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전문가 초청 대담
- 프랑스 만화의 변화를 말한다 -
한국의 만화 웹툰은 K-콘텐츠의 원천이 되고 있으며, 미래 문화 산업을 선도하는 핵심으로 부상하였다. 특히 한국의 웹툰 산업은 현재 약 6,000여 점의 작품과 3,000여 명의 작가군을 거느린 대형 콘텐츠 원천IP가 되었다.
한편 유럽 문화의 중심인 프랑스는 유럽에서 만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가장 많은 나라이며 만화가 발달한 전통적인 만화 강국이다. 또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역사적으로 프랑스 문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이에 프랑스와 아프리카 콩고의 만화 축제 감독을 초청해 프랑스 및 아프리카(프랑스어 사용 국가)의 만화 축제와 만화 트렌드. 만화 산업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 보고, 21세기 만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Q. 안녕하세요? 한국, 그리고 부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좀 부탁드릴까 합니다.
A. 안녕하십니까? 저는 니콜라 피카토(Nicolas Piccato)라고 합니다. 프랑스 리옹만화축제 감독입니다. 한국의 봄(Korea of Spring), 피부색깔=꿀색(Approved for Adoption)의 공동제작자이며, 한국의 판다 미디어(Panda Media) 대표이기도 합니다. 반갑습니다.
Q. 리옹만화축제의 감독을 맡으셨다고 하셨는데요. 리옹만화축제는 어떤 축제인지, 연혁과 특징 등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A. 리옹만화축제는 만화 팬들(그 중에는 카페 주인도 있고 서점 주인도 있습니다)이 만든 협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리옹의 구도심 ‘크루아-루스’에 자리 잡고 있죠. 리옹만화축제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축제입니다. 축제의 바탕이 된 협회가 그랬던 것처럼요. 리옹만화축제의 임무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작가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것, 두 번째는 만화의 영역을 넓히는 것 즉 다른 종류 예술과 새로운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일반적인 사인회와는 다른 포맷을 가지고 만화축제 기간 동안 작가와 독자가 만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 2022 리옹만화축제 (출처_https://www.lyonbd.com)
Q. 올해도 리옹만화축제가 열린 것으로 압니다. 올해 축제는 어땠는지요?
A. 2022년 6월에 제17회 리옹만화축제가 열렸습니다. 주말에만 8천 5백 명 이상이 모였고, 6월 한 달 전체로 보면 7만 2천여 명이 모였던 행사였습니다. 행사 동안 박물관, 서점, 극장, 영화관, 도서관, 카페, 다양한 공공 기관 등에서 만화를 만나 볼 수 있었죠. 18개국의 만화 관계자들이 참여했고, 20여 전시회가 열려 전 세계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조명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작은 성당에서 한국의 김금숙 작가의 라이브 벽화 퍼포먼스를 열기도 했습니다. 더 극적인 결과를 유도해 내기 위한 행사였지요. 리옹만화축제 동안 사회의 중요한 문제 및 정치적인 테마까지 다양한 부분을 다루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프랑스에서 만화는 모든 장르와 다큐멘터리, 게임, 역사 등 모든 분야에 깊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2022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출처_https://www.instagram.com/p/CbaY_CkjCsy/)
Q. 리옹만화축제 외에 프랑스에서 열리는 다른 만화축제들도 소개해 주시겠어요?
A. 가장 큰 만화축제는 단연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이겠죠. 매년 날씨가 추운 1월에, 작지만 매력적인 도시 앙굴렘에서 열리는 행사입니다. 페스티벌 시즌에는 온 도시가 만화로 가득 찹니다. 프랑스 북부 해안도시 생말로에서 열리는 〈케데뷸〉도 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흥미로운 축제입니다. ‘아름다운 섬 코르시카’의 바스티아 시에서 매년 4월에 열리는 〈바스티아 BD〉도 빼놓을 수 없는 축제입니다. 특히 초판 전시에 중점을 두는 만화축제입니다. 또 〈아미앙 페스티벌〉은 초중고등학교와 긴밀히 연계되어 진행되는 것으로 유명한 만화축제입니다. 만화를 제대로 접해 보지 못한 독자에게 한발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는 페스티벌입니다. 지난주에 파리에서 열렸던 만화축제 역시 초판 전시에 중점을 두는 페스티벌입니다. 독립출판사들을 위한 〈콜로미에 만화축제〉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독립출판을 위한 축제라는 건 정말 대단하고 존경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만화가 발전한 나라로 유럽의 만화 강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인들은 만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만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궁금합니다.
