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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주목할 만한 작품들 01

쥐가 물러나고 소가 다가오는 기축년 새해가 밝았다. 올 한 해에는 어떤 작가 어떤 작품에 주목해 보면 좋을까? 여기 열 작품을 꼽아 보았다.

2009-01-07 서찬휘

쥐가 물러나고 소가 다가오는 기축년 새해가 밝았다. 올 한 해에는 어떤 작가 어떤 작품에 주목해 보면 좋을까? 여기 열 작품을 꼽아 보았다. 순서는 작품명 가나다순.

1.「당신은 거기 있었다」
윤태호 / 『팝툰』 연재 중 / GDCA 만화제작사업 지원작 / 씨네21 팝툰 / 단행본 미발매

당신은 거기 있었다 이미지
야후」로 한국 사회의 일면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여준 윤태호 씨가 최근 「이끼」와 「주유천하」에 이어 또 한 작품을 시작했다. 2008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GDCA) 제작센터 만화제작사업 지원작으로 선정돼 『팝툰』 42호(2008년 11월 15일 발행)부터 연재를 시작한 「당신은 거기 있었다」가 그 작품.
“내가 지켜야 했던 건 가족이었고, 내가 버리기로 한 것 또한 가족이다!”라는 절규와 함께 핏방울과 날선 커터로 표지를 장식하며 등장한 이 작품은 호화 아파트에서 가족과 함께 남부럽지 않게 살던 한 중년 남자가 돌연 자기 집에서 오른손에 커터를 들고 왼손 동맥은 잘린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으로 막을 연다. 얼핏 자살로 보일 법한 사건에서 수상한 점들이 잇따라 발견되며 극 초반부터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2008년도 GDCA 지원작은 만화 뿐 아니라 영화·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하고 심사 과정에서 영화사의 2차 판권사업 가능성 검토 의견을 참고했다고 한다. 아직 연재 초반이지만 지난해 말 영화화 계약을 맺은 「이끼」와 함께 영상화하는 겹경사를 기대해 봄직하다.


2. 만화판 「바람의 화원」
타파리 이야기, 윤승기 그림 / 『영챔프』 연재 중 / 대원씨아이 / 단행본 1권 2009년 1월 중순 발매 예정

바람의 화원 이미지
남은 것은 그림 몇 장과 사료에 적힌 한두 줄 서술뿐이어서 정체가 불명이었던 천재 화인(畵人) 혜원 신윤복. 2007년 이 신윤복과 또 한 천재 화인 단원 김홍도를 스승과 제자로 또 여인과 사내로 등장시킨 추리 팩션이 등장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영·정조 시대의 드라마틱한 재조명이 기조였던 시점에서 두 천재를 엮는 시도는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이후 이 둘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잇따라 여기저기서 고개를 들이미는 결과를 낳는다.
아마추어 동인계에서 둘을 야오이 커플로 맺는 작품이 나오는가 하면 영화계에서는 신윤복 여성설을 채용한 「미인도」라는 작품이 등장한다. 그리고 「미인도」 개봉에 앞선 2008년 9월 24일, 팩션 「바람의 화원」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SBS에서 첫 전파를 탔다. 신윤복 역에 문근영, 김홍도 역에 박신양으로 시작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 제작과 함께 다매체 전략으로 기획된 만화판 「바람의 화원」은 드라마 방영 시작 1주일 만인 10월 1일 『영챔프』 지면을 통해 첫 선을 보였다. 일본에서 「신족가족」의 그림을 맡으며 데뷔한 작가 타파리 씨가 이야기를, 「맘보 파라다이스」로 서정적이고 섬세한 필체를 선보였던 윤승기 씨가 그림을 맡아 연재에 들어간 만화판 「바람의 화원」은 원작 소설의 사건과 설정을 들고 오되 인물 성격이나 행동 요인 등 세세한 부분을 만화판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다듬어 전개 등에서 소설과 드라마와는 또 다른 맛을 주고 있다. 이야기 작가 말마따나 개초딩(?) 끼를 보이는 윤복이의 얄밉고도 귀여우면서도 애처로운 모습이나, 수염투성이에 검댕까지 잔뜩 묻혔던 드라마와는 달리 봉두난발 총각이 된 홍도를 보는 맛도 꽤 즐거운 편.
드라마는 이미 끝나고 연말 시상식에서 드라마판 주연인 문근영 양이 연기대상까지 거머쥐며 한 해 장사를 마무리 지었다지만 만화판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긴 호흡으로 만화판만의 재미를 즐겨봄 직하지 않을까. 성미가 급한 분이라면 책, VOD, IPTV 등으로 예습 복습에 정주행(?)을 겸해가면서.

