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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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위의 삶, <오크의 포로가 된 엘프 사령관> 삭둑 작가

19년 아마추어 연재로 시작하여 레진과 봄툰에서 연재 중인 삭둑 작가를 만나보았습니다.

2024-03-06 수차미

*본 인터뷰는 12월 30일에 무료로 공개된 ‘113화’를 기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오크의 포로가 된 엘프 사령관>은 2019년에 커뮤니티에서 첫 선을 보였다. 소위 아마추어 연재로 시작한 이 만화는 개그, 작화, 스토리의 삼박자를 모두 갖췄다는 평을 들으며 절찬리에 인기를 끌었다. 특히 오크와 엘프의 구도에서 포로가 되었다는 사령관의 설정은 그야말로 ‘클릭’을 하지 않고서는 못배길 제목이었다. 2010년대 이후 웹소설에서 주로 사용되는 이 장문 제목은, 이상해보일 수 있지만 작품에 대한 첫 번째 매력 포인트가 되어준다. 기본적으로 문장형 제목은 그 안에 어떠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전개와 선택에 편리하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계속 끌고 가야 하는 작품에서 문장은 작품이 나아가야 할 곳과 벗어나지 말아야 할 곳을 지정하는 효과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문장형 제목은 독자가 작품을 선택함에 있어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만화의 제목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무엇일까? 이는 최근 웹소설에서 장르를 대신해 여러 #태그가 붙는 것과 연결되는데, 태그는 작품의 성향을 미리 전달함으로써 독자가 작품을 ‘잘못’ 선택할 가능성을 줄인다. 자신이 원치 않은 전개로 내상을 입는 일을 미리 방지하면서, 창작자로서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예비 독자군을 특정하여 홍보할 수 있게 해준다. 마찬가지로 <오크엘프>는 그 문장형 제목에서 배신하지 않는 이야기를 강조했다. 세계관이 확장될 수는 있겠지만 분위기는 심각해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 죽거나, 사라지거나, 떠나거나, 혹은 주인공이 흑화해버리거나 하는 식으로 ‘드라마틱’한 변화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일상물의 특징이기도 하나, 우리가 ‘일상’에서 얻을 수 없는 경험이라는 점에서 만화에 빠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귀한 시간 내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독자 여러분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레진코믹스와 봄툰에서 <오크의 포로가 된 엘프 여사령관>을 연재중인 삭둑입니다.



Q: 기본적으로 이 만화는 에피소드 형태에 큰 줄기의 이야기가 배후로 진행되는 형식을 취합니다. 즉 전면에 포로들의 일상이 드러나있다면, 일상에서 벌어지는 각각의 사건이 큰 흐름에 연결됩니다. 이는 작가님께서 매화 좌상단에 에피소드의 소제목을 붙이는 점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작품의 이야기가 꽤 진행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아마추어 연재를 하던 초기에는 일종의 옴니버스 만화로 기획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연재가 거듭되며 세계관이 확장되었는데 혹시 작품의 초기 컨셉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40화에서 50화를 전후로 이야기가 확장된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작가님께서 기존 연재분을 34화까지 진행하셨고, 이후로는 모두 정식 연재분이라는 점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확장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신 게 아닌가 합니다. 물론 기존에도 제국의 첩자가 등장하는 등 빌드업은 존재했습니다만, 12화의 나론 장군이나 16화의 테르웬 사령관, 40화의 족제비 부대, 76화의 정령 진 등 정규 출현 캐릭터는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캐릭터들은 기획 초창기에 존재했었는지, 아니면 이야기에 살을 붙여나가는 과정에서 하나 둘 등장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A: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정식연재 전에도, 주간연재를 하기로 마음먹은 시점(정식연재 기준으로 2화가 시작되기 전)에서 세계관과 이야기의 큰 흐름은 세워 두었습니다. 때문에 초기부터 옴니버스라기보다는 시트콤처럼 단편적인 사건이 주인공 주변에서 일어나는 동시에 큰 이야기 자체는 계속 진행되는 형식으로 기획했는데, 단편적 사건들에 좀 더 집중하다 보니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 자체는 꽤나 느릿하게 진행된 느낌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주인공인 이시르 라고니스에 대한 이야기조차도 아직 담아둔 채 풀어놓지 않은 부분이 많네요.

이야기의 진행상 필요에 의해 등장한 캐릭터도 물론 있지만 나론이나 테르웬, 우르단 듀라그, 탈리 등 주인공 주변 인물들은 어느 정도 구상을 해 뒀던 캐릭터들입니다. “모아놓고 보니 대단한 인물들”이 사건에 휘말리는 전개가 좋거든요. 


