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부터 웹툰이 영화, 드라마, 음악, 게임의 뒤를 이어 한류 콘텐츠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심심치 않게 나왔다. 그러한 전망은, 한동안 그저 전망에 그치다가 최근 현실화 되어가고 있다. 해외에서도 인기를 끄는 웹툰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한 것. 작품 자체의 힘도 있었겠지만 해외에도 디지털 인프라가 구축되며 국내 포털과 웹툰 전문 플랫폼들이 본격적으로 시장 개척에 나선 것과 무관치 않다. 그런데 이나래(30) 작가의 ‘허니 블러드’는 플랫폼 자체의 해외 진출에 편승하지 않고 해외에서 성공을 거둔 케이스라 눈길을 끌고 있다.
뱀파이어와 외톨이 여학생의 로맨스를 그리며 그 이면에서 집단 따돌림 등 사회 문제도 건드린 ‘허니 블러드’는 2014년 10월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되며 인기 1위를 달려온 작품이다. 중국(콰이칸), 대만(탑툰), 일본(코미코), 영미권(태피툰)에도 소개되어 좋은 반응을 얻는 등 글로벌 웹툰이 됐다. 중국의 경우 현지 콘텐츠 업체와 드라마, 영화 제작을 위한 영상 판권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례적으로 초판 5만부의 출판 계약도 이뤄졌다.
지난해 말부터는 델리툰을 통해 프랑스어권에도 소개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연재 한 달 만에 구독자가 15만명을 웃돌며 델리툰 역대 최고 인기 작품으로 등극했다. 델리툰은 지난 1월 말 열렸던 세계 최대 만화 축제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허니 블러드’를 적극 마케팅하기도 했다. 프랑스어 출판 계약도 이뤄져 단행본으로도 발간될 예정이다. 이번에 앙굴렘에 다녀온 이나래 작가를 부천만화창작센터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허니 블러드’ 연재 종료를 일주일 앞두고 이뤄졌다.
Q. 앙굴렘에 다녀온 소감이 궁금하다..
A. 앙굴렘은 예술 만화를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저는 어느 정도 상업 만화를 표방하다 보니 앙굴렘이 신선했고,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재미있었다. 델리툰 부스로 찾아오는 분들에게 게릴라식으로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또 웹툰 작업을 시연하는 드로잉 쇼도 했는데, 아무래도 수작업을 많이 하는 곳이라 그런 지 신기하게 보는 것 같았다.
Q. ‘허니 블러드’는 국내 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끈 것으로 알고 있다.
A. 장편 스토리를 직접 쓴 것은 ‘허니 블러드’가 처음이다. 작화를 맡아 미국에서 연재한 ‘맥시멈 라이드’의 경우 미국 소설이 원작이라 나와는 정서가 100% 맞지는 않았는데 내 정서에 맞는 작품을 했는데도 한국 말고도 해외에서 좋아해주고 공감해줘서 정말 감동적이었다.
Q. 원래 글로벌 기획이었는지 궁금하다.
A. 그렇지 않다. 그냥 내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 뿐 그런 계산을 하지는 않았다.
Q. 같은 아시아라도 문화에 미묘한 차이가 있고, 특히 동서양은 간격이 큰데 ‘허니 블러드’가 글로벌하게 인기를 얻고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A. 저는 왕따 등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안 좋은 면을 보여주려 했다. 한국적인 배경이 해외에서는 판타지로 인식되고, 또 기본적으로 하려고 했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나라가 달라도 산다는 게 비슷 비슷하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었을 것 같다.
Q. ‘치즈 인 더 트랩’, ‘허니 블러드’, ‘왕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등 순정만화가 웹툰 시대를 맞아 부활했다는 평가도 있는데.
A. 내 작품을 순정 만화라는 장르로 굳이 구분 짓고 싶지는 않다. 사랑 이야기는 사람이 살면서 기본적으로 겪는 것이니까. 장르도 유행을 탄다고 생각하는 데 순정만화도 세월이 흐르며 독자들이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장르가 아니었나 싶다.
Q. 작품이 인기를 끌면 연재를 계획보다 늘리는 경우도 많은데 ‘허니 블러드’는 어떤지.
A. 4년 째 그려오고 있는 데 사실 다음 주가 마지막 회다. 2부로 마무리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기 때문에 굳이 더 늘려 연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했으면 섭섭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아 홀가분하다.
