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1, '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의 엄유진 작가 ]
< 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 >
Q. 안녕하세요. 작가님.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인스타그램에 '펀자이씨툰'이라는 타이틀로 일상 만화를 연재하면서 소소하게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 엄유진입니다. 최근 '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와 '외계에서 온 펀자이씨'라는 제목으로 두 권의 단행본을 출간하였습니다.
Q. 작가님 작품 제목에 있는 '펀자이씨'는 필명이신지요.
A. 네, 한 국제커플카페에서 취미로 결혼 생활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시작된 필명입니다. 필명으로 독특한 이름을 찾던 차에, 태국인 남편 성이 '펀자이씨'인 것이 재미있어서 즉흥적으로 따왔어요. 당시 남편의 한국 생활 적응기를 다루고 있기도 했고요. 나중에 시아버지께 여쭤보고 알게 되었는데 '펀자이씨'는 태국어 '팟자이씨'에서 가져온 소리라고 해요. 뜻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네 가지 요소'라고 하더군요. 그 네 가지 요소는 '의,식,주,약'이었는데, 생각하기에 따라 제가 연재하는 생활툰과 의미가 닿는 것 같기도 했어요. 이후로 확장시킨 모든 가족 이야기들을 ‘펀자이씨툰’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Q.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 대학 졸업 후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사회활동을 시작했었지만, 결과물을 보면 늘 뭔가 부족하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제가 더 잘할 수 있는 것,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흘러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러스트 작업을 하게 되었고, 그 일을 발전시키다보니 그림책 작가가 되었어요. 그리고 일하기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취미 삼아 좋아하는 작업들을 하다보니 어느새 만화 작가로 불리고 있더군요. 궁극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건 쓰고 그리기를 통한 ‘이야기를 전달’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어떤 형태로든 이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Q. 총 두 권의 단행본을 출간하였습니다. 먼저 처음 출간한 '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에 대해서 질문을 드릴께요. 제목의 '어디로 가세요'는 어떻게 정하시게 되었나요?
A. 뚜렷한 계획없이 하루하루 있었던 일이나 지난 추억들을 인스타그램에 즉흥적으로 그려 올려왔기 때문에, 이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을 때 편집부에 계신 분들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책 구성에 대한 의논 중 "그래서 어느 방향으로 가실 거예요?"라는 질문에 "저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답변을 하고 보니 이것이 적절한 테마 같았어요. 이야기들을 나열해 놓고 보니 부끄러움 많던 어린 시절의 모습부터 영국으로 떠나는 이야기까지 목적지도 모르면서 끊임없이 어디론가 가고자 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이 느껴졌거든요. 그 다음 고민은 '어디 가세요'와 '어디로 가세요' 사이에서의 고민이었어요. 되뇌이니 '어디 가세요'라는 질문엔 마치 가까운 어느 마트나 병원에 간다라는 식의 간략한 대답이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어디로 가세요'하면 여정의 과정과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목으로 결정하였습니다.
[ 그림 2, '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 ]
Q. 저에게 '어디로 가세요'라고 물어보면 답변을 못할 것 같아요. 제목이 참 좋다고 느껴졌는데요. 실제 작품을 보면서 느낀 것이 이렇게 고민을 많이 하신 분이라 이런 제목이 나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 살면서 다들 고민을 하잖아요. 멈춰 있고 싶어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하니까요. 최근에는 저희 어머니가 기억을 잃어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요.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가까운 과거가 사라짐과 동시에 의도한 가까운 미래에 닿을 수 없게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단기 기억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늘 하던 간단한 요리를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눈 앞에 재료가 있어도 뭘 하려고 했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다음 순간이 이어지지가 않거든요. 당연한 것 같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계획을 세우고 지키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과거와 미래를 염두에 두며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들이란 결국 "내가 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 어디로 가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죠.