Q: 위 질문의 연장선입니다만. 이야기와 작화를 모두 담당하시는 입장에서 해주실 수 있는 말씀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작가’의 역할에 관한 것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과 그림을 그리는 이가 있다면, 이 둘 간에는 같은 대상이라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생각하는대로, 손이 가는 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캐릭터는 작가의 손을 벗어난 무언가가 되어, 하나의 생명체처럼 기능하기도 합니다. 잘 짜인 캐릭터 설정은 그가 세계 안에서 어떻게 사고하며 행동할지를 말해주기에 작가로서는 이를 ‘따라간다’고 할 법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주어진 환경에서 각각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이 작품은 인물이 포로생활을 하는 과정에서의 일상과 그에 침투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작가님께서는 ‘세계’를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움직이시는지, 아니면 캐릭터가 세계 안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염두하는지 궁금합니다. 가령 저는 만화를 보며 이야기가 현실에서 독립되어 있다고 느꼈는데요. 현실과 연결되는 점이 없으니 큰 고민 없이 볼 수 없어 좋기도 합니다만. 새로이 현실을 창조해내는 일에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관 설정과 캐릭터 구축 과정, 둘 중 어느 게 먼저였나요? 

A: 글작가나 그림작가로만 활동해본 적은 없지만… 글쎄요, 작가의 역할이란 작가의 정체성이 한 명이든 혹은 여러 명이 협업하는 집합체든 관계없이 결국 뭔가를 만들어서 독자에게 소개해 주는 것 아닐까요. 개인적으로 글작가와 그림작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작품과 글과 그림을 모두 한 사람이 작업한 작품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글작가도, 그림작가도 각자의 예술성을 가지고 작업에 임하는 것이니까요. 결국 완성된 만화를 받아들여 생명을 불어넣는 건 독자의 몫이기도 하고요.

현실과 단절된 세계를 구축하는 건 “이건 이 세계에서는 원래 이런 거야”하는 식으로 간주하는 게 가능해서 속편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현실과 단절된 부분 때문에 어렵기도 하죠. 예를 들어 작중 인물들이 쓰는 언어나 문자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도량형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시간 단위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등의 문제로 고민했던 기억이 있네요. 작중에서 “1미터”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독자 입장에서는 ‘이 동네에서 미터법을 쓴다고?’ 라는 위화감을 가질 수 있고, 그렇다고 미터 대신에 적당히 창작한 “1끼룩끼룩” 이라고 했다간 이 단위가 도대체 어느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인지 이해가 어려워서 감상에 방해가 될 수 있잖아요. 전 결국 독자들이 이해해주리라 믿으며 직관적으로 이해가 빠른 현실의 문자와 단위를 빌려쓰는 선택을 했지만, 이 부분은 다른 작가들도 어느 정도는 고민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심지어는 “반지의 제왕”에서도 수많은 단위들이 나오는 와중에 간간히 “마일”등이 등장하곤 했죠.

세계관 설정과 캐릭터 구축은 워낙 상호유기적이라 닭이나 달걀 중 뭐가 먼저인지 고르는 느낌입니다만 주인공인 이시르 라고니스만큼은 캐릭터가 먼저였습니다. 이 캐릭터는 주간연재를 시작하기 전, 세계관이 대충이나마 정립되기 전부터 성격이 드러난 인물이었으니까요. 


 


Q: 작품을 보면 평소에 만화를 즐겨 보셨다는 게 느껴집니다. 여러 면에서 이야기해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시르가 동전을 손으로 튕기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2009년에서 2012년 사이 네이버에서 연재되었던 박성용 작가의 <아스란 영웅전>이라는 작품이 있는데요. 이 만화의 주인공이 건빵이랑 동전을 손으로 튕겨 적을 죽이는 장면이 꽤 유명합니다. 공교롭게도 <오크엘프>의 이시르도 건빵을 좋아하면서 엄청난 힘을 지닌 실력자죠. 아마 오마주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혹시 작품 안에서 숨겨진 오마주 같은 게 있는지, 그렇다고 하면 말씀해주실 수 있는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말풍선이 경우에 따라 기울어지는 연출, 태클이 들어올 때 A인물의 말풍선을 B 말풍선으로 덮는 연출도 기억에 남습니다. 자칫하면 단조로울 수 있을 일상이지만, 말풍선을 변형하여 적용함으로써 무언가 독특하고 색다른 인상을 줍니다. 뭐랄까, ‘콰쾅’이라던가 ‘꽈당’이라던가 하는 말풍선이 있으면 왠지 모르게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주듯 글자의 형상 자체가 의성어로 기능한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연출은 평소 미디어를 많이 접해보아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평소 읽으시는 책이나 드라마, 영화, 게임 같은 매체 등을 말씀해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딱히 영감을 주는 콘텐츠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A:음…. <아스란 영웅전>을 본 적이 없어서, 아마 우연히 컨셉이 겹쳤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품 중에서 이런저런 패러디들을 많이 했는데, 대부분은 다 알아채셔서 (113화를 기준으로) 아마도 남은 숨겨진 패러디 등의 요소는 거의 없는 듯 합니다. 심지어는 로간의 끊어진 기타 줄을 수리하는 에피소드에서 상표로 잠깐 나왔던 “알 존 파코”까지 알아보시는 분이 계시더라고요.

