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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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자 편집자를 만난다 : 김대중

이 최근 격월간지 <새만화책>을 내면서 만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김대중 씨를 메신저로 만났다. 그는 자신의 만화 ‘자지도시의 아름다운 추억’을 내던 2002년부터 지금까지, 새만화책 출판사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5년째 작가이자 출판사 공동대표로 생활해 온 그가 만화에 대해 어떤 생각과 꿈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2006-03-01 정송희



이 최근 격월간지 <새만화책>을 내면서 만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김대중 씨를 메신저로 만났다. 그는 자신의 만화 ‘자지도시의 아름다운 추억’을 내던 2002년부터 지금까지, 새만화책 출판사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5년째 작가이자 출판사 공동대표로 생활해 온 그가 만화에 대해 어떤 생각과 꿈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Q. 최근 격월간지 <새만화책>을 만드셨는데, 이전 <계간만화>의 만화들과 변화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택된 만화들의 기준이 더 명확해진 것 같은데, 그 변화된 기준이 궁금하네요. 
A. 음... <계간 만화>는 서울애니센터가 재정적 지원을 했었고, 거기에 평가도 있었어요. 입찰을 해 따낸 일이었다고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하고 싶은 방향이 있었지만, 이해받지 못한 것 같아요. 나름대로 돈 받아서 만드는 거니, 전체적인 만화계의 상황도 고려를 해야 했고요. 그사이 3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고 주변의 상황도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지금은 기름을 빼고, 본질을 보여주자는 생각입니다. 음... 변화는 아니구요. 애초에 <새만화책>과 같은 만화지를 구상했지만, 당시로서는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고 생각해요. 특히 작가들이... 하려고 했다면 할 수 있었겠지만, 자연스럽게 작가들이 준비되고, 작품도 준비된 상태가 온 거죠. 지금 내는 건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이 좀 많이 흘러서 문제인 거 같긴 한데... 만화지 <새만화책>은 지난 4년간 새만화책 출판사가 어떤 방향으로 만화에 대해 꿈꾸고 계획하고 실천했는지에 대한 표본이라고 생각합니다.


Q. <계간만화>는 미술과 만화가 공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만화는 대중 씨가 원했던 작품들이 부족했던 것 같고... 그 부족을 미술에서 찾았던 건 아닌지...
A. 그럴 수 있죠. 음... 미술을 하겠다는 건 아니었어요. 대신 만화의 가능성을 보이고 싶었던 거죠. 판형도 그렇고, 작품들도 어느 정도는 우리가 만화판이라고 부르는 쪽 외의 작가들을 섭외하려고 했죠. 음... 우물 밖의 다른 세계에 대해서 생각해 싶었다고나 할까... 만화를 넓게 정의한다면, 우리는 만화 안에 많은 걸 포용할 수 있고, 또 다른 것들을 묘사하고 표현할 수도 있어요. 만화는 간단히 말해, 시간의 시각예술인데, 우리가 현재 일상적으로 보는 것은 거기서 너무나 한정된 것이라는 거죠. 하나의 문화 분야가 활기를 가지려면 다양한 가능성들이 열려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 제한적인 거죠. 틀을... 그러니까 판형 같은 외적 형식을 바꾼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식의 만화 언어를 사용하기를 기대했던 것이었고요. 문법이 바뀌면, 문체나 내용도 어느 정도 다를 수 있을 테고... 형식 그 자체의 다름을 즐기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을 테고요. 꼭 일본 만화를 경계하는 건 아닙니다. 그건 우리가 통상적으로 떠올리는 만화라는 형식인 거 같아요. 일정한 판형에 칸들이 놓여있는 그 모습...


