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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와 이끼 ①ㅣ만화가 윤태호를 말하다.

윤태호 작가의 인기 웹툰 <이끼>. 영화가 된다고 발표 되었을 때 부터 그 관심은 뜨거웠다. 그래서였을까? 현재 영화 <이끼>는 2010년 한국영화상 가장 공격적인 스코어로 관객들을 모으고 있다. 모두가 영화 <이끼>에 열광하고 있는 지금, 그 열광의 발원지이자 시작점인 원작자 윤태호를 돌아보았다.

2010-07-24 박인하

+ 만화가 윤태호를 말하다.

+ 윤태호 인터뷰

+ 이끼, 만화vs영화

+ 영화감독 강우석 인터뷰



윤태호 작가의 인기 웹툰 <이끼>. 영화가 된다고 발표 되었을 때 부터 그 관심은 뜨거웠다. 그래서였을까? 현재 영화 <이끼>는 2010년 한국영화상 가장 공격적인 스코어로 관객들을 모으고 있다. 모두가 영화 <이끼>에 열광하고 있는 지금, 그 열광의 발원지이자 시작점인 원작자 윤태호를 돌아보았다.(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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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만화제국의 계승자로 등극하다


영화 <이끼>가 개봉되었다. 개봉 전 2010년 최고의 예매율을 기록하며 돌풍을 예고했던 만큼 개봉 이후 성적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2시간 40분이라는 긴 런닝타임, 찬반이 갈리는 강우석표 스릴러. 7월 16일에서 18일 주말 박스오피스 성적은 2위 <이클립스>를 2배 이상 따돌린 1위. 845,868명이 주말에 <이끼>를 보았고, 누적관객은 100만 명이 넘었다.


영화 <이끼>의 좋은 흥행 성적이 원작만화 <이끼>에 눈을 돌리게 한다. 누구 작품이라고? 윤태호? 사람들이 만화를 보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하고, 인터넷 서점에서는 <이끼> 전체 다섯 권이 판매 순위 상위권에 올라있다.


이제 누구나 만화가 윤태호를 기억할 것이다. 작가가 들으면 부담스럽겠지만, 2010년 7월 현재, 윤태호는 스승 허영만에게서 황제의 상징인 ‘제국의 사과(Reichsapfel)’를 물려받기 직전이다. 도대체 윤태호의 왜 제국의 사과를 물려받을 수 있게 된 것일까?


▲1191년 하인리히 4세가 아들 하인리히 5세에게 ‘제국의 사과’를 물려주는 대관식 장면.


구태여 중세 대관식에 비유해 윤태호를 설명한 까닭은 윤태호가 한국만화의 유산과 정통을 한 몸에 지닌 작가이기 때문이다. 윤태호와 함께 현재 한국 서사만화의 또 다른 축인 강풀과 비교해 보면 이는 더 명확해 진다. 알다시피, 강풀은 정규 만화지면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만화를 독자들에게 알렸다. 작업 역시 디지털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디지털로 제작, 유통되고 있으니 강풀은 온전히 디지털 만화가다. 반면, 윤태호는 문하생 생활을 거쳐 잡지에 단편을 발표하며 데뷔했고, 중편 연재작, 장편 연재작을 고루 발표했다. 때론 편집자와의 약속 때문에 원치 않는 만화를 발표하기도 했고, 한국 만화 시장이 대여점으로 이동할 때는 대여점용 전작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좋건, 나쁘건 간에 윤태호는 한국만화의 유산을 고스란히 자신의 도서목록에 담고 있다.


도서목록(bibliography)를 보자. 1996년 성인용 만화잡지 『미스터블루』에 연재한 데뷔작은 단행본 1권 분량의 <혼자 자는 남편>으로 성인용 코믹 만화다. 후속작은 <연씨별곡>으로 대한민국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고전소설 <흥부전>의 두 주인공 놀부와 흥부를 재해석한 만화다. 캐릭터의 재해석은 일찍이 1988년 고우영이 《일간스포츠》에 <놀부전>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다. 고전소설의 재해석이야 고우영의 특기가 아니던가. 윤태호는 이 부담되는 작업을 통해 고우영의 해학과 다른 윤태호의 해학을 보여주었다. 날짐승 제비가 아니라 인간 제비들을 등장시키면서 원전이나 고우영의 재해석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간다. 분량으로 보자면, 총 2권 중 2권은 제비들이 등장해 놀부를 거덜내고, 흥부에게 거덜나는 이야기다. 제비들이 등장하며 성의 비중이 커진다. 첫 중편 연재작인 <혼자 자는 남편>이나 <연씨별곡>의 중심에는 노골적이지 않은 윤태호식 성 묘사가 있다. 섹스 코미디이기는 하지만, 노골적이지 않은 은근한 재미가 있는 그런 성 묘사는 고우영을 닮았다.


