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아이의 엄마로서, 동화작가로서, 만화가로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자신을 들여다보며 꾸준히 작업을 해온 작가 유승하 씨를 메신저로 만났다. 이런 문명 기기에 익숙하지 않다고 긴장하던 그는 그의 작품처럼,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Q. 동화도 만화도 그렇고... 그림이 맛깔스럽고 유연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A. 그림은 사람 닮는 거 같아요. 속일 수가 없지요. 나는 계산할 줄 모르고 때론 어설프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어린아이 동화를 많이 주문 받았고, 그 중에서도 유아물을 많이 부탁 받아요. 처음에는 그런 말이 불편했는데 요즘은 아기 엄마가 되고 나니, 직업이 나를 만든 것 같기도 해요.
 <휘파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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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데뷔 초 그림의 느낌과 많이 변화한 듯 한데, 그 계기가 무엇일까요
A. 결혼을 하고 나서, 생각의 거품이 많이 빠진 듯 합니다. 그림 그리는 절대 시간이 모자란 것과 관련도 있지만, 아이들을 기르면서 생활과 더 밀접해 지는 기분이 들지요. 예전에는 한 장을 그릴 때 이것이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을까 고민도 하고 이런 그림을 통해 내가 무엇이 될지도 생각했어요. 우습지만 생각이 많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냥 살아가면서 일기를 쓰듯이, 내 생활이 벅차요. 그런 것을 좇아가는 게 내 그림들이지요. 예술이 될지 안될지는 내가 판단할 부분이 아니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내 생활도 힘든데 초등학생의 생각, 그 학부모들의 생활상, 아기엄마들의 마음, 직장인들의 고민...... 근처에서 접하는 생활이나 생각들이 내 생각을 크게 지배하는 것 같아요. 예술가가 되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되었어요.
Q. 근처에서 접하는 생활이 궁금해지는데요.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다양한 사회활동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느낄 수 있었거든요.
A.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도 자연스레 만나집니다. 아이들이 그 통로를 마련해주지요. 아이들이 있으니까 이웃과 소통을 하게 돼요. 홈페이지에는 원래 내 관심사인 사회문제들이 있지요. 나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만화를 하게 된 거예요. 아직도 구닥다리 같지만 거기서 크게 벗어난 적은 없지요. 아이들 그림은 내 성향과 잘 맞고, 어리숙하고 미완성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회화를 할 때도 동화 같은 작품을 좋아했지요. 그리고 계속 만화 일이 마땅히 없을 때는 동화책 그리는 일이 생계수단이고 내 적성에 잘 맞았고요. 아이를 직접 키우기 전에는 그런 부분이 힘들기도 했어요. 나는 사회문제를 다루는 작가가 되고싶은데 자꾸 동화만 하고 있으니까요.
Q. 유승하 씨가 직접 이야기를 쓰고 그린 작업들은 특히 자신의 삶과 주변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A. 마땅히 공부를 하거나 계산을 하지 않아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만화 일이 그림책을 넘어서는 듯 하여 좀 제동을 걸고 싶어지죠. 아이들을 볼 줄 알게 되어서 그림책들도 재미있어졌고 그 의미에 자꾸 매력을 느껴가고 있거든요.
Q. 요즘 만화보다 그림책에 더 비중을 두게 되신 듯 한데,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A. 단순해요. 둘째 아이가 두 돌이 되었는데 그 자체가 움직이는 그림책이지요. 한 동작 한 동작이 내게 와 닿아요. 아이들은 크는 게 한 순간이니까, 이 때 동화작업을 많이 하고 싶어지는 거 뿐입니다. 큰애가 초등학생이 되었는데 큰애와 두 돌 된 둘째 아이의 눈 높이에 내 시선이 멈춰있는 것이죠. 전 독립적이지 않아요. 아이가 좀더 크면 달라지겠지요.
Q. 사람들은 모두 존재 자체가 의존적인 것 같아요. 오히려 유승하 씨는 자신의 현재에 굉장히 충실하게 살아가는 듯 한데요.
A. 이해해주시니 편해지네요. 과거에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복잡하게 생각 안 해요. 큰 아이를 하나 만 두었을 때는 결혼과 여성에 대한 차별, 그런 쪽으로 생각이 많았어요. 너무 불평등하고, 내가 제사상에 절할 때만 해도 자아를 죽이는 느낌이 들고, 명절이 지나면 이 세상을 어떻게 고치나...... 화가 부글부글. 남자의 마감과 여자의 마감은 게임이 안돼요. 인터뷰 도중에도 과거의 화가 몰려드는군요. 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둘째가 딸이 나왔어요. 화가 더 구체적이고 발전해야 하는데 신기하게도 누그러드는 건 왜일까요. 아들 낳고 민감했던 제가 점점 화평해지고 제사 날에도 스트레스가 없어지니...... 제가 농담으로 주변 사람들한테 딸을 둘째로 낳고 나니 마치 씻김굿(그 내용보다는 말 자체의 뜻으로 받아들여주세요.) 하는 듯 하다고 했거든요. 아들을 키울 때는 그저 육아에 대한 힘든 점, 한국 남성에 대한, 아니 한국 남편들에 대한 분노, 이런 게 많았어요. 그런데 딸을 낳고 나니 제 어린 시절부터 나의 모습 내 미래까지가 느껴졌어요. 내가 당했던 일에 대해서는 이 아이도 당할 듯한 왠지 모를 내면적 분노, 불안감, 그리고 여자이기에 자랑스럽고 뿌듯했던 많은 점들은 배가되는 기분이 들고요. 육아도 첫째보다는 정신적으로 쉬우니까요. 즐기면서 아이를 키우는 바람에 첫째 아이 때 느끼는 주부로서의 우울함, 작가로서의 상실감, 이런 게 없이, 그야말로 해피 했어요, 물론 가사노동은 많아졌지만. 그런데 이상하게 육아만화와 부부만화는 힘들어졌어요. 제가 해피해진 만큼 민감하지 못하고 섬세한 느낌을 잃어버리니까 더 이상 만화는 떠오르지 않더라구요. 가령 부부는 계속 불평등한데 (남편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한국 상황이요.) 내가 그런 것에 대해서 푸근하고 누그러진 것이죠. 온 몸에 밥하느라 굳어진 아줌마 살들처럼 안테나가 떨어진 느낌이랄까. 잠수함 토끼가 아닌, 잠수함의 쥐도 아니고, 주방장 쯤.
Q. 눈앞의 아이들에 대한 집중력과 세심함이 만화로 이어질 수는 없을까요.
A. 그래서 이제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나의 세상이 같으니까요. 그리고 고맙게도 우리사회는 그런 소재들이 넘쳐나니까요. 큰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지 딱 일주일이 되었는데, 일년 같더군요. 아이가 공교육을 받으니 그 전에 별 관심 없던 교육문제가 내 문제가 됩니다. 그런 부분의 이해들이 넓어져 가니까요.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작가인 나에게는 도움이 많이 되더군요. 못된 엄마죠.
Q. 벌써부터 엄마를 도와주는 아이를 키우는 멋진 엄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조카들을 통해 많은 구체적인 생각들을 익혀 가는 것 같아요. 저는 아이를 수동적 존재, 양육되는 존재로 이해하지 않거든요.
A. 내 육아관이랑 비슷하네요. (웃음)
top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