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불친 작가님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불친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정미 작가입니다.'모던-뽀이와 된장녀, 그리고 검은나비'로 데뷔하였습니다. 이후 '500만원으로 결혼하기', '출산 뒷이야기' 등을 출간하였는데요. 현재는 만화가이자, '삐약삐약북스'라는 독립만화 출판사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 그림 1, 불친(전정미) 작가 ]
Q. 2009년 데뷔하셨으니 이젠 중견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데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A. 가장의 역할을 해야했기 때문에 졸업 후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직했는데요, 길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만화를 그리고 싶었거든요. 침낭을 회사에 두고 낮에는 애니메이션 배경을, 밤에는 만화를 그렸습다. 그렇게 '툰도시'라는 플랫폼에서 커피를 소재로한 '모던-뽀이와 된장녀, 그리고 검은나비'를 연재하면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Q. SK텔레콤에서 운영하던 '툰도시'에서 첫 데뷔를 하셨습니다. SK텔레콤이라는 이름이 있기 때문에 설마 플랫폼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아쉽게도 외환위기가 찾아오고, 2013년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A. 계약처는 ‘툰도시’가 아닌 애매한 상황이었고 그냥 연재중단 통보만 받았죠. 당시에는 항의도 할 줄 몰랐습니다. 인터넷에 관련 정보도 얻기 힘든 시기였어요. 두 끼니를 김밥 한 줄로 버티며 연재 준비를 했던 작품이 다른 곳에서도 연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어요. 데뷔처는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저랑 같이 데뷔했던 주변 작가들 중에 결국 돌아오지 못한 작가들도 꽤 됩니다. 저는 돌아오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네요.
[ 그림 2, 단행본 '500만 원으로 결혼가기' ]
Q. 다음 작품으로 '500만원으로 결혼하기'를 연재하셨습니다. 다시금 만화가로 돌아오기까지 많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A. 다시 만화를 한다는 게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스스로의 부족을 많이 탓했던 것 같아요. 남편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계속 '너는 할 수 있다', '만화를 그만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등 응원의 말을 계속해 주었어요. 이게 굉장히 컸던 것 같아요.
남편인 불키드(본명 김영석) 작가는 대형마트 야채코너에서 일하며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작품 발표를 계속 했어요. 그 중 하나의 그림이 주목을 받게 되고 어느 덧 일러스트 쪽으로도 인정을 받아 지금도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많이 하고 있어요. (웃으며) 그러면서 대형 마트에서 일하던 것도 그만 둘 수 있게 되었지요.
Q. '500만원으로 결혼하기'라는 작품은 어떻게 기획하고 작업을 하시게 되었나요.
A. 결혼은 많은 돈이 든다고 하잖아요. 실제로 23년도 결혼비용이 약 3.3억원 정도 한다고 하고(1) 어머니도 '네 기를 죽이고 싶진 않다'며 빚을 내자 하셨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500만 원 결혼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고, 실제로 진행하셨던 분들의 모습도 보였어요. ‘나만 이런 생각을 했던 게 아니구나,’ 용기를 얻어 진행을 하며 써내려 간 메모와 기록들을 보면서 당시의 여정들을 만화로 그렸습니다.
군산 성당과 홍대 클럽에서 각각 장소를 빌려 어른들을 위한 결혼식과 우리들을 위한 파티, 2가지 형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1) 결혼정보회사 듀오, ‘2023 결혼비용 실태 보고서’ 공개: https://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961410
Q. 일반적이지 않는 결혼식을 진행하셨는데요. 진행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A. 작은 결혼식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양쪽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각자 부모님을 설득하자고 전략을 짰어요.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잖아요. 또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고 옮겼는데 오해를 샀던 일로 힘들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최대한 서로 간의 집에서 나왔던 말을 옮기는 일이 없도록 했어요. 만약 말을 옮기게 되더라도 자신의 의견이라고 하면서 말을 했어요.
Q. 작품을 보면서 드레스에 A형이 있고, H형이 있고 등 제가 들어본 적이 없는 세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교양만화로 작동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장소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었거든요.
A. 맞아요. 장소도 독특한 곳들이 많이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장소는 비싸지만, 공연을 하기만 하면 가격이 많이 낮아지는 곳들도 있습니다. 공연이라는 것이 뭔가 티켓을 팔고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간단하게 연주만 해도 되는 것이거든요. 이런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결국 발품을 팔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식 관련 비용이 특수한 것이, 인터넷으로 바로 알 수 없고, 꼭 전화를 하거나 직접 찾아가 상담을 받아야지만 그때서야 가격을 알려주거든요. 그게 너무 답답한 거에요.
