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안녕하세요 작가님! 간단하게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A. 안녕하세요. 만화 <혼자를 기르는 법>과 <이세린 가이드>를 그린 김정연이라고 합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디지털만화규장각 웹진 인터뷰를 통해 인사를 드릴 수 있어서 반가운 마음입니다.
Q. 작가님과 인터뷰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요즘 근황이 어떠신지 여쭤 봐도 될까요?
A. 원래는 목적이 없으면 집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요. 최근에 산책의 재미를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종종 나가서 걷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코로나 상황을 겪으며 지냈는데요. 그래도 지금은 일상이 많이 돌아왔어요. 규제도 대부분 풀려 체육관에도 나가고 친구들도 자주 만나고 있습니다. 관심사야 자주 바뀌곤 하는 것이지만 요즘은 종합격투기, 핀볼, 산책 이렇게 세 가지가 가장 재미있네요.
Q. 지금 독일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이세린가이드”도 독일에서 작업을 하셨다는 후기도 봤는데요. 작가님이 작품 활동에 있어서 독일이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여기서 즐겁게 잘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독일 사회를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작업과 관련해서도 특별한 의미는 없고요. 거주지를 크게 바꾸는 것에 대한 호기심을 그대로 두면 앞으로도 계속 궁금해 하며 후회할 것 같았고, 마침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서든 업무를 볼 수 있는 직업이니 추진했던 게 다예요. 다만 여기에서 다른 사회를 경험하며 느낀 것들과 제 포지션을 인지하는 방식의 변화가 앞으로 이야기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태도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약 4년 정도 머무르면서 너무 잘 지내 왔는데요. 여러 고민들도 있었지만, 실은 이번 가을에 한국에 돌아갈 계획이라 조만간 이사 준비로 바빠질 것 같습니다.
Q. 작년에 만화영상진흥원 디지털만화규장각 웹진의 한 칼럼에서는 2021년 화제작으로 <이세린 가이드>을 꼽았는데요. 각종 언론에서도 많이 다루어진 적이 있지만, 웹툰 관련 기관에서 언급된 것은 조금 더 특별할 것 같은데요. 기분이 어떠실까요?
A. 네, 감사히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제 작업에 대해 다뤄 주시는 글들은 어떤 지면이건 다 감사히 생각하고는 있지만, 제 작업이 한국만화의 문화적, 시대적 맥락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Q. 작가님의 작품과 작가님이 화제가 되고 인기가 많은 이유, 작가님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A. 아무래도 여성 서사에 대한 갈증과 시대적 공감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제가 보고 싶은 걸 그린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솔직히 말하면 작업을 완전히 끝낸 이후에는 제가 정확히 뭘 했는지 복기를 잘 못하겠어요. 작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단계에서는 제 만화를 통해 독자분들이 무엇을 보게 되실지, 이 이야기를 다루는 것에 있어 어떤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계속 고민하게 돼요. 생각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내보낸 이후에, 특히 성과에 대한 인과를 생각해 보는 건 어차피 정확할 수도 없고 생각할수록 착각하게 될 것 같아서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혼자를 기르는 법>은 웹툰을 엮어 단행본으로 내셨고요. <이세린 가이드>는 바로 단행본으로 출간하셨습니다. 웹툰의 성공은 작가와 독자가 플랫폼에서 바로 만날 수 있다는 단순한 출판 유통의 장점 때문이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작가-출판사-인쇄-온오프라인서점-독자와 같이 많은 단계를 거쳐야 독자를 만날 수 있는 단행본으로 출간을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그리고 웹툰 작품 활동을 하는 것과 단행본으로 작품을 내는 것, 각각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A. <이세린 가이드>의 경우에는 단행본에만 기여하는 원고를 준비해 보고 싶기도 했었고, 주간 연재 호흡과 상관없이 결과물을 내 보고 싶어서 그렇게 해 봤습니다. 작업자분들마다 다 다르겠지만, 제 경우에는 단행본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연재를 스킵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이건 제가 출판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겠는데요. 제게는 단행본이 비로소 최종이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재를 할 때에도 인쇄를 고려한 결정을 많이 해 온 것 같아요. 독자분들께 다다르기까지 그 단계가 짧고 즉각적인 게 결코 장점만을 의미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플랫폼 연재는 이야기의 흐름과 작업자의 건강이 다소 무너지더라도 제시간에 올라가는 것이 더 중요한 구조예요. 또, 한 번 내보낸 에피소드는 이후에 생각이 달라져도 회수하기 힘들고요. 그럼에도, 보다 많은 독자분들께 노출되고 출판보다 비교적 안정적인 고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포기하기가 힘들지요. 하지만 매주 미처 체크하지 못한 것이나 아쉬운 것들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연재 이후 원고를 취합해 단행본을 준비하는 시점에는 저 뿐만이 아니라 편집자, 디자이너 등 필요한 전문가분들과 함께 고민하고 보완하는 단계를 갖기 때문에 이걸 거치고 나서야 다 끝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Q. 외국인들이 한국 음식에 대해 질문을 하였고, 그것이 <이세린 가이드>가 나오게 된 계기라고 들었습니다. 총 열 다섯 가지 메뉴를 통해 이세린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는데요. 이 열 다섯 가지 메뉴는 어떤 기준으로 정하신 건지 궁금했습니다.
