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발단
지난 5월 28일 네이버는 모바일 전용 서비스인 네이버 모바일을 개편하면서 기존에 휴대전화로 이동통신망에 접속해야만 볼 수 있던 느린 속도의 네이버 모바일 전용 페이지(모바일369)가 아니라 애플(Apple) 사의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 터치(iPod Touch)에서 무선 인터넷(Wi-Fi, 와이파이, 무선랜)을 통해 직접 고속으로 뉴스·지도·교통정보 등 다양한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여기에는 웹툰도 들어갔다. 웹툰은 네이버가 그 수많은 서비스 가운데에서도 유일하게 직접 자본을 투자해 자기 브랜드로 생산하는 콘텐트로, 단순 ‘정보 서비스’를 넘어 꾸준히 직접 갱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용자들을 끌어들이고 붙잡아두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애플 앱스토어 개괄
네이버의 새 모바일 서비스는 네이버가 애플의 모바일 콘텐트 오픈 마켓인 ‘애플 앱스토어’에 올려놓은 프로그램을 내려 받아 설치함으로써 이용할 수 있다. 앱스토어에 올라온 이들 프로그램을 가리켜 앱(app)이라 하는데, 이는 어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application)의 앞 세 글자를 딴 표현이다. ‘앱스토어’의 ‘앱’도 바로 이 ‘앱’으로, 앱스토어란 다시 말해 앱을 파는 가게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오픈 마켓 즉 공개시장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앱스토어는 기본적으로 직접 저작자, 생산자, 제작자들이 자기들이 제작한 앱을 가격을 붙여 올릴 수 있는 곳이다. 흔히 복수형 s를 붙여 ‘앱스’라 부른다.
애플 앱스토어에 오른 앱은 애플 사의 휴대용 기기에서 구동할 수 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네이버가 노리는 대상이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이팟만이라서지 이들이 실제로 노리고 있는 것은 이후 국내에 들어올 때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애플 사의 스마트폰인 아이폰(iPhone) 시장이다. 아이폰은 휴대전화에 준PC 성능을 보여주는 휴대용 기기인 ‘스마트폰’으로, 아이폰은 아이팟과 앱 실행 환경 등에서 호환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MP3 등 아이팟의 멀티미디어 파일 재생 기능도 탑재하고 있다.
http://mobile.naver.com/application/webtoon.nhn
네이버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여기에 아이폰은 감각적인 디자인과 인터페이스로 각광을 받고 있는 한편으로 데이터 전송 요금 책정 등에서 이동통신사가 주도해 온 폐쇄적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일종의 방아쇠(트리z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개발자들이 직접 올리는 앱스 시장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기존 오프라인 시장 및 포털이 주도하는 온라인 B2B 시장과는 또 다른 형태의 수익 모델을 찾는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여기엔 개장 9개월만에 10억 다운로드를 기록했다든지 직장인이 게임 올려서 한 달여 만에 10만 달러 이상을 거머쥐었다든지 하는 사례들이 등장한 덕도 크다.
애플 앱스토어를 둘러싼 논점들
문제는 어쨌든 만화계. 최초에 만화계에서 논란이 된 건 네이버가 이 애플 앱스토어라는 모바일 오픈 마켓에서 자사 웹툰을 보는 것 뿐 아니라 무료로 내려 받아 저장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처음 네이버는 한 번 내려 받으면 30일 동안 볼 수 있는 기한 제한을 두었지만 다시 받으면 그만이어서 사실상 영구 소장 개념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단순히 ‘무료 다운로드’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다. 속사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출판만화계는 그동안 청소년보호법(청보법)의 폐해와 도서대여점 감소로 말미암은 시장 축소, N4·D3C와 가은 PC 기반 온라인 만화 진출 실패 사례와 불법복제 등을 연이어 겪었고 이를 수습할 사이도 없이 웹툰이라는 새로운 조류가 시장의 주축으로 올라섰다. 논란 초반에 ‘웹툰’과 ‘출판만화계’라는 구도로 서로 으르렁댔던 건 이러한 흐름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웹툰이 출판만화계를 죽였다고 오해를 하는 이들과 이에 자격지심을 품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둘 다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아이팟터치로 네이버 웹툰을 이용할 때의 화면 (자료출처 : 한겨레 신문)
하지만 출판만화 시장은 경제 불황 여파를 타고 갈수록 위기로 몰리기 시작하고, 웹툰도 초기 일부 작가가 달성한 성과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채 문법적 자산을 까먹고만 있었던 데다 그마저도 기성작가들에게 점점 자리를 내 주기 시작했다. 출판 만화계에서는 기존 ‘일부 만화 전문 출판사’를 중심으로 한 체제가 시장성을 상실하고, 웹툰은 ‘인터넷에서 고료를 지급할 수 있는’ 업체인 포털 3·4개사 이외에서는 상업성이 없는데다 그 포털 스스로가 웹툰을 자기 브랜드를 걸고 직접 생산하는 유일한 콘텐트라고들 하면서도 여전히 플랫폼 비즈니스‘로만’ 접근하고 있다는 지점에서 모순을 드러내고 만다. 그나마 일부 포털이 문법적 자산을 늘려보겠다고 시도한 기본 너비 확대 등의 조치는 작가들의 태업에 가까운 외면으로 실패로 돌아간 바 있다.
