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1, '까대기'와 '제철동 사람들'의 이종철 작가 ]
< 작가가 되기까지 >
Q. 안녕하세요.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까대기(2019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와 <제철동 사람들>를 그린 이종철 작가입니다.
Q. 작가님을 만나면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바로 작가님은 어떤 만화를 가장 먼저 보았을까라는 질문입니다.
A. 아마도 5, 6살 정도로 기억합니다. <볼트론(백수왕 고라이온)>를 굉장히 재미있게 보고 미용실에 가서 볼트론처럼 사자 머리를 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 기억에 납니다. 다만, 미용실 사장님께서 그냥 바가지 머리로 해주셨지만요.
아마도 당시 보신 분들이 공통된 기억일 것 같습니다. 로봇에 대한 기억을 뚜렷합니다만 내용은 기억에 남지 않더라고요.
Q. 인생의 첫 만화를 질문 드린 이유가 여기서 앞으로 인생에서 작가의 길을 가는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음 볼 만화를 찾아보는 반면, 만화가가 되시는 분들은 보통 그걸 보고 따라 그리시더라고요. 아마도 작가님도 비슷한 길을 걷지 않으셨을까 생각됩니다.
A. 제가 축구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축구 하는 만화를 그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유행하던 장르가 <짱>, <럭키짱>과 같은 학원물이다 보니 학교를 배경으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리기도 했어요. 남학생들이 좋아하는 야한 그림을 그려서 친구들에게 주기도 했었지요. 당시 친구 몇 명이 제 그림을 팔라는 거 에요. 마음에 든다면서 당연히 비싸지 않은 가격입니다만 제 그림을 누군가가 사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 기쁘더라고요.
[ 그림 2, 남성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임재원 작가의 <짱>과 김성모 작가의 <럭키 짱> ]
Q. 작가님들이 보통 "이런 걸 그리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아"라는 순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더라고요. 작가님은 어떠셨나요?
A. 당시에도 현실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뭔가 그림으로써 지금 현실의 불만족을 풀어내고 싶다라는 욕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엇을 그려야겠다라는 생각보다는 무엇이라도 그려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던 사춘기 시절에 지금 이것을 그리지 않으면 이 불만이 해소가 되지 않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해소 방법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느낀 것이 제 친구는 노래방을 많이 갔었거든요. 그 친구에게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제가 만화를 그린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던 것 같아요.
Q. 당시 학창시절을 보면 '만화를 그린다'라는 것으로 혼나던 시기였잖아요. 실제 작가님은 어떠셨나요.
A. 소위 어른들이 말하는 '일탈'이나 '방황'을 되게 많이 했어요. 당시 '만화를 그리는 것'이 너무 좋은데, 어떻게 해야 잘 그릴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만화가가 될 수 있는지를 지방에서 정보를 찾을 수 없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정보의 불만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어른들이 보기에는 일탈이나 방황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Q. 작가님께서는 '내가 만화가가 반드시 되어야겠다'라고 결심하는 순간이 있었나요. 있었다면 언제였나요.
A.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만화가라는 직업 자체가 굉장히 거대해 보였어요. 만화라는 것이 글과 그림의 조합이잖아요. 그림은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그려왔고, 연습도 많이 했어요. 당시에 제가 만화가가 되겠다고 주변에 이야기를 했지만 '과연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내 만화를 누군가가 읽었을 때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배울려고 노렸했습니다. 제가 20살에 군대를 입대했을 때도 군대 내에서 만화 이론서를 공부하고요. '도대체 만화가 무엇이지?'라는 것들을 군대에서 독학하면서 배워 나갔습니다. 그 때 만화의 다양한 장르를 보면서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주간) 연재하는 만화가보다는 그래픽노블 작가는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꿈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Q. 한국에서 그래픽노블 작가가 되는 것이 쉽지 않는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국내에서 만화라는 것이 일단 과거 연재하시던 작가님들부터 현재 웹툰 시대까지를 쭈욱 보면 한국의 그래픽노블 작가가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면 본격적으로 그래픽노블 작가로서 만화를 그리시게 된 시기는 언제쯤인지 궁금합니다.