Q. ‘허니 블러드’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
A.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며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니 블러드’에서 남자 주인공은 오래 살아온 뱀파이어다. 중세 때 마녀사냥을 겪기도 했다. 중세의 마녀가 지금 현실에서 왕따를 당하는 여학생과 모양만 달라졌을 뿐 서로 닮았다고 느꼈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서로 위로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며 그 안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Q. 이름 석 자를 알린 계기는 ‘맥시멈 라이드’ 때문이다. 무명의 한국 작가가 미국 연재 작품을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A. 스무 살 때 ‘에로틱’이라는 코믹 무크지에 단편을 실었는데 그걸 본 미국 만화 잡지 편집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국 분인데, 제 연락처를 몰라 블로그 쪽지로 연락을 해왔다. 처음에는 사기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새로 시작하는 잡지에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을 연재하고 싶다며 의뢰 받아 그리게 된 게 ‘맥시멈 라이드’다. 2007년 작업을 시작해 이듬해부터 연재했다. 당시에는 국내에선 원작 소설이 1권까지 밖에 나오지 않았었는데 회사 쪽에서 번역해준 것을 바탕으로 직접 각색한 뒤 작업을 해 미국으로 보내곤 했다.
Q. 뉴욕 타임즈 만화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는데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는 현재 9권까지 나왔는데 국내에선 3권까지 번역 출간되고 멈췄다.
A. 정서 차이가 아닐까. ‘맥시멈 라이드’가 동양권에서는 흔한 플롯이지만 그쪽에서는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히어로물은 히어로물인데 읽어 보면 마블과는 좀 다른 느낌이 있다.
Q. ‘맥시멈 라이드’를 하며 얻은 것은 무엇인지.
A. 시나리오 공부를 할 때 다른 사람의 작품을 각색해보는 게 연습이 많이 된다. 아무래도 그런 경험이 이번 작품을 하면서도 많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
Q. 미국에서 다른 작품도 해보자는 러브콜은 없었는지.
A. 다른 작품을 위한 스토리를 쓰는 중이다. 작화는 아직 미정이다. 한국을 무대로 한 재난물을 생각하고 있다. 사실 남편이 작화를 맡으려고 했는데, 남편도 글, 그림을 다해보고 싶다며 신작에 들어가는 바람에 어쩌면 제가 그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나래 작가는 부부 만화가로, 그의 남편은 ‘전설의 주먹’에서 그림을 맡았던 이윤균 작가다)
Q. 요즘은 스토리도 전문화, 분업화 하는 경우가 많은데 직접 쓰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A. 개인적으로는 그냥 만화 자체가 글, 그림이 같이 되어야 시너지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림만 그리는 것은 제에게는 좀 공허한 감이 있는 것 같다.
Q.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도 만화 전공인 것을 보면 진로를 일찌감치 정한 것 같은데.
A. 초등학교 때 전학을 갔더니 애니메이터가 꿈인 오빠를 둔 친구가 만화를 그리고 있는 것을 보고 친해지려고 시작했다. 5학년 때 쯤에는 만화를 배우고 싶은 데 학원이 없어서 한 만화가선생님의 화실에 다니며, 문하생 개념은 아니고, 레슨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때 펜대를 처음 잡았는데 1년간 직선만 열심히 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컷으로 된 만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무슨 용기가 나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6학년 때 원고를 들고 직접 출판사를 찾아갔다. 당시는 독자 만화 엽서를 보내고 뽑히면 선물을 받던 시절이었는데 선물을 받으러 출판사를 찾아가며 원고까지 함께 들고 간 거다. 겁이 없었다. 제 원고를 본 편집자 분이 만화가가 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고, 그런 게 인연이 되어서 중학교 3학년 때 ‘주니어 챔프’의 삽화가로 데뷔했다. 담당 기자들이 후기를 쓰면 그걸 만화로 옮기는 한 페이지짜리였다. 그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화를 하게 됐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만화 그리는 것을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게 컸던 것 같다.
Q.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그림을 잘 그렸는지 상상이 안 된다.