<연씨별곡> 이후 <수궁가>를 패러디한 <수궁별곡>을 연재한다. 당시 『미스터블루』의 편집부에서는 윤태호 만화의 비빌리오그래피를 고전소설 재해석 시리즈로 채우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태호는 그 기획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1997년 7월 1일자로 청소년보호법리 발효되고, 8월 31일까지 대국민홍보기간으로 잡아 매체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가장 확실한 타겟은 만화였다. 일반용과 19금은 완벽하게 분리된 장소에서 전시, 판매되어야했다. 서점은 점점 만화, 특히 성인만화를 꺼리게 되었고 『미스터블루』는 모조리 반품되어 출판사로 돌아왔다. 결국 창간한 지 2년여 만에 15호(통권 54호)로 정간에 들어간다. 윤태호는 이 기회를 틈타 맘에 들지 않던 <수궁별곡>의 연재를 청산해 버린다. 그리고 다시 발행되기 시작한 『미스터블루』에 야구만화 <발칙한 인생>을 발표한다. ‘야구만화’라고 부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스포츠 만화와는 거리가 멀다. 윤태호가 붙인 카피인지, 아니면 편집부에서 붙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본격 지역사회 성인 야구만화”라는 설명이 붙었다.


▲스포츠만화가 아니라 인간군상에 대한 탐구를 보여준 작품. 잡지 폐간, 폐간, 폐간. 3연속 콤보를 맞은 비운의 작품. (미완)


<발칙한 인생>에 등장한 애니어그램에 따른 사람의 유형을 기초로 설정된 캐릭터는 이후 윤태호 만화에서 등장하는 문제적 인물들의 원형을 갖고 있다. <발칙한 인생>은 코믹 만화이지만, 이후 <야후>, <이끼>, <당신은 거기 있었다> 3부작에서 보여주는 사회와 인간의 문제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다. ‘오장리’라는 허름한 동네에 30대의 백수 박태화를 비롯해서 이발소 서점 세탁소 정육점 등의 가게 주인과 동네 이장, 지역 유지 등이 참여해서 야구단이 만들어 진다는 이야기.


작가가 애정을 갖고, 그린 이 만화는 이후 비운의 주인공이 된다. “1998년 <미스터블루>에서 최초 연재하다가 잡지의 폐간으로 중단, 2002년 <웁스>의 창간으로 재연재, 하지만 불과 5회 연재되고서 잡지가 고별호를 내어 다시 중단되었던 작품. 지난 2월 28일부터 <주간야구>에 연재되는 윤태호 작가의 <발칙한 인생>은 이처럼 범상치 않은 이력을 지닌 작품이다.” (인터넷 만화사이트 코믹뱅  2006년 4월 26일 입력) 그러나 <주간야구>도 오래가지 했다.


청소년보호법 이후 이어지는 잡지 폐간, 그리고 IMF 이후 실직자들이 소규모창업으로 만화대여점을 선택하며 급속도로 불어난 대여점. 김성모의 <럭키짱> 같은 히트작이 나오면서 잡지에 연재 없이 대여점을 겨냥한 작품이 기획, 제작되었다. 그리고 잡지 폐간의 대안으로 1,000원짜리 잡지 <히트>가 창간되기도 했다. 윤태호 역시 만화계의 격변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았다. 대여점용 전작 단행본 <열풍학원>을 1998년도에서 2000년까지 총 6권을 출간했고, 1,000원짜리 잡지 <히트>에 <수상한 아이들>을 연재했다. 두 작품 모두 작가가 모든 것을 걸고 독자와 정면승부한 만화는 아니었다. 계약해서, 약속해서 시작한 두 만화였지만 이 만화들도 다른 학원만화나 코미디와 구분되는 윤태호식 매력을 갖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주목받는 코믹 성인만화 작가로 활략하다, 한국만화시장의 지각변동과 함께 액션만화와 개그만화를 발표한 윤태호는 21세기를 맞이한다. 아직까지 윤태호는 주목받는 작가였지, 비중있는 작가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양영순 같은.