Q. 작품이 혼란, 극복, 안정, 사랑으로 가는 이야기로 보였습니다. 작품 초반에 한국에서 보낸 유년기에 느꼈던 '혼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A. "엄마, 왜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다 혼란스러움에서 시작되지?" 라고 여쭸더니 어머니께서 "안 그러면 아무도 안 보니까?"라는 명쾌한 답을 주시더라고요.(웃음) 혼란은 '일시적으로 질서가 사라지고 뒤죽박죽인 상태’이고, 왠지 그것이 해결되어야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실제로는 삶은 원래 혼란과 함께 하는 것 같아요. 혼란을 극복을 한 상태에서 또다른 혼란이 찾아오고, 안정기라고 생각되는 상태 속에도 모종의 혼란스러움이 존재하죠. 사랑에 빠지는 상황은 그야말로 혼란스러움이 대폭발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혼란스러움에 대처하는 과정 자체가 삶인 것 같아요. 저는 이제 혼란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색하지 않아요.
Q. 혼란이라고 부르는 첫 번째 부분을 자세히 보자면 여기서는 어린 시절의 콤플렉스와 그걸 이겨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A. ‘힘이 필요해’ 연재를 시작한 계기는 학생 독자분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메세지였어요. "작가님 같이 화목한 환경에서 자라신 분은 이런 기분을 이해하실 수 없을 것 같지만…”이라고 시작되는 글을 보고 머리가 띵했어요. 글이 이어졌습니다. “어찌 해야 될지 몰라 무작정 글을 써봅니다. 저는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이 편지를 읽으면서 그 친구가 또래들로부터 의도적으로 소외되고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이 가깝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어요. 펀자이씨툰에 늘 유쾌한 톤으로 가족 이야기를 연재해서 그렇게 보였는지 모르지만, 저도 자라면서 사고처럼 예측하지 못했던 이런 저런 어려움들을 만났었고, 학창 시절에 이유도 모른 채 소외된 적도 있었거든요. 어쩌면 비슷한 터널을 지나본 사람들만이 줄 수 있는 작은 노하우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은 집단 속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며, 상황을 달리 바라볼 힘이 생긴다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제가 당장 그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고, 유사한 상황에 처한 많은 잠재적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이 이야기를 볼 수 있기 바랐어요.
그런데 막상 겪었던 일들을 되짚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다보니 '내가 왜 이야기를 시작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시절에 몰입이 되더라고요. 당시 마음 아팠던 일들이 현재처럼 생각나서 잠을 설치는 날도 있었고, 너무 많은 분들이 지켜보고 계시니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곤란한 상황과 맞닥트릴 수 있다는 두려움도 들었죠.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가장 잘 전달되려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마무리 되어야 할지를 날마다 생각했어요. 이 과정에서 응원과 공감의 메시지들이 폭발적으로 많이 받았어요. 피해자, 가해자 입장에 있던 사람들과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방관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던 사람들, 그리고 선생님과 학부모님들로부터도요. 어린 시절 멋모르고 친구를 괴롭혔던 기억이 평생 짐인데 사과할 길도 찾지 못해 괴롭다고 분의 메시지도 기억에 남아요. 다양한 메세지들을 받으면서 '아, 이 이야기를 어떻게 진행시키고 마무리해야겠다'라는 아이디어들을 얻기도 했어요. 지금 시점에서 돌아봤을 때 어린 시절의 저를 격려하고 인정하는 작업이기도 했네요.