A. 그림을 잘 그렸다기보다 들고 간 원고가 이야기가 완결된 단편이었는데 원래 단편은 끝내는 게 어렵지 않나. 그런 점을 높이 샀던 것 같다.
Q. 어릴 때 어떤 작품을 즐겨봤는지.
A. 일본 작품이 많았다. ‘슬레이어즈’를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보고 그 다음에 만화 단행본으로 본 기억이 있다. 연재했던 곳이 바로 아마 ‘주니어 챔프’였을 거다. 딱 한 작가 분에 꽂혀서 보지는 않고 이것저것 많이 봤다. 국내에서는 어숙일 작가님을 좋아했다. 인어가 나왔던 ‘마린 블루’가 생각난다. ‘타로 이야기’를 그린 모리나가 아이 작가의 ‘나와 그녀의 XXX’도 좋아했다. 개그물인데, 무거운 것보다는 가벼운 작품을 좋아했던 것 같다.
Q. 이야기를 들어 보니 종이로 만화를 시작한 것 같은데.
A. 종이로 시작해 중학교 때 태블릿이 나와 디지털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저희 세대가 종이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맥시멈 라이드’는 종이 작업이었다. 스크린톤만 포토샵으로 했다. 반면 ‘스위티 밀키 프로포즈’는 100% 디지털 작업이었다. ‘맥시멈 라이드’는 손 느낌이 나는 거친 느낌을 주려고, ‘스위티 밀키 프로포즈’는 아이들이 보는 만화라 깔끔하고 정제된 느낌이 들게하려고 디지털을 썼다.
Q. 실질적인 장편 데뷔작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정식 데뷔를 해보려고 준비했는데 잡지가 하나둘씩 없어지던 시절이라 쉽지 않았다. . 제가 가는 잡지마다 없어지곤 했다. 데뷔작은 ‘견제남녀’라는 웹툰이다. 한 스포츠지에서 2006년부터 2년 안되게 연재했다. 남자 2명, 여자 2명을 주인공으로 한 로맨스 코미디인데 유영욱 작가님이 글을 쓰고 저는 그림만 그렸다. 그걸 하고 초등학교 여학생을 겨냥한 동화 같은 판타지 로맨스물인 ‘스위티 밀키 프로포즈’를 기획하던 중에 ‘맥시멈 라이드’ 관련 연락이 와서 두 작품을 동시에 작업하게 됐다.
Q. 애니메이션 작업에도 관심이 있는 것 같다.
A. 데뷔 직전에 아르바이트로 TV 애니메이션 캐릭터 디자인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서 그쪽 분들이 만화 작업도 하고 싶다고 해서 슈퍼바이저로 자문 정도 해준 적이 있다. 실질적인 애니 작업은 잘못하는 데 디자인을 하거나, 아무래도 애니메이션 고를 나왔기 때문에 친구들이 작업하는 것도 많이 봤고,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는 것도 좋아하니까 그래서 제작에 참여하는 것에도 흥미가 많이 있다. 마음은 열려 있다.
Q. 만화 작업은 혼자 하는지.
A. 어시가 두 명이 있다. ‘맥시멈 라이드’를 할 때부터 어시를 한 명 뒀다. 주간 연재 들어오며 두 명을 유지하고 있다.
Q. 스토리 창작은 공부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어떤 식으로 하는지.
A. 영화도 많이 보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많이 보는데 저는 무엇보다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많이 하며 소재를 얻는 편이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한다. 화실에만 있으면 자기 세계만 강해지기 쉬워 되도록 나가려고 한다. 남편과는 가급적 일 이야기는 안하려고 한다. 물론,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지만 작가끼리 있으면 존중과 오지랖 사이가 애매해서 서로 조심하는 편이다.
Q. 웹툰 하면 아무래도 포털이 아닌가 싶다. 작품 제의가 왔을 법도 한데.
A. ‘맥시멈 라이드’ 등의 경력은 있지만 한국에서 네임 벨류가 없고 제 스토리로 검증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베스트 도전을 고민하던 중에 씨앤씨레볼루션을 만나 ‘허니 블러드’를 하게 됐다. 출판 잡지 세대라 그런지 포털마다 색깔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색깔에 어울리는 작품이 떠오르면 할 수도 있겠는데 포털이나 플랫폼 이름만 보고 하고 싶지는 않다.
