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욋일이 많다고 창작 활동을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인기가 떨어져서 컷 바깥의 일에 부러 나서는 것도 아니다. 출판 만화 시절의 ‘야후’에서부터 웹툰 시대로 넘어오며 ‘이끼’, ‘내부자들’, ‘미생 1부’, ‘인천상륙작전’, ‘파인’, ‘미생 2부’ 등 끊임없이 인기작과 화제작을 그려오고 있다. 만화계 일이라면 버선발로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웹툰 심의 규제에 반대하는 만화계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아 거리에도 나갔다. 후진 양성을 위해 대학 강단에도 섰다. 강풀 등 서 너 명의 동료와 함께 시작했던 만화 작가를 위한 에이전시 누룩미디어도 꾸리고 있다. 이제는 식구들이 40명 가까이 불어났다. 필생의 역작으로 꿈꾸고 있는 100권짜리 교양 만화 프로젝트 ‘오리진’도 첫 권 발간이 눈앞이다. 장대한 ‘오리진’ 프로젝트를 위해 위즈덤하우스와 손잡고 만화 전문 출판사 바이브릿지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눈 코 뜰 새 없을 것 같은 그가 한국만화가협회 27대 회장을 맡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작업실이 있는 분당에서, 누룩미디어가 있는 신사동 가로수길, 출판사가 있는 홍대, 만화가협회가 있는 남산을 오가다 보가다 보면 일주일을 초단위로 쪼개 써도 모자랄 지경일 것으로 보인다. 윤태호 작가, 아니 윤태호 신임 회장을 한국만화가협회 첫 이사회가 열리던 날 서울 남산에 있는 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Q. 다들 건강을 궁금해 할 것 같다. 팔꿈치 때문에 ‘미생’ 연재를 중단한지 열 달이 됐는데.
A. 병원을 네 군데 쯤 옮겼다. 일단 치료에 집중해야 하는 데 워낙 일정이 많아 병원 가는 시간을 만들지 못하다 보니 치료에 집중하지 못했다. 검도를 하다가 상태가 심해지기도 했는데, 병원에서 MRI도 다시 찍어보자고 하는 데 그 시간조차 못 낼 정도다. 낫기를 마냥 기다리기는 힘들 것 같아서 곧 ‘미생’ 연재를 재개할 생각이다.
Q. 한국에서 가장 바쁜 작가이면서, 또 몸이 좋지 않아 연재를 중단하고 있는 마당에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이라는 중책까지 맡게 됐다. 그 배경이 궁금하다.
A. 최대한 미뤄보려고 엄청나게 거부를 했었다. 후배 서른 몇 명이 홍대 사무실로 찾아와 요청했을 때도 거절하고 그랬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 안하고 한가해졌을 때 하는 게 만협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또 선후배, 동료들이 이번에는 당연히 윤태호가 한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어서 저 혼자만의 생각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하나 추가된다고 해서 네게 그렇게 큰 피해 있나 싶기도 해 회피하는 게 치사해지는 기분이었다. 기왕 하는 거 열심히 하자고 결심했다. 물론, 일을 벌려 놓은 게 많아 이와 관련한 주변 분들은 만류하기도 했다. 그런 분들에게는 일일이 양해를 구하며 동의를 얻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큰 대의명분이 있다기보다는 때가 와서 하게 됐다. 피할 수 있는 명분이 없었다.
Q. 최근 들어 만협 회장이 부쩍 젊어진 느낌이다.
A. 전임 이충호 회장부터인데, 과거 선배들에 견줘 평균적으로 서너 살 어린 나이에 맡는 것 같다.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로는 선생님 세대, 제 윗세대의 인력풀이 많지 않아 공백이 있다는 점이다. 만협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중간 세대들이 매우 적어서 여기까지 내려왔다. 또 만협에 젊은 작가들이 많이 들어온 것도 원인이다. 요즘 웹툰이 만화계의 대표성을 띄다 보니 만협 차원에서도 외연 확장을 위해 젊은 웹툰 작가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이게 됐고, 새로운 요구가 생겨났다. 선배 세대와 젊은 세대 양쪽에서 중간 역할 할 수 있는, 양쪽 히스토리를 잘 아는 사람이 회장을 맡는 게 낫지 않느냐는 분위기가 있었다. 사실 그런 관계 때문에라도 피하기 어려웠다.
