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제의 장점은 캐릭터와 함께 이야기도 성장한다는 점이다. 30대 직장 여성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알려주며 공감을 불러일으킨 <유미의 세포들>은 두 번째 시즌에 접어들며 크고 작은 변화를 선보였다. 유미의 짝사랑은 끝났고 구웅과 연애를 시작했으며 직장생활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함께 하는 사람이 바뀌면 주변 풍경도 바뀌기 마련, 시즌 2에서 본격 연애담을 풀어 놓기 시작한 <유미의 세포들>은 좀 더 현실적인 에피소드들을 한층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나간다. 분위기도 상황도 변했지만 여전히 변함이 없는 건 이 웹툰이 ‘유미’와 ‘그녀의 세포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유미가 자라는 만큼 이야기도 자라고 유미의 자잘한 일상들이 쌓여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유미의 세포들>은 그렇게 유미의 상태에 따라 로맨틱 코미디, 판타지, 직장툰, 어떤 장르든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성장담의 면모를 선보이고 있다. 시즌2 연재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동건 작가에서 작가도 계산할 수 없는 유미의 앞날에 대해 슬며시 물어봤다.
Q. 시즌 2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무엇인가요. 작품적인 변화는 물론 개인적으로 바뀐 것들도 있나요.
A. 일단 두 번째 시즌을 시작한 첫 번째 목적은 좀 더 긴 이야기를 다뤄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시즌에 접어들면서 전체적으로 호흡을 길게 가져가며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로 연재 하는 웹툰인데 이런 이유로 이제까지 제가 다뤄왔던 작품 중 가장 길게 이어가고 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현재까지는 말이죠. (웃음)
Q. 얼마 전 한국만화진흥원에서 ‘2016년 오늘의 우리 만화’로 선정되셨습니다. 우선 축하드리고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A. 두 말 할 것도 없지만 굉장히 기쁩니다. 저에게는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수상 경험이었습니다. 웹툰은 다른 매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독자와의 빠른 피드백이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주변 사람들에게 확인을 받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엉뚱한 길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피드백을 받고 싶은 기분입니다. 이번에 수상을 했을 때 그런 불안감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너는 틀리지 않았어. 제대로 하고 있어’ 라는 화답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렸을 때 제가 즐겨보던 만화의 작가님들 앞에서 제 이름이 호명되는 건 굉장히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Q. 시즌1이 2~30대 직장여성의 속마음을 엿보는 기분이었다면 시즌2는 달달하면서도 현실적인 연애담을 듣는 기분입니다. 장르의 톤이 드라마에서 로맨틱 코미디로 바뀌었다고 할까요.
A. 이야기를 짤 때 기본적으로 성장물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 하고 있습니다. <유미의 세포들>이란 제목 그대로 유미 안에 있는 세포들이 외부의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배워나가며, 또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서사의 초점입니다. 다만 이런저런 속마음을 그릴 때 감정선을 가장 크게 자극하고 변화를 이끌어 내는 계기로 연애만큼 적합한 이벤트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웃음) <유미의 세포들>의 크고 작은 외부 사건은 현재 연애담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결국은 유미가, 혹은 유미 안의 세포들이 성장하는 성장담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Q. 알콩달콩한 에피소드도 많지만 현실 연애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도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덤덤하게 감정을 풀어나가는 에피소드들은 특히 잔잔하고 편안한 기분이 듭니다.
A.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에피소드를 구성하는데 있어 첫 번째 원칙은 유미가 어떻게 느낄까 상상하는 겁니다. 유미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그에 따른 반응들을 맞춰나가는 거죠. 가령 남자친구와 싸우고 난 뒤의 에피소드를 그릴 땐 그에 연결되는 감정을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그러다 보면 과장된 상황이 아니라 사실적인 연애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사실연애에 가깝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다보면 오히려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상황이 빗어지기도 합니다. ‘말도 안 돼. 이런 걸로 싸우고 헤어진단 말이야?’라고 반문할만한 상황들과 종종 마주치기도 하죠. 그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만나는 게 이야기의 묘미가 아닐까 합니다.
Q. 2013년 연재 완료된 <달콤한 인생>부터 여성 심리를 저격하는 공감툰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여성 캐릭터를 구축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A. 사실 데뷔 때부터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특별히 여성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그런 반응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이유가 뭘까 스스로도 궁금해질 때도 있습니다. 요즘 드는 생각은 둘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하나는 남녀의 심리가 특별히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보편적인 이야기가 개인적인 이야기랄까요. 아니면 제가 특별히 소녀 감성일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Q. 공감의 비결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타겟이 될 독자를 상상하면서 그리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시즌2의 공략 대상은 누구인지요.?
A. 타겟을 정확히 지정하고 작업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가끔은 가상으로 연애를 경험해보신 분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귀고 다투기도 하고, 그런 일상의 연애를 겪어보신 분들이 제 콘티를 보고 ‘맞아, 우리도 가끔 이래’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상상을 자주 합니다. 막상 말하고 보니 제가 얼마나 공감이 될지의 여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
Q. 에피소드를 구성할 땐 공감 여부를 생각하다가도 막상 작품 속에 녹여낼 땐 그런 인위적인 요소를 자연스럽게 의식하지 않는 게 비결 아닐까요.
A.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공감과 자연스러움이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Q. <유미의 세포들>은 주 2회 연재 중입니다. 힘들진 않으신지. 어떤 스케줄로 작품을 완성시키시나요.
