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만화가이자, 작가이고 감독인 김보통입니다.
[ 그림 1. 김보통 작가 ]
Q. 벌써 김보통 작가님 데뷔하신 게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한 분야에서 10년을 일했다는 건 롱런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물론 작가로 롱런하는 방법이 하나로 정해져 있지는 않겠지만,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작가로 살면서 어떤 점이 롱런하는데 필요하다고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A. 말씀하신 것처럼 만화가로 데뷔를 한 지는 이제 한 10년이 됐습니다. 어떻게 오래 버틸 수 있었는가를 물으신다면 크게 기대를 안 했던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처음 연재한 플랫폼이 '올레마켓웹툰(현 케이툰)'이라는 작은 플랫폼이었습니다. 작은 플랫폼에서 연재한다는 것은 연재를 했다는 사실 자체도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연재가 끝날 수도 있고, 작가로서 다음 작품을 기약할 수도 없기 때문에 많이 꺼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예비 작가분들이 큰 플랫폼에 연재하기 위해 준비하거든요. 저는 솔직하게 만화가로서 큰 성공을 바라고 작품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당시를 회상하자면 로스쿨을 같이 준비하던 시기였으며, 만약 로스쿨이 합격했다면 저는 아마 지금 다른 길을 가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작품 반응이 좋아 처음 6개월 연재 계약에서 추가로 6개월 연장 계약 요청을 받아 약 1년간 아만자라는 작품을 연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이 상을 받게 되었고, 그 이후 D.P라는 작품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큰 플랫폼에 연재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아마 지금까지 데뷔를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다른 일을 하고 있었겠지요. 제가 큰 플랫폼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큰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없이 제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고 연재했던 것이 상도 받고 현재까지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습니다.
[ 그림 2. 아만자 단행본 1권 ]
Q. 현재 많은 예비 작가분들이 데뷔를 위해 공모전을 도전하거나, 플랫폼에 투고를 하거나 아니면 제작 회사에 입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가님은 이와 같은 케이스가 아닌 방식으로 데뷔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 당시 이야기를 좀 더 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A. 제가 데뷔하던 시절은 지금보다 데뷔하기에 허들이 굉장히 낮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웹툰 플랫폼 지원 사업을 통해 10개 이상의 중소 플랫폼들이 생겨났었고, 이 당시 많은 좋은 작가분들이 데뷔를 하셨던 시기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플랫폼들이 많이 생겨나다 보니 작가로서의 잠재력보다는 작품 수를 좀 더 늘리기 위해 플랫폼들이 데뷔 제안들을 했었습니다. 플랫폼을 책임질 수 있는 핵심 작품은 이미 채워놓고, 그 작품들을 받쳐줄 작품들이 필요했었던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제가 연재 당시 플랫폼에서 저에게 높은 그림의 퀄리티나 서사 등을 바라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런 상황 속에서 많은 작가분들이 데뷔하셨는데요. 아마도 도제식으로 작가들을 착취하던 곳들이 남아 있고, 산업이라고 말하기 힘든 시기이다보니 빠르게 자신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싶었던 작가분들이 많았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산업이 되었고, 어시스트를 고용할 때도 근로계약서를 다 쓰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결국 당시는 산업이라고 말하기 힘든 시기였지만 악습도 남아 있었던 반면 데뷔 허들은 낮았고, 지금은 하나의 산업이 되었고 더욱 체계적인 근로환경이 갖추어져 있지만 그만큼 데뷔하기는 더 힘들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은 개인의 역량으로 승부를 보기 굉장히 어려워졌습니다. 개인 혼자 연재 계약을 따내는 것이 너무 힘들어졌거든요. 플랫폼들도 CP사들 또는 제작사들과 주로 계약을 진행하기 때문에 개인의 역량으로 혼자 연재기회를 따내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진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작가들이 함께 작업하는 제작사들의 퀄리티를 따라잡는 것 보다 '내가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수준'의 '내 개성을 최대한 드러내는 작품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오히려 데뷔하기 더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예비 작가분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데뷔' 자체가 작가 생활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데뷔를 꼭 유명 플랫폼에서 해야 한다는 강박을 좀 내려놓고 개성 있는 작은 플랫폼에서 먼저 경험을 쌓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최근에 '나 스스로가 플랫폼'이 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인스타, 유튜브 등 웹툰 플랫폼이 아닌 다양한 콘텐츠 플랫폼에서 작품을 연재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좋은 선례들도 많이 있기도 하니 너무 유명 플랫폼에 매달리기 보다는 내 자신의 역량과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으로 승부를 거시는 것이 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Q. 