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만화와 새로운 결심 : (1)새로운 결심, 인생, 출발-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주인공들

흔히들 새해나 신학기, 새로운 직장이나 이사 같은 특정한 시기 및 환경의 변화를 계기로 이러한 변신 혹은 새 출발을 결심하기 마련인데, 물론 만화에서도 이런 경향은 잘 반영되고 있다. 새 결심을 실천해내는 만화 속 주인공들이 대단해 보이는..

2008-02-01 김혜신

                                                                   [연중기획 Comic & Culture ⑩] 만화와 새로운 결심

이제 곧 설날이 오면 진짜 무자년 새해가 밝습니다. 양력의 1월과 음력의 1월이 1개월 차이를 두고 두 번 찾아온다는 것은 새로운 한해를 두 번 시작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08년을 시작하면서 시작한 새해의 다짐, 다들 잘 이루고 계십니까? 이제 곧 다가오는 설날에 다짐을 새로이 하고 다시 한번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래서 이번 주제는 새로운 결심으로 잡아봤습니다. 만화속 주인공들의 새로운 결심을 보면서, 우리도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봅시다!(편집부)

새해의 관습이라면 역시 동서고금 불문하고 ‘새해의 결심’이 아닐까. 새로운 해를 맞으며 새로운 마음으로 삶의 방식을 바꿔보겠다는, 좀더 나은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고프다는 생각은 어디나 공통된 발상인가보다. 흔히들 새해나 신학기, 새로운 직장이나 이사 같은 특정한 시기 및 환경의 변화를 계기로 이러한 변신 혹은 새 출발을 결심하기 마련인데, 물론 만화에서도 이런 경향은 잘 반영되고 있다. 반면 지나치게 원대하고 이벤트적인 충동성에서 비롯된 성향이 강한 결심이니 그만큼 흔들리고 깨지기도 쉽지만, 그만큼 새 결심을 실천해내는 만화 속 주인공들이 대단해 보이는 것이 아닐까.

  너와 함께라면 든든해

오늘부터 우리는 !!

비겁한 날라리 미츠하시와 정의로운 날라리 이토, 이 요철콤비 한 쌍이 펼쳐가는 좌충우돌 학원액션물 [오늘부터 우리는]은 학원물의 가장 고전적이며 전통적인 출발 시점인 ‘전학’에서 시작한다. (또 다른 흔한 시작은 물론 ‘입학’이다.) 제목과도 일치하는 것이, 우연히도 같은 학교에 같은 날 전학 오게 된 이 두 날라리는 살다 보니까 날라리가 된 날라리가 아닌 어느 날부터 날라리가 된, 일명 ‘오늘부터 날라리’라는 점까지 똑같았던 것이다. 그때까지 평범하고 튀지 않게 살아온 두 사람이지만, 전학이라는, 이전의 자신을 모르는 새로운 사회환경을 기회로 날라리라는 정체성으로 새롭게 태어나려는 청춘다운 포부를 품고, 시작이 반이라고 우선 외모부터 날라리스럽게 가꾸었으나…아무리 그래도 하루 아침에 사람이 바뀌기는 무리가 있어 어설프기 짝이 없다. 사실 이미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주먹세계 인생에 주위에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필수적인 통과의례이지만, 이 단계마저도 위태롭던 미츠하시와 이토가 비로서 진정한 날라리의 레벨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상대방에게 얕보이지 않겠다는,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강하게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 상대방 역시 자신처럼 새 출발을 하는 입장이니, 곧 일종의 거울이자 암묵적인 공범자이며 그만큼 일체감과 결심을 굳힐 마음이 강하게 드는 것이 아닐까. 다이어트나 금연 등, 해묵은 습관을 바꾸려는 결심을 주위에 공표하고 같이 동참하는 동료를 찾게 되는 것은 그만큼 주위 사람들의 보조와 압력이 중요함이다. 화려한 새 출발도 뜻이 맞는 친구와 함께라면 든든하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그린빌에서 만나요

물론 같은 새 출발을 결심한 동료와 만나 탄탄한 우정으로까지 발전하는 멋진 인연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허나 그러한 파트너가 없어도 없는 대로 자신을 조금씩, 하지만 분명히 바꾸어나갈 수는 있다. [그린빌에서 만나요]의 사회성 부족한 고등학생 도연 역시 주위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영향을 받으며 서서히 변화를 겪지만, 그 변화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도연이 한 선택은 거창하고 원대한 결심이 아니라, 이를테면 요리를 배운다는 언뜻 보면 사소한 특기 습득 정도이다. 하지만 이것이 습관이 되고 생활 속에 누적이 되면서 서서히 새로운 자신으로 탈피해가는 것이 아닐까. 부모님과, 관심을 가져주는 학교 친구들과의 소통을 어려워하던 도연은 어느 시점부터 손수 만든 요리를 그들과 나눠먹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서먹하고 소원한 사이였던 어머니와, 그런 경험이 낳은 자기 안의 감정과도 직접적으로 대면하며 조금씩 노력하고 서서히 성장한다. 얼마 전 방한한 세계적인 시간 관리 전문가 하이럼 스미스는 원대한 계획보다 차라리 3주 동안 실천할 계획을 세우라고 했다. 습관을 만들기에 적합한 기간이기 때문이다. 거창하고 부담스럽게 머나먼 목표를 바라보는 비현실적인 계획보다는, 3주 동안에 실천해나갈 수 있는 습관을 새롭게 들이는 것이 새 출발의 첫 걸음인 셈이다. 요리라는 특기가 찬찬히 하지만 분명하게 소소하면서도 의미 있는 변화와 새로운 색깔을 도연의 삶에 가져왔듯이 말이다. 꾸준한 습관과 실천은 그 자체로는 작아 보이지만, 계속 쌓여가며 내일의 디딤돌로 차곡차곡 이어지는 것이다.