주목받는 작가에서 비중있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작품은 <야후>다. 1999년부터 시작해 2003년까지 일반 단행본 분량으로 20권을 완간한 이 만화는 가상 역사만화였으며,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만화였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메타포였다. 그리고 <야후>는 <이끼>를 낳았고, <이끼>는 <당신은 거기 있었다>를 낳았다.


<야후>, <이끼>, <당신은 거기 있었다> 3부작의 공통된 키워드는 사회와 아버지다. 윤태호는 이 3부작을 통해 다양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자식의 눈앞에서 무너진 건물에 압사당해 죽기도 하고, 완벽한 스스로의 공동체를 만들기도 하며, 종교적 깨달음의 공동체를 꿈꾸기도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언가를 이루기만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아버지는 아들들과 소통하지 못한다. 소통하지 못하는 아버지, 권위만을 내세우는 아버지, 그 아버지에 절대복종하는 아들. 아버지 키워드를 보다 보면 결국 아버지가 우리 사회고, 우리 사회가 아버지의 모습이라는 걸 깨닫는다.


하나 더. 사회와 아버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윤태호는 노골적으로 문제를 까발려 ‘이게 문제’라고 선동하지 않는다. 대신 이야기를 통해, 인물을 통해, 그들이 마주한 모순, 횡포, 파괴가 역사와 사회, 인간의 문제라는 걸 깨닫게 한다. 하지만 절대로 노골적이지 않다. 설교가 아니라 공감이다. 윤태호의 문제제기에 공감한 독자들은 기표 뒤의 기의를 읽게 된다. 아버지라는 기표에 숨은 기의는 한국사회의 비정상적 욕망이다.


윤태호는 여러 인터뷰에서 어떤 특정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를 발화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가 집중하는, 적어도 3부작에서 집중한 사회와 아버지는 이야기 종자 안에, DNA로 자리잡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아마 그건 이제 40대에 접어든 세대가 마지막으로 붙들고 가야할 숙명같은 것이니까.

윤태호 bibliography


<혼자 자는 남편>, 세주문화, 1996 / 만화잡지 <미스터블루> 연재

<연씨별곡> 1,2, 세주문화, 1997 / 만화잡지 <미스터블루> 연재

<춘향별곡> 1~3, 세주문화, 1998 / 미확인

<열풍학원> 1~6, 서울미디어랜드, 1998~2000 / 전작 단행본

<수상한 아이들> 1~2, 서울미디어랜드, 1999~2000 / 만화잡지 <히트> 현재

<야후> 1~20, 학산문화사, 1999~2003 / 만화잡지 <찬스> 연재

<야후>(개정판) 1~10,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

<로망스> 애니북스, 2002 / 스포츠 신문 <굿데이> 연재

<싸이렌> 1~3, 글, 송창훈 그림, 서울문화사 2006 / 만화잡지 <점프> 연재

<영혼의 신 바리공주 : 만화로 보는 우리 신화>, 한겨레아이들, 2006 / 전작 단행본

<협객난전>, 다크북(컨텐츠와이드), 2007 / <경향신문> 만화섹션 펀 연재

<주유천하>, 중앙북스, 2008 / 스포츠신문 <스포츠조선> 연재

<이끼> 1~5, 한국데이타하우스, 2008~2010 / 유로웹진 <만끽> 연재 → 미디어다음 연재

<당신은 거기 있었다> 1-2, 씨네21, 2010 / 만화잡지 <팝툰> 연재

<리더스 유나이티드 1 : 정읍소년들의 거침없는 드리블>, 웅진주니어, 2010 / 전작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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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만화평론가, 서울웹툰아카데미(SWA) 이사장
웹툰자율규제위원회 위원
前 한국만화가협회 부회장, 前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 前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정책그룹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