A. 제가 입대한 군대는 해병대였습니다. 일병 시절부터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제가 그전에는 공부도 잘 안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만화이론부터 해부학까지 다양한 도서를 읽으면서 공부를 했었습니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것이 '그래픽노블이라는 장르로 내가 만화를 그린다면 이 작품이 문학성을 띄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소설부터 한국의 현대사까지 다양한 책들을 읽었습니다. 만화로 보여지는 문학작품을 만들고 싶다 라는 생각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었습니다.
[ 그림 3, 이종철 작가가 그림 작가로 참여한 <바다 아이 창대> ]
Q. 보통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 결정하고 관련 공부를 한다면, 공부를 하시면서 내가 어떤 길을 가야겠다라고 선택하신 거잖아요. 이런 방식은 한국에서 보자면 선구자적인 움직임이지 않나 싶습니다. 장르적으로도 보자면 그래픽노블하면 북미, 유럽 같이 해외에서 해야 할 것 같은 서양의 장르라는 인식이 있는 가운데 선택하신 것 자체도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만화가의 길을 처음 시작하셨을 때가 '보리' 출판사의 <바다 아이 창대>라는 작품에 그림 작가로 참여하실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A. '바다 아이 창대'는 어린이 만화 계약을 하고 그림 작가로 참여하게 된 프로젝트입니다. 이 작품은 전부 수작업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그래서 종이에 펜선으로 직접 선을 그어가면서 그렸던 작품입니다. 당시에는 웹툰 시장에서 글, 그림 작가들이 어떻게 협업하는 저는 잘 몰랐거든요. 그래서 글 작가님이 저에게 연극 형식의 대본을 주면 그것을 제가 해석하고, 그림으로 풀어내는 작업 방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대사들을 다 말풍선으로 그려 넣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작품이 연재 경험이 쌓인 후에는 제가 원하는 연출에 맞는 대사, 문장 등을 골라서 작품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였습니다.
당시 책으로 만화를 출간을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지금처럼 웹툰이나 만화 학원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만화를 가르침 받지도 못하였었거든요. 만화 학과 출신도 아니다 보니 독학으로 저의 만화가의 길을 개척하게 되었지요. 군대에 있을 때 읽었던 만화 이론서 중에 윌 아이스너의 "만화가라는 것은 글과 그림을 함께 가져가는 사람이다"라는 의미의 문장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림 작가로 참여하는 제 자신에 대한 불만족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당시에 직업을 물어보시는 분들에게 '그냥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라고 답변하기도 했었어요. 다행히도 '바다 아이 창대' 작업을 하면서 그림에 대한 연출 경험을 많이 쌓았고, 이제부터는 내가 원하는 글과 그림을 함께 가져가는 작업을 해야겠다 라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나중에 까대기 책을 출간하고 다시금 윌 아이스너의 책들을 읽어보니 제가 이해한 내용과는 좀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아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구나,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Q. 실제 만화, 그림을 그리는 공부는 어떻게 하신 것인가요?
A. 그림 공부는 처음에는 정말 닥치는 대로 했어요.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으면 따라서 그리는 것도 많이 했었습니다. 다행히 당시에 케이블 방송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투니버스라는 애니메이션 방송사가 생겨났고, 밤마다 유럽 만화나 고전, 명작 만화를 소개해 주고 했었거든요. 그것을 매일 보면서 좀 더 다양한 세계를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계관이 확장되면서 기존에 일본 만화만 보던 제 시아가 넓어지고, 다른 여러 나라의 작품들을 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독학을 하면서 항상 했던 질문이 "과연 이종철만의 만화는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만화가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었지만, 돌이켜 보면 '한국적인 만화가'가 무엇인지 잘 몰랐던 시기였어요. 요즘 드는 생각은 당시 꿈꾸던 형태의 만화가가 되었구나 싶었습니다. 꿈은 이루어졌구나 라는 것입니다.
Q. 만화가 분들과 이야기 하면 가장 부러웠던 점이 그것인 것 같습니다. 보통 이야기를 하다 보면 꿈을 향해 달려가는 또는 꿈을 이루고 개신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A. 만화가가 꿈이었는데 만화가가 되었습니다. 꿈은 이루었죠. 다음은 '좋은 만화와 재미있는 만화를 하고 싶다'인데. 이건 너무 어렵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