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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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뒷모습보기 - 김은성

<고모가 잠잘 때 생길 법한 일>의 만화가 김은성은 멈춰서 뒤를 돌아보려고 한다. 어머니의 입을 빌어, 어머니의 어머니까지 기억할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기억할 수 있는 한 가장 오래전의 모습들을 끄집어 내려한다. 그녀가 보려는 것은 그것은 자신의 뒷모습이자, 가족의 뒷모습이고, 그리고 우리 사회의 뒷모습이다.

2005-11-01 김대중


정신질환 중에는 눈 앞에 자신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보이는 병도 있다고 한다. 내 모습을 항상 지켜보는 것도 견디기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언제나 앞만 보고 다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회인 한국에서 다른 사람의 속도를 따라가다 보면 가만히 자신을 뒷모습을 보는 것이 쉽지도 않을 뿐더러,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사회의 속도란 외부로 향한 시선들이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시선들 중 하나가 바로 나의 것이다. 남은 나를 보고 달리고 나는 남을 보고 달린다. 내가 멈추지 않으면, 남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고모가 잠잘 때 생길 법한 일> 의 만화가 김은성은 멈춰서 뒤를 돌아보려고 한다. 어머니의 입을 빌어, 어머니의 어머니까지 기억할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기억할 수 있는 한 가장 오래전의 모습들을 끄집어 내려한다. 그녀가 보려는 것은 그것은 자신의 뒷모습이자, 가족의 뒷모습이고, 그리고 우리 사회의 뒷모습이다.



△ 고모가 잠잘 때 생길 법한 일 표지


Q. 어머님은 옆에 계세요?
A. 네, 옆에서 커튼하던 감을 가지고 손질하고 계세요


Q. 만화를 봐서 그런지 정경이 눈에 떠오르네요.
A. 네, 맞아요. 친구들도 제 만화를 보면 제 생활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하더라구요. <고모가 잠잘 때 생길 법한 일> 보고 고모가 저인 게 느껴진다고...


Q. 그림은 언제부터 그리셨어요?
A. 2003년,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만화교육과정에서부터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공책에 낙서는 많이 했어요. 필기 대신 낙서를 주로 해서 애들이 노트를 빌려서 시험 공부하려다가 그림 밖에 없다고 했었죠. 재수할 때 미술입시를 준비하던 한 친구가 제 낙서가 자기 그림보다 좋다고 했던 기억이 나요. 당시에 그렸던 그림들은 그냥 사람 실루엣들이었어요.


Q. 누구 그림을 베껴그린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나보네요.
A. 그런 적은 없었어요. 베껴 그린 건 중학교 다닐 때 게리쿠퍼 사진 정도... 그 사람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그러면서도 뭔가 강인한 인상, 그런 게 인상적이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김대중: 비교적 늦게 만화를 시작하셨는데... 게다가 어릴 적부터 쭉 만화를 즐겼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고요.작업을 해야 한다는 욕망이 강했죠. 영화든, 미술이든... 어떤 식으로든... 대학원 다닐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한 10년 쯤 되었던 거죠.


Q. 디자인 대학원 선택은 어떻게 하게 되신 건가요?
A. 대학 졸업하고 노동운동의 끝자락에서 여성단체에서 일을 했었죠... 사회단체 일을 그만두고 내가 진정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고요... 막연히 미술을 하고 싶었는데 조언을 해준 분이 그러더라구요, 조용히 살고 싶냐, 시끄럽게 살고 싶냐. 그래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조용히 살고 싶으면 순수미술을하고 아니면 디자인을 하라고... 그래서 디자인을 하게됐죠.


Q. 재밌는 질문이네요.
A. 전 당시 제가 시끄럽게 살고 싶은줄 알았어요. 근데 이제 보니 전 조용히 사는 게 맞아요. 아, 저는 조용히 살되 작품은 여러 사람이 보는 게 좋겠네요. 창작을 한다는 게 재밌었어요. 컴퓨터 작업은 익숙치 않아 많이 느렸지만... 일러스트, 영상 작업,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은 아주 흥미진진했죠.


Q. 그때 처음 어머니에 대한 작업을 하셨었죠?
A. 네, 한글 음소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수업이 있었어요. 전 그때 "ㅇ"을 선택했는데, "ㅇ"이 대칭이라서 디자인적으로 쉽지 않았지요. 어느 잡지 표지의 강운구 사진을 보게 되었어요. 엄마가 아기를 안고 대지 위에 서있는 사진이었는데, 보고 느낌이 딱 왔죠. 엄마 얼굴이 ㅇ으로 생각되었고, 얼굴을 도려내고 ㅇ을 넣었죠. 그 아이디어를 정하는데 몇 초도 안 걸린 거 같아요. 근데 사진을 쓰면 안 되게 되어 있었는데, 당시 선생님이 그 정도 사진이면 좋다고 해서 통과됐어요....


Q. 은성 씨는 이야기가 넘치는 사람 같습니다. 어떤가요?
A. 이야기가 넘친다기 보다 어떤 인상을 아주 강하게 받고 그걸 꼭 기억했다 어디다 써 먹어야 하는 걸 좋아하는 거죠. 약간 집착도 있고요. 그렇게 기억된 것들이 막 섞여 나오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어디 이상한 곳에 데려가면 자기 식으로 다 기억해 내는 것처럼...