A. 일요일에 전체적인 콘티 작업을 합니다. 월요일엔 콘티를 바탕으로 스케치와 펜선을 그리고 화요일엔 채색 작업과 마무리를 해서 작품을 올립니다. 수요일엔 다시 콘티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목요일엔 스케치와 펜션, 금요일엔 채색과 마무리의 패턴이죠. 그렇게 하고 나면 한 주의 유일한 휴일인 토요일이 됩니다. 토요일엔 가급적 쉬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한 주의 콘티를 다 짜고 나눠서 연재를 하는 작가님도 계시다고 들었는데 제 경우엔 한 편의 완성을 중심으로 주기가 짧아질 뿐입니다. 솔직히 주 2회 연재가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웃음) 만약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으면 그땐 1회로 바꿀 생각도 있습니다.
Q. 시즌 2에는 새로운 얼굴이 많습니다. 캐릭터를 설정할 때 인물들을 먼저 구상하나요, 아니면 각자의 세포들을 먼저 떠올리나요.
A. 사실 주인공 유미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의 세포는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세포들을 따로 구상하는 일은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간혹 필요하다해도 선명한 캐릭터가 있으면 세포들은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캐릭터를 구상할 때 첫 걸음은 성격을 분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긴 호흡의 이야기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에 필요한 성격들을 찾아야 합니다. 말이 많은 편인지 배려심이 깊은 편인지 농담을 즐기는 편인지 등등 각 캐릭터의 성격을 먼저 파악하는 거지요. 처음 보는 캐릭터의 성격을 제가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면 만화 속에 투입시키기 쉬워 지는 것 같습니다.
Q. 말씀처럼 가끔 다양한 세포가 등장하긴 해도 이제 주연급 세포들은 대부분 정해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초기 멤버랄 수 있는 이성, 감성, 사랑, 출출, 응큼, 명탐정이 주연급으로 활약 중인데요.
A. 맞습니다. 주연급은 이미 다 캐스팅 된 상태죠. (웃음)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면 되도록 기존에 만들어진 세포들을 출연시키려고 합니다. 정말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세포를 만들기도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가벼운 후회가 들기도 합니다. 스스로 너무 손 쉽게 상황을 해결하려고 한 건 아닌지 반성을 하기도 하고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초기 멤버들만 있어도 충분히 스토리 진행을 할 수 있으니 말이죠. 솔직히 말하자면 세포의 외형을 새롭게 디자인 하는 게 이제 좀 어렵습니다. 기본적인 틀이 정해져 있는 상태라 특징을 줄 수 있는 게 헤어 스타일이나 간단한 복장의 변화 정도 인데, 그나마도 이미 많이 써 버린 상황이라 막상 새로운 세포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웃음)
Q. 유럽 카툰을 연상시키는 그림체가 여전히 사랑스럽습니다. 예전 인터뷰에서 <땡땡의?모험>을 예로 들었는데요. 존경하는 작가로 데즈카 오사무를 꼽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 참고로 한 작품이나 작가가 있나요. 어떤 그림을 그린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지요.
A. 만화가가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림에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웃음) 개인적으로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쪽이 훨씬 더 신경이 쓰입니다. 좋아하는 그림체는 워낙에 많아서 고르기 어렵네요. 초창 디즈니의 캐릭터들을 좋아합니다. <철인 28호>의 초기 디자인도 좋아합니다. 일본의 국민만화가이자 도라에몽의 아버지인 후지코F.후지코 작가의 캐릭터들 역시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결국엔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그리고 싶은 게 제 마음인 것 같네요. 언젠가 제가 그린 캐릭터가 프린트 된 티셔프를, 제 만화를 전혀 보지 않은 이들도 너무 이뻐서 기꺼이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스런 캐릭터는 그림만으로도 그 사랑스러움이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Q. <유미의 세포들>은 다른 매체로의 확장성이 높은 콘텐츠인데요, 웹드라마나 애니메이션 등 제작 계획은 없나요.
A. 다행히 이런 저런 제안을 꽤 받긴 했습니다. (웃음) 하지만 현재까지는 아직 확정된 것은 없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접근하려 합니다. <유미의 세포들>은 현재 진행형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으니까요.
Q. 아직 중견이라기엔 이른 감이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적지 않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데뷔 초기와 비교하면 조금은 여유가 생겼는지요.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작업 방식에서 나름의 프로세스가 생겼습니다. 물론 언제 다시 바뀔지는 모르지만 어떤 것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하면서 허둥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생활적인 측면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선 공식적으로 덕질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죠! (웃음) 기다리던 신간 만화책이나 피규어를 발견하면 망설이지 않고 곧장 구매합니다. 다만 방금 전 제 작업일정을 확인하셨죠? 사놓기만 하고 즐길 시간은 없습니다. 이것도 달라진 점 중 하나군요. (웃음)
Q. 시즌2는 언제까지 연재할 계획인가요. 시즌3도 준비하고 있나요.
A. 스토리를 멀리까지 구상하고 작업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다음 시즌까지는 염두 해두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재미가 쌓여서 자연스럽게 다음 이야기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독자들이 괜찮다고 하시면 할 수 있는 한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유바비 대리와 유미, 구웅의 에피소드는 4월 즈음에 마무리 될 것 같아요. 저도 앞으로 유미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