여러 작가 또는 평론가들과 이야기할 때 김보통 작가님은 '자기 스타일로 끝까지 밀어붙여 좋은 성과를 거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십니다. 좀 더 들어가 '자기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작가님이 집중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쭉 따라가다 보면 결론적으로 '인간의 삶 그 차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작품을 관통하는 한 단어 또는 문장'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사실 한 문장으로 이야기하라고 하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우선 제가 작가로서 어떤 작품을 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세 분이 있습니다. '마루야마 겐지(1)', '최규석' 그리고 '조지 오웰(2)'입니다.
우선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옛날부터 좋아하던 분입니다. 예전 인터뷰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독자들은 가능한 현실의 문제에서 외면하기 위해서 작품을 본다. 하지만 작가의 책무는 그 현실의 아픔이나 고통을 외면하려는 사람들에게 다시 돌려 앉혀 여기 현실이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라는 의미였습니다. 저는 이 말을 정말 좋아하고, 항상 곱씹어 보곤 합니다.
두번째로는 제 데뷔를 도와주신 '최규석' 작가입니다. 최규석 작가가 세월호 참사 당시 저에게 정확히 제목은 생각나진 않지만 세계적으로 인재로 인해서 발생한 참사들에 대한 기록물이 담겨있는 책을 보여준 기억이 있는데요.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우리는 더 담담하게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으며, 작가로서 책무가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지 오웰'은 한 인터뷰에서 작품이 너무 정치적이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글쓰기는 결국 정치적인 행위이다"라고 답변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방어적으로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조지 오웰'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한 것이지요. 저는 제 모든 작품이 '프로파간다(propaganda)'라고 이야기합니다. 제 모든 작품은 저의 정치적인 시선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라고 답변하곤 하지요. 이렇다 보니 위 세 명의 작가들의 말들이 정말 가슴에 와닫게 됩니다.
[ 그림 3.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글로벌 인기 드라마 D.P 시즌2 ]
저는 제가 작품을 제작할 때 대중들에게 얼마나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매출을 벌어들일 수 있을까, 또는 얼마나 나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줄까, 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작품을 본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제가 전달하는 '현실에서의 문제의식'을 같이 공감할 수 있게 작품을 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제 이야기로 질문을 하게 만들고, 그 질문들이 어떤 사회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이게 굉장히 짜릿했던 순간이 D.P 특히 드라마로 공개되었을 때입니다. 여러 커뮤니티나 TV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는데요. 작가의 역할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고, 그 던져진 질문에 대해 사람들이 담론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가장 큰 즐거움인 것 같습니다. 곧 넷플릭스에서 공개할 'D.P 시즌2'와 함께 앞으로 저의 작품들이 던질 많은 질문들이 담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Q. 작가님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아이러니(irony)'를 잘 사용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D.P는 '도망치고 싶은 사람이 도망치고 싶은 곳에 있는데 도망친 사람들을 쫓아야 되는 이야기'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이런 아이러니를 가장 잘 사용한 작품이 개인적으로 'NPC는 전기용의 꿈을 꾸는가?(이하 엔전꿈)'이 아닐까 싶습니다.
