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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저작권 인식 사례 (1)

법무법인의 저작권 위반 위탁 단속이 한창이던 지난해 봄, 나는 이렇게 “박성우 씨 화실이죠?”로 시작하는 중년들의 전화를 몇 통이나 받고 있었다. 이유인즉슨, 한 법무법인 쪽에서 카페 등에 오른 불법 스캔만화를 단속하면서 초·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도 무더기로 적발하면서 7,80~100만 원 가량의 합의금을 제시하자 아직 어린 학생들이 겁을 집어먹고 선생님들에게 알렸기 때문이다.

2009-04-10 서찬휘


“따르르릉”
“(찰칵) 네, 여보세요?”
“여보세요, 혹시 거기 박성우 씨 화실인가요?”
“……네?”
“박성우 씨 화실 아닌가요? 법무법인에서 이쪽으로 연락해보라 해서 전화하는데요…….”
“……네에…?”


무법인의 저작권 위반 위탁 단속이 한창이던 지난해 봄, 나는 이렇게 “박성우 씨 화실이죠?”로 시작하는 중년들의 전화를 몇 통이나 받고 있었다. 이유인즉슨, 한 법무법인 쪽에서 카페 등에 오른 불법 스캔만화를 단속하면서 초·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도 무더기로 적발하면서 7,80~100만 원 가량의 합의금을 제시하자 아직 어린 학생들이 겁을 집어먹고 선생님들에게 알렸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억 단위가 휴지 조각 같은 세상이라지만 100만 원이면 그 나이 대 학생들에겐 매우 크게 느껴지는 액수. 어린 제자들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을 본 선생님들은 사태를 수습하고자 법무법인 측에게서 저작권 침해 단속을 위탁한 만화가들의 연락처를 알아내 직접 고소 취하를 해 주고자 했고, 그 와중에 무슨 이유에선지 박성우 씨 화실 전화번호가 내가 일하고 있는 『만』의 사무실 쪽으로 잘못 알려졌다. 덕분에 사무실 전화는 한동안 호황(?)이었더랬다. 혹시 같은 상황에 처한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박성우 씨를 검색해서 나온다고 그 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지 말아 달라. 업무에 지장이 좀 많다.

어쨌든 그 바람에 난 분노 반 당혹스러움 반으로 전화기를 든 선생님들을 맞아 졸지에 본의 아닌 상담자 역할을 해야만 했더랬다. 어쨌든 “잘못 거셨네요”라고 끊기엔 수화기 저편의 목소리가 ‘매우 다급’했고 누구라도 붙들고 하소연하고 싶은 인상이 다분했다. 말을 계속 이으려는 상대를 보며 차마 냉정하게 끊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것도 몇 차례나 상대를 바꿔가며 똑같은 패턴으로 말이다.

각설하고, 다른 누구도 아니라 이들 선생님들의 의견을 소개하는 까닭은 저작권 위반이라는 화두에서 ‘일반인’의 관점을 가장 날 것 그대로 드러내면서 동시에 막 자라나고 있는 세대들과 기성세대의 현실 인식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체로 선생님들은 30대에서 50대 사이인 초·중학교 선생님이셨다. 아무래도 전화를 건 본 목적 자체가 ‘어떻게든 작가 본인으로 하여금 아이에게 걸린 고소를 취하하게 하는 것’이다 보니 대체로 “아이가 모르고 한 일인데 단속이 너무 과도한 거 아닌가?”라는 관점에서 상대를 ‘설득’시키고 싶어 하는 인상이 강했다. 내 경우 당사자가 아니었지만 그만큼 같은 편을 들어줄 상대가 필요할 만큼 걸린 이들과 그 보호자들이 절박한 심정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속을 파고 들어가 보면 이 문제가 단순히 어린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확연하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대부분 P2P나 카페 등에서 만화를 공유하다 적발되었다. 이유는 좋은 거 있으니까 또래 친구들끼리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돌려 보다 걸린 경우가 대부분. 문제는 이들이 공유해 보는 만화가 애초에 ‘무료 공개’인 웹툰과는 달리 책으로 정식 출판된 ‘출판물’을 스캐닝 또는 갈무리(캡쳐), 디지털카메라 촬영 등을 거쳐 만든 무단 복제품이라는 점이다. 일부 연구 목적 인용이나 컷 단위 소개 정도가 아닌 이상 이러한 과정을 거친 데이터 일부 또는 전체를 인터넷을 통해 유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저작권법 위반이다.

이 선생님들과 제법 오랜 시간을 반복해 대화하면서 알게 된 재밌는 사실은, 불법 공유는 나빠요 하는 교과서적인 관점 이전에 만화 뿐 아니라 음악이나 영화를 비롯한 여러 문화콘텐트가 어떤 형태의 매체로 제작되어 시장에 나오는지조차 아예 모르고 계시더라는 사실이다. 즉,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본다는 개념 이전에 ‘만화가가 그려서 내놓은 걸 애들이 재밌으니까 좀 돌려본 것 정도’란 인식이 박혀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 중 또 몇 분은 아예 만화가 책으로 나오는 건 줄도 모르는 용감한 분도 계셨더랬다. 다시 말하지만 60대 이후가 아니다. 고작 30대 후반에서 50대 정도였다. 이 점은 매우 많은 걸 시사한다.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도 이런 문제에 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단 소리다.

