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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 만화계, 애플 앱스토어를 넘어 디지털 만화와 디지털 환경을 고민할 때

네이버가 애플 앱스토어에 자기 방식을 밀어넣으려다 논쟁이 일어났지만, 애플 앱스토어는 엄밀히 말해 다양한 디지털 콘텐트가 팔릴 수 있는 플랫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애플 앱스토어는 애플의 아이폰/아이팟이라는 한 회사의 동일 플랫폼에 탑재되는 앱스(응용 프로그램들)을 사고파는 공개 상점일 뿐이지, 이곳에 올린다고 수익이 보장되거나 할 리는 없다.

2009-08-11 서찬휘

네이버가 애플 앱스토어에 자기 방식을 밀어넣으려다 논쟁이 일어났지만, 애플 앱스토어는 엄밀히 말해 다양한 디지털 콘텐트가 팔릴 수 있는 플랫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애플 앱스토어는 애플의 아이폰/아이팟이라는 한 회사의 동일 플랫폼에 탑재되는 앱스(응용 프로그램들)을 사고파는 공개 상점일 뿐이지, 이곳에 올린다고 수익이 보장되거나 할 리는 없다.

오히려 애플은 포털 이상으로 극도의 폐쇄성을 자랑하는 회사이며, 자사 앱스토어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심사 등에서 갈수록 잡음이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또한 세계적인 이슈임에는 분명하나 아이폰이라는 스마트폰이 국내에 아직 들어오지 못했고 들어오더라도 국내 이동통신사의 폐쇄성과 마케팅 측면에 막혀 큰 파급력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런 시점에 애플 앱스토어만을, 그것도 한국어로 된 앱스만을 올린다 하면 새 시장이라고 야심차게 덤볐던 기세가 무색해질 수도 있다.

애플 앱스토어는 황금향(엘도라도)가 아니다. 그저 새로운 형식과 방식을 지닌 독특한 디지털 콘텐트 시장일 뿐이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휴대용 기기가 앞으로 점차 성능을 앞세워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아이폰이 그 시장 전부를 차지할 리는 없다. 워낙에 세계 조류가 곧이곧대로 통용되지 않는 한국의 IT 환경도 한 몫 하겠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도 스마트폰은 구글, 노키아, 삼성, LG, HTC 등 국내외 다양한 회사들이 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물론 이동통신사인 SKT, LGT 등이 하나같이 각자의 이름을 건 앱스토어를 만들겠다 선언하고 있는 판이다.

애플 앱스토어
애플 앱스토어(출처:애플)

화제는 분명 애플 앱스토어에 진출하는 것으로 시작했고, 지금까지는 애플이 이 분야의 선두주자로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화두가 주효했다. 하지만 이미 판세가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다. 애플 앱스토어 외에도 ‘앱스토어’라는 형태를 띤 공개시장들이 나오고 있는 판이며, PC 웹 쪽에서도 불법 복제의 온상이었던 웹하드를 상업적인 성과로 연결해 낸 영화 쪽의 공유 시장 모델을 만화에 접목하려는 시도도 일어나고 있다.

기기는 스마트폰이 분명 큰 파급력을 보여줄 태세지만 그 외에도 PSP, NDS와 같은 게임기나 PMP, 넷북·MID오 같은 기기들이 있다. 킨들, 누트와 같은 전자종이 단말은 가독성과 저전력 등의 장점을 내세워 국내외에서 나름의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장르적인 면으로는 모션 코믹스 같이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중간영역을 꾀하는 사례도 해외에서 점차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만화계는 단순히 ‘포털과 비 포털’ 구도에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새 시장들에 관한 올바른 이해와 이에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제반적 문법적 고민들을 앞서서 해 나가야 한다. 직시해야 할 현실이 있다면, 앞으로의 시장에서는 더 이상 출판사에서 안정적으로 연재를 시켜주지도 않을 것이며 포털 바깥을 생각하는 이상 마찬가지로 고료를 얻으면서 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도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주지 않는 바닥에서 작가가 직접 판세를 읽고 대처해야 하는 시점이다. 알면 활용할 수 있지만 모르면 활용당하다 묻힐 뿐이다.