다른 제품들이나 서비스들은 정보가 투명하고 수요가 많을수록 가격도 저렴한데, 드레스 한벌 2시간 빌려 입는 일이 150만 원이라니? 셀프드레스로 대여하면 15만 원인데? 의문이 컸어요. 내 뒤의 사람들은 불편함이 없었음 좋겠다.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고 공유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어요.
Q. 결혼식하는 친구들을 찾아가면 꼭 하는 이야기가 '밥 먹고 가라'는 말이였어요. 처음에는 왜 결혼하는 거 보러왔는데, 나보고 밥 먹고 가라는 거지라는 궁금증이 있었는데요. 몇 번을 거치면서 보다 보니 알겠더라구요. 준비를 하면서 정말 얼마나 많은 시식을 했을지가요.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남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A. 누구든 원하면 할 수 있고 축하 받을 수 있는 행사 중 하나가 결혼식인데, 한국의 경우 신랑/신부 개인의 행사가 아닌 가족의 행사, 부모의 행사로써의 의미가 크다 보니, ‘우리’가 아닌 ‘다른 이의 시선’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나 싶어요. 욕망을 수치화하기는 어렵지만, 대한민국의 결혼 평균 비용을 통해 그 일편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림 3, 딜러헙에서 만날 수 있는 '출산 뒷이야기' ]
Q. 그리고 5년 후 '출산 뒷이야기'를 발표하셨습니다. 작품을 준비하시면서 처음에 가장 고민하셨던 부분은 무엇인지요.
A. '500만원으로 결혼하기'를 연재하면서 가장 아쉬웠었던 부분이 ‘기록’이었습니다. 나름대로 많은 정보를 정리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만 2, 3년 뒤에 만화로 제작하면서 '내가 그때 메모를 더 했더라면' 아쉬운 부분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출산 뒷이야기'를 준비하면서는 매일매일 한 문장 이상을 기록하자고 다짐했었습니다.
Q. '출산 뒷이야기'가 밝은 부분만 담긴 작품은 아닌 것 같습니다.
A. 보통 출산에 대해 긍정적이고, 좋은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소위 말하는 '마이너스'가 되는 부분도 담고 있거든요.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은 있었지만 출산에 대한 두려움은 커서 공부도, 운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준비를 잘 하면 결혼식을 해낸 것처럼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출산은 아니더라고요. 출산한 지 7년이 넘었는데도 틀어진 관절이나 근육들이 나아지지 않아요. 여전히 아파서 왼쪽으로 누워서 잘 못자요.
'아이가 잠을 그렇게 안 잔다'는 이야기도 미리 듣고 ‘그럼 3, 4개월 정도 안자면 되겠구나’했는데 이게 4, 5년이 될 줄은 몰랐거든요. 아이가 2시간 단위로 깨고 하니, 정신과 육체가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아기 예방접종을 위해 보건소에 들렸다가 산후우울증 자가진단 현수막을 보고 체크를 해보니 10개 문항 모든 항목에 포함되는 거예요.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우리는 배워왔잖아요. 모성은 신성한 것이라고, 여성들의 일이고 당연히 해야 되고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라는 생각이 사람들의 인식체계로 만들어져 있는 것 아닌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 것을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배우고 알았어요.
모유수유도 젖만 물리면 바로 되는 줄 알았죠. 모르는 게 생각보다 많아서 고통스러웠기에 이런 부분들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Q. 작품의 시작은 사실 만남이 아닌 떠나감 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낳은 생명과 처음 만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그 누군가를 떠나보낸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그 자체가 어떤 삶에 대한 은유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고요.
A. 되게 많이 울면서 썼던 글이예요. 저와 같은 만화학과를 졸업했던 동기 언니가 있었는데, 굉장히 기발한 애니메이션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언니의 작품을 보기 어려워졌고 아이를 낳고서는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그 가운데 많이 아팠던 것 같아요. 이별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갑작스럽게 찾아왔어요. 언니를 기억하고 싶으니까 블로그에 가서 다시 글을 읽었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들, 순간순간 느꼈던 감정들이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생생하게 언니가 느껴지는거예요. 만약 이 글들이 없었다면 아주 작은 파편들, 장면들로만 제 기억 속에 남아있을텐데… 그리고 그 글들은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유산과 같음을 느꼈어요. 나중에 엄마가 내 곁에 없더라도 나를 이렇게, 이런 마음으로 사랑했구나라는 것을 생생하게 알 수 있게 되겠지요. 그때 어떤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구나를 마음에 담게 되었습니다.
