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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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만화들의 힘 - 최호철 인터뷰

크리스마스 이브, 새로 마련한 최호철의 반지하 작업실은 이삿짐 센터의 박스들로 가득하다. 볼거리 없는 작업실 풍경에 아쉽지만, 꼼지락꼼지락 이삿짐 사이를 비집고 그의 오밀조밀한 이미지들이 흘러나올 것만 같다.

2005-12-01 김대중


크리스마스 이브, 새로 마련한 최호철의 반지하 작업실은 이삿짐 센터의 박스들로 가득하다. 볼거리 없는 작업실 풍경에 아쉽지만, 꼼지락꼼지락 이삿짐 사이를 비집고 그의 오밀조밀한 이미지들이 흘러나올 것만 같다.


Q. 이삿짐 정리하는 데 한참 걸리겠어요.
A. 글쎄... 내일 정리하면 다 되려나 모르겠네요. 큰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 가까운 곳으로 집과 작업실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작업실에는 아내와 나, 그리고 다른 작가 한 명 이렇게 셋이 있을 계획이구요.


Q.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하는 <태일이> 는 잘 되시는지요?
A. 두 달간 연재를 쉬기로 했어요. 어린 시절이 끝나고 성인으로 성장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새로운 마음으로 준비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태일이> 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A. 대학 시절 ‘민중 미술 판에서 활동하며, ‘전태일에 관심 갖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친구들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려고 계획을 했고, 청계 노조에 들어가 일하며 자료를 수집하려고 했는데, 그쪽에서는 야학 선생을 해 달라고 부탁해 2년간 야학 교사를 했습니다. 야학 교사 이후, 애니메이션 기술이 필요함을 느껴 각자가 필요한 기술을 익히기로 계획했죠. 나는 애니메이션 회사의 동화 그리는 일로 취직을 하고, 다른 친구는 컴퓨터그래픽을 배우는 식으로... 결국 야학 기간 동안 만들어진 ‘전태일에 대한 실제 성과물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교재용으로 만든 10쪽 정도의 만화였어요. 만화가 매체로서 용이함을 깨닫게 되는 계기였던 거 같아요.




Q. 민중미술 쪽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A. 내가 민중 미술의 제일 마지막 세대가 아니었나 싶어요. 민중 미술을 했던 것은, 기존 제도권 미술이 사조의 논리 속에서 이루어지고, 개념적이며, 삶과는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었죠. 나 스스로는 그리기의 즐거움에 항상 매료가 되어 있었는데, 삶과 거리가 먼, 미술의 맥락 속에서 작업하는 친구들이 그림 한 장 그리는 것도 어려워 하는 모습을 보곤 했어요. 민중 미술가로서 걸개그림, 벽화, 판화 같은 작업을 했죠. 여러 매체를 경험하면서 갈등 없이 즐거웠습니다. 복제의 힘에 대해서도 깨달았고요... 당시에 돈 벌면 복사기 사는 게 꿈이었죠. 민중 미술은 사회와 이웃, 현실에 관심을 작업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담으려고 하면 관념적이 되고, 애초에 보여주고자 하는 것과 멀어진다고 생각해요. 삶을 찬찬히 담음으로써 보는 이가 삶을 객관화시키고, 거기서 사회 의식과 변혁성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Q. 만화가로서보다는 <와우산> , <을지로 순환선> 등으로 복잡한 구조와 왜곡이 심한 투시를 사용하여 서민들의 일상을 꼼꼼히 담아 낸 작업이 사람들에게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A.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하며 배경, 그러니까 투시도법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죠. 애니메이션에서는 영상 속에서 배경을 잡아내기 때문에 훨씬 더 큰 스케일로 배경을 생각하며 그리게 되었고, 거기서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내용적으로는 브뤼겔이나 김홍도와 같은 풍속화가들에게 매료되었었고요. 1992~93년 즈음에 지하철 풍경을 많이 그렸는데, <을지로 순환선> 은 그 종합편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당시 만화가로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사람들이 만화스럽다고 인식하는 것은 재밌는 일이죠.




Q. 물론 <와우산> 과 같은 작업들이 넓은 개념의 만화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칸과 말풍선을 가진 현대적 형식의 만화 작업이 매우 적습니다. 실제로 서사를 푸는 작업은 다른 능력이 필요하고, 투시도법이 특징적이기는 하지만, 만화의 서사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고요.
A. 그렇죠. 그건 그저 그림 그리는 기술일 뿐이죠. 만화와 연결해서 생각하는 것은 안 되는 일입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없고요... 말한 대로, 나는 만화가로서 적합한 커리어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 봅니다.