요는 다시 ‘다양성과 가능성’이다. 만화가들은 그려내야 하는 것은 ‘출판만화 또는 웹툰’이 아닌 ‘만화’라는 점, 좀 더 나아가자면 그 환경에 맞춘 ‘디지털 만화’라는 점, 그리고 그 모양새가 더 이상 한 방향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다양한 기기 환경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은 콘텐트 제작 환경이 급변해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웹툰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던 시점에 대응하거나 적응하지 못했던 많은 이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또 다시 겪게 될 것이다. 이번엔 웹툰 작가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반대로 이에 대응을 하는 작가들은 웹툰이 그러했듯 자연스레 디지털 환경 바깥으로의 전이와 같은 성과로 자기 활동을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방향에 매여 있지 않은 이상 다양한 활용 방안은 자연히 뒤따라온다. 애플을 비롯한 앱스토어 시장은 새 시장의 전부가 아니라 그러한 방향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계속해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앱스토어 이미지


아직까지도 감이 오지 않는 이들에겐 ‘지금은 돈 잘 주는’ 포털들조차 2~3년 뒤의 환경 변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업체 인수와 모바일에 맞는 서비스를 구축하는 등 변화에 대비해 전력투구 중이란 사실을 언급해 두도록 하겠다. 과연 3년 뒤의 웹 환경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포털 중심 구도, PC웹 중심 구도 그대로일까? 출판사에만 목을 매는 방식이 실패하였듯, 포털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포털의 영향력이 97년 이후의 PC통신망 업체들이 그러했듯 약화될지도 모른다. 대응 여하에 따라선 업계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

포털에서 만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당위를 부여할 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현실론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그것이 전부’라는 인식을 버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히 해 두고 싶다. 지금은 단지 그 대안으로 다양한 디지털 환경이 나오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선택은 물론 만화계 구성원들의 몫이지만.



[읽을 거리]

샤토 슈호 홈페이지 이미지
사토 슈호(佐藤秀峰)의 홈페이지 https://satoshuho.com/


「헬로우 블랙잭(ブラックジャックによろしく)」의 작가 사토 슈호(佐藤秀峰) 씨는 지난 7월 말 자기 홈페이지를 통해 500페이지 분량의 만화를 온라인에 무료 공개했다.

의료만화 「헬로우 블랙잭」은 판매부수 천만 부를 넘긴 흥행작이지만 본래 연재지였던 코우단샤(講談社)의 청년지 모닝 편집부와의 불화를 겪으며 연재를 중단, 이후 경쟁사인 쇼우가쿠칸(小?館)의 빅코믹스피릿으로 자리를 옮겨 「신 헬로우 블랙잭(ブラックジャックによろしく)」이란 제목으로 연재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 4월 ‘잡지 연재 후 1개월 후 온라인 공개’라는 방식을 쓰겠다 선언하고 직접 고액을 들여 만화 공개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현재는 무료지만 유료 콘텐트도 타진해 볼 예정이라고.

이번 시스템 구축은 사토 씨가 "만화가가 출판사에 의지하는 일 없이, 일정한 질과 스피드를 유지하며 만화를 계속해서 제작할 수 있을까?"라는 자문에 가능할 것이라 답한 결과다. 요는 출판사라고 하는 한 틀에 완전히 기대지 않는 방식을 직접 모색했다는 점에서 우리네 작가들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이란 표현을 빌리자면 ‘지속 가능한 만화질’ 쯤 되겠다. 출판사와의 양해로 연재 후 온라인 공개라는 방식을 작가가 직접 꾸린다는 점에서, 또 고료는 어쨌든 별도로 챙긴다는 점에서 우리네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여러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필진이미지

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 《키워드 오덕학》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덕립선언서》 등 저술.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와 백석문화대학교 출강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