[ 그림 4, 텀블벅에서 펀딩을 진행한 '지역의 사생활99' ]
Q.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만화가협회장상을 동시에 수상하셨는데요. 바로 '지역의 사생활99'입니다. 해당 작품은 9곳의 지역 도시를 9명의 만화가가 9권의 만화책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작품을 기획하신 계기는 무엇인지요.
A. 실제로 전국에 많은 지역들이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되어 있고, 18년도 기준으로도 11곳이 소멸 고위험 지역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지역소멸을 마치 기후위기처럼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없는 것처럼, 안 할 것처럼. 하지만 실제 현실이고 그 지역에는 생존과도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군산에 마리서사라는 독립서점이 있습니다. 이 서점에 가면 코너에 군산에 대한 책자를 모아놓은 곳이 있습니다. 많은 독립서점들이 군산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거든요. 저희는 만화가니까 만화 콘텐츠가 너무 보고 싶은 거에요. 그런데 사진, 여행서적 이런 콘텐츠들은 많지만 만화는 없는 거에요. 우리가 해볼까라는 마음에 기획하게 되었고, 지원 사업에 넣었는데 좋게 봐주시고 지원을 받게 되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백종원 선생님의 예산 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와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A. '로컬(지역 기반 사업)'을 이야기할 때 지역 기반에서 자생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발전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죠. 도시재생사업 또한 여러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고요. '삐약삐약출판사'가 있는 째보선창은 예전부터 유명한 어시장이었다고 해요. 입주해있는 군산콘텐츠팩토리는 80년된 수협 폐창고를 리모델링한 사례이죠.
우리는 소도시 군산에서 만화를 만들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사생활 99는 텀블벅을 통해 모금을 시작한 것이 3천만 원 가까이 모이게 되었고 이제 4년차인데요. 올해는 쉬고 있습니다만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아요(웃음). 문의주시는 분들도 많고 일이 너무 많다 보니 더 바쁜 것 같아요.
Q. 처음부터 군산에 사신 건 아닐 것 같습니다. 군산으로 이동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A. 부천에서 일을 하다가 임금이 몇개월이나 밀려 고시원에서 쫓겨나기도 했어요. 북적북적한 수도권이 싫어 단양으로 가게 되었는데, 비슷한 비용으로 남한강 뷰의 17평 주공아파트에서 살 수 있더라고요. 웹하드가 상용되면서 일 측면에서 굳이 수도권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고, 단양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만족스런 나날을 보내던 중, 놀러 온 친구가 굉장히 위급한 상황에 쳐하게 되었는데요. 가까운 응급실이 없어 한 시간거리의 제천으로 갔는데 거기도 자리가 없어 다시금 30분을 더 이동해서야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아이를 갖게 되면서 산부인과와 소아과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다시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시부모님이 계신 군산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현재까지 살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다 보니 저희 만화책 맨 앞장에는 해당 지역 응급실 정보를 남기고 있습니다.
Q.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캐릭터도 귀엽고 하잖아요. 하지만 주로 밝은 이야기를 보여주진 않고 있습니다.
