보는 독자층이 있다는 것은 그런 그들의 삶에 공감하는 다수의 서민계층이 존재한다는 것의 반증이 아니겠는가.

위대한 캣츠비 표지이미지
<위대한 캣츠비> 표지이미지

아르바이트로 매일을 연명하는 그들의 모습은 역시 한국만화 속에서도 반복된다. 최근 유행하는 만화들 속에는 그런 비슷한 세대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위대한 캣츠비>(강도하, 애니북스)에 나오는 캣츠비는 스물여섯의 ‘가망 없는 날 백수’라고 스스로를 냉소한다. 결혼상담소에 등록된 캣츠비가 학벌도 능력도, 경제력도 집안도 별 볼일이 없자 상담사는 대뜸 등급 ‘C를 매긴다. 소유한 물질과 사물로 자신이 포장되는 사회. 상품가치는 돈과 배경으로만 설명되는 한국경제의 씁쓸한 현실을 곱씹어주는 대목이다. 캣츠비가 기거하는 산 꼭대기의 자취방이 곧 하층민의 삶을 아이러니하게 상징하는 것이고, 하늘이 보이던 넓은 창이 빼곡히 들어선 고층아파트에 가려진 모습 역시 바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등급화 된 한국사회의 현실을 여실하게 비춰준다.

알바로 연명하는 젊은 세대의 생활고는 한국과 일본의 서민경제가 닮아 보이지만, 남과 비교해버릇 하는 한국민의 성격, 높아지는 학력으로 늘어난 고학력 실업자의 더 심각한 사회문제, 대기업 성장 주의로 양극화의 골은 깊어가고 이를 더욱 부추기는 무능정부로 앞날은 더 캄캄한 한국경제는 무겁다. 88만원 세대, 인터넷 세대, 알바 세대가 등장하는 인터넷만화가 최근 급속하게 늘어난 이유는 여기에도 있다. 이들의 고단함은 새삼 문제되지도 않을 만큼 현실화돼 있다는 것. 만화는 재미있고 희망적이고 밝게 그리지만, 만화들처럼 경제현실이 밝지 못하다는 점, 이것이 또 한 번 독자들을 슬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