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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영웅 (2)만화속 영웅을 만날 수 있는 작품들

지난 2008년은 한국 만화 시장에 ‘히어로물’이 쉴새없이 쏟아져 들어온 해였다. 대표적인 출판사로는 국내에 그래픽노블을 중점적으로 소개해 온 세미콜론이 있으며..

2009-02-05 서찬휘



                                                                        [연중기획 Comic & Culture 20 ] 만화와 영웅

지난 2008년은 한국 만화 시장에 ‘히어로물’이 쉴새없이 쏟아져 들어온 해였다. 대표적인 출판사로는 국내에 그래픽노블을 중점적으로 소개해 온 세미콜론이 있으며, 중앙북스와 시공사도 연이어 다양한 작품들을 내며 공세에 나섰다.

원티드
원티드 이미지

세미콜론이 「배트맨 - 악마의 십자가」 「배트맨 - 허쉬」, 「배트맨 - 다크나이트 리턴즈」 등 배트맨 그래픽 노블시리즈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을 연이어 소개한 데 이어 중앙북스가 최근 국내에 영화판이 개봉한 「헬보이」와 「원티드」를 했고, 장르만화 쪽에서 재미를 못 봤던 시공사도 2008년 들어 극한에 가까운 작화와 끝도 없이 몰려나오는 등장인물들로 유명한 「저스티스」와 「킹덤 컴」, 그래픽 노블 계열의 흐름을 선도한 앨런 무어의 명작 「왓치맨」과 「브이 포 벤데타」 등을 내며 히어로물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다만 이들 작품 가운데 상당수는 ‘후일담’류 작품인 경우가 많아 원전이 되는 오래 전 작품들을 모른 채 뒷이야기를 먼저 보게 되는 건 다소 부작용이라 하겠다.
「배트맨 : 다크나이트 리턴즈」 등으로 그래픽 노블에서 이름 높은 프랭크 밀러의 대표작 중 하나인 「300」은 히어로물은 아니나 수백만 대군을 막아 선 300명 스파르타 전사들을 다룬 일종의 ‘전쟁 영웅물’이다. 한창 이라크전을 치르고 있던 시기와 국가적 위치와 맞물려 미국 시각에서만 바라본 중동(이란 등 당시 페르시아 지역)의 이미지를 왜곡해 표현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허영만 작가의 각시탈 시리즈
각시탈과 눈보라

각시탈과 눈보라 이미지

한국 만화에도 영웅은 있다. 「라이파이」가 두건의 ‘ㄹ’을 휘날리며 악에 맞서는 ‘나름대로 정통파 정의의 영웅’을 보여주었다면 「각시탈」은 일제시대의 민족적 아픔을 탈바가지를 뒤집어 쓴 ‘과거 있는 남자’를 통해 달래던 시대적 영웅이다. 다만 각시탈이 다른 영웅과 다른 점이라면 무기도 초능력도 없이 맨몸으로 펼치는 무예로 뜻을 관철한다는 점이겠다. 옆 동네 박쥐 사나이나 철갑 사나이 등 부자 나리들이 돈으로 해결하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소박한 영웅이며, 한이라는 국민적 정서와 부조리한 사회상에 저항하는 면모를 담았다는 점에서도 주목해 볼만 하다. 고(故) 고우영 선생의 「일지매」 또한 조선은 물론 중국, 일본에 까지 흘러 다녀야 했던 고아출신(?) 의적을 통해 시대적 부조리를 비꼬며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할 바를 주는 점에서 한국식 영웅담 만화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탈이나 복면 속에 정체를 숨기고 절대적 절망감이 감도는 시대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선 「각시탈」과 「일지매」는 「매트릭스」의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의 영화로도 유명해진 「브이 포 벤데타」도 약간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브이 포 벤데타」는 최근 국내 촛불 시위 등 국내 정세와 기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면을 보여주어 화제를 모으고 있으며 끊임없이 ‘자유’와 ‘전체주의를 향한 저항’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민중영웅이자 반영웅(안티-히어로)적인 면모를 과시한다.

김진태 작가의 「신한국 황대장」
황대장 이미지

여기에 김진태 씨의 「대한민국 황대장」과 「신한국 황대장」은 대를 이어 우리나라를 지키고 앉아 계신(?) 황대장 부자를 통해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슬쩍슬쩍 풍자하고 있다. 대부분은 웃는 데 정신이 팔리게 하는 이야기들이지만 가끔은 그 풍자 대상이 되는 온갖 대상들에게 ‘처절한 응징’을 내리고 싶은 심정이 들게 할 정도로 강한 이입도를 자랑한다. (주 : 처절한 응징은 양 다리를 붙잡아 벌리고 가운뎃다리를 힘껏 밟는다) 등장한지 오래된 작품인데도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상황들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은 건 여전히 우리 사회가 덜 성숙했단 소리가 아닌지 싶을 때도 있다. 그래서 더 웃기지만.

미국 히어로물에서 온갖 영웅들이 다 몰려나와 ‘올스타’ 형태를 띠고 있는 저스티스 리그의 성격을 빌려 오려는 시도도 있었다. 잡지 폐간으로 단행본이 나오진 못했으나 학산문화사의 『웁스』에 실렸던 유경원·조민철 콤비의 「철인 캉타우 RETURN」는 이정문 선생의 「철인 캉타우」를 원작으로 삼고 고바우 영감, 주먹대장 등 수많은 옛 한국만화의 주요 등장인물들을 총출동시켜 한 데 묶어 나름의 영웅상을 표현하려 한 바 있다. 이러한 올스타전 형태는 일본 애니메이션 「자이언트 로보 - 지구가 정지한 날」의 영향도 없진 않다 하겠다.

만화는 아니지만 ‘영웅’이 되고자 하는 꿈으로 덤벼드는 개구쟁이 콤비를 그린 작품으로는 서울무비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탱구와 울라숑」이 있다.
필진이미지

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 《키워드 오덕학》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덕립선언서》 등 저술.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와 백석문화대학교 출강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