Q. 현재 만협 회원은 어느 정도인지.
A. 1300명가량이다. 조관제 선생님이 전전 회장을 맡았을 때 웹툰, 학습만화, 스토리 작가 등을 망라해 300명 정도 늘었고, 전임 이충호 회장 때 100여명이 또 늘었다.
Q. 만화계에는 전통적으로 만협과 우리만화연대 두 단체가 있었고, 웹툰 시대를 맞아 새로운 단체도 생겨나고 있다. 요즘 상황을 보면 굳이 나뉘어져 있어야 하나 싶기도 한데.
A. 여러 단체들을 하나로 모으면 밖에서는 힘이 세보일지는 모르겠는데 각자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는 데 에너지가 많이 소비될 것이다. 잘게 쪼개져 있는 게 오히려 더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크게 다뤄야 할 이슈가 있다면 그때 연대하면 된다. 만협은 이충호 회장 때 웹툰, 여성, 스토리, 어린이‧교양학습, 카툰, 국제 출판 등의 분과 체계로 전환하며 만화계 대부분의 영역에 대해 놓치는 부분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 만협이라는 울타리에 들어오고 싶지 않은 분들,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분들까지 굳이 끌어들이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Q. 과거 다른 단체 사례를 보면 세대교체는 세대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만협은 어떠한지.
A. 과거에도 인기 만화와 유명 작가들이 많았지만 만화 자체는 불량식품처럼 취급받으며 탄압을 많이 받았다. 선생님들이 만협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나 혼자 어려운 길을 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협회가 필요했다. 자주 얼굴도 보고 친목도 쌓고 연대도 하며 동지애를 갖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선생님들은 아직도 협회가 그런 쪽으로 동료애, 연대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문하생 출신이 극히 적어진 요즘에 젊은 작가들 쪽에서는 연대의 중요성도 공감하지만 연대에 앞서 작가의 권리가 먼저 보호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협회가 작가들에게 어떤 것을 해줄 수 있는지, 어디까지 작가들을 대리할 수 있는지 관심이 많다. 협회가 웹툰 시장 내에서 작가의 권익을 위해 많은 발언을 해주기를 바란다. 선배와 후배 세대 사이에는 그런 차이가 있다. 그런데 작가로 활동하는 절대적인 기간이 짧은 편인 만화계에서는 세대교체를 꾸준히 경험해 왔다. 그래서 선배들 입장에서는 젊은 후배 작가들에게 안 좋은 시선을 갖기보다 동병상련의 마음을 갖고 있다. 후배들이 이 길에 들어 왔다는 것에 측은지심을 갖고 잘됐으면 좋겠다, 후배들이 어렵다면 나서서 돕고 싶다는 책임감이 있다. 기본적으로 후배들에게 미안해하며 또 열심히 하는 후배들에게 고마워 하는 선배들이 많기 때문에 세대갈등은 없다.
Q. 원로 작가들과 인터뷰를 해보면 후배들과의 교류를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다.
A. 만협 회장으로 해보고 싶은 게 바로 그런 부분이다. 중견 이상 원로 작가들을 일 년에 한 두 번 송년회 같은 자리에 모으는 게 아니라 이분들이 화석화 되지 않고 이분들의 발언이 후배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세미나까지는 아니더라도 토크 콘서트 정도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과거 작가건 지금 작가 건 만화가는 인기를 팔아먹고 사는 직업이라 항상 대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토크 콘서트를 통해 선배들은 선배들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복기하고, 후배들은 후배대로 선배들의 삶을 들으며 작가로서 향후 계획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 젊은 작가들과 선생님들 사이의 정서적 유격을 줄여보는 게 개인적인 목표다.
Q. 임기 3년에 중점을 두는 또 다른 일들은 무엇일까.
A. 전임 회장 때 다양한 사업을 많이 펼쳐 놓았다. 그 일들을 제대로 안착시키는 게 나의 임무이기도 하다. 사업적으로 다른 무엇인가를 크게 벌려볼 생각은 없다. 추가한다면 아까 언급했던 선후배 사이의 유격을 줄이는 일이 플러스알파 정도로 들어갈 것 같다.
Q. 가장 빨리 안착되어야 하는 사업은 무엇인지.
A. 우선 가장 열심히 준비해서 잘해야 하는 게 웹툰 자율규제위원회다. 지난해 만화의 날에 웹툰 관련 대표 플랫폼 네 곳과 업무협약을 맺었고 추가적으로 회원사들을 모으고 있다. 기본적으로 정관과 규칙, 운영 방안 등을 마무리 한 상태다. 상반기 시행이 목표다.
둘째로 네이버와 함께 하고 있는 한국만화거장전도 의미가 있는 사업이다. 거장전에 참여한 선생님들에게는 큰 동기 부여가 되는 것 같다. 웹툰 댓글을 처음 경험하며 응원 댓글을 접하고는 고무된 경우도 많다. 이상무 선생님의 경우, 거장전 참여 뒤 웹툰을 매우 흥미로워 했고, 꽤 관심을 두기도 했는데 돌연 세상을 떠나셔서 안타까웠다. 네이버와 2년 정도 이 사업을 했는데, 플랫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거장전이 발판이 되어 정기 연재를 시작한 선생님들은 아직 없다. 하지만 사고의 전환이 이뤄진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본다. 웹툰에 대해 갖고 있던 불신과 우려가 해소하고 후배 웹툰 작가들을 많이 이해하는 전기가 됐다. 또 요즘 독자가 원하는 작품과 내가 할 수 있는 작품 사이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 지점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세 번째는 협회 내 분과 체계의 정착을 꼽을 수 있겠다.