남들이 뭘 재밌어하는지 알고 싶어서 유행하는 예능은 일부러 찾아서 보는 편입니다.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면 영상 쪽으로는 최근의 <브루클린 나인나인>부터 오래된 <프렌즈>까지 시트콤 형식의 드라마를 봤던 게 도움이 됐고, 만화 쪽으로는 <아즈망가 대왕>이나 <삐리리 불어봐 재규어>등 코믹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좀 오래된 만화긴 하지만, <피너츠>도 제 작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걸 오마주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4군 사령관인 이시르, 부사령관인 아멜리는 어쩐지 페퍼민트 패티, 마시와 닮았기도 하고요.


Q: 다른 부분도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작중에서 이시르를 비롯한 엘프들을 묘사하실 때, SD 버전과 진지 버전을 구분해서 그리시는 걸로 압니다. 또한 이야기가 진중해지려고 하면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가벼운 분위기로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리듬으로 보면 강약강약 정도로 할 수 있겠지요. 저에게는 이런 연출이 마치 ‘진지해지는 일에 대한 경계’로 느껴지는데요. 어떤 면에서 이는 작품이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할 것입니다. 등장인물이 죽거나 다쳐서는 안 된다는 식의 방법론 말이죠. 사실 자신이 사랑하는 캐릭터가 그렇게 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런 점은 작품에 대한 별명인 ‘깐프 동산’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인간관계라던가 뉴스 1면의 사건사고라던가 하는 우울함으로 가득하지만. 만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크게 심각해지지 않아도 되어서 좋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만화가 사실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은 작품의 분위기로 인해 크게 부각되지 않기도 하죠. 이렇게 즐거운 포로생활이라니! 작가님이 이 만화에서 중점을 두거나, 혹은 평소에 만화를 그리실 때 모토가 있는지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A: 이 만화는 기본적으로 보는 사람을 웃게 하려고 만드는 만화거든요. 내용 전개상 중간중간 심각한 내용이 들어가거나 모그가 다치거나 인물 간의 갈등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요. 디즈니나 픽사 애니메이션에서도 아무도 안 죽고 모두가 행복하잖아요.

…한편 생각해 보면 디즈니나 픽사 애니메이션에서도 무파사라든지 빙봉처럼 “그렇게 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가 안타깝게 끝장나기도 하죠, 그래도 살아남은 인물들끼리는 행복하잖아요? 작품을 다 본 후에 모두가 그 행복감을 공유하면서 웃을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아무도 죽거나 다치게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만화를 그리지는 않지만, 적어도 여러 시즌이 이어지는 드라마에서 출연료 등의 문제로 하차하는 배우 때문에 캐릭터가 뜬금없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의 전개가 벌어질 필요가 없는 건 다행한 일이죠. 이건 만화니까요. 


  


Q: 마무리하는 대목에서, 작품 내외로 독자분들이 궁금해할 부분도 짧게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1) 앞으로 작품 안에 커플이 탄생할 수 있을까요? 2) 오이와 가지를 좋아하시나요? 3) 함께 거주하는 반려동물이 있나요. 4) 사용하는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궁금합니다. 

A: 

1) 물론 가능성은 이곳저곳 열려 있지 않을까요?

2) 오이는 좋아하지는 않는 정도입니다. 가지는 가능한 피합니다. 가지를 마지막으로 먹은 지 10년은 지난 것 같습니다.

3) 없습니다. 옆집 고양이가 우리 집에 가끔 놀러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이따금 하는데 실상 옆집엔 누가 사는지도 모르겠고 고양이도 안 키우는 듯합니다. 

4) 타블렛은 신티크 13HD, 소프트웨어는 클립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작업합니다. 신티크는 쓰다 보니 화면이 좀 작은 느낌이 들어 교체를 벼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래 쓰기도 했고요.


Q: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A: 작품을 무료로 연재하던 시절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이 독자분들에게는 감사하다는 말씀 꼭 전하고 싶네요. 재주껏 재밌는 만화 계속 그릴 테니 모쪼록 즐겨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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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미

< 만화평론가> 
* 2019 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상 신인 부분 
* 2019 한국예총 평론상 영화 부문
* 2020 서울시립대 영화평론 공모전 대학원생 부문
* 2024 부산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 저서 『안녕하세요 오즈 야스지로』,『포스트 시대의 영화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