Q. 어떤 특정한 경향의 안티로 시작된 것은 그 협소함을 벗어나기 힘들죠. 태생적 한계라고나 할까. 그런데 새만화책은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바라보는 방향이 명확하지는 않더라도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A. 뭐, 반대라면 반대라고 하겠지요. 안티란 말이 어감 상 한국에서 갖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어서.... 제 생각은 반대라기보다는 좀더 본질적인 접근이 아닐까 싶습니다. 좀더 자연스러운 것, 그렇게 되었어야 마땅한 것... 당연한 것을 하려고 해요. 만화는 우리가 익숙하게 보던 게 아닙니다. 제 생각에 우리는 두 가지 방향으로 만화를 진행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만화에 대해 정의에서 시작하는데, 하나는 넓은 정의... 그러니까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를 담는 이미지, 시간의 시각예술로서 입니다. 거기에는 경계 없는 무한한 가능성들이 있죠. 다음은, 만화가 지난 현실 역사 속에서 쌓아온 형식, 그러니까 현대 만화의 형식을 더 세련되게 만드는 것이죠. 칸과 말 풍선, 책과 그것이 놓여지는 매체 속에서의 연출... 그리고 그러한 현대적 만화 언어 속에서의 내용적 깊이...등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Q. <새만화책>에서 눈에 띄는 작품들이 많았는데요. 특히 푸른 끝에 서다, 열아홉, ‘불행한 뱃사람’이 그랬던 것 같아요. 작품 속 현실이 소위 객관적으로 이야기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시선에 충실한 정서적 현실이라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독자로서 자신의 시선을 의식하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의 현실은 어떠한가... 나는 어떻게 그 시대를, 그 시간을 살아왔는지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대중 씨가 생각하는 좋은 만화란 무엇인가요?
A. 그렇다면, 그보다 더 좋은 만화는 있을 수 없는 거네요. 한가지로 말씀드리긴 어려울 거 같고. 또 어떤 최종의 결론이 있는 건 아닙니다. 현재... 형식적인 면은 제외하고 내용적인 면을 말씀드리자면, ‘진실된 만화’입니다.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이고,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내 사고와 마음의 어떤 것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전달도 좋지만, 그에 앞서는 것은 진실되고자 하는 자세라고 봅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경험하듯이, 의사소통의 최고의 기술이란, 얼마나 진실된가 하는 것입니다. 우린 서로 대화할 때 그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허나, 진실됨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말하는 사람 자신이 자신을 속일 수 있다는 겁니다. 나는 진실되다 하고 말이죠. 사실 모든 인간이 그러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에게 겸허해야 하는 것이죠.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끝없이 진실되고자 하는 과정의 반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한 노력 속에 만화가는 자신의 작업을 과정으로 가는 것이고, 그것이 보편적인 만화가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완성이 없다는 것이죠. 나의 진실됨을 쏟아내는 과정들...인 거죠. 그렇지 않으면, 만화를 그리고자 포기했던 많은 것들과 노력들이 얼마나 아깝겠습니까. 

Q. 대중 씨는 만화를 이야기 중심의 만화와 이미지 중심의 만화로 구분해서 각각의 역할을 요구한다는 느낌을 받아왔는데... 어떤가요? 이야기 중심의 작가에게는 현실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이미지 중심의 작가에게는 좀더 자신의 관념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듯 합니다. 새만화책 ?판사에서 이제까지 낸 책들을 보면, 크게 이 두 가지로 분류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구요. 
A. 현실 속에서 책을 만들고 내는 사람으로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다. 좋은 만화라고 해서 모두를 책으로 낼 수 없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답변하는 게 맞는 방향인지 모르겠네요. 음... 작품은 통일적으로 보여진다고 봅니다. 이야기든 이미지든... 내가 만화를 읽게 되었을 때, 이미지나 이야기가 눈에 들어 온다기 보다는... 종합적으로 충만하고, 완결성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봐요. 맛이 있는 만화를 이야기나 이미지로 나누어 보긴 어려운 것이고... 아마 작가가 하고자 하는 바가 무리 없이 그리고 그것이 매우 솔직하게 전달되었다고, 느꼈다고 했을 때 좋은 만화로서 여겨지게 되고,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책을 내고 싶어지는 것이죠. 음... 출판은 현실이라... 위처럼 두 방향으로 분리하셔서 보였다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런 면을 추구했던 거 맞고요. 현재도 그렇고요. 음... 아마도 작가의 성향에 맞는 방향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어요. 어렵네요.

