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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만화계 안팎 사건사고 (1)

매년 이맘때면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며 다가오는 내년을 대비한다. 말 그대로 ‘여러 일’들이 있었던 올 한 해, 우리 만화계 안팎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자.

2008-12-04 서찬휘




매년 이맘때면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며 다가오는 내년을 대비한다. 말 그대로 ‘여러 일’들이 있었던 올 한 해, 우리 만화계 안팎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자.

1. 만화가들 해외 진출 성과

흑신
「흑신」

2008년은 국내 작가·작품들이 해외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올린 한 해였다.

먼저 독자들을 놀라게 한 소식 가운데 하나는 임달영·박성우 콤비가 일본 스퀘어에닉스가 발행하는 『영 강강』에서 연재 중인 「흑신(?神)」이 TV 애니메이션화한다는 것이다. 국내 작가가 일본에 직접 연재한 작품이 애니메이션화하는 건 「신 암행어사」에 이어 두 번째이며 TV 시리즈로는 첫 사례다. 제작을 맡은 곳은 「기동전사 건담」 「이누야샤」 등을 제작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선라이즈. 감독은「십이국기」, 「영국 사랑 이야기 - 엠마」등의 감독을 맡았던 코바야시 츠네오(小林常夫) 씨다.
「흑신」의 작화를 맡고 있는 박성우 씨는 이외에도 일본 스퀘어에닉스의 소년지 『월간 소년 강강』 7월호(6월 12일)부터 「메테오 앰블럼」을, 슈에이샤의 청년지 『울트라 점프』 12월호(11월 19일 발행)부터 「아니마·칼·리브스」를 연재하기 시작해 일본에서 인기 만화가로서 한층 더 입지를 다지고 있는 모습이다. 「흑신」의 이야기를 맡고 있는 임달영 씨도 우리나라에서 「언밸런스×2」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이수현 씨의 작화로 지난해 11월 킬타임커뮤니케이션의 격월간 만화잡지 『코믹 발키리』에 단편으로 실었던 「오니히메 버서스(鬼?VS)」를 같은 잡지 통권 11호(3월 27일 발행)부터 정식 연재하기 시작했다.

『부킹』에서 「크로키 팝」「잭 프로스트」를 연재하며 라이트노벨 브랜드 시드노벨에서 낸 「망향교회」의 삽화를 작업하기도 한 만화가 고진호 씨도 쇼가쿠칸의 월간지 『선데이GX』에서 「프리즈너6」의 작화로 일본에 진출했다. 『선데이GX』는 「신 암행어사」가 실렸던 잡지로, 고진호 씨는 일본 잡지에서는 KOJINO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프리즈너6」의 원작자는 긴게츠 류노스케(金月龍之介)로 애니메이션 「니닝가시노부전(ニニンがシノブ?)」, 「후타코이 얼터너티브(フタコイ オルタナティブ)」 등의 시리즈 구성을 맡았던 인물.

『영챔프』에서 「선녀강림」과 「라온」을 연재한 유현 씨는 『영 강강』 2008년 21호(10월 17일 발매)부터 신작인 「우라사이」의 연재를 시작했다. 주인공 이름 우라 사이토과 주인공이 살 아파트 이름 우라사이 장에서 제목을 따온 「우라사이」는 작품 블로그를 별도로 개설해 정기적으로 작품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야기는 시로가네 안(しろがね杏)이 맡고 있다.

신인 작가 이나래 씨도 미국의 만화 잡지 『옌 플러스』를 통해 제임스 패터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만화 「맥시멈 라이드」를 연재하고 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출신인 이나래 씨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와 거북이북스가 산학협동으로 내고 있는 만화 무크지 시리즈에서 「천일야화」 「춘앵전」의 이야기를 쓴 전진석 씨의 「님포마니아」를 작화하며 데뷔, 일간스포츠에서 웹툰 「견제남녀」를 연재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현재는 「맥시멈 라이드」와 함께 국내 아동 대상 순정지 『파티』에서 「스위티 밀키 프러포즈」를 연재 중이다.

국내 만화잡지 연재작의 일본 수출도 이어졌다. 대원씨아이가 내는 월간 순정지 『이슈』의 간판 작품인 임주연 씨의 「Ciel - The Last Autumn Story」가 2008년 1월부터 일본 신쇼칸(新書館)의 월간 소녀만화지 『윙스』에서 연재를 시작한 것. 『윙스』는 이미 드라마화로 인기가 높은 박소희 씨의 「궁」을 「らぶきょん ~ LOVE in 景福宮(라부쿈 ~ Love in 경복궁)」이란 제목으로 수입해 출간한 전력이 있다. 「Ciel」의 번역도 「궁」을 맡았던 사지마 아키코 씨가 맡는다.