3.「CIEL ~ The Last Autumn Story」
임주연 / 『이슈』 연재 중 / 대원씨아이 / 단행본 10권 발매 중

CIEL ~ The Last Autumn Story 이미지
「Ciel ~ The Last Autumn Story」(이하 「Ciel」)은 「소녀교육헌장」을 그린 임주연 씨가 데뷔 단편집 『어느 비리 공무원의 고백』 수록작인 「CAST」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으로 단순한 ‘미소녀 학원 마법 팬터지’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다층적 설정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져 나오는 개그, 그리고 여기에 웃거나 황당해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문득 느끼게 되는 작품 속 세계관의 광대함과 탄탄함이 매력이다. 전작인 「악마의 신부」와 「소녀교육헌장」에서 아쉬움으로 남았던 완급과 호흡 조절, 연출력 등을 「Ciel」에서는 상당부분 보완해내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초창기 세대 선배들 시대와는 다른 대상 독자층에 어울리는 감각적인 면에 게임과 소년지적인 감성을 녹여내는 솜씨, 큰 줄기는 물론이거니와 지나가듯 집어넣은 듯한 장면 연출 하나마저도 놓지 않고 써먹는 치밀한 구성력과 ‘큰 이야기(서사)’를 절묘하게 뒤섞어내는 면모 등은 현재 국내 젊은 순정만화 작가군에서도 가히 독보적이다. 그 장점의 집대성인 「Ciel」은 일본의 현 쇼우죠망가(少女漫?, 소녀만화)와는 또 다른 ‘한국식 현 순정만화’의 한 일면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도 꼽을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다.

이러한 개성 덕에 「Ciel」은 지난해 1월부터 일본 신쇼칸(新書館)에서 내는 월간 소녀만화 잡지 『Wings』에서 수입 연재 중이며 1년 만인 오는 1월 하순엔 일본판 단행본도 출간 예정이다. 한국 본편 연재분에서는 큰 전개를 또 하나 마치고 새 전개로 들어가며 초반부터 굵직한 사건을 터트리고 있는 중이다. 이미 신작이 아님에도 늘 신작 이상의 기대를 품게 하는 이 작품은 일본 수출 연재 및 단행본 발간과 더불어 올 한 해도 주목해 볼만한 작품이라 하겠다.

4.「심연의 카발리어 - 어비스 최강의 전사」

가온비 이야기, 쥬더 그림 / 『영챔프』 연재작 / 대원씨아이 / 단행본 1권 발매 중

심연의 카발리어 이미지

「심연의 카발리어」는 팬터지 소설가 겸 만화 스토리 작가 겸 동인 만화가인 가온비 - 방지나(키르자바)·방지연(가온비) 자매, 그리고 쥬더 팀 - 김선미(쥬더D)·조성환(쥬더J) 커플이 「불멸의 레지스」(6권 완결)에 이어 이 작품의 2부 격으로 지난해 7월부터 연재한 작품이다. 전작과 같은 선에 놓인 이야기이나 독립된 느낌을 주기 위해 ‘2부’가 아니라 다른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전작의 끝에서 수 십 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하는 「심연의 카발리어」는 전작의 주인공들과 사회가 아직은 전개에서 드러나지 않은 큰 사건을 겪고 많은 변화를 거친 상태에서 새로운 주인공들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전작에서 끊겨 있던 부분에 따른 궁금증과, 현 시점과의 시간차 동안에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어째서 동생에게 돌아가겠다는 일념만으로 유약한 몸과 마음을 달래며 덤벼들기 바빴던 전 주인공은 이토록 냉혹한 철혈군주가 될 수 있었으며 그를 언데드로 만들었던 장본인은 현재는 왜 유폐되어 있는가. 풀리지 않은 과거의 문제와 들이닥치고 있는 현재의 문제가 치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며 긴박감과 궁금함을 자아내고 있다.

작화를 맡은 쥬더 팀은 미형과 고어하기까지한 장면을 고루 소화하는 한편 이번 데뷔작과 전작에 이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주인공 격인 용제 유안 등 여전히 매력 넘치는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켜 청소년지 연재물이 보여줘야 할 미덕을 십분 잘 살리고 있다. 지난해까지 나온 분량이 서론이라 한다면 올해 연재 분량이야말로 본론에 가까울 터. 아직 「불멸의 레지스」를 보지 않았다면 권수가 많지 않으니 먼저 한 차례 읽은 후 「심연의 카발리어」를 이어서 보길 권한다.



필진이미지

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 《키워드 오덕학》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덕립선언서》 등 저술.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와 백석문화대학교 출강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