A. 처음 군산편이야기는 로맨스를 담을려고 하였습니다. 군산에 일제시대 지어진 일본식 가옥(군산 히로쓰 가옥)이 남아있습니다. 해당 가옥은 당시 큰 포목점(2)으로 사용되었는데요. 큰 포목점 일본인 주인집 딸과 한국인 하인이 결혼한 이야기가 있어 이런 부분을 로맨스로 담고 싶었습니다. 군산편 마감이 한달 정도 남은 시점에 군산에 다양한 역사와 이야기를 알고 계시는 조종안 기자님이 여러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정말 우연하게 보고 함께 따라가게 되었는데요. 그렇게 따라간 곳이 군산 공설시장이에요. 이곳이 예전에는 거대한 성 사창가(집장촌)이었다고 해요. 그런 모습이 지금도 남아 있거든요. 파리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고 해서, ‘쉬파리골목’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정말 지나기기도 힘든 골목에 층층이 쌓여가지고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2000년 9월 19일에 일어났던 '군산 대명동 화재 참사'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당시 성매매 여성 5명이 사망한 사건인데요. 인신매매되어 감금된 채 성매매를 강요당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됩니다. 정말 가슴 아팠던 부분이 여성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포주들이 창문 안쪽에 쇠창살을 달아 놓아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건물 바깥쪽에 창살이 정상적으로만 달려있었다면 소방관이 바로 떼내서 살 수 있었을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근처에 파출소가 있었는데 경찰들이 그간 포주들에게 뇌물을 받아 눈감아 주고 있었다는 것 또한 밝혀지게 됩니다. 하지만 비극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2002년 1월 19일 앞서 화재가 있던 지역에 인접한 개복동 유흥주점에 화재가 발생하게 되고, 여종업원 14명과 지배인 1명이 사망하게 됩니다. 이 사건 피해자들 역시 인신매매로 팔려왔고, 감금당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됩니다. 역시나 인근 경찰들이 뇌물을 받고 눈감아 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고요. 결국 두 사건을 계기로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되게 됩니다(3).
[ 그림 5, 2000년 9월 군산 대명동 화재참사 - 이미지 출처 우먼타임스 ]
이때 당시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군산이라는 지역에 대해 어떤 대표성을 가지고 말을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과연 이대로 로맨스 이야기를 그려도 될까"라는 질문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다음 달이 바로 마감이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거 지금 만들지 않으면 언제 또 만들겠어, 기존 콘티를 찢어 버렸죠. 다시 콘티를 짜서 만화를 완성하기까지 다시금 6개월이 걸렸습니다. 후원하신 분들께 정말 죄송했습니다.
(2) 드팀전(포목점) : 여러 가지 옷감을 파는 가게,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한 구절에 '드팀전'이라는 말이 나온다. 말이 나온다. 드팀전은 여러 가지 옷감을 파는 가게를 뜻하는데 오늘날에는 한자말인 ‘포목점(布木店)’으로 통한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669390&cid=50802&categoryId=50812
(3) 20년 전 군산 대명동 성매매 집결지 화재참사를 기억하나요 http://www.women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327
Q. 지역의 특산물이라는 것이 점점 변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평창이 사과로 유명해지고, 제주도에서 망고가 자란다고 하잖아요. 이처럼 지역의 특산물도 바뀌고 있는 가운데, '지역의 보유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A. 처음에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떻게 답변해야 할까 고민했던 내용입니다. 최근에 '수라'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요. 이십년 전 새만금간척사업으로 갯벌이 사라지게 됩니다. 콘크리트로 아름다운 갯벌들을 다 발라 생태계를 없애 버린 거죠. 하지만 한 군데 남아 있는 갯벌이 바로 '수라'입니다. 이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멸종위기종(법정 보호종)'을 찾아 내는 것인데요. 멸종위기종을 찾아내면 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거든요. 보호종을 찾아내고 공사를 멈추게 하고. 반복되는 싸움을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당시 20대였던 청년이 어느새 40대가 되고, 같이 아장아장 걸으며 아빠를 도와주던 아이가 젊은 생태학자가 되어 함께 이곳에 보호종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을 기록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화를 보면서 감동받는 여러 순간들이 있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감동받는 순간이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무언가를 넘겨줄 때거든요. 청년이 아들과 함께 자란 공간이 되고, 세월을 함께한 공간이 되는 것이지요. 어떤 지역에서 대를 물려가며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지역의 고유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 그림 6, 마지막 갯벌 '수라'과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 ]
Q. 해야 된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불친 작가님과 삐약삐약북스는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삐약삐약북스 작품 중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제 남편인 불키드(구 노키드) 작가의 작품인데요. 20대의 고민을 간직한 30대가 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경력단절과 출산 등 다양한 내용들이 담긴 작품이에요. 특히 우리에게는 큰 이정표가 되어줬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만들어 나갈 때 저희도 막 출산을 하였고, 아이를 키우면서 실제 커리어 유지가 굉장히 어려웠었거든요. ‘정리의 밤’이라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출판사를 열어서 이 작품을 출판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해주었고, 현재 삐약삐약북스가 만들어지는데 크게 공헌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이야기해나야가 하지만 만나기 힘든 작품들을 만나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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