Q. 만화 소년으로 성장하진 않았는데요.

A. 민중 미술을 하며 만화를 만났죠. 내겐 만화에 애정을 갖고 자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만화를 잘 모른다는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자전거 나들이> 가 ‘신한 새싹만화상을 받은 이후, 만화 학교에서 그림을 가르치게 되었고, 만화과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만화를 안다고 얘기하진 않아요. 궁극적으로 만화가로서 이야기와 다른 덕목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요. 가끔 절망하기도 합니다. 나의 만화는 내가 보아도 고루하고 재미가 없기 때문이죠. <태일이> 를 하면서 버거움을 많이 느낍니다. <태일이> 는 오랫동안 생각해 오던 작업이었고, 작업하기 전부터 이미 청계 노조 사람들로부터 정보와 자료를 많이 쌓아두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실상 작업은 그런 것들로 되지만은 않는 것이더라구요. 좀 더 치밀한 프리프로덕션 단계가 필요했던 거죠. 애초에 다큐멘터리적인 만화가 되게 하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는 소설처럼 되어가고 있네요.


Q. 만화에 대해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경험하고 지나가야 할 일들이 아닌가 싶은데요...
A. 나로서 혼란스러운 면도 있고, 이제 와서는 잘 모르겠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물론 애초의 의도는 아직도 유효하고, 아이들이 ‘전태일에 대해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도 동일하지만요. <닥터 노구치> 의 작가 노구치에 대해 갖는 이해보다도, 내가 전태일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슬프죠.


Q. 이미지 문제도 있지 않을까요? 80년대 풍이라고 할까요? 이미지 자체가 이미 어떤 시각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시각이 지난 시대의 잔상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A. 나도 내 이미지가 90년대에 갇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유쾌하지 않은 일이죠. 한편으로 한계일지 모르지만, 극복해야 할 것이기도 하고요. 변화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이래저래 <태일이> 로 내 밑바닥을 확인하고 있는 셈이네요. 그림에 대해서 구닥다리 같다, 촌스럽다는 게 뭔가 하는 고민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민중 미술적인 만화는 오세영 식의 그림을 떠올리게 되고, 그게 한 전형으로서 각인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 면에서 나는 꽤나 보수적인 기질을 갖고 있는 것 같고요. 젊은 시절의 미적 고정 관념과 그 표현 방식이 오세영 식에 머물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Q.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 혹시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A. 일단 <태일이> 에 전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태일이> 는 이미 40편 이상 진행했고,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한편으로 나름의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후엔 다큐멘터리적인 만화를 하고 싶어요. 하고자 하는 기획들은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습니다. 물론 좀 더 준비를 많이 해야겠죠.


Q. 본인의 경험들을 얘기할 수도 있을 텐데요?
A. 본인의 경험들을 얘기할 수도 있을 텐데요? 최호철: 아트 슈피겔만의 <쥐> 를 좋아하죠. 그중에 사적인 얘기들이 더욱 그렇고요. 그렇다고 앞으로의 작업이 제 얘기가 될 거라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로부터 시작하는 것과 자기를 드러내는 것과는 다르니까요. 중요한 것은, 처음에 말한 대로 삶을 솔직하게 담아내겠다는 생각입니다.



 

최호철 약력


1965년 생
1991년 애니메이션 ‘해돌이와 달순이 제작
‘12월전 그림마당 민
1993년 ‘두벌갈이전 관훈미술관
‘한국현대미술의 새로운 위상전 그림마당 민
‘조국의 산하전 경인미술관
1994년 ‘민중 미술 15년전 국립현대미술관
‘만화는 살아있다전 인데코화랑
‘기억전 화랑 이십일세기
공산미술제, 동아갤러리, 파랑새상 수상
1995년 ‘미술연합 창립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단편만화 ‘자전거 나들이 제작.
제1회 서울국제 만화페스티벌 참가‘
해방 50주년기념 역사그림전 예술의 전당
1996년 서울무비와 함께 영화 ‘꽃잎 애니메이션 제작
단편만화 ‘식모촌 여배우 실종사건
생활정보신문 ‘파랑새에 그림 연재
1997년 ‘오돌또기 애니메이션 기획팀 스탭으로 활동
1999년 ‘서남미술아카데미 1999 프리뷰전, 서남미술전시관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로 만화와 그림책을 만들고 있다.
<자전거 나들이> , <아기 물방울의 여행> , <개와 고양이> , <괜찮아> 등의 그림책과
<십시일반> 중 ‘코리아 판타지 등을 작업하였으며, 2003년부터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태일이> 를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