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만화 동인 특집 (1) - 만화 동인계의 흐름 개괄

우리나라에서 아마추어 만화계, 또는 만화 동인계라 불리는 분야는 근 5년에 걸쳐 코믹월드라고 하는 특정 동인지 판매 행사를 중심으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코믹월드는 일본의 만화용품 제조 업체인 델리타 사(DELETER Inc. - 지난 5월 1일자로 에스이주식회사에서 델리타주식회사로 변경했다)의 한국 직판인 에스이테크노(S.E.Techno)가 주최하는 행사로 주 목적은 아마추어로서 만화 활동을 하는 이들과 그들이 내놓는 상품을 구매하는 이들을 모으고 이를 통해 자사가 수입해 파는 만화 용품의 판촉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2009-07-09 서찬휘


만화 동인 특집 (1)

만화 동인계의 흐름 개괄


우리나라에서 아마추어 만화계, 또는 만화 동인계라 불리는 분야는 근 5년에 걸쳐 코믹월드라고 하는 특정 동인지 판매 행사를 중심으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코믹월드는 일본의 만화용품 제조 업체인 델리타 사(DELETER Inc. - 지난 5월 1일자로 에스이주식회사에서 델리타주식회사로 변경했다)의 한국 직판인 에스이테크노(S.E.Techno)가 주최하는 행사로 주 목적은 아마추어로서 만화 활동을 하는 이들과 그들이 내놓는 상품을 구매하는 이들을 모으고 이를 통해 자사가 수입해 파는 만화 용품의 판촉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전국 아마추어만화동아리연합 이미지
전국아마추어만화동아리연합 ( http://www.aca2000.com )


1980년대 말엽부터 2003년 이전까지 국내 만화 동인계의 주축을 이루었던 ACA(Amateur Comics Associations : 전국아마추어만화동아리연합, 아카)는 그 자체가 만화 동아리 연합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었으며 상업적 이익보다는 ‘아마추어로서의 만화 창작 활동’을 중시하는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의 동인 행사는 프로 무대 진출을 목표로 삼은 이들의 수련장이자 등용문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창작이든 2차 창작이든 대체로 자기 자신의 손으로 연출하고 그린 만화 작품을 책이란 형태로 묶어내는 이들이 많았으며, 초창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분위기 탓인지 순수 창작이 많았다.

코믹월드는 1999년 첫 등장하며 이런 ACA와는 다른 기조를 보여준다. 때는 마침 대여점을 중심으로 일본 만화 수입이 절정에 다다르던 시기였으며, PC통신에서 초고속 인터넷으로 네트워크의 속도와 확장 폭이 차원을 달리하며 발달해가던 시기기도 했다. 네트워크의 발달은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콘텐트에 접근하기 한층 용이하게 하는 한편 일본 쪽과의 시간차 자체를 거의 없게 했으며, 나아가 존 종이 매체의 영향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온라인을 통한 활동이라는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프로 만화가 데뷔라는 목표점의 매력을 경감시키는 데 일조한다.

코믹월드 홈페이지 이미지
코믹월드 ( http://www.comicw.co.kr )


코믹월드는 이러한 변화 분위기와 후발주자로서의 세 확장을 꾀하기 위해 ACA가 지니고 있던 만화 동인지 출판을 중심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내걸지 않음으로써 진입장벽을 낮추었고, 이는 ACA의 분위기를 부담스러워하던 이들과 단순히 좋아하는 작품에 관한 마음을 만화로 표현하거나 보고 싶어 하는 새로운 어린 만화인들의 유입을 이끌어낸다. 비교적 제작이 쉬운 악세서리 종류만을 파는 부스들을 가리키는 ‘팬시 온리’라는 표현이 유행어가 된 것도 이 즈음이며, 많은 이들이 이미 프로 만화가가 되기 위해 아마추어 활동을 하기보다 만화 문화 또는 좋아하는 작품을 즐기는 문화 자체를 영위하는 데에 목적을 두기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네트워크의 축복을 받은 세대임은 굳이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 불법이라는 것과, 그로 말미암아 향유 문화와 팬심, 2차 창작이라는 화두가 왜곡 일로로 치달았다는 게 문제였지만.

어쨌든 시대가 바뀌는 과정에서 중심 기조가 바뀌는 것을 탓할 순 없지만, 문제는 코믹월드가 시장 주도권을 쥐기 위해 ACA와 개최 횟수 경쟁을 벌였다는 점이다. 국내 동인 시장의 규모를 정확하게 통계를 낼 수 없지만 대체로 참가 부스가 많아도 1000부스를 넘지 않는다 할 때, 단순 비교만으로도 수십 배를 전후하는 차이가 나는 판에 두 행사가 번갈아 가며 한두 달에 한 번이거나 때론 같은 달에 겹치기까지 하는 횟수로 열리기 시작하면서 참가하는 만화 동인들은 물론 판매 행사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과부하가 시작한다.

공세를 강화하는 코믹월드에 맞서기 위해 본래 1년에 두 차례 열리던 ACA는 ACA 코믹페어 같은 부차 행사 등을 열며 맞섰지만 아마추어 집단과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는 차이가 있게 마련. 결국 ACA는 26회 행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앞서와 같은 대형 동인지 판매전을 열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윽고 코믹월드가 거의 두 행사가 번갈아가며 열던 만큼의 행사 개최 주기를 홀로 열기 시작하면서 5년에 걸친 코믹월드의 독점 시대가 막을 연다.

그 사이에 다른 동인 행사들은 열리지 않았을까? 몇몇 시도가 있긴 했다. 코믹스페이스, 코믹스피릿, 코믹페스티벌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행사는 방향성 부재와 행사 유지를 위한 수익성 확충 등의 실패로 몇 회 치르지 못하고 무너졌으며, 코믹월드의 건재만 재확인해 줄 뿐이었다.

2000년 초반 이후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한 온리전(온리 이벤트 : 특정 작품, 특정 작가, 특정 캐릭터, 특정 성향 등을 주제로 삼은 소규모 행사. 대체로 그 주제에 관한 만화 동인지 판매전을 1차 목표로 함)이 2005년 들어 폭발에 가까운 성장세를 보여주지만 그 하나하나의 규모는 크지 않다. 이 와중에 코믹월드는 추가 의자 제공 등의 참가자 편의에 매우 인색한 면을 보여주는 한편으로 한 동인이 성인향 동인지를 성인 확인 없이 파는 사고를 쳤을 때에도 모든 부스가 동인지를 제출해 검토 받으라는 식의 지극히 행사편의주의적인 대책으로 비난을 샀다. 게다가 문제가 생기면 영세함을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만화 동인 행사에서 만화 동인으로서 활동하고자 하는 이들의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가고, 급기야 만화 동인 가운데 일부가 직접 행사를 꾸려보자고 나서기에 이른다. 2008년 2월, ‘회지 중심 만화 동인 행사’를 주창하며 등장한 새 행사 서드플레이스(3rd Place)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필진이미지

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 《키워드 오덕학》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덕립선언서》 등 저술.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와 백석문화대학교 출강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