Q. 또래들은 대개 정체성을 웹툰 작가에 두고 있는 것과 다른 느낌이다. 출판 만화의 마지막 세대여서 그런가.
A. 지금도 출판 만화는 계속되고 있으니 부흥기의 마지막 세대가 맞을 것 같다. 주변에서는 웹툰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었는데 ‘맥시멈 라이드’를 하게 된 계기가 부끄럽게도, 흑백 만화(출판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로서 흑백 만화를 꼭 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만화는 컬러냐 흑백이냐, 디지털로 보느냐 책으로 보느냐, 독자들과 만나는 방식이 문제지 만화 그리는 것은 출판 만화든 웹툰이든 똑같은 것 같다.
Q. 이전 인터뷰를 보니 만화를 통해 한국 문화를 알리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던데, 작품을 하며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는지.
A. 크게 대단한 것은 아니고, 좀 옛날에 생각했던 건데, 잡지 만화를 연재했을 때 보통 제 친구가 입을 법한 교복을 그렸더니 편집자가 안 예쁘니 일본 만화에 나오는 교복처럼 그려보라고 했다. 그런 게 싫었다. 일본 만화를 보면 일본 애들은 이렇게 입고 다니는구나, 책가방은 이런 걸 쓰는 구나, 간접적으로 경험하지 않나. 저도 한국을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이려고 많이 신경 쓰는 편이다. 이게 또 너무 한국적으로 가버리면 해외에서는 와 닿지 않는 부분도 있어서 중간 지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냥 우리 드라마에서 전지현 씨가 치킨을 먹어서 해외 팬들도 치킨을 먹게 되는 그런 수준 정도로 신경 쓰고 싶었다.
Q. 자주 교류하는 만화가들도 있는지.
A. ‘세컨드’의 안나래 작가, ‘따뜻한 달’의 영춘 작가, ‘아이쇼핑’의 류가명 작가 등 제 또래 작가들을 알음알음 알게 돼서 마음 맞는 사람끼리 만나고 있다. 멀리 사는 분도 있어서 2주에 한 번 정도 만나는 것 같다.
Q. 엄희자-조원기, 김동화-한승원, 이진주-이보배 등 선배들의 뒤를 이어 부부 만화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A. 저는 좋은 것 같다. 직업적으로 확실히 이해를 잘 해준다. 서로 짜증을 안내려고 노력한다. 저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며 영감을 얻는데 남편도 작가이다 보니 이해해주는 부분이 많다. 밤낮이 바뀌어 사는 것도 생활 패턴이 달라지는 것도 존중하는 등 작가적 스케줄을 서로 많이 배려해주는 편이다. 지금은 부천 만화창작스튜디오에 같이 화실을 꾸리고 있다.
Q. 만화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A. 모든 편견이나, 아니면 학벌이나 외모적인 것도 그렇고 그런 것을 떠나 정말 만화만 잘 그리면 할 수 있는 게 웹툰 작가다. 하지만 치열하다 보니 작가들 사이에 빈부 격차도 심하고 시대도 잘 타서 작품을 내야 하는 것도 있고, 어느 정도 직업의 도박성도 있다. 장단점이 확실하다. 빨리 데뷔해서 성공해야지, 돈 많이 벌어야지 조급함을 갖기 보다는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 웹툰은 대중예술이다. 대중성도 중요한데 자기 이야기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저도 지금 한참 클 때고, 국내에서 작품을 한 지도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처럼 이런 말을 한다는 게 부끄럽다.
Q. ‘허니 블러드’가 막을 내리게 됐으니 향후 스케줄이 궁금하다.
A. 일단 미국 쪽으로는 한 일 년 정도 ‘맥시멈 라이드’ 작업을 이어갈 것 같다. 한국에서 제 이름을 보게 된다면 30~40화, 단행본 한 권 정도 나오는 짧은 웹툰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에는 ‘맥시멈 라이드’의 후속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미국에 어학 연수를 겸해 다녀올 생각이다. 미국에서 연재하려면 아무래도 미국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준비해서 내후년에 그 작품을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연재하는 게 꿈이다.