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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그리는 만화(1) : 만화 속 가족의 모습

모 그룹회장의 아들 사랑 때문에 한동안 나라가 떠들썩 했습니다.
가족애가 중요시되는 우리 사회에서의 만화속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요?
만화속 가족의 모습을 들여다 봅니다.

2007-06-07 이영미

                                                                [연중기획 Comic & Culture ④] 가족을 그리는 만화

얼마 전 모 그룹 회장님께서 남다른 아들사랑을 보여주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한국 재벌가의 이면 혹은 경찰과의 유착 관계, 조직폭력배 동원 등등 수많은 논쟁거리를 불러온 사건이었지요. 하지만 그중 수많은 언론이 제일 집중한 것은 맞고 돌아온 아들을 위한 복수를 해준 아버지의 정(情)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을 중심으로 한 통념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수 있는 대목이었어요. 모 그룹 회장님의 행동들은 전부 용서할 수 없지만, 아들의 위한 부정만은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이 굉장히 많았었거든요.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재생산되는 가족의 가치를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에게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 개념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매거진에서는 만화 속에서 [가족]이 어떻게 그려지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과연 만화들은 [가족]의 가치를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5월하면 가족, 가족 하면 5월이다. 행사도 많고 기념일도 많아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각종 ‘날, 날’들에 지갑은 빠듯해 지고 가족 없는 사람들은 박탈감에 외로워지는 그런 달도 5월이지만, 이 푸른 계절에 가족은 으레 집중 조명을 받곤 한다.
가족은 서로가 살아가는 기반이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지만, 때로는 너무 가까워서 폐를 끼칠 때도 많다. 가족이니까, 가까우니까 허락되는 것들은 많다.

하지만 만화가 좀 더 주목하는 가족은 그런 일반적인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져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서로 피해도 주고 도움도 주는 그런 모습만은 아니다. 으레 어딘가 예사롭지 않다. 구성원 개개인이 대단히 유별나든가, 관계가 색다르든가, 아니면 가족 자체가 특별한 모습을 지녔을 때가 많다.


희생으로 화목해지다 - 다름 아닌 가족

생각해 보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민폐’를 당연시 해 왔는가 싶다. 제 자리를 잡고 서 있는 가족의 모습은 사실, 누군가의 희생과 봉사가 지속되지 않으면 어려운 법이다. 그리고 그 몫은 대부분 ‘엄마’의 몫이다. 어머니의 희생과 봉사는 어쩔 수 없다는 배경이 깔린 듯한 가족만화가 있다. 화목한 가족의 모습으로 곧잘 그려지는 만화속의 가족은 그렇다.

황미나 씨의 「웍더글 덕더글」. ‘웍더글 덕더글’이란 말 그대로 덩어리들이 마구 부딪쳐 시끄러운 소리를 뜻한다. 가족 모두가 쿵푸 유단자이고, 말 많고 성격 까칠하여 일만 생기면 마당이고 안방이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곳. 참·아름·다운·우리·나라·하늘이 펼치는 왁자한 일상의 에피소드는 거칠다. 그러나 가족이란 게 뭔가. 서로 죽일 듯이 싸우다가, 누가 위협하면 물보다 진한 피가 솟아올라 서로를 보듬어주고 지켜주는 사이다. 오빠들은 여동생을 선머슴처럼 대했다가도, 다른 남자가 함부로 굴면 달려가서 주먹을 날린다.

웍더글 덕더글, 이 씨네 집 이야기
<웍더글 덕더글>,<이 씨네 집 이야기>

「웍더글 덕더글」도 그렇고, 「이 씨네 집 이야기」도 그렇다. 「웍더글 덕더글」은 「이 씨 네 집 이야기」는 ― 「이 씨네 집 이야기」가 가족 묘사의 선명함 면에서는 좀 더 낫다지만 ―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모여 살면서 부대낄 수밖에 없는 게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어머니의 희생을 통해 가부장적이고 고전적인 질서와 의식이 내비치고 하나같이 착한 심성들이 드러날 때면 오히려 거북스럽다. 장남의 딸 유진이가 엄마의 사랑을 싣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나,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북으로 간 둘째 아들을 찾는 장면의 80년대식 감성에서는 부자연스러워 속이 불편해진다.