Q. 반장 이후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주류이자 강자인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그런 행동은 사실 약한 사람이 하는 행동이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곤란에 처한 사람을 돕는거야말로 강한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돌아보자면 이건 개인이 하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 맞아요. 어려워요. 하지만 아무리 크고 어려운 일도 결국 개개인의 작은 생각의 변화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특정한 개인들이 크고 무섭게 느껴졌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보니 진짜 무서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믿게 되는 사상, 군중심리더군요.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일처럼 보여도, 개개인의 합리적 의심으로부터 생각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연재 중에 이 이야기를 배포하여 학급 왕따 현상을 방지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는 선생님들도 계셨어요. 홀로 앞에 서서 큰 소리로 '밝은 사회를 위해 우리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라고 가르치면 쉽게 받아들여지지지 않는 메시지들이, ‘우리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와중에는 잘 전달되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정글 같은 사회적 집단 안에서 어린이들은 본능적으로 강자가 되고 싶어하죠. 인간에게는 다른 곳에서 받은 상처를 애꿎은 이에게 풀어내거나 윗사람을 모방하는 기제도 있어요. 군중 속에서는 부화뇌동하기 쉽지만, 진짜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이들이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꼭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혼자인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혼자인 사람에게 여럿이 돌을 던지는 일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메시지도요. 그것이 제가 살아오면서 느낀 것이니까요.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일이지만, 알게 된다면 각자의 힘으로 더 생각해 보게 되지 않을까요?
[ 그림 3, 작품 소개 페이지 내용 중 '런던에 오면 꼭 해봐야 할 붉은색 사냥' ]
Q. 하지만 한국을 떠납니다. 작품을 보면서 작가님이 생각하는 한국은 어떤 나라인지 궁금했어요.
A. 구슬은 꿰기 나름 같아요. 같은 경험도 제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에 따라 묘사가 달라지거든요. 한국은 꽃피는 내 고향, 내 생각을 가장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공간, 나이들 수록 늘 그리워할 곳이에요. 일상툰으로 이야기를 펼쳤을 때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 것도 같은 문화권 안에서 생활해 왔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상하다.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 때가 있잖아요.
1980년대는 국가가 많은 것을 통제하고 민주화 운동이 진행되던 뼈아픈 시절이었죠. 당시 저와 친구들은 ‘국민학교’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여 알람 소리가 울리면 책상 밑으로 들어가 눈과 귀를 막는 훈련을 받았어요. 무시무시한 반공포스터를 만드는 학생이 상을 받았고, 동네 뒷쪽 대학가에서는 늘 최루탄이 터졌어요. 한 반에 50 ~ 60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군대식 기합과 체벌이 허용되었지요. 1990년대에는 상황이 달라지는 듯했지만 IMF가 터졌어요. 남들과 다른 외모나 행동에 대한 제재와 평가가 강하고 남녀 차별도 심했던 시절이거든요. '나는 더 나은 일은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기회조차 없다' 하는 무력감도 가지고 있었어요. 아무리 집에서 부모님이 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해도 결국 학교나 사회에 가면 시대가 직면한 문제들을 겪어낼 수밖에 없었어요. 직장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아랫 사람이기 때문에 겪었던 수치심도 있었어요. 물론 낭만적인 추억이나 즐거운 일들도 많았지만, 특히 28살이 되면서 여자는 서른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하지 않으면 퇴물이 된다, 유행에 맞게 잘 꾸미고 날씬해야 한다, 일러스트레이터는 하위 직군이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들으며 떠밀려 살아가는 사회적 분위기가 제겐 너무 갑갑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인과관계가 잘 보이는 듯하지만, 그때는 분위기 속에 묻혀서 뭐가 문제인지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조여오는 답답함만 느꼈어요. 확실한 문제의식을 지녔다기보다는, '지금이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내가 처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라는 마음으로 갑자기 한국을 떠나게 되었어요.
Q. 그런데 왜 영국을 선택하셨나요?
A. 굳이 유학을 간다면 날씨가 궂고 보수적인 영국보다는 잘 나가는 미국이 좋지 않겠냐는 조언이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영국이 끌리더라고요.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들이나 예술가, 영화배우들 중 영국 출신이 많은 것도 이유였고, 주변 유럽 국가들의 다양하고 개성 있는 문화를 접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어요. 그림책 작가나 만화 작가들이 아티스트로서 존중받는 환경을 보면서 '나도 저런 환경 속에서 도전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무엇보다 1년의 짧은 석사 과정이 있었던 것이 큰 이유였죠. 화사하고 쨍한 여름 뒤 길고 음산한 겨울 날씨마저 마음에 들었으니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도시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친구들은 영국 생활에 부적응하기도 하였지만,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방인들이 모여들고 문화 예술이 생활 속에서 존중 받는 런던은 당시 저에게 필요했던 것들을 충족시켜주는 만족스러운 공간이었어요.