A. NC 소프트 블로그에서 연재했던 그래서 이제는 볼 수 없는 작품인 엔정꿈은 '취업을 해야 되는데 취업을 하려고 보니 게임을 계속하게 되고 그 게임 때문에 오히려 취업을 못하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게임에서 어떤 특정 NPC를 잡으면 취업을 시켜준다는 헛소문이 돌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학원까지 생기거든요. 작품을 보신 분들이 '게임 회사를 디스하는 작품인 것 아니냐'라고 오해를 하시는데 그렇지는 않구요. 모든 작품에서 잘 짜여진 캐릭터들은 이런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만능일 것 같은 슈퍼맨은 크립토나이트라는 작은 돌이 약점인 것과 같지요. 저는 이런 아이러니를 어떤 특정 물체로 만들기 보다 '사회 자체'에 아이러니를 주려고 합니다. 굉장히 아이러니한 특정한 상황 속에 인물을 던져 놓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식인 것이지요. 이건 사실 제 성향인 것 같습니다. 저는 굉장히 불만이 많은 편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TV를 볼 때도 항상 불만을 이야기하면서 보았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D.P가 대표적인데요. 거의 모든 대한민국 남자분들이라면 군대를 가게 됩니다. 군대 안에서 부조리를 경험하게 되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게 되고, 어떤 사람들은 미화하게 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별 수 없었다 라고 넘어가기도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방어기제입니다. 심리적으로 내가 한 잘못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정을 해버리게 되면 '나도 나쁜 놈이야'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다만 저는 D.P라는 포지션에 있었기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지 않나 싶습니다. 군인도, 민간인도 아닌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그 속에서 불만이 가득했던 사람들이 점차 스스로 납득해가는 과정 자체를 볼 수 있었고, 이런 부분이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이처럼 앞으로 제가 만들 작품은 모두가 자라면서 경험했던 보편적인 상황 속에서 어쩌면 추억으로, 아니면 그 시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넘어가려고 했던 현실적 상황들을 담아 또 다른 질문들을 던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 그림 4. NPC는 전기용의 꿈을 꾸는가? - 이미지 출처 주간경향 ]
Q, '아만자'라는 작품으로 2014년 오늘의 우리만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2015년 부천만화대상 시민만화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출간되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그 중 스핀오프 드라마인 '사막의 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감독으로서 '사막의 왕'이 전달하는 질문은 무엇인지요.
A. 저를 소개할 때 '감독' 이라고도 했잖아요. 감독이 된 배경을 이야기 드리자면 왓챠에서 단편 영화 각본 의뢰를 받게 되었고, 그 중 하나는 제가 직접 연출까지 의뢰받았습니다. 연출을 해본적이 없었다보니 웹툰 데뷔할때랑 비슷하게 세계적인 상을 받아보자와 같은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진 않았습니다. '아만자'에 보면 마음 속에 계속 사막을 만드는 '절망'을 상징하는 존재가 나옵니다. 내 삶이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절망의 순간이 찾아오게 되고, 그 시점이 오면 그때부터 행위의 의지를 놔버리게 됩니다. 아만자 작품 자체는 '죽음의 5단계'를 지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죽음의 5단계는 부정(Denial), 분노(Anger), 협상(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입니다. 처음 부정하고 그 다음에 분노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정신과 의사를 만나 물어보았더니 대부분 수용까지 가지 못하고 우울 단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암의 진척으로 수명이 다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생의 의지를 놔버리기 때문에 더 못 나아간다는 생각이 들어 '의인화된 절망'을 등장시켰습니다.