이러니 이들에겐 이런 사안으로 저만한 합의금을 요구하는 일이야 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포털에서 글 스크랩을 금지하면’ 되고 ‘파일 자체에 기술적인 조치를 취하면’ 될 일 아니냐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인터넷의 데이터 흐름 자체에 대한 개념도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선생님들의 인격을 모독할 생각은 이만큼도 없으나, 이러한 ‘무지’ 속에서 어린 학생들은 ‘좋은 작품을 함께 나눠 보는 공유 정신’과 같은 공명심을 얻고 점차 자라며 Copyleft‘ 개념의 오용 등 잘못된 지식을 습득하면서 이윽고 이를 일종의 사명감으로 승화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공유자 가운데에는 어리거나 젊은 나이에 일부 웹하드 등에서 데이터 공유를 통해 월 100~300을 넘기는 수익을 챙기는 짓마저 서슴지 않는 이들도 있다. 작가가 신간 나왔다는 공지를 올리면 아래에 공유해달라는 덧글이 달릴 만큼 아예 죄의식 자체가 없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모든 과정을 감독하고 제재해야 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래 보듯 학창시절 빨간책 돌려보던 수준까지 간섭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법이란 문제 앞에서 아이들을 변호하고자 한다면 그 행위와 과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도는 파악을 함이 마땅했을 것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명백한 도둑질을 무지로 말미암아 묵인하고 만 꼴이었으니 지금으로서는 그저 작가의 인정에 호소하는 것 말고는 답이 나오지 않는 게 사실이다.

큰 문제는 이게 비단 선생과 제자 사이만의 문제라고 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초·중학생 정도가 이 선이면 머리가 굵을 대로 굵은 이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들이 자라나면 비단 만화 뿐 아니라 그 어떤 콘텐트에 ‘대가 지불’을 하려 들까? 선생과 제자라는 구도로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이 문제는 결국 가장 기본적인 가정·학교 교육에서 국어 영어 수학 이전에 가르쳐야 할 무언가를 아예 놓치고 있다는 이야기밖에는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아이들을 대놓고 도둑으로 키우고 있으며 사회적 분위기가 이를 용인하고 있다. 심지어는 제 대가를 향한 경시를 조장하고 있기까지 하다. 불법스캔만화와 도서 대여점 이용을 무려 기회비용이라 주장하는 말이 공공연하게 호응을 얻는 판이고 보면 이미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하겠다.

대안을 세우고 콘텐츠의 디지털 유통을 활성화하여 공유가 도둑질이 되지 않게 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건 참 훌륭한 발상이다. 그 방향으로 가 기존 오프라인 콘텐트나 애초에 무료로 공개되는 웹툰과는 또 다른 시장을 형성할 수 있으면 그만큼 좋을 게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안점을 찾기 위해 이미 많은 이들이 이 불황 속에서도 연구와 제작과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들이 제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 이러한 ‘도둑질’과 ‘자기 아이들이 하는 일이 도둑질인줄 알지도 못했던 무지’를 변호해줄 수는 없다. 대안은 대안, 실천은 실천 그리고 잘못은 잘못인 것이다. 설령 일부 법무법인이 지나치고 과격한 방식으로 토끼몰이식 사냥을 하고 있다 한들, 현재로서도 앞으로도 이 행위를 용납 받을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작권 문제는 단순히 캠페인 몇 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넘어선지 이미 오래다. 비단 ‘부정을 저지르는 몇몇’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반에 걸쳐 퍼져 있는 무지와 잘못된 인식이 문제다. 모르니 감정적이 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문제의 본질은 잊혀진다. 17살이 넘으면 나쁜 버릇과 성격은 못 고친다고 하는 우스개 소리가 있지만, 나이든 사람들을 고칠 수 없다 한들 적어도 한창 자라나는 학생들의 입에서 변명이 나오게끔 가르치진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정작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 입에서조차 “만화가들이 코 묻은 돈 뺏으려 하나” “돈 잘 벌 텐데 이런 걸로 돈 벌이를 하나”같은 앞뒤 모르는 소리가 끝도 없이 튀어나오더라는 게 현실이었다. 왜 우리 어른들은 정작 좀 더 어렸을 때부터 관심을 두고 소중히 지켜보고 있는 그대로를 즐겨야 하는 성(性)에 관련한 화두에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들 틀어막으려 ― 잘못되고 헛되며 철저히 왜곡된 방식으로 ― 노력을 하면서 정작 아이들이 도둑에 변명쟁이로 자라나는 데에는 이토록 무관심인지.

이번에 소개하는 사례가 벌써 지난해의 일이고 그 사이에 법무법인의 단속 활동에 부담을 느낀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까지 겹치며 단속의 무차별성에 초점이 모아지는 바람에 정작 문제의 핵심이 묻힌 양상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이 컴퓨터를 잘 다루는 일부로 뭉뚱그릴 수 없다는 점에서, 또 그 원인이 일부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 전반 나아가 사회 그 자체임을 문제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그냥 지나쳐선 곤란하다. 하지만 강제적 조치나 강습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지금, “남들이 다 저러면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따라가야 한다”고 가르치고 배우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 본 기사는 만화 중심의 대중문화 언론 『만』(http://mahn.co.kr)과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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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 《키워드 오덕학》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덕립선언서》 등 저술.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와 백석문화대학교 출강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