타로 이야기
<타로 이야기>

차라리 타카하시 루미코의 「란마1/2」이나 「시끌별 녀석들」의 가족, 자신의 이익이 우선인 가족이 자연스럽다.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자기 목적을 위해 도움을 받으면 좋지만 그게 아니라면 귀찮고 시끄러울 뿐이다. 상상을 초월하게 변태적인 「우당탕탕 괴짜가족」(하마오카 켄지)에 비할 바 못되지만, 파편화된 인물의 기괴하고 더러운(!) 일상을 가족으로 묶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다만 「타로 이야기」의 타로는 좀 다르다. 그런 희생정신이 없으면 가족 자체가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생활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엄마와 생활력은 물론 책임감도 없어 오랜 여행 중인 아빠를 대신해 여섯 명이나 되는 동생의 생계와 학비를 책임져야 하는 타로는 그야말로 궁상과 처량함이 섞여 있을 듯하지만, 이 만화의 재미는 그런 타로가 귀티가 줄줄 흐르는 미남이라는 점에 있다. 오직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먹을 것과 돈에 보이는 무서울 정도의 집착은 가족을 살려야 한다는 소년가장 타로의 투쟁정신이다. 그런 비현실성은 감동보다는 웃음을 선사한다.


고단한 삶, 반쪽 가족

가정 노동자 엄마와 사회 노동자인 아빠 그리고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의 틀은 미국 건국 당시 국가 재건의 축소판으로 만들어진 기본 단위라고 한다. 이렇게 틀 지워진 사회는 그것을 벗어난 가정이 이상하고 불편한 것으로 여겨지도록 은근히 강요한다. 따라서 모자 가정, 부자 가정은 가사 노동은 물론 사회 노동의 이중고에 사회적 편견까지 삼중고에 시달린다. 만화 속에 등장하는 이런 가족의 모습은, 이들 가족의 구성원이 어떻게 그런 질서와 싸워 가는지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니코니코 일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니코니코 일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오자와 마리)의 수우는 18세 때 미혼모가 되어 호적에도 올라있지 않은 딸 노조미와 힘든 삶을 묵묵히 살아간다. 청승의 극치를 달려야 할 듯한 이러한 가족이 닥친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섬세하게 밟아 나가는 이 작품 속의 가족은, 특히 서로 짐을 지우는 동시에 더 깊은 존재감도 선사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준다.

특히 이 만화는 육아의 고단함과 사회의 편견에 맞서면서, 편부모가정의 현실감 있는 고뇌를 보인다. 특히 엄마와 딸이 서로의 삶을 교집합처럼 공유하면서 솔직함과 당당함으로 세상과 맞서는 모습이 인상 깊다. 비록 엄마가 멋진 남자와 재혼하는 훌륭하고 비현실적인 결말을 내놓지만, 이 만화에서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모녀의 소박한 감정의 교류다.

오자와 마리는 이 작품 이후에 「니코니코 일기」를 통해 세심한 모녀의 연대를 더욱 섬세하게 묘사한다. 특히 이 만화는, 혈연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모녀관계를 예로 들면서 가족의 관계란 무엇인지를 집요하고도 섬세하게 파고든다. 「세상에서…」에서 모녀에게 있던 경제적 어려움이 해결된 대신, 혈연이 없는 관계라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 그러나 역시 그것도 ‘교환일기’라는 두 사람의 따뜻한 감정 교류로 풀려간다. 친엄마가 유명한 여배우이기 때문에 친엄마의 딸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살아오는 바람에 상처가 많은 아이 니코와 케이가 보모와 양부모의 관계를 지나 친구로 그리고 다시 가족으로 다져지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이에 안 맞게 부쩍 커버려서 함부로 만지기가 조심스러워진 상처투성이 아이 니코. 하지만 역시 관심과 사랑을 쏟는 만큼 아이는 바르게 자라는 법이다. 엄마인 케이는 없는 시간과 공간을 쪼개어 아이에게 있는 힘을 다 했고, 니코는 그런 엄마를 온전히 이해하며 지혜로운 모습으로 성장하며 케이에게 위안을 준다. 있는 힘을 다 해서 감정을 쏟아 키운 아이가 다시 엄마에게 정성을 쏟아주는 모습에서 오는 감동은 물론 케이의 결혼으로 말미암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가족의 형태