[ 그림 5. 김보통 작가의 연출 데뷔작 '사막의 왕' ]
드라마 '사막의 왕'은 바로 '의인화된 절망, 돈'입니다. 인간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가장 비인간적인 개념을 의미하거든요. 아만자에서는 '절망'이었고, 사막의 왕에서는 돈이었던 것이지요. 삶을 위해서 돈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돈을 받기 위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내려 놓을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예전보다는 사회가 발전한 만큼 노동환경도 변화가 되었지만, 21세기가 된 지금 '이상점으로 향해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라고 저는 답변하고 싶습니다. 좀 더 세련되게 바뀌였을뿐이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그 역할을 '돈'이 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전에 노비들이 했던 일들을 지금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돈'을 받고 하고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지요. 저는 '돈을 주니까 됐어'라는 그 인식 자체가 굉장히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Q.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에세이는 굉장히 희망적인 내용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웹툰의 서사를 보면 주인공의 성장의 결과가 '나 이렇게 힘들었구나' 또는 '원래 저놈들이 나쁜 놈들 맞네'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라면, 에세이는 '하지만 그래도 살아야지. 내일이 올꺼야' 라는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간극이 생긴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작품을 연재하다보면 댓글에 '설마 그래도 죽이시는 건 아니겠지요', '열심히 노력한 만큼 무언가 변화가 있겠지요'라는 내용이 달리지만 작품 엔딩을 보면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않습니다. D.P를 예로 들자면 군대 안에서 그렇게 노력했지만 결국 제대 이후 바뀌지 않는 사회 속에서의 주인공 모습, 편의점에서 바코드를 찍고 있는 내용으로 끝나거든요. 허탈해할 수 있지만 거꾸로 위안을 주기 위해 기적을 보여주는 결말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작품을 다 보고 책을 덮었을 때 독자들 마음 속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면서 작품을 제작합니다. '나도 정말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도 이런 식으로 여행을 떠났겠구나'와 같이 본인 만의 생각이 싹터 변화의 단초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원래 D.P 엔딩은 이 작품을 본 독자들도 공범이야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목격자로 변경하였는데요. 이걸로도 당시 원성을 많이 받았습니다. 다른 작품들처럼 이야기를 다 보고 깔끔하게 털고 나가고 싶었지만 제 작품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저는 독자들에게 부채감을 안겨주고 싶었습니다. 이 부채감으로 인해 '요즘 군대 좋아졌다'라는 이야기를 덜 하게 되거나, 군인권센터에 후원이라도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아니면 군 관련 문제에 한 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고 댓글을 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반면 저에게 있어서 에세이는 이런 창작 중 하나의 배설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그리다가 쉬는 시간에 수필을 쓰거든요. 창작 중 쌓였던 감정들을 써내려갑니다. 시회학자인 엄기호 선생님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세상의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로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나옵니다. 제가 창작에서 고통을 이야기한다는 건 그 고통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곧 타인의 고통에 민감해져야 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결국 저는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 고통의 감정을 왜 아플까 들여다봐야 하며, 제가 창작 중에 경험한 이 고통을 에세이로 배출하는 것이지요. 제 에세이가 희망차고 낙관적인 것이 아니고 제가 그 고통을 이해하는 과정이 서술되어 있기 때문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그림 6. 단행본 '나비의 모험' 1권 ]
Q. 에세이에 이어 아동용 만화인 '나비의 모험'도 제작하셨습니다. 단행본으로도 나오고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변에 추천하고 선물로 주기도 하였는데요. 아이들은 정말 재미있게 보는 반면 어른들이 보기에는 불편한 만화다라는 평이 있었습니다.