Q. 처음 은성 씨 작업을 보았을 때, 이미지의 신선함도 있었지만, 이야기의 즐거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로서 만화를 하셔서 좋았던 거죠. 소설 같은 걸 써 볼 생각은 안하셨어요?
A. 안 해 봤지만, 지금은 그것도 적성에 맞을 것 같아요. 재밌을 것 같아요...


Q. 소설 쓰고, 거기에 만화도 넣고 삽화도 넣고 하는 것도 가능할 텐데.
A. 네... 그건 결국 아주 자유로운 형식의 만화이겠죠. 어떨 땐 글이 많고, 어떨 땐 그림이 많고...


Q. 글쓰기로서 만화가 되면 좋겠어요. 사실 만화란 문학 그 자체이고, 이미지 그 자체이니까. 그건 자유롭고 유려한 사람이 할 수 있겠네요.
A. 유려한 사람... 제가 부러워하는 사람인데...


Q. 누구나~
A. 맞아요. 누구나... 그건 마음을 비워야 혹은 오랜 연륜이 필요한 일이죠.


Q. 어머니 이야기를 만화로 하고 있는데, 소개를 좀...
A. 제 엄마 얘기죠. 삼팔선 이북에서 오래 전에 나고, 전쟁과 가난을 겪었고, 여성으로 힘든 삶을 살았고... 음... 힘든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던... 본인이 겪은 역사에 대해서는 모르는 부분이 많은 분이죠... 그런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요... 아주 평범한 것들은 잘 못보잖아요. 그걸 보여주고 싶어요. 물론 저도 작업을 하면서 보게 될 테고요.

Q. 긴 이야기일 것 같은데.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A. 네, 엄마가 태어나서 전쟁까지를 일단 2권 분량으로 그릴 거고요. 1953년이후의 얘기는... 그릴 지 안 그릴지 정확치 않아요...

Q. 가족 이야기를 한다는 게 주변 사람들에게나 본인에게 어려운 면이 있잖아요.
A. 그렇죠... 이조실록도 왕이 죽어야 그리잖아요. 우리 가족들은 다 각자 왕이라서 그리기 힘들어요.

Q. 만화가 어떤가요? 잘 맞으세요?
A. 아주요. 잘했다고 생각해요. 백지가 두렵다고 하잖아요. 전 백지에 제 연필 굴러가는 소리를 아주 좋아요. 그냥 그리다 보면 그림이 그려져요. 아주 즐거워요.

Q. 그건 정말 대단한 축복인데...
A. 종이와 대화를 하려고 하는데... 어떤 때는 종이가 대답하지 않을 때도 있고... 그때 전 종이의 침묵의 말을 이렇게 해석하죠. 좀 기다려라.

Q. 이제 2년 정도 되셨잖아요...
A. 네, 벌써이기도 하고 아주 오래된것 같기도 하고...

Q. 개인적으로 은성 씨를 보면서, 모두가 자기 언어로서 만화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됩니다. 그게 새로운 만화의 가장 중요한 점이죠. 종합적인 인간적인 의사소통 방식인 거죠.
A.  인간의 성과 비슷하네요...

Q. 성?
A. 네... 종합적이고 인간적인 의사소통의 방식이란... 성(sex)이 아닌가요?! 말하자면 그렇다는 뜻이죠. 비약인가...

Q. 세상에는 예술가도 많고, 소설가도 많고, 영화감독에 시나리오 작가에....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넘치잖아요. 은성 씨 는 어떻게 자기 작업에 의미를 부여하시나요?
A. 은 소재나 주제라도 작가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진부해질까봐 걱정해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인간 수만큼 삶은 다르니까요. 근데 사람들이 그걸 잘 못 보는거죠. 제가 잘 본다는 얘기는 아니고, 잘 보려고 노력을 하는 거죠. 그게 제가 성장해 가는 길이니까요. 사람들에게 자신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같이 들여다보면 더욱 좋을 테고요.

Q. 은성 씨 작품에는 작업만 계속해오던 사람과는 다른 여유가 있는 거 같고, 한편으로 건조한 시선도 있고요.
A. 네. 인생이 건조하다는 건 그 동안 제 인생이 안 건조했다는 얘기겠죠. 이제 좀 돌아보려고 하고 그래서 건조하려고 하는 거죠. 그리고 복잡하고 힘든 것들도 지나고 보니 별 것 아니었더라. 뭐 그런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Q. 오래 많이 그리셨으면 좋겠어요.
A. 그래야지요. 우선 어머니 얘기를 정리하고요. 긴 여행이 될 테지만, 앞으로 제가 할 얘기의 줄기 같은 얘기입니다.
Q. 기대하겠습니다.





김은성 프로필

1965년 충청남도 논산 출생
1985-1989년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1990-1993년 사회단체에서 활동
1994-1996년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광고디자인 전공
1997-1999년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실험영화제작소에서 영화공부
2000-2002년 부천만화정보센터에서 웹마스터로 재직
2003년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만화전문교육 1년 과정 수료
2004년 <고모가 잠 잘 때 생길법한 일> (새만화책) 출간
2005년 이탈리아 나폴리 COMICON 전시 참여
2005년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장르만화제작지원공모에서 < 내 어머니 이야기> 당선
2006년 <내 어머니 이야기> (새만화책) 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