  언제라도 늦지않았다


최강전설 쿠로사와

새로운 변화 같은 것은 젊고 창창한 성장기 청소년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결코 ‘늦은 때’라는 것은 없다. 적어도 [최강전설 쿠로사와]의 공사판 노동자 쿠로사와는 그 진실을 온몸으로 설파하고 있다. 처자식도 심지어 친구도 없는 허름한 아파트에서의 늙어가기만 하는 중년 인생, 생일날 혼자서 밥을 먹던 쿠로사와는 문득 ‘이래도 괜찮은 걸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현실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비참함을 느낀다. 비현실적으로 이제 와서 여자나 아이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직장 동료들에게만이라도 신뢰 받고 싶다, 이제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나만의 감동을 원한다고 진심으로 갈망하게 된다. 쿠로사와는 주위 사람들과 친구의 힘 덕분에 새로운 자신을 찾을 수 있었던 미츠하시, 이토와 도연의 경우와는 달리 극한의 고독, 미칠듯한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기에 그것으로부터의 탈피를, 조금이라도 좋으니 자신이 주역이 되는, 약간이라도 더 빛나는 삶을 원했다. 그래서 동료들의 신망을 얻어보려는 쿠로사와의 처절한 노력은 우스꽝스럽고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그 행동 속에 흐르는 절박함과 진실함 때문에 독자가 웃을 수도, 울을 수도 없는 갈구요 발버둥이다. 그렇다. 나이가 들어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이렇게까지 노력하고 싸우고 자신을 변신시킬 수 있다. ‘이미 늦어버린’ 시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새해나 나이나 새로운 환경과도 상관없다. 적어도 쿠로사와를 보면, 그런 마음을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을 생각하면,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희망이자 가능성의 씨앗을 이 추레한 중년 노동자의 필사적인 날개짓이 담고 있기 때문이리라. 인간은 변화할 수 있다. 언제라도 늦지 않았다.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조차 소중한 하나의 진실이 아닌가.

  운명을 나의 편으로


히스토리에

앞의 주인공들처럼 자발적으로 새 출발을 하는, 즉 원해서 변화를 하려는 경우만이 새 출발은 아니다. 살다 보면 원치 않으나 상황이 급격히 변화해 그에 대해 자신을 맞출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전학이나 입학 같은 흔한 경우보다는 좀더 극단적인 경우를 살펴볼 겸, 화려하고 격동적이면서 잔혹했던 고대 지중해로 가보자. 현재 4권까지 나온 [히스토리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서기관이자 장군 에우메네스의 기록되지 않은 어린 시절과 성장기에 대한 작품이다. 사실 4권이나 되는 분량은 프롤로그에 불과할 정도로, 에우메네스가 어린 시절 강제적으로 겪어야 했던 운명이 강요한 수많은 새 출발, 새 인생들을 그리고 있다. 서구문명의 기반을 이룬 문명의 발산지 그리스는 동시에 소수의 시민이 다수의 노예를 거느리던 극과 극의 사회였고,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하면서도 외국인을 얕잡아 보는 시야 역시 공존하고 있었다. 이 안에서 태어난 에우메네스는 뜻하지 않게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고대 지중해 세계의 극과 극, 그리고 그 안팎에 있는 삶을 체험하게 된다. 급격한 환경변화에 충격과 상처를 받으면서도, 때로는 거의 자아를 잃을 위기에 처하면서도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그러면서 휩쓸려가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 에우메네스의 모습에서는 취업난과 불황이라는 혼돈 속에 갈피를 못 잡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떤 처지에 처했어도 그 안의 법칙대로 살면 살아갈 수 있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신에 대한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진정한 자신을 표출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힘든 경험으로 에우메네스는 인간이란 환경과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할 수 있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목숨이 붙어있는 한 살려고 발버둥치면 살 수는 있고, 살다 보면 희망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일종의 새로운 가능성이 보일 기회도 생긴다. 강제로 몰아 닥친 운명이지만 이에 잘 적응해나가면서 ‘불행한 팔자’를 ‘새로운 출발’로 변화시키는 적응능력과 적극성은 어떻게 보면 운명을 자신의 편으로 하는 셈이다. 따지고 보면 새해의 결심이나 각오도 곧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해내겠다는 의지이다. 지금이야말로, 주인공이 되어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