A. 어른들이 보기에 불편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힘든데도 계속 일해야 하는 엄마, 휴게소에서 잃어버린 강아지를 1년째 찾으러 오지 않는 내용들을 고양이의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보면 어떤 이야기인지 다 아는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면 그냥 재미있는 거지요.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을 본다는 포맷 자체는 오래되었고 관련 작품들도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 이야기를 하자라고 생각하고 한 편만 기고를 했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어린이 독자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연재해 달라고 엽서들이 온다고요. 그래서 연재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만 담는 건 어쩌면 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 작품들처럼 보는 사람들 마음 속에 질문을 남겨 놓고 싶었습니다. 아이들 시각으로 의문이 들 수 있는 내용들로 말이지요. 힘들게 일하고 온 엄마만 왜 집안일을 할까? 왜 딸과 아들이 성별에 따라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야하지? 등에 대한 질문을 고양이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교양이라는 것은 어린 시절 선입견이 없는 상태에서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줄 필요가 있고 그것을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림 7. 레진코믹스 연재 작품 '사람의 사이로' ]
Q. '사람의 사이로'라는 작품은 근현대사 이야기를 요괴들로 풀어가고 있는 부분이 독특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 근현대사 이야기를 할 준비가 아직 안되었다고 판단해서 요괴를 투영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A. '사람의 사이로'는 지금 다시 리버스를 준비하고 있는 작품인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주인공이 도깨비입니다. 도깨비이지만 이야기 시작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5월 23일 광주시 동구 주남마을에 11공수 62대대가 미니버스를 집중 사격하여 민간인 18명 중 15명을 사살하고, 3명을 암매장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중 한 분이 암매장에서 탈출하여 후송되었고, 나중에 진실이 밝혀진 적이 있습니다. 암매장에서 탈출하신 분을 그 산에 살고 있던 도깨비가 그 모습들을 보고 있다가 파내서 살려준 것이라면? 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아무 죄가 없는 일반 사람들을 총으로 죽이는 모습에 도깨비들이 겁에 질려하고, 어떻게 해서든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구해주었습니다. 그 뒤로 인간들이 너무 무서우니 마주치지 말고 살자라고 다짐한 도깨비 가족은 산에 숨어 살게 됩니다. 하지만 40년뒤 개발이 진행되고 더 이상 숨어살 수 없게 된 도깨비 가족은 회의를 거쳐 사람들 속으로 둔갑해서 살아가자고 결론을 내리고 서울로 올라가게 됩니다. 하지만 순박한 도깨비들에게 서울의 삶은 쉽지 않고, 그 속에서 다른 도깨비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도깨비들 역시 어디 성한 곳 없이 다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전부 근 현대사 역사 속에서 상처 입었던 도깨비들이었던 것이지요.
근현대사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가르치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교과서에도 자세하게 다루지 않고, 수능 성적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근현대사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사이로' 작품을 만들 때 귀여운 도깨비로 관심을 가지게 하고, 더 나아가 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Q. 회사를 만들고, 스튜디오라는 개념을 적용하신 것이 다른 업체나 작가분들보다 매우 빠르셨습니다.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A. 사업자등록상으로는 2015년인 것 같습니다. 다른 스튜디오는 나중에 용이한 생산 라인을 만들기 위해서 시스템을 잡았다면, 저는 반대로 주거래처가 없어도 상관없는 해적선을 만들자는 개념으로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저는 특정 플랫폼이나 매체에 연연하기 보다는 어린이 잡지, 문학지, 계간지, 홍보 웹툰 등 할 수 있는 건 다 작업을 하였습니다. 주변 작가분들을 보면 특정 플랫폼에 연재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굉장히 심합니다. 이것은 그 플랫폼에서 연재를 해야 안정적인 매출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고, 반대로 거기서 연재가 종료되면 그때부터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실제 저희 회사 매출에서 웹툰의 비중은 20%도 되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이기 때문에 어떤 플랫폼이나 매체에서도 연재가 가능한 포지션을 갖추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Q. 실제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분은 김보통 작가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들어 보니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하신 것이 좋은 선택이 되신 것 같습니다.
A.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품이 아닌 단순히 말로써 했다면 귀담아듣는 사람들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에 담고 그것이 이슈가 되면서 제가 하는 이야기들을 귀담아 들어주는 배경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통해 앞으로도 더 많은 질문들을 던져보고자 합니다.
(1) 마루야마 겐지(丸山 健二, まるやま けんじ)
(2) 조지 오웰(George Orwell): 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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