Q. 작가로서의 대중 씨는 관념에서 현실 속 이야기로 전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혹은 그 두 가지가 서로 교차하면서 상승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자지도시의 아름다운 추억’과 ‘어스워커’는 관념적 계열이라면, ‘서울 상경기’와 ‘그 겨울에 나는 왜 돌을 던졌을까?’ 는 현실 속 이야기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리고 <문화과학>에 발표한 작업들은 관념에서 개념화에 근접한 느낌이었습니다. 말하고 보니, 이 분류는 작품 겉으로 드러난 것을 나눠 본 것에 가까운 것 같군요.
A. 저 자신으로서는 제가 생각하는 바와 경험한 바를 충실히 그리고자 했었습니다. 한 개인에게 그걸 나누어 보는 건 어려운 일이고요. 사람은 다들 그런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사실 한 개인이 경험하는 현재란 매우 특별하다고나 할까요. 저는 사실 제가 경험한 특이한 이 현실이라는 현상에 대해서 그리고자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불가해한... 그러면서 가능성이... 무한대인 현상입니다. 음... 하나는 아마도 말씀하신대로 관념적인 방향으로... 그러니까 머릿속 생각들을 그리는 것일 테고, 다른 하나는 제가 현실 속에서 경험한 부분들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그건 그러니까 저의 판타지하고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단초들이 많이 들어있는 거죠. 그게 뭔지는 제가 저 스스로에게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인데, 인간의 무의식이란 게 답을 찾을 순 없는 것일 테니...

Q. 대중 씨의 판타지라면 어떤 것일까요?
A. 저는 만화를 많이 그리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는 머릿속으로 만들고 있죠. 그런 과정 속에서 이야기들이 갖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신체의 변형과 조합에 대한 것들. 길을 떠나는 것, 땅 속에 들어간다는 것,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 어스워커도 신체에 대한 것입니다. 걷는 것, 그 특이한 몸, 특이한 신경 체계. 심장을 꺼내고, 지구의 중심에 심장을 박는 것...... 돌 던진 얘기도 그런 고민들이 얽혀 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머리가 깨지고, 머리가 빡빡인 두 자매... 산에서 제가 느낀 그 이상한 심리 상태... 그런 이상한 심리 상태는 이상한 신체에 대한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한 심리 상태는 다른 것을 공상하게 만드는데 그것은 곧 내가 경험하는 현실과 다른 것이죠. 경험하는 현실과의 차이는 괴이함, 낯설음, 변태성과 연결되고... 그래서 신체에 대한 괴이한 상상을 하게 되는 거 아닐까 싶은데... 그렇게 스스로 생각해 봅니다.

Q. ‘자지도시의 아름다운 추억’에서 주인공 케이가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 상태를 직접 만들고 싶어 합니다. 케이는 사람의 손가락이 다섯 개인 이유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주어진 이것이 적합한 것은 아니므로 새롭게 자신이 원하는 형태를 조합할 것을 꿈꿉니다. 거기서 작가의 판타지를 느꼈습니다.
A. 음... 그렇죠. 거기서는 그것의 최종단계로서 만화 밖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보여주려 했어요. 케이는 그게 뭔지 모를 것에 대한 두려움과 한편으로 동경과 그래서 그것을 두려움 속에 경외하고 추구하는 거 아닐까요. 저는 인간이 숫자 5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5인가요? 그게 아주 괴이하다는 거죠. 괴상하고... 그런데 그게 아니면 또 다른 뭔가가 있는데...... 그 또 다른 뭔가는 무한한 것입니다. 무한한 것은 사실 나 자신이 해체되고 사라져 버리는 것이죠. 5가 아닌 다른 숫자가 된다고 하면, 결국 없어지고, 우주 속으로 사라짐을 저는 얘기하려 했어요. 우리는 하나를 선택하도록 만들어짐으로써, 우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 거죠.... 특별한 우주인이라고나 할까. 음. 5에 대해 얘기한다면, 그런한 신체적 조건이 사실 인간의 현재의 문명을 만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신체조건이란 것은 인간의 제한된 조건이라는 말이죠.