Q. 이야기가 '집을 떠난 지 5년이 흘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A. 인스타그램에서 연재한 이야기들은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궁금해하는 이야기, 제가 먼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위주로 꾸려 나갔어요. 떠난 이야기가 흥미롭자, 독자분들은 바로 돌아온 후의 변화를 궁금해 했죠.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위해 시작된 영국 이야기였기도 하고요. 중간 이야기들을 모두 펼치려면 끝없이 길어지기 때문에 떠나는 과정과 돌아오는 과정에 초점을 두어 성장의 분위기를 짧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어요.
Q. 4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간단하게 풀어 주실 수 있나요.
A. 영국에서의 4년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는 시간이었어요. 달라진 환경 속에 혼자 던져져 생활을 리드하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제 모습들을 발견하는 시간들의 연속이었어요. 수시로 터전을 옮기면서 다양한 일을 해보고, 무슬림 친구와 이웃이 된다거나 그리스 친구에게서 신화 이야기를 듣고 러시아 법학과 학생에게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들도 제 인생에서는 신선한 경험들이었죠. 책상 앞에서만 하던 공부를 발로 뛰며 하던 시간들이었어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과 만나든 완전히 몰입하면서 그 세계에 빠져들었어요. 영국 시내 한복판에서 웨이트리스 일을 하면서 영국의 가족 문화와 식사 예절을 가까이에서 체험했고, 여행 가이드를 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파고 들었어요. 제가 이렇게 호기심이 많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인 줄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세상이 이렇게 넓은 줄도 처음 알았고요. 영국은 인종 차별이 심한 나라라고 듣고 갔고 그런 종류의 사건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막상 지내보니 생활 속 노약자와 아이들, 이방인에 대한 배려가 강하다고 느껴졌어요. 길에서 눈만 마주쳐도 웃으며 인사하고 모르는 이들에게도 문을 잡아주는 등의 몸에 배인 소소한 친절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배웠어요.
Q. 작가님이 경험한 '마법 같은 순간'이 런던이 작가님이 찾아왔던 미지의 공간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돌아갈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서 인지가 궁금합니다.
A. 둘 다 맞아요. 시간은 끝이 정해져 있을 때 더 귀하게 느껴지잖아요. 퇴근길에 레스터 스퀘어앞을 지나가다 우연히 해리포터 출연진들을 보게 된다거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흐린 하늘 아래 눈부신 조명들이 켜지고 밤이 되면 화려한 마켓 플레이스가 열리면서 아이들이 캐롤을 부르는 모습을 마주치게 되는 일들은 그야말로 마법 같았죠. 졸업 전시가 오래된 초콜릿 공장에서 열렸다거나 영국에서 그림책을 출간할 기회를 얻게 되는 과정들도 제게는 영화 같았어요. 수입원을 위해 시작한 일이 삶의 가르침을 주고, 제가 사랑하는 일을 사람들도 사랑하게 되면서 가치가 커지는 순순환의 상황들에 자긍심이 생겼어요. 활기찬 기운과 열린 마음을 가진 여행자 분들과 자주 만나며 생기는 에너지도 좋았고요.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게 부끄러움과 공포가 되기는 커녕 기대와 즐거움이 되다니, 그것만으로도 제게는 마법 같은 시간들이었요.
Q. 연애의 뒷이야기를 생략한 표현에 어쩌면 '낭만'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A. 지면의 제한도 있었지만, 제가 생각하는 개인적인 낭만을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상상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있었어서 단서만 그리고 연애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하지 않았어요. 그 장에서는 우연한 만남과 그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설렘 같은 걸 상징적으로 전달하고 싶었어요. 치밀하게 묘사해야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면, 숨겨둬야 더 상상하게 되는 이야기도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