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은 상처가 많다. 삶의 각 시기들이 그에게는 폭력적이었다고 한다. 누구나 경험하고, 또 누구나 그저 그렇게 넘어가는 사회화의 과정이 예민한 이 사람에게는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시처럼 다가오는 현실을 무디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에게는 더욱 두려운 존재로 다가왔던 것일까. 혼자만의 어둠 속에서 그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자신의 절규를 담아 왔다. <러브 앤 피스Love & Peace> 는 그렇게 한 페이지 안에서도 완결성을 지니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지껄임, 상대가 없는 웃음, 괴이한 개그로 채워졌다. 그리고 이제 <강한 동물> 을 통해, 좀 더 정리된 시선으로 자신의 짧지만 힘들었던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Q. 오늘부터 장마비가 내린다던데... 그나마 모기는 좀 줄겠네요. 할 만하세요?
A. 요새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습니다.
Q. 어려움이요?
A. 그 동안 해왔던 스타일을 변화시키려니 힘드네요.
Q. 어떻게 변화시키려고 하는데요?
A. 그 동안 해왔던 건 제가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 같은 걸 묶어서 만화로 옮기는 것이었는데, 이제 좀 긴 내용의 만화들을 그리면서 독자들이 알아듣기 쉽게 만화를 그리려고 하니... 내 생각을 잘 전달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네요.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책상에 앉아서 담배 피고 놀고 콘티 고치고 다시 짜고 다시 짜고 그러고 있긴 한데...
Q. 발전이 있나요?
A. 네, 많이 배우고 있어요.
Q. 구체적으로...?
A. 만화를 그리는 법 같은 건데... 제가 콘티를 거의 안 짜고 그렸었는데, 요새 그렇게 하면서 전체적인 만화의 흐름이나 그런 것들을 배우고 있어요.
Q. 그래도 <배고픈 나날들> 은 나름대로 장편이잖아요. 웹진 ‘코믹스www.comix.co.kr에 연재하는 <배고픈 나날들> 은 어떻게 계획하고 진행하는 거예요?
A.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요. 그리고 바로 원고지에 옮기는 식으로...
Q. <배고픈 나날들> 은 본인 경험에서 나온 건가요?
A. 네, 제 일상에서 많이 힌트를 얻어요. 배가 그렇게 고팠던 건 아닌데... 정서적인 부분이... 후후.





△ 배고픈 나날들 7화
Q. 백종민 작가님, 만화 그리게 된 이야기 좀 해주세요.
A. 다 그랬듯이 어릴 때부터 만화를 많이 그렸어요. 제일 오래된 기억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만화 그린 걸 동생하고 친구들한테 보여준 것 같아요. 닌자가 나오는 만화였어요. <닌자 삼총사> 라고 닌자가 나와서 결투를 벌이는...
Q. 닌자? ‘닌자 거북이 영향인가...
A. <드래곤 볼> 을 보고 많이 따라 그린 것 같아요.
Q. <러브 앤 피스> 에 보면 파동권 쏘는 만화도 하나 있죠
A. 그렇죠. 지금도 <드래곤 볼> 을 보면 가슴이 설레요. 후후. :...일반대학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모조리 떨어졌죠. 전 그게 담임 선생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Q. 왜요? 공부를 더 잘 안 한 백종민 작가님 탓은 어디로 가고요?
A. 선생이 넣으라는 대로 대학을 맞춰 넣어서... 으흐. 전공은 아무거나 되는 대로였죠. 그땐 대학 가서 그저 만화만 그리려고 생각했었어요.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학교나 학과나 다 되는 대로... 근데 다 떨어져서 아버지가 재수는 못 시킨다고 전문대 원서를 왕창 사 오셨죠. 그 중에 경민대학 만화과가 비실기여서 거기에 들어가게 됐어요.
Q. 그러고요.
A. 근데 차라리 안 들어가는 것만 못 했던 것 같아요.
Q. 왜요?
A. 학교 생활에 적응도 잘 안 되고, 만화도 그저 그랬죠. 워낙 건성건성 다녀서
Q. 그래도 뭔가 배운 게 있을 거 아니에요?
A.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는 웬만하면 피해서 수업 빼먹고 도서관에서 만화만 그렸어요. 그땐 많이 그렸던 것 같아요
Q. 왜 그렇게 대인 기피증이 생겼을까요?
A. 중고등학교 시절 괴롭힘과 집안 문제 때문에...?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Q. 그 다음은요.
A. 1학년 방학 때 전상영 씨 문하생으로 들어갔어요. 말은 별로 안 했지만 정말 즐겁게 만화 그린 적은 그때부터 1년 정도였던 것 같아요. 문하생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세계에 와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Q. 뭐가 새롭던가요?
A. 음음, 전 그때까지 만화가가 신처럼 보였으니까.
Q. ㅎㅎㅎ 많이 배웠어요?
A. 네, 그림보다 만화 그리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구나, 그런 것들...
Q. 네...
A. 그러다 2학년 1학기 때 도저히 학교생활을 견딜 수가 없어서 휴학을 하고, 이유정 씨 문하생으로 들어갔죠.
Q. ㅎㅎ
A. 이유정 씨 문하생 생활은 힘들었어요. 정신적으로 그때부터 안 좋아졌던 것 같아요.
Q. 만화 일이 힘들었던 건가요, 아니면 개인적으로...?
A. 개인적으로 정신병이 시작되는 단계였던 것 같아요. 만화 일은 지금 그림체나 기법 같은 것은 그때 일 도와주면서 배운 게 많죠.화실에서 말을 거의 안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못한 것 같아요
Q. ?
A. 목이 꽉 막힌 것처럼 말이 안 나왔거든요. 정신적 문젠데 그땐 몰라서 병원에 안 다녔어요.
Q. 음.
A. 폐쇄 공포증 같은 거였어요. 화실이 좁았거든요. 그때부터 만화에 소홀해진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여기저기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었어요. 술 먹는 데 다 써 버렸지만...
Q.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전기기사 일도 하고요...
A. ㅋㅋ, 네네.
Q. 그 사이에 군대도 갔다오고, 제대년도가?
A. 2002년 12월이요.
Q. 음. ‘코믹스는 언제부터
A. ‘코믹스는 2003년 12월부터일 거예요. 맞아요, 2003년 12월. 그냥 제가 이메일을 보냈어요.
Q. 왜 ‘코믹스에 하려고 했죠? 다른 만화를 그릴 생각은 안 했어요? 뭐, 인터넷 만화나 아니면 다른 메체에...
A. 음음, 자유롭게 그리고 싶었어요. 매체가 요구하는 만화를 못하는 것도 한 이유고... 실력 부족이죠, 뭐.
Q. 지금은 자유롭나요? 지금 ‘형제만화공업사에서 만화 그리고 있는 상황은 어때요?
A.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어요
Q. ? 무슨 고민?
A. 만화에 대한 고민이요. 어떻게 하면 만화를 계속 그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그림에 독자와 소통할 수 있을까... 여러 만화를 그려 볼 생각입니다.