그리고 일본, 한국, 대만, 중국, 홍콩 만화계가 꾸리는 세계 만화가 대회가 있다. 기존에는 친목 위주의 행사였는 데 웹툰이 글로벌화 되고 있기 상황에서 세계 만화가 대회가 친목 이상의 옷을 입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요즘 국내 웹툰 플랫폼이 글로벌화하고 있는데 그 뿐만이 아니라 국내 작가들의 글로벌화도 이뤄졌으면 한다.
Q. 웹툰 자율규제위원회는 어떤 매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 궁금하다.
A. 자율규제위원회가 스스로 나서서 모든 작품에 대해 검토하고 심사하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들어온 민원들을 대상으로 한다. 방심위에서 우리 쪽으로 민원 작품을 통보하면 위원회에서 작가와 플랫폼의 입장을 청취해 방심위와의 의견을 조율하는 게 핵심이다. 거기에 더해져서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관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는 게 주된 목표다. 요즘은 일방적인 표현의 자유만을 외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대중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의 수위에 대해 갖가지 해외 사례가 있다. 해외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하고, 또 한편으로는 대중을 위한 어떤 보호 장치 갖고 있는지 연구해 우리 사회에 있어서도 창작자들의 표현의 자유와 일반 대중들의 지키고 싶어 하는 표현의 수위에 대한 거부 권리를 잘 조율해 나가고 싶다.
Q. 올해는 만화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 5주년이다. 제정 당시에는 만화의 사회적 지위를 끌어올리는 등 상징적인 차원에 의의를 두다 보니 실속은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제대로 된 만화 진흥을 위해서는 일부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만들어진 시행령을 보면 정부 차원에서 5년 마다 만화 발전 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있는데 만협 내부에서는 어떤 움직임이 있나.
A. 만협 차원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만화계 전체, 또 정치계 쪽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하는 부분인 것 같다. 지금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인데, 새 정부가 출범하거나 문화체육관광부가 안정화가 되면 논의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부분은 제가 확실하게 인지를 못하고 있는 부분인데 내부적으로 확인해서 만협이 어떤 스텝으로 나아가야 할지 봐야할 것 같다.
Q. 표준 계약서 개선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은데.
A. 표준계약서도 실정에 맞게 업그레이드가 계속 되어야 한다. 과거에 웹툰은 대형 포털의 일부 서비스였다. 그러다 보니 연재와는 별도의 사업을 위한 구체적인 조직이 없는 상황에서 2차 사업권에 대한 부분을 연재 계약서에 포함시킨다는 문제 제기에서 표준계약서의 문제가 시작됐다. 그래서 영화, 드람, 애니메이션 등 각각의 2차 판권 계약을 구분하자, 이러한 생각이 그동안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많은 전문 플랫폼 생겨 플랫폼 자체의 유료화만으로는 만족스런 수익을 내지 못하고,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려면 그 이상의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가져가고 싶은 상황이 됐다. 작가들 입장도 복잡하다. 업체도 많을뿐더러 스스로 핸들링한다고 해서 안정적이라는 보장도 없고 플랫폼에 그냥 권리를 주고 권리를 준만큼 추가 보상을 받는 경우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결국 만화가는 프리랜서인데, 협회가 나선다고 해서 각자 계약서에 사인한 작가 이상의 책임을 질 수가 없다. 다만 작가가 피해를 호소했을 때 얼마나 권리를 보호해줄 수 있는 서류적인 장치를 해주느냐가 협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업체들이 2차 판권 등을 가져간다고 했을 때 세세한 형식미를 담보하는 계약서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업그레이드 필요가 있다. 각각의 업계 나름대로 합의점을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표준계약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업체와 작가가 서로 양보하고 지킬 것은 지키며 존중하자는 게 표준계약서의 핵심이다. 또 그렇게 합의해서 사인한 것은 서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 계약서를 보면 디지털 전송권이라는 말로 수많은 권리가 한꺼번에 넘어가는 일 비일비재했는데 앞으로 디지털 전송권은 무엇 무엇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을 한다든가 계약서에 명시하고, 현시점에서 나타나지 않은 기술까지도 포함 되는 것인지 아닌지 이런 것등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작가 입장에서는 그런 것도 촘촘하게 구분하자는 것인데 사업자에게 무리한 요구는 아니라고 본다. 결국 합리적으로 가자는 것이다.