앞서 이름을 언급한 임달영 씨도 직접 연재 뿐 아니라 국내 연재작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임달영 씨는 대원씨아이의 청소년지 『영챔프』에 연재 중인 「언밸런스×2」와 학산문화사의 청소년지 『부킹』을 통해 연재 중인 「불꽃의 인페르노」를 단행본 수출 형태로 일본에 팔았다. 「불꽃의 인페르노」를 작화하고 있는 김광현 씨는 일본 『코믹 발키리』에서 임달영 씨와 「프리징」을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수출된 「언밸런스×2」와 「불꽃의 인페르노」는 일본 제책방식에 맞춰 우철로 제본되는 한편 작중 등장인물 이름도 일본에 맞춰 바뀌는 등 현지화를 했다. 두 작품은 1월 31일 단행본 1권이 나온 후 1주일여 만에 초판 매진, 온라인 서점 단행본 판매 순위 1~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언밸런스×2」는 「프리징」과 함께 아키하바라 지하철 역내 광고가 나가기도 했다고.

이밖에 로베르타 씨가 일본 코우단샤에서 주최하는 디지털 신인상 MiChao! コロッセオ(미챠오! 콜로쎄오)의 여섯 번째 공모 만화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해 상금 60만 엔과 연재 자격을 받았다. 수상작 제목은 「Soul Seeper」로 “독자를 의식하면서 이야기 전개를 진행해 알기 쉽게 읽을 수 있는 점도 호평이었다” “세계관의 설정이나 전체 구도에 정진해 주었으면 싶지만 향후 활약이 몹시 기대된다”라는 평을 받았다. 흑백 원고이나 디지털 환경에서의 노출을 염두에 두고 전개상 주요 대목에 채색을 가미해 놓은 것도 인상 깊은 점.

작가와 작품의 해외 진출은 분명 좋은 소식이다. 그만큼 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우리 안쪽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이야기도 된다는 점에서 안타깝기도 하다.

2. 불황 속 새 매체, 새 매장 그리고 새 브랜드

그루
『그루』( 출판사 : 절대교감)

시장 불황이라는 말이 이젠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새로운 매체와 매장, 브랜드들이 등장하여 반가움을 전했다.
먼저 계간 BL 잡지 『뷰티풀라이프』를 냈던 출판사 절대교감이 새 잡지 『그루』 를 창간했다. 『그루』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이 벌이는 2008년 만화특화신규프로젝트 지원사업의 지원금을 받아 창간한 매체. 작가주의 순정만화잡지를 표방하는 『그루』는 유시진 씨, 이향우 씨, 문흥미 씨를 비롯한 중견 순정작가와 톰톰 씨, 이정아 씨, 전유호 씨 등 신구 작가진의 조화가 인상 깊다.

온오프라인 서점인 리브로와 출판사 비주얼 웍스가 함께 개성 강한 국내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들을 한 데 모아 낸 고급형 화보집 『애플』 시리즈도 화제를 모았다. ‘A Place for People who Love Entertainment(엔터테인먼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의 준말인 애플(APPLE)은 열정을 지닌 창작자들에게 자유로운 창작 공간을 제공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2월 『애플 컬렉션 우노(UNO)』부터 시작해 5월 『애플 컬렉션 도스(DOS)』, 9월 『애플 컬렉션 뜨레스(TRES)』 등을 연속해 출간했다.
출판사 비주얼웍스는 화보집 뿐 아니라 「프리스트」 「무신전젱」 「고스트 페이스」를 그린 작가 형민우 씨의 한국만화100주년 기념 디지털 작법서(DVD)를 출시하는 한편 ‘애플 코믹스’라는 브랜드로 만화 출간에도 나섰다. 그 첫 작품으로 한·프랑스 합작 만화인 「분노(RAGE)」는 니콜라 타키앙 원작에 「교무의원」의 작가 임광묵 씨가 작화를 맡은 작품으로 프랑스 솔레이으(Soleil) 출판사와 합작해 나온 한국·프랑스 합작 작품이다.

한편 온오프라인 서점인 리브로는 만화 전문 온라인 서점인 리브로코믹이 오프라인 매장을 열기도 했다. 지난 7월 15일 개장한 리브로코믹 매장은 서울 신촌 ‘북스 리브로’ 안에 자리를 잡았으며 만화책과 캐릭터 상품, 원서, 화보집 등을 들여놓았다. 다양한 기획전과 장르·연재잡지별 구분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고, 리브로와 출판사 비주얼웍스가 함께한『애플』 시리즈 참여자를 비롯한 다양한 작가들의 일러스트 전시회도 상설로 열고 있다.
국내 3대 만화 출판사 중 하나로 꼽히는 대원씨아이도 지난 9월 ‘미우’라는 새 브랜드를 내놓았다. 아름다운 벗(美友)이라는 뜻을 지닌 미우는 대원씨아이가 기존에 주력으로 삼았던 코믹스 계열과는 차별성을 두기 위해 도입한 브랜드. 「최종병기 그녀」를 그린 타카하시 신의 신작 「톰소여」와 마흔이 넘은 나이에 데뷔한 이색 경력을 지닌 아베 야로가 그린 「심야식당」을 첫 작품으로 내밀었다.