A. 프랑스는 2년 전부터 만화 성장률이 50% 이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화 시장이 성장한 주요 원인으로는 일본 망가의 보급을 들 수 있겠죠.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만화 장르의 다양성이 새로운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나이가 있는 독자층 혹은 그래픽 아트에 덜 익숙했던 독자들이죠. 새로운 내러티브 모델 덕분에 이런 독자층이 점점 더 만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더 좋아하게 되고, 따라서 만화 시장 경제도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 덕분에 요즘 일반 서점 진열대의 반 이상이 만화로 채워져 있습니다!
Q. 프랑스는 문화선진국인데 프랑스 문화에서 만화나 만화산업의 비중이나 지위는 어떤가요?
A. 비중은 아주 낮은 편이죠. 하지만 정말 좋은 질문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만화 시장의 빠른 성장과 비교적 높은 가시성에 비해 만화 작가들이나 만화 축제를 위한 재정적 지원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화는 제9의 예술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만화가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데는 어려움이 있는 듯 보입니다. 가령 정치인들을 보면 두 부류로 나뉘죠. 만화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그중에는 만화를 직접 그린 작가도 있고 종종 가명으로요)과 만화라고 하면 그저 ‘탱탱(Tintin)’ 정도가 다인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런 그들의 입장도 존중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현대 만화라는 열차에 오르지 못했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만화 문화의 한 부분을 놓치는 것이니까요.
Q. 프랑스 만화가 다른 나라의 만화와 구별되는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A. 프랑스 만화의 열쇠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다양성이라고 봅니다. 만화의 다양성은 만화와 그래픽 노블을 펴내는 다양한 출판사가 많은 것에서 비롯됩니다. 제가 모든 걸 다 안다고는 할 수 없겠죠.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합니다. 어떤 분야든, 주제가 무엇이든, 그와 관련된 만화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혹은 학술적인 연구보다는 더 다가가기 쉬우면서도, 또 어떤 책보다도 더 분석적인 만화들이죠. 예를 들어 한 만화가가 스페인 점령 이전의 멕시코 전사에 대한 시리즈를 그리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이 작가는 모든 문명에 대한 연구는 물론이고 멕시코의 다양한 문명 생성까지도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독자들이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전에 작가 자신이 우선 모든 걸 제대로 이해해야 하죠. 뿐만 아니라 이해한 것을 다시 표현해낼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자신만의 예술 세계가 투영된 작품이죠. 제가 이 자리를 맡은 이후 전에는 결코 읽지 않았을 그런 작품도 많이 읽거든요. 매번 저는 작가들의 재능에 놀라곤 합니다.
Q.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는 누구이고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사회적 문제나 관심사와 깊은 연관이 있는 작품들이 프랑스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블랭과 잔코지치의 『끝없는 세상』, 리아드 사투프의 『미래의 아랍인』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코르토 말테제』처럼 전 세대에게 유명한 작품이나 클래식은 물론이고, 『엘르들』처럼 새로 나온 시리즈물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만화와 그래픽 노블만 전문으로 하는 《플뤼드 글라시알》 같은 출판사나 파브카로 같은 작가 덕분에 유머러스한 작품도 인기가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 여성들을 부각시킨 『걸크러시』의 페넬로프 바지외, 오드 메르미요, 마리 아브릴, 그리고 신진 여성 작가들의 작품도 좋아합니다.