현실적으로 트래픽(전송량)을 기반으로 한 B2B(Business to Business : 기업이 기업을 대상으로 서비스나 물품을 팔아 수익을 내는 방식. 여기서는 이용자들에게 직접 돈을 내게 하지 않고 광고로 수익을 내는 모델을 뜻함)시장을 포털 이외의 업체가 이제 와 수백억을 때려 박는다 해도 현실적으로 현 선발업체를 따라잡는 게 불가능할 것임을 보자면 앞으로도 B2B 모델 만화시장이 다른 업체에서 성공하길 기대하는 건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기와 같은 형국. 이와 같이 갖가지 실패사례와 현실 상황에서 출판만화와 웹 환경과는 다른 쪽을 노리며 실질적인 수익모델을 연구하기 시작한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오프라인 기반 B2C(Business to Customer : 이용자 또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직접 돈을 받고 서비스나 물품을 파는 전통적인 수익 모델)와 포털 기반 B2B가 모두 한계를 일으킨다면, 이들과는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아이폰이라는 모바일 기기에서 간편하게 타이틀 단위 유료 결제를 꾀할 수 있는 새 시장인 애플 앱스토어는 바로 이러한 고민을 하던 이들의 눈에 띈 대안 가운데 하나였다. 발 빠르게 행동에 나선 이들은 누룩미디어와 같이 작가 모임의 형태를 띠기도 하고 이니셜컴즈와 같이 작가와 직접 계약을 맺고 만화를 앱스화하여 유료 판매에 나서거나 스토리베리처럼 에이전시 역할과 동시에 작가가 직접 앱스를 제작할 수 있는 저작 도구의 제공 및 판매에 나서기도 했다. 만화의 형식도 출판만화와 웹툰과 또 다르게 스마트폰의 기능성을 활용한 디지털 만화를 꾀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그런 곳에 포털 사이트 1위인 네이버가 기존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방식의 웹툰을 물량공세로 풀겠다고 한 것이다. 반발 자체는 마치 유·무료 논쟁으로만 번질듯이 보였지만 사실은 새 시장의 ‘룰’을 어떻게 짜려 드는가의 문제였던 셈이다. 만화계는 경험상 포털과 부딪쳐 살아남은 곳이 없단 걸 10여 년 간 충실히 학습한데다, 합동출판, 대여체제와 같은 왜곡된 독과점 시장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도 알고 있다.
거기에 한 장르에서 독과점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는 포털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새 시장에 밀고 들어오는 모습은 애써 새로운 걸 해 보려던 이들을 경악하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를 단순히 유·무료 논쟁으로 치부하는 것은 물 타기에 지나지 않으며, 웹툰 작가 대 비 웹툰 작가 구도로 싸움 붙이는 구도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안 될 말이다. 요는 새 시장 안에서 펼쳐야 할 다양성과 이를 위한 가능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번 논란은 이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면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후 사태 전개
만화계가 내부에서 격론을 펼치며 입장 정리를 하자, 네이버는 7월 9일 만화계 대표 단체 두 곳 한국 만화가협회·우리만화연대에 공문을 보내 다음과 같은 방안을 마련했다고 알려 왔다.
① 30일 다운로드 기능 삭제
② 불안정한 네트워크 조건에 대응하기 위한 짧은 시간의 임시 저장 기능 제공(72시간)
③ 1회 임시 저장되었던 웹툰은 다시 임시 저장되지 않음
④ 외부 제작사를 통한 타이틀별 유료 어플 제작 지원
⑤ 스트리밍(인터넷 접속을 통한 웹툰 보기) 기능 유지다.
이튿날인 7월 10일 두 단체 명의로 홍대 강의실에서 ‘오픈마켓,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는 신·구세대 작가 및 관계자들이 모여 기본적인 현실인식에서 방향성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까지를 깊이 있게 논의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판에 있는 구성원들이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는 데에 인식을 함께 했으며 논점 이탈로 말미암은 잡음을 줄였다는 것이 성과라 할 수 있다.
이어서 7월 21일에는 네이버와 만화계 측의 실무진 회의를 통해 스마트폰에서의 임시 저장 시간에 관한 이견을 조율하였다. 네이버의 72시간에 관해 만화계가 48시간을 제안하는 한편 양쪽 결정권자를 설득해 이견이 없도록 하자는 데에 합의했다. 또한 만화계가 포털 특히 네이버에 우려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전달하고 한계로 보는 지점을 인지시키려 했으나 포털은 포털 나름의 사업 방향에 따른 입장을 재확인하는 데에 그쳤다. 서로 관철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 외의 이견을 재확인했지만 일방통행적인 추진에 제동을 걸고 만화계 내부의 인식을 다잡을 수 있었다는 성과, 또 매체 환경 변화라는 이슈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성과 등을 남겼다.
SICAF2009가 나흘째 진행되던 7월 25일엔 국제디지털만화전 컨퍼런스의 ‘디지털 만화시대, 창작자의 변화와 도전’이라는 세션 가운데 하나로 ‘앱스토어, 디지털 만화의 태풍’이 열렸다. 애플 앱스토어로 일어난 다양한 시장 변화와 비즈니스 모델에 관한 사례들을 짚는 한편으로 이를 만화와 어떻게 연결 지을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갔으며, 토론을 통해 이러한 앱스토어가 만화 시장의 대안이 될 것인가에 관한 논쟁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