△ 지구에서 일어난 외계 생물
Q. 무슨, 어떤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A. 인간에 대한 만화요
Q. 인간? 모든 만화가, 그리고 모든 영화, 모든 이야기가 인간에 대한 거잖아요. 백종
A. 그렇구나, 어허...!
Q. 백종민 작가님이 생각하는 인간이란 어떤 건데요?
A. 무서운 존재? 인간이란 것이 단체를 만들고 국가를 만들고, 이런 사람은 나쁘고 저런 사람은 좋고, 한순간에 다른 인간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존재인 것 같아요.
Q. 그런 인간이 무섭다는 거군요. 자신은 어떤 인간인가요? 언제나 피해자였나요?
A. 저도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무서워요.
Q. 가해자로서 어땠나요?
A. 가해자로서의 저는 음음, 나쁜 놈이었겠죠. 계속 생각을 해요, 내가 어떤 짓을 저지른 것인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Q. 마치 <올드보이> 의 오대수 같네. 노트라도 만들어 적어 보지 그래요. 참회록...
A. 흐으, 그 정도는 아니고...
Q. 지금 작업하는 <강한 동물> 에 이 부분도 들어가나요? 가해자로서 자신의 모습...
A. 음음, 네네, 고민을 해 봐야죠.

△ 강한동물 중 깟뎀
Q. <강한 동물> 은 어떤 만화인가요?
A. <강한 동물> 은 내 얘기를 만화로 만든 건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나가 주인공이고, 주변 친구들 얘기도 많이 섞여 있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20대 중반의 남성의 얘기입니다, 정신분열증에 걸려 환각을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절망감으로 가득 차 있죠. ‘강한 동물이란 제목은 만화 속에서 스스로 자신을 ‘약한 동물이라 부르는 대사에서 따 왔고요.
Q. 사람은 절망 속에서 구원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거 아닌가요?
A. ...아니 아직 모르겠어요. 어떻게 되든 내가 살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면 즐겁게 만화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무 막 나가지 말고, 찬찬히 자신을 들여다봐야죠. 앞으로 더 넓은 걸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친구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아요. 인간에 대한 생각 같은 것들이나 정치적인 관점 같은 것이요.
Q. 강한 동물이 점점 무겁게 돼 가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A. 즐겁게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자신이 만화를 즐겁게 그려야 되는데, 임신을 한 상태같아요
Q. 임신? ㅎㅎㅎ... 무슨 말이에요?
A. 빨리 낳아 버려야 속이 시원해질 것 같아요. 달리 말하면 똥이 마려운데 못 누고 있는 그런 상황이죠. 마음만 급해서...
Q. ㅎㅎ
A. 마음을 좀 진정시켜야 해요.
Q. 천천히... 좀 쉬어 보는 것도 괜찮죠. 편하게... 머리를 텅 비게 만드는 거 말예요. 그리고 차근차근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는 거죠.
A. 네네, 너무 부담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처음 하는 장편이고, 계획이 좀 덜한 상태에서 시작해서 좀 막히는 부분들이 나오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야기를 더 정리해 놓고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그걸 절실하게 느끼고 있어요
love_&_peace_절구통 아저씨

love_&_peace_템버린 대왕
백종민 프로필
1980년 생
1998년 만화가 전상영 화실 근무
1999년 만화가 이유정 화실 근무
2003년 웹진 <코믹스> 활동 시작
2004년 경민대학 디지털만화과 졸업
현 재 ‘형제만화공업사에서 <강한 동물> 작업 중
홈페이지 www.dooly.gg.gg 운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