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1, 마영신 작가의 <19년 뽀삐> ]
Q. 엄마들과는 완전 반대되는 작품, 반려견 이야기인 <19년 뽀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작품을 살펴보면 주인공 소년인 '병걸이'가 자라면서 겪는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와 반려견 '뽀삐'를 다루고 있는 만화입니다. 여기서 '뽀삐'는 사람처럼 나옵니다. 사람처럼 ‘병걸이형’이라고 부르고 뽀삐의 생각들이 만화 속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셨는지요?
A. ‘엄마들’이 끝나고 다음 작품을 할 때쯤 에 제 친구 생일이 있었습니다. 근데 그 친구 반려견인 뽀삐가 죽었어요. 제가 작품 속에도 그렸던 것처럼 비슷하게 편지를 장난하듯이 전해줬어요. 그걸 본 옆에 있는 친구들이 막 눈물을 흘리는 거에요. 그것을 돌이켜보면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꼭 강아지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아지를 내세워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뒤에서 전하는 방식으로 구성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당시 플랫폼에서는 기대하던 강아지 이야기가 아닌, 무거운 내용들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좋아하진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Q. 실제로 강아지를 키우신 적이 있으신지요.
A. (웃으며) 뽀삐를 한 5마리 키운 것 같아요. 늙어서 죽기도하고, 교통사고로 죽기도 하고, 병원에서 죽기도 하고요. 저는 강아지를 많이 키웠어요. 어릴 때, 딱 말티즈였는데요. 강아지 인형들과 함께 사왔는데 엄마가 동네 애견샵에 팔아버린 거에요. 길을 지나가면서 그 애견샵을 보는데 우리 뽀삐가 막 창문에서 저를 보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그 뒤로는 강아지를 더 이상 키우면 안 되겠다 싶었지요. 그러다가 결혼하고 나서 와이프가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집에 데리고 와서 같이 키우는데 노견이라 언젠가 또 다시 이별의 아픔을 경험할 거라 생각하니 팔자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Q. '뽀삐'와 '병걸이 형', 작품의 캐릭터들이 인상적입니다.
A. 작품을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습니다만 뽀삐는 사람이에요. 물론 자신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은 강아지이지만요. 사람처럼 혼자 독백을 하기도 하고, 다른 강아지들과 대화를 하기도 하지요. 늘 사람을 기다리고, 병걸이와 함께 놀고 산책하는 건 보통의 강아지들과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반려견으로 나오지요.
[ 그림 2, <19년 뽀삐> 캐릭터 소개 이미지 - 이미지 출처 알라딘 ]
Q. 요즘 많은 웹툰들이 OTT 등을 통해 영상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 이게 드라마로 제작되면 재미있겠다 싶은 작품이 있으면 어떤건지 궁금합니다.
A. 저는 '19년 뽀삐'가 나오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엄마들, 아티스트, 러브 스트리밍 등 작품들은 이미 영상화 판권이 팔렸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19년 뽀삐'의 경우 각색이 잘된다면 정말 재미있는 드라마가 나올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강아지가 말을 하고, 사람처럼 행동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어색할 것 같기도 합니다.
Q. 작가님은 웹툰과 출판만화, 대안만화(인디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중 웹툰은 한국에서 시작해서 글로벌로 확장되고 있는데요. 작가님은 웹툰 시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그냥 일개 만화가라서 이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조심스럽긴 합니다. 코로나 시절 크게 성장하는 가운데, 웹소설 원작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몸집을 더 키우며 해외 시장에서 경쟁을 하기도 하니까요. 글로벌 진출과 확장, 플랫폼들에게는 이것이 최고 목표일 것 같아요. 그 가운데 돈이 되는 작품들의 숫자만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제 솔직한 심정은 '아 여기 있고 싶지 않다'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거부할 수는 없잖아요. 독립, 인디 시장으로 가고 싶습니다만 그러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니까요. 뭐, 주식이나 코인으로 돈을 많이 벌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보통 잃어서....(웃음)
제가 처음 연재하던 시절에는 회당 3만원 이렇게 받기도 했어요. 그러다 회당 50만원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미리보기도 없던 시절이었는데요. 그리고 미리보기가 막 들어오던 시기에 진짜 자기 만화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돈을 버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내공이 없는 작가들은 성장세가 멈추는 것을 보게 되었지요. 뿌리가 깊지 않는 작가들은 결국에는 비바람이 확 몰아칠 때 견디기 힘들 수밖에 없잖아요. 저는 잡초 같은 작가에요. 대체적으로 돈을 보고 들어온 작가들은 거의 꼬꾸라지고, 만화가 좋아 열심히 노력하는 작가들이 성공하는 것을 많이 보기도 했어요.
지금은 스튜디오화되고 있고, 인디 만화는 돈이 안되는 분야라는 인식도 있거든요. 이 가운데 잡초처럼 열심히 자라기 위해 노력을 정말 많이 했어요. <엄마들>도 그렇고 <아티스트>도 그렇고, 플랫폼에서 연재할 때가 개인적으로 어려웠어요. 저랑 결이 비슷한 사람이 연재를 시작하는 것을 보면 힘든 시장인 것을 알기 때문에 걱정과 함께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Q. 작년 부천국제만화축제에 해외 만화 전문가로 프랑스의 리옹만화축제 감독인 니콜라 피카토(Nicolas Piccato)님이 오신적이 있습니다. 당시 프랑스 만화의 힘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다양성'이라고 답변하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 웹툰에 다양성은 꼭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A. 여러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들이 계속되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Q. 만화가로 살면서 느꼈던 보람이나 자부심 또는 어려움이나 좌절감 같은 것이 있으셨는지요?
A. 굉장히 많았습니다. 처음 단편집 나오고 저는 다 잘될 줄 알았어요. 08, 09년도에 상도 받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뭐 없나' 작품 제목처럼 '뭐 없는 삶'이 계속되었어요. 진짜 제목을 따라가더라고요. 당시 노가다고 하고, 노점상도 하고 별 짓을 다했던 것 같아요. 한번은 노점상이 잘돼서 작품 이름을 '노점상'으로 지으려고 했어요. 그때 이거 지으면 진짜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제 만화는 제 스스로 재미있다고 느꼈거든요. 근데 이게 기회가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분노는 아닌데 열등감이 막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이때 보통은 돈을 벌기 위해서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고, 그러면서 무너지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아티스트'에서 간접으로 보실 수 있어요. 일단 '내 만화가 짱이다'라고 계속 주입하고, 주변 동료들도 인정을 해주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버티다 저 같은 경우 '엄마들'이후에 그래도 쭈욱 나가게 된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비슷한 질문이 있었습니다만 만화가로서 만화와 작가님의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A. 동문서답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주식의 미래도 모르다 보니 만화 시장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웃음)
위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웹툰 원작 드라마는 계속될 것이고, 해외에서 확장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저는 잡초같이 생존해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