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상처는 크기를 잴 수 없어서,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깊은 생채기를 남겨놓기도 한다. ‘서투른 나’와 ‘희다’ ‘바람이 되자1, 2’ 같은 만화에서 김성희는 상처 입은 주인공(곧 작가 자신)에게 치유자를 보낸다. 그 치유자 역시 상처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하고 자기 자신이다. 치유자는 울먹이는 나의 생채기를 닦아주고, 다시 일으켜 세워 삶을 살도록 이끈다. 김성희에게 만화는 그렇게 상처 입은 자신을 불러내어 치유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게으르게’ 주변의 삶도 그 치유의 ‘바람’으로 감싸기 시작했다.



△ 게으르게 이야기1, 게으르게 이야기2, 게으르게 이야기3
Q. 성희 씨. 잘 지내시죠? 점심은 드셨어요?
A. 네.
Q. 뭐하세요?
A. 책상 정리할 게 많아요?붓, 크레용 등등 볼펜 종류도 많죠~
Q. 요즘엔 무슨 작업하세요?
A. <고래가 그랬어> 연재하는 것하고, <자라는 아이들> 이라는 만화하고 있어요.
Q. 연재하는 건 처음이잖아요? 어떠세요? 한 달에 한 번씩 마법에 걸리는 기분이...
A. ㅋㅋ, 맞아요. 한 달에 그렇게 그려 낸다는 것이 나에겐 마법 같기도 해요.
Q. 적응됐어요? 시간을 어떻게 보내세요?
A. 요즘엔 <자라는 아이들> 취재를 위해,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있어요.
Q.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모두 아이들에 관한 거잖아요? 소개 좀 해 주세요.
A. 네... <고래가 그랬어> 에 연재하는 건 ‘뚝딱뚝딱 인권짓기’라고, 아동을 대상으로 인권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거구요. <자라는 아이들> 은 일반 학교에서 장애 아동이 함께 하는 모습인데요. 소재가 아동들의 교육에 대한 것이지만, 독자는 학부모나 교육 환경에 관련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음... 그러니까 특수 교육에 대해 일반인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소개하기 위한 만화이죠. 1차적인 형식과 목적은 그것이지만, 가르침말고, 또래 아이들이 서로를 알고 배우는 과정도 보여주고 싶어요. 일단은 학교가 더 넓게 열린 마음을 갖게 되길 바라는 거죠. ‘바른 생활’ 내용 같은 이야기만 하네요. ㅎㅎ.
Q.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전에 어린이를 소재나 대상으로 한 만화를 그린 적은 없잖아요.
A. 친한 친구가 장애아동 통합교육 교사예요. 만날 듣기만 하다가, 교사와 아이들이 사랑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서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는 게 그림 그리는 거밖에 없으니깐... 어떤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마음을 움직여 행동도 그렇게 하게 하고 싶은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못할 때도 많거든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좀 전하고 싶은 거죠.
Q. 만화에 인터뷰도 들어간다고 들었어요.
A. 그래서 실제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고 싶어요.