Q. 현대사를 통해 검열 문제를 가장 혹독하게 겪었던 게 바로 만화계다.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더 크게 다가 왔을 것 같다. 블랙리스트에 직접 이름이 올라가기도 했는데, 만협 내부에서는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
A. 만화계만 목소리를 따로 내는 것이 아니라 문화 창작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정확한 판결이 나올 때까지 말을 아끼고 있는 상황이다. 결과가 나오면 당연히 만협 차원에서 성명도 나오고, 또 외부 단체들과 자연스럽게 연대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입장에서야 너무 열 받는 일이다. 일단 나의 경우 ‘이끼’나 ‘미생’이 잘 되고 나서는 제 이름으로 정부 지원 사업을 가급적 신청하지 않았다. 그러한 지원은 후배들이나 이렇게 힘든 상황인데도 굳이 출판 만화를 해보려는 분들, 또 만화계가 세심하게 신경 쓰지 못해온 리뷰나 비평 쪽 일을 하는 분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해서 내가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불쾌한 것은 이런 거다. 누가 어떤 작품을 할 때 주변에서 압박이 없냐고 물어보거나 저의 경우 ‘내부자들’ 때 스스로의 판단으로 연재를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 압력으로 중단했다는 루머가 돌았다. 그런 것들을 평소에는 사람들 상상력이 좋다고 여겼는데 이제 그러한 일들이 상상력의 영역이 아니라 실체가 있었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바로 그 지점이 불쾌하다. 박근혜 정부에서만 있었을까. 그런 루머들이 더 이상 루머가 아니었다는 게 황당하고 화나는 지점이다.
Q. 플랫폼 단위로, 또 작품 단위로 한국 웹툰의 해외 진출이 활발하다. 최근에는 앙꼬 작가가 앙굴렘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 만화의 세계화, 어떻게 보고 있는지.
A. 물질적으로 국경을 넘어야 하는 출판 만화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감당해야하기 때문에 팔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거나 팔려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 의식이 있지 않은 작품들은 나갈 수 있는 확률이 적었다. 대부분이 그랬다. 그런 부분이 있어서 해외 진출이 매우 소극적으로 이루어 졌다. 몇몇 작가 분들이 앙굴렘 페스티벌을 통해 프랑스에 진출하는 정도였다. 이번에 앙꼬 작가가 굉장히 큰 성과를 얻었는데 박수쳐주고 싶고 감사드리고 싶다. 웹툰은 일단 경계가 없는 전자 신호가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물질적인 장애가 없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 만화의 세계화를 본다면 자국 만화에 집착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외국으로 우리 작품을 팔고 싶을 때는 그 나라의 만화 인프라를 만들어주는 것도 포함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자국 만화를 제작해내는 작가나 출판사가 매우 적은 곳에 진출할 때 만화에 대한 이해를 먼저 북돋으며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 하나를 파는 게 아니라 우리 문화가 함께 나가야 하는 느낌이어야 맞는 것 같다. 작가들도 더 이상 우리가 대한민국, 정확하게는 남한의 작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되는 시기라고 본다. 지구인이라는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 인간 보편성에 대해서 깊게 사유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세계 시장에서만큼은 도태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Q. 개인 작업 쪽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다. 1년 전 ‘미생’ 2부의 첫 단행본이 나왔을 때 간담회에서 많은 계획들을 언급했었는데.
A. 연재를 중단한 상황이었지만 ‘미생’ 관련 취재는 계속해오고 있었다. 곧 연재를 재개할 생각이다. 남극 세종 기지에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 미디어 믹스 작품이나 열기구 관련 작품 등은 팔이 아파 미뤄졌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해 11월에는 일본 사가현에 가서 열기구 페스티벌을 취재하기도 했다. 100권짜리 교양만화 시리즈 ‘오리진’의 첫 권이 이르면 4월 늦어도 상반기 내로 나올 예정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할 것 같아 7년을 목표로 했는데 팔이 아파도 꾸준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집단 창작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편집자 분들과 머리를 맞대고 수 차례 회의를 거쳐 각 권에서 다룰 주제를 잡고 만화 페이지에 대한 가이드와 한권에 대한 이야기를 설계하고 콘티를 잡고 편집자들과 논의에서 토와하면 그림 작업에 들어가고 그림 작업은 ‘미생’처럼 분업으로 진행한다. 각 권마다 총 200페이지 볼륨으로 만들고 있는데 150페이지는 만화로 구성하고 나머지 50페이지는 각권의 주제에 맞게 전문가가 집필한 내용이 들어갈 예정이다. 전문가의 글에는 따로 그림이 들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