고고 걸스
<고고 걸스>

그렇다면 이러한 가족은 어떨까? 완전한 모계 사회의 이상을 이룬 듯, 엄마를 중심으로 아빠는 각각 다른 네 남매의 이야기 「고고 걸스」(나카야마 노리코). 이 작품에서 엄마는 첫째를 낳고 이혼과 재혼을 하고 둘째를 낳고 또 이혼과 재혼, 셋째와 넷째를 낳고도 반복해 네 남매의 아빠가 각기 다르다.

각각의 아이 아빠는 이혼 후에도 자녀가 고등학교 때 까지 양육비와 학비를 부담하며, 자녀는 18살이 되면 독립을 해야 한다. 이 집 엄마는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겠다고 집을 나가는 딸에게, “멋있다, 정말 낭만적이야.” 라며 감동할 만큼 대책이 없어 보이지만, 이 가족에게 있어 의무는 필수이며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책임’ 이라는 의식에 매우 분명한 태도를 배운다. 특히 ‘괴물’처럼 제멋대로인 성격을 지닌 둘째 딸 ‘키쿠’는 다른 누구보다 자유분방하지만 누구보다 ‘책임’을 인간관계의 첫째 조건으로 생각한다.

한 지붕 네 식구
<한 지붕 네 식구>

재혼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가족의 형태는 「한 지붕 네 식구」(토미나가 히로미)의 마츠키와 아빠의 가족에서 볼 수 있다. 아빠가 결혼 전 서양인 그레이스와의 사이에서 난 하나노스케와, 그레이스가 재혼해 낳은 포위가 아빠의 집에 들어오면서 일대 혼란을 가져온다. 더구나 이 집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할 동물을 대여해 주는 서비스업을 하는 곳이라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엄마의 재혼과 죽음으로 좀처럼 상처가 낫지 않는 아이 포위와 왕자병 이복오빠 하나노스케를 바라보는 마츠키는 오빠와 아슬아슬한 감정의 줄타기를 하면서 졸지에 딸이 아닌 엄마노릇을 하게 된다.

감정의 매개가 되는 것은 가식이 없는 동물 친구들과의 교류와 함께, 싸우고 부딪쳐도 자꾸자꾸 마주 대하는 ‘시간’이다. 사람에게는,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미운정’이라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관계라도 ‘미운 정’은 시간과 함께 감정들을 버무려 완화,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른의 문제
<어른의 문제>

복잡한 가족이라면 「어른의 문제」를 못 따라온다. 먼저 이혼한 아빠 유지는 동성 애인 고로와 재혼을 원한다. 이혼했지만 가깝게 지내는 엄마의 재혼상대 하지메는 고로의 친형이다. 근친상간은 아니지만, 이 관계 속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주인공 나오토다. 담담하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작품은, 의외로 즐겁고 재미있는 에피소드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복잡해 보이는 문제들도 그대로 놓아두고, 각기 꼬인 대로 놓아두면 제 나름대로 흘러가게 마련이라는 소박한 진리를 말해준다. 나에게 거대한 산처럼 보여도 그들에게 대수롭지 않고 행복하다면 쿨하게 넘어가시라는 그 말을 독자에게 전하는 듯하다.

행복 보존의 법칙이란 게 있다고 한다. 재벌이건, 대통령이건 가난뱅이건 나름의 고민과 갈등은 깊고 커서 행복을 느끼는 양은 같다는 뜻이다. 가족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희생이 되었건 일기가 되었건, 아니면 시간이 되었건 무언가를 제공하면 그 만큼 자신에게 행복이 돌아온다. 저절로 행복이 굴러들어오기를 기다리느니, 이 상황을 편하게 즐기는 쪽이 나을 것이다. 가족이란 거기에 제하고 더해서 행복을 주고, 받고 더불어 살아가는 게 아니겠는가. 앞서의 작품들이 그렇게 말을 건네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