Q. 그저 무한함을 지향한다면, 가까운 현실을 살아가지 못하는 몽상가 혹은 망상가가 되어 죽음에 가까운 상태, 이탈자가 되지 않을까요?
A. 음...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 사람도 있을 테고요. 우린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진 않아요. 그런 사람들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마치 사라진 예술가들처럼. 저는 현실 속에 살고 있어요. 그게 제 삶의 동력 같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아마도 만화에 대해서 나름대로 추구하는 방향과 그에 대한 노력을 하는 것도 그런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저는 주어진 현실에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는 어떤 세계에 대해서 말하는 거예요. 그게 불안의 이유이고-현실을 살기 때문에- 한편으로 현실의 동력이기도 합니다. 제 생각을 얘기하자면, 너무 인터뷰에서 멀리 나간 얘기 같은데, 인간이란 이도 저도 못하는 존재 같아요.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그나마 인간이 할 수 있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예술가가 사회로부터,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사실 인간이란 조건은 머리 쪽 세계와 경험하는 현실 속에서 소통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봐요. 현실은 다시 궁극의 종착점이 되고, 예술가는 두 세계의 중간에 있는 거죠. 예술가는 끊임없는 구도의 과정을 가는 것이며, 동시에 그것을 사회 속에 보여주고, 의사소통을 만들어 냄으로써, 사회와 주고받기를 하는 거죠. 그건 꽤나 괜찮은 일인 거 같아요. 하지만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는 없는 것이고... 

Q. 저는 ‘어스워커’에서 앞서 말한 대중 씨의 생각을 느꼈어요. ‘자지도시의 아름다운 추억‘에 관해 더 질문할게요. 케이가 자신과 비슷한 이유로 아웃사이더가 된 사람들과 만난 후, 영혼의 자유를 위해 아주 비대해진 머리를 공유하며 걷는 장면이 있는데요. 각자의 생각이 마구 튀어나오다가 하나의 덩어리가 되고, 결국엔 사라집니다. 마치 하나의 덩어리, 하나의 개체가 된 존재는 더 이상 서로 말이 필요 없어진 것처럼, 그 거대한 개체는 타자인 자지도시 혹은 타자를 향해 사막을 건너다 쓰러집니다. 그들이 살려면 타자가 다가와야 하는 상황인데... 저는 그렇게 느꼈는데, 왜 그렇게 만드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결국 이상을 꿈꾸는 자들도 하나가 되면 무너지리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 아닐까... 추측하게 해서요. 계속 새로움을 향하지 않는다면, 자멸하리라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A. 근데, 그들이 어떻게 타자와 만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거기에는 사회에 대한 얘기는 없는 거 같아요. 결국 그렇다고 사회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고 하기도 힘들 텐데... 그건 그런 식으로 사고하는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결론을 맺을 수밖에 없었어요. 말씀드린 대로 그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가버려야 하는 것이고, 자지 도시의 시민들과는 어떤 방식으로든 어울리거나 의사소통 하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사회는 마치 거대한 일반이 있다고 보지만, 저 스스로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삶과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독자가 아닌가... 생각해요. 우리는 그런 현실과 현상을 직시할 필요가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 각자는 괴이하고 특이한 존재이며 그러한 삶을 살고 있고, 더불어 서로에게 그러한 존재인 거죠. 그 특별함을 붙드는 것이 삶을 깨어있게-우선 1차적으로-하지 않나 싶습니다. 
예전에 송희 씨는 저와 90년대 대학시절에 대해 얘기했었는데.. 거기서 저는 그것이 얼마나 특이한 괴이한 경험인가 하는 것을 느끼고 생각했습니다. 괴이한 것은 당시의 한국적 상황이며, 동시에 송희 씨 개인에게 대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때는 지금의 일반적인 시각으로서는 괴상한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음... 인류의 역사를 말한다면, 한국에서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까지의 한 대학, 어떤 운동집단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상황이란 것은 지금으로서는 어떤 막막함으로 느껴지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건 어떤 시대였고, 특정한 곳에 특정한 사람들의 망상들과 그때의 생각들이 이 지상에 잠시 존재했다는 게 ... 전, 아주 이상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학생운동의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냥 뚝 떼어놓고 생각한다면, 한 인간이, 어떤 초월성을 갖는 인간이 그런 개별적인 상황을 경험한다는 것이 이상해요. 설명보다는 감정의 문제인 거 같아, 말하기가 좀 어렵네요...