A. 메뉴의 선정보다는 식문화에 대한 제 생각과 음식을 매개로 말해 보고 싶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을 전부 꺼내 보고 정리하는 게 먼저였습니다. 이후에 특정한 음식을 카테고리 삼아 묶고 분류하는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소제목이 될 음식은 자연스럽게 정해졌던 것 같습니다.
Q. 작가님은 실제로 요리를 잘하세요?
A. 요리를 즐기지는 않아서 평상시에는 금방 차려낼 수 있는 간단한 것들만 먹습니다. 반드시 먹고 싶은 게 생겨 눈앞에 아른거리거나 친구들을 초대할 때만 팔을 걷어붙이는 타입이거든요. 그런데 해야 할 때는 제대로 잘 준비해서 열심히 하기 때문에 성공률은 나쁘지 않은 편이에요. 유독 중화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제가 만드는 요리의 대부분이 중식입니다.
Q. 그래픽디자이너에서 만화가로 변신하셨잖아요? 만화는 취미로 시작하신 건가요? 아니면 어릴 때부터 가슴 속에 만화가의 꿈이 있으셨던 건가요? 그래픽디자인과 만화/웹툰 차이가 작지 않을 것 같은데요.
A. 이전에 출판사를 클라이언트로 단행본 만드는 일을 하면서 다양한 원고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보통은 텍스트북만을 다뤘지만 흔치 않게 만화 번역서를 담당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만화를 한 컷씩 자세히 뜯어 볼 수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표현의 수단으로서 만화에 관심이 갔어요. 책 만드는 일을 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내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기 마련인데 당시에 그림으로 못 그리는 건 글로, 글로 못 쓰겠는 건 그림으로 ‘어떻게든 해 보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Q. 만화를 따로 배우신 적은 없으신 거예요?
A. 따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Q. 그래픽디자이너였기 때문에 만화/웹툰 작품을 그리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무엇이 있나요? 그리고 오히려 힘든 부분으로 작용한 것은요?
A. 당장에는 각종 컴퓨터 프로그램에 익숙하다는 점에서 도움이 많이 됩니다. 활자를 다루는 것에서도 그렇고요. 크게는 시각디자인은 결국 정보를 어떻게 다루고 전달할지 고민하는 영역이라 다루는 매체나 수단이 달라져도 도움이 안 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단점으로 작용한 적은 특별히 없는 것 같습니다.
Q. <혼자를 기르는 법>은 대도시에 혼자 사는 여성 주인공의 일상을 공간에 집중시켜 이야기하고 있고 <이세린 가이드>는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20대 여성의 일상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정연의 만화를 일상툰이라고들 부르더라고요. 작가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A. 일상툰이 정확히 어떤 범주를 가리키는 말인지 사실 정확히 모르겠어요. 일상을 다루는 만화가 일상툰인가를 생각해 보면, 실제로는 논픽션 에세이를 대신하는 말로도 많이 쓰이는 것 같거든요. 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픽션만을 그리기 때문에 저 스스로 일상툰이라는 말을 사용하거나 의식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Q. 이세린은 드라마 대장금의 '서장금'을 롤모델이라 하더라고요. “장금이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스스로 배우고, 터득하고, 직진하는 게 너무 좋다”며 “자신의 분야를 넘어 호기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것은 너무 멋지다”라고 말하고 있고요. 또한 에피소드 곳곳에 잡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져 나가는 이세린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요. 작품 속 이세린은 김정연 작가님이라고 봐도 될까요?
A. 성향이 비슷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이세린이 곧 저는 아닙니다. <혼자를 기르는 법>과 <이세린 가이드> 두 편 모두 어느 정도 자전적인 성격을 띠고는 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설정을 새로이 꾸며내기 때문에 실제 저와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반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번지는 서사는 제 대화 습관과 관련이 있습니다. 친구들이 ‘또 하이퍼링크를 탄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제가 조금만 신경을 덜 써도 키워드를 통해 주제를 넘나드는 산만한 대화를 하거든요. 저도 주위에서 지적을 해 줘서 알았어요.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한 대화방식 같아서 지금은 정말 많이 고쳤는데, <이세린 가이드>는 아예 이 특성을 맘껏 펼쳐 보겠노라 마음먹고 이야기를 짰던 것 같아요. 읽는 분들을 등에 태우고 예상치 못한 곳으로 쭉쭉 가 보자, 대신 출발했던 곳의 근처로라도 다시 모시고 돌아오자!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Q. <혼자를 기르는 법>이나 <이세린 가이드>는 모두 20대 여성의 일상을 1인칭 시점으로 그려 나가고 있는데요. 혹시 앞으로 다른 장르 혹은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하실 계획이 있으실까요?
A. 물론입니다. 데뷔 당시 만화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당장 해 낼 수 있는 형식부터 시도해 봤던 것 같아요. 저도 하면서 배우고 있어요. 독백이 주가 되는 1인칭 서사만을 할 생각은 없어서 좀 더 등장인물이 다양하고 레이어도 훨씬 다양한 이야기를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Q. 차기작 구상 중이신가요?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은데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A. 차기작은 준비 중에 있습니다. 아직 시나리오 단계인데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요. 그래도 만화를 만들어 가는 프로세스 중 지금이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최대한 걱정하지 않고 진행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런데 워낙 생각을 잘 엎기도 하고, 플랫폼 연재는 제 의사만 가지고 진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언제 보실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리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잘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리며 인터뷰를 마칠까 합니다.
A. 다양한 작업들로 계속 찾아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