△ <나 혼자만 레벨업>, 장성락 (출처_디앤씨웹툰비즈)
Q. 프랑스인들은 좋아하는 외국 만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A. 굉장히 유명한 만화이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결의) 독립출판사에서 나온 그래픽 노블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나 혼자만 레벨업』 혹은 『원피스』가 프랑스에서 많은 인기를 끄는 만화라고 할 수 있겠고요. 『배트맨』이나 『샌드맨』도 큰 사랑을 받는 만화입니다. 반면 유럽 만화로는 이탈리아의 마뉴엘레 피오르나 제로칼카레의 작품이 유명합니다. 포르투갈 작가로는 펠리페 멜로의 작품이 프랑스에 수입되어 번역되었고요. 유럽 작가들이 프랑스 시리즈물 작업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스페인 작가들이 『블랙새드』와 『코르토 말테제』 작업에 참여하고 있어요. 판타지 히어로물에는 이탈리아 작가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으며, SF만화 전문잡지 《메탈 위를랑》에는 네덜란드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미장센이 가능한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프랑스 독자들은 다소 반항적이거나 불손한 느낌의 외국 작품들에 호기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제가 맡고 있는 페스티벌 참가자나 독자들에 대해 소개할 때 저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Q. 한 세대 전의 프랑스인들과 지금 Z세대 프랑스 청년들의 만화에 대한 생각은 많이 다른가요?
A. 네, 많이 다릅니다. 지금 Z세대들은 20년 전까지만 해도 일부 광팬들만 읽었던 일본 망가에 제대로 현혹된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만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만 해도 50여 개가 넘는 만화페스티벌이 있고, 그 때마다 많은 팬들이 몰려듭니다. 만화에 대한 젊은 층의 열정을 보여 주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젊은 층을 독자로 두고 있는 카즈노브나 라브리에 같은 작가들은 1년에 여러 작품을 내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작가들의 작품은 텔레비전 만화 영화로 제작이 되거나 팟캐스트 등에서도 유명하죠. 이런 점은 한국과 비슷합니다. 만화 IP에서 발전한 다양한 멀티미디어가 사랑을 받고 있지요.
Q. 과거에는 종이만화를 봤지만 지금은 디지털 만화나 웹툰을 많이 봅니다. 프랑스는 어떤가요?
A. 프랑스도 디지털 만화의 인기가 급상승 중입니다. ‘네이버웹툰’ 뿐만 아니라 ‘이즈네오’ 같은 플랫폼의 웹툰도 포함해서요. 프랑스에서 웹툰을 읽기 시작한 것은 ‘델리툰’이라는 플랫폼부터였습니다. 그 다음 2020년에 ‘네이버웹툰’이 프랑스에 들어왔고, 2021년에는 ‘베리툰’이라는 플랫폼이 생겼습니다. 올해 3월에는 카카오의 ‘픽코마’ 웹툰, 6월에는 ‘코툰’, 그리고 앞서 말한 ‘이즈네오’가 웹툰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w-webtoon’이라는 프랑스 아웃사이더 플랫폼도 있지만 아직은 웹툰의 코드를 제대로 따라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여튼 디지털 만화가 점점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발전의 가능성은 더 열려 있습니다.
Q. 프랑스 만화산업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나요?
A. 저는 긍정적인 편입니다. 따라서 만화의 미래도 아주 밝을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작가들의 경제적 조건과 그들의 상황은 아직 큰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책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노력에 비해 작가들이 받는 보수는 아주 적은 편입니다. 만화 시장이 문제죠. 일주일에 50권 이상의 책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시간을 가지고 관심을 갖는다고 해도 모든 책에 대해 다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기술적으로 봤을 때, 특히 만화의 포맷을 고려한다면 쏟아져 나오는 모든 신간을 서점에서 팔기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선택할 수 밖에 없죠. 따라서 경제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거고요. 반면에 만화 독자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만화를 하위문화가 아닌 주류의 예술로 받아들이는 변화도 생기고 있고요. 그러니 만화의 밝은 미래를 희망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