△ 그림1,2,3,4
Q. 여태까지 성희 씨 만화는 여성적인 감수성이 드러나는 자기 얘기가 많았던 거 같은데...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거는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고... 작업하면서 힘든 점은 없어요?
A. 나에게 만화는 나 자신에 대한 치유이자 놀이예요. 그러니깐,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향하기 어려운 게 있었지요. 그래서 <자라는 아이들> 하기가 좀 버겁죠.
Q. 치유라는 면에서 <자라는 아이들> 도 역시 유사한 점이 많네요.
A. 음... 어떤 점에서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장애라는 개념을 다르게 보게 돼요. 육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해서만 장애라고 생각하는데, 우린 모두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 장애가 있거든요. 다만 사회적으로 문제가 안 될 뿐이지, 다들 힘들어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어쩜 속으로는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Q. 네.
A. 자신에게 손길을 주지 못하는 사람은 남에게도 주기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사회가 좀 그런 거 같아요. 아~, 자꾸 ‘바른 생활’ 멘트로 나가잖아요. 간지러워서 못하겠네~
Q. ㅎㅎㅎ... 이전 만화에서는 삶의 상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정송희 작가의 <신체적 접촉에 관한 짧은 회상> 같은 방식은 아니었다는 거죠. 치유가 작가 개인 차원에서 우선 염두해 두고 했던 거 같은데... 어떠세요?
A. 음... 맞아요. 명확한 목표가 있다기보다는 스스로 흘러나오는 대로, 해야 할 것 같은 것을 했던 거 같아요.
Q. 현실을 찬찬히 바라보다 보면, 장애아동의 상처들말고도 더 많은 일들이, 아까 성희 씨가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나름의 장애와 상처, 문제를 안고 살아가잖아요. 상처라는 면에서 보면 <자라는 아이들> 은 매우 구체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고 보는데, 앞으로도 그런 방향의 작업들을 많이 할 생각이에요?
A. 아마도 그럴 거 같아요. 일단 이거 끝나며,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갈 거지만, 다음에 아이들 얘기를 더 해 볼 수도 있고요. 상처라는 말하면, 뭐 좀 그렇지만, 우린 그때 하지 못했던, 보듬어 주고 싶은 시절들이 다 있잖아요. 이제 성인이 된 내가 아이였던 나를 안아주고 싶을 때... 또 과거 상처 받았던 주변 사람과 당시 돌봐줄 수 없었던 슬픔과 화해를 하고 싶어요. 그럴 때 있지 않나요?
Q. 만화를 통해서 그렇게 하고 싶다는 건가요?
A. 네. 내가 만화를 그리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예요.
Q. 만화는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에요?
A. 대학 때, 대학신문사 만평을 그리게 되면서죠. 만평 기자가 없어서, 내가 한다고 했는데, 하면서 아주 구박을 많이 받았어요. 그 전에는 순정만화만 보던 만화 팬이었죠.
Q. 언제부터 만화를 좋아했는데요?
A. 고등학교 아니 중학교 때부터? 하지만 전 낙서 안 하고 살았어요. 그림을 잘 못 그렸거든요.
Q. 그럼, 대학 만평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거네요.
A. 대학 때는 다른 기사를 쓰느라 바빴어요. 만평은 땜빵이었어요. 하지만 땜빵으로 하던 만평이 어느 순간 굉장히 싫어지게 된 거예요.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만화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건데, 재미없는 걸 그려서 싫어하게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좋아하는 쪽으로 그리면 재미있게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게 만화를 시작하게 되었죠. 좋은 쪽으로 말해서 그렇고, 다른 식으로 말한다면, 사회적인 도피처로 선택한 부분도 있죠. 암튼, 그러다가 바카스 만나서 ‘도피’라는 생각에서 좀 담담하게 되었죠. 대낮부터 어지러운 얘기를...! 후후.
Q. 만화를 그리면서 약간씩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해요. 성희씨 만화를 보면 초기하고 많이 다르고, 또 지금도 변하고 있고요. 그런 변화들은 어떻게 생긴 거죠? 과정 속에서 나름대로 스승도 있었을 거 같은데...
A. 나에게 무언가가 다가오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보두앵도 있고... 그리고 바카스 친구들! 저는 친구들에게서 많이 배웠어요.
Q. 현재 만화의 스타일은 어디서 나온 건가요? 검은 라인에 담백한 느낌의 그림체와 연출, 이야기 말예요. 저는 그 당시 바카스 멤버들이 보두앵 만화를 보고 모두 흥분했었던 거 같은 기억이 있는데...ㅎㅎㅎ
A. 네, 보두앵을 알게 되어서 붓으로 크로키하러 다니게 된 거죠. 붓과 A3 스케치북을 들고 무조건 지하철 바닥에 앉아서 두세 시간 그림을 그리고 오는 훈련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당시 지하철 크로키할 때 처음에는 안면 철판 훈련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사람들의 얼굴이나 행동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어떤 이야기도 들리는 거 같았고... 한 달 동안 그린 크로키를 모아서 보니깐, 내가 좋아하는 장면들이 있었고, 그 장면들의 표정이 있었어요. 전 처음부터 어떤 그림을 그릴 거라는 것보다는 그리다가 확인하게 되는 그런 거 같아요. 처음에는 저도 잘 몰라요. 가 보니깐, 그렇게 되어 있더라는 게 맞는 거 같아요.


△ 집에 가는 길1, 집에 가는 길2
Q. 경제적으로는 어떠세요? 생활을 위해서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한다는 얘기 들었는데, 앞으로 쭉 이런 상황이어도 작업은 계속하시겠어요?
A. 사서는 아니고, 사서 보조이지요. 아마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어느 정도 마음을 비운 상태거든요.
Q. 요즘 주변에서 주목할 작가 있어요? 소개해 주세요.
A. ‘바카스’에서는 김삼월, 서윤아, 심흥아, 노영미, 보셨어요? 아주 시각적이고, 에너지가 있어요. 바카스의 에너자이저들이지요. 그 밖에는 앙꼬 작가의 만화도 항상 재밌고, 무엇보다 ... 김은성 작가님 만화가 기대돼요.!
Q. <고모가 잠잘 때 생길 법한 일> 을 냈었는데...
A. 아주 딩굴면서 봤어요. 그나저나 저도 엄마 이야기 그려야 하는데, 김은성 작가님이 어머님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걸 보고 ‘우이씨~’ 했어요.
Q. 사람마다 가족 이야기란 비슷하지만, 그래도 또 다르죠. 김성희 작가님 어머님이 김은성 작가 어머님이랑 다르고 본인도 김은성 작가님이랑 다르니까요. 만화가로서 바라는 바가 있나요?
A. 계속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면서, 또 그리고 싶은 것을 찾아갈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싶어요.
Q. 천천히 하지만 오랫동안 만화로 소통하고, 이해를 주고받길 기대하겠습니다. 더운 날 수고하셨습니다.


△ 눈 내리는 밤, 꿈에1, 눈 내리는 밤, 꿈에2
|| 김성희 프로필 ||
1975년 생
2002년 ‘여행 이야기’ 연재( <여행신문> )
‘희다’( <계간 만화> 1호)
2003년 ‘바람이 되자 Ⅰ’ ( <웹진 규장각> )
2005년 이탈리아 <나폴리 코미콘> ‘만화’전 참여
‘뚝딱뚝딱, 인권짓기’ 연재(월간 <고래가 그랬어> )
현 재 <자라는 아이들> 작업
‘바카스www.baca.co.kr 회원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