Q. 궁금한데요... 초월성을 갖는 인간, 그리고 개별적 상황이 지시하는 바가 뭔가요?
A. 이건 그저 말도 안되는 생각인데, 인간 내면의 세계는 무한하여서 어떤 일반성과 연결되어 있다, 혹은 담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인간이 아주 구체적인 현실을 살게 되는 거죠. 초월적 내면과 몸으로 부딪히는 시간과 공간. 이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그게 괴이하고 괴상하고 특별해요 ... 허허...

Q. 대중 씨는 현실 속에서 편집자로서 어떤 꿈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느끼는 바들이 많을 것 같아요. 방금 이야기한 초월적 의식과 구체적 현실 사이의 갈등 같은...
A. 음... 현실의 얘기네요. 만화를 하는 건 만화를 좋아해서죠. 만화를 좋아하는 건, 만화를 보고 자라면서 만화에 대해 생각하고, 그리고, 이야기하고 경험하고 하는 과정들에서 쌓인 나름의 어떤 심적 연결 때문이고요. 만화를 생각하면서 나름의 정의를 내리는 과정들이 있었어요. 어찌 보면, 데카르트 식 회의 같다고 할까. 가능한 한 껍질을 버리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는 회의의 과정을 거치면서, 만화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만화를 통해 모든 질문의 근원을 추구하는 것 같아요. 결론은 앙상할 수도 있고, 한편으로 풍부할 수도 있는 것이죠. 그건 제가 왜 만화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어요. 만화는 분절 예술로서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며, 이미지를 떠올리는 방식이에요. 그런 생각 속에 만화 그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러하기에 그걸 사용하는 인간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만화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일 거예요. 만화는 발명된 것이 아닌, 인간의 자연스러운 언어입니다. 저는 현대 만화가 만화를 고도로 형식화한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연속적인 시간을 만화적으로 경험하고 내면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만화 자체는 그렇게 내면화된 모습이고, 독자는 그걸 다시 시각적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메타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인간이 연속적으로 시간을 경험하고 있기에, 만화적으로 혹은 분절적으로 시간을 나누어 만드는 것이 과연 어떤 효과를 갖는지 자문해 보곤 해요. 하여튼, 답은 만화가 인간의 성실한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정의 이외에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열린 자세로 봐야죠. 그런데 특별한 것은 만화가 역사 에서 현재까지 오는 과정은 매우 현실적이었다는 겁니다. 그건 대중성 속에서 발전되어 왔고요. 사람들은 고급예술들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이지만, 만화에 대해서 항상 그런 가치-대중성, 풍자와 해학, 개그, 전형성...-에 중점을 두고 사고합니다. 그런 시각은 만화를 한편으로 매우 한정적이게 만들죠. 물론 대중성이란 의미 있는 요소이고,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매체가 발전하고 풍부해지려면 만화에 대한 본질적인 사고와 정의가 필요하죠.

Q. 그런 점에서 태생적인 면에서만 만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만화에 대한 시각을 협소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A. 네. 모든 예술은 처음에 어떤 형태와 이름을 얻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 그것의 육체를 확인하게 되면, 그것을 의미 짓고, 이름을 부여하고 본질을 파악하려는 노력 혹은 의도적으로 본질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고 봅니다. 지금 만화에 있어서는 그런 일들이 진행되고 있고요. 특이한 것은 만화가 매우 역사 깊은 매체임에도 이제 그러한 관심이 일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늦은 감도 있고, 한편으로 그렇기 때문에 젊고 가능성이 많기도 하고요.

Q. 저는 그 본질이 고정적이거나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흘러가고 변화해간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소위 저급예술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뒤늦게 오는 현상인 것 같아요.
A. 음. 그게 장점이기도 하고요. 할 일이 많죠.