미우는 기존 코믹스보다 비싼 고급형 단행본으로 독자들을 만나는 한편 그간 국내 만화 전문 출판사들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마케팅 전무’라는 한계를 넘고자 전문 블로그 광고 등을 시도하는 등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이 브랜드가 대원씨아이의 또 다른 외국 작품(그 중에서도 일본 작품) 수입 레이블 가운데 하나로만 남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3. 히어로물 잇따라 출간

원티드 이미지
「원티드」

지난해 「300」 「씬 시티」을 비롯한 ‘그래픽노블’ 계열 책들이 속속 등장하며 국내 ‘만화’와 일본의 상업 ‘망가’에만 익숙해 있던 국내 만화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올해 들어서는 여기에 미국 코믹스의 진국을 맛볼 수 있는 ‘히어로물’ 계열 작품들이 앞을 다투어 출시되며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들 작품군을 국내에 주도적으로 들여온 출판사는 시공사, 세미콜론, 중앙북스 세 곳. 「왓치맨」(시공사) 「저스티스」(시공사) 「원티드」(중앙북스) 「배트맨 - 악마의 십자가」 (세미콜론) 「배트맨 - 허쉬」(세미콜론) 「배트맨 - 다크나이트 리턴즈」 「킹덤컴」(시공사) 등이 연이어 쏟아지며 히어로물 팬들의 환성을 자아냈다.
이 가운데 「원티드」의 경우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으며 「왓치맨」은 작가 앨런 무어가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원작 그래픽 노블을 그린 작가라는 걸로도 알려진 편. 온갖 히어로들과 그 적인 온갖 빌란들이 총출동하는 「저스티스」나 슈퍼맨이 휴업(?)한 뒤 10여년이 지나 히어로들이 세대 교체된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킹덤컴」은 극단의 작화력을 보여주는 그림과 끝도 없이 몰려나오는 인물들 자체로도 볼거리 즐길 거리가 풍성하며, 「왓치맨」 「킹덤 컴」과 함께 그래픽 노블 시리즈의 명작으로 평가 받고 있는 작품인 「배트맨 - 다크나이트 리턴즈」는 「300」을 그린 프랭크 밀러의 옛 작품이란 점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히어로물은 오랜 역사를 지닌 미국 특유의 만화 장르로 독특한 캐릭터성과 세계관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대책 없이 현학적이거나 예술성으로 포장된 부류보다는 훨씬 역동적이고 즐거움을 선사하며, 수많은 드라마, 영화의 원작이 되기도 했다. 국내에 이러한 장르의 정수들이 소개되기 시작한 점은 다양성 확보 측면에서도 무척 반가운 일이다. 다만 히어로물들의 계보나 매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들이어야 좀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을 법한 ‘올스타 리그’ 스타일 작품들이나 후일담류 작품들들이 상당수라는 점은 이 장르에 처음 진입하는 초보자들의 이해를 깎지 않을까 다소 우려가 들기도 한다.

4. 국제 금융 위기와 환율 상승에 따른 책값 인상

최근 환율및 원자재 가격 상승의 여파가 출판계에 휘몰아치고 있다. 만화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계속 오르고 있는 종이 값이 책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원래 8, 9천 원 이상 고가 상품을 중심으로 출시하던 출판사들 외에 저가형 코믹스를 내는 출판사들은 권당 4000원, 4200원, 4500원, 4800원 등으로 가격을 대거 올린 한편으로 컬러 브로마이드 삽입, 컬러 원고 등을 당분간 없애기로 하는 등 자구책을 펴고 있다. 인상폭이 지나치게 큰 탓에 출판 관계자들은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독자들은 종이 값의 문제냐는 식으로 힐난하고 있는 중이며 아직 4천 원대로 올리지 않은 출판사를 ‘용자’라며 추켜세우는 웃지만은 못 할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책값이 오를 때 독자들 사이에서 늘 나오던 말은 ‘차라리 원서를 구입하겠다!’라는 이야기였으나 최근 미국에서 시작한 경제 위기가 세계를 뒤흔들며 주가 및 환율이 1997년 수준으로 돌아가면서 원-엔 환율이 100원 당 1400~1500원대를 육박하자 그마저도 불가능해진 상황. 거의 2배 가까이 뛴 환율 때문에 원서 가격도 덩달아 뛰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정식 번역판의 번역 품질이나 종이질이 나쁘다는 이유로 원서를 중심으로 일본 작품을 구입하던 이들은 현재 울며 겨자 먹기로 구입하거나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다. 환율은 단지 책값만 올리고 있는 건 아니다. 100 디지털로 작업하지 않는 이상 만화 원고를 작업하는 데에는 재료와 도구가 필요하다. 문제는 종이, 펜, 톤, 잉크 등 만화 제작에 필요한 재료와 도구 등 대부분이 외제, 그 가운데에서도 일본 제품이라는 점이다. 한 만화가는 펜촉과 종이, 잉크만은 갑자기 바꿀 수 없다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세계 경제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한 당분간은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필진이미지

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 《키워드 오덕학》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덕립선언서》 등 저술.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와 백석문화대학교 출강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