Q. 그럼, 좀더 현실적인 질문들을 해볼게요. 새만화책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들이 있다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나 꼭 해야하는 일들로 꼽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A. 어려움들은...... 있지만 없습니다. 그건 당연한 것이고, 극복될 것이니까요. 사실 어려움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인 거 같아요. 함께 하는 파트너와 자주 얘기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5년, 10년, 20년, 30년, 50년... 뭐 그 정도의 시간을 느끼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100년 후는 모르는 일이고, 만년 후엔 오늘날과 같은 만화가 남아 있을 거라고 상상할 수도 없고... 어쩌면 우리 문명도 없을 수 있으니까요. 기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화로서 이런 작품들이 있었고, 이런 걸 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이렇게 했고, 어떤 생각들을 했고, 꿈을 가졌고, 현실화 시켰고... 그런 거요. 그런 기억을 남기는 게 다음 세대에게 중요하다고 봐요. 물론 새만화책도 오래가면 좋겠지만, 사람의 일이란 게 그러긴 쉽지 않은 것이고. 그래서 그런 걸 좀더 오래 지속 시키면 좋겠다는 생각하고 있어요. 그게 과연 어떤 것일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걸 구체화시키려면 우선 현재 잘 하는 게, 잘 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잘 하고 잘 되면 다음 걸 구체화 시켜야죠.

Q. 그렇게 현재에 집중하며 생각하고 필요한 바를 행하는 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A. 솔직히 말해, 실장님과 저 자신도 이 일을 오래하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오해 마시길......, 이 일이 싫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즐겁고 살맛나지만, 인간인지라, 시간의 종착점이 있고, 또 개인으로서 살아야할 삶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또 욕심이라는 문제도 있고요.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버리고, 그럼에도 좋은 것이 남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에서 저는 매우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Q. 저는 대중 씨가 작가로서 갖는 마음가짐이 좀더 확장되어서 편집자이자 운영자인 대중씨를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떤가요?
A. 네, 그럴 수 있죠. 그렇기도 하고요. 저는 이상적이고, 개인적이고, 이기적이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뭐, 그런 사람입니다. 주변 작가들과는 만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했고, 제 생각과 작가들의 생각을 많이 나누었다고 봅니다. 더 이상 뭘 얘기할 필요 없이 그저, 그런 생각을 작업으로 구체화 시키면 될 사람들이에요. 한편으로 그들의 작품이 저에게는 일부나마-그렇게 여겨줄지 모르지만- 제가 하는 작품처럼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제 작업도 할 겁니다. 곧.

Q.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업을 듣고 싶은데요. 
A. 이야기를 쌓아놓고는 있는데, 구체적으로 된 것은 없습니다. 제 개인의 경험들도 있고, 판타지도 있어요. 구체적으로 하나 말씀드리자면, 제가 중학교 시절에 경험했던 결벽증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저로서는 괴이한 삶에 대한, 강한 첫 기억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마음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세계가 얼마나 이상한가에 대한... 음... 그렇습니다.

Q. 대중 씨는 구상을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놓았다가 실제 작업속도는 엄청 빠르다고 들었는데요. 자신의 작업방식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A. 음...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미루고 미루다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고. 요즘엔 성격이다 싶은 생각도 합니다. 뭐, 그런 식으로 작업하다가 생기는 나름의 효과 같은 걸 만들 수도 있긴 한데, 언제 한 번 여유 같고 찬찬히 작업을 해 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쨌든 작업이 빨리 하든, 느리게 하든... 작업은 작업인 거죠. 

Q. 저는 대중씨가 한 만화 규장각의 인터뷰들을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작가 개개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적인 질문부터 작가에 대한 적극적 질문까지... 다채롭더군요. 만화 규장각의 인터뷰어로 오랜 기간 하셨는데, 느낀 점이 궁금합니다. 
A. 음... 민망하다는 말을 여기서 써야죠.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나고 나면 부끄러운 거죠. 너무 독자를 생각하지 않은 면도 있는 거 같아요. 인터뷰 했던 분들께도 죄송하죠. 항상 급하게 인터뷰하고, 급하게 정리했어요. 일로서 하게 되다 보니...

Q. 만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었다고 생각해요. 대중씨의 작품을 기대하고, <새만화책>에서 나올 멋진 만화들을 기다리겠습니다.
A.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고 싶은 대로 잘 하겠다는 